영국사지 출토 공양구·불경 '예념미타도량참법' 보물 지정
영국사지 출토 공양구·불경 '예념미타도량참법' 보물 지정
  • 연합뉴스
  • 승인 2021.08.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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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국새 4점·안동 양반가 조리서 '수운잡방'도

 

국새 대군주보[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 2019년 미국에서 돌아온 국새인 '대군주보(大君主寶)'를 포함한 구한말 고종의 공식 도장 4점과 조선시대 중기 안동 양반가의 한문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 등 문화재 7건이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국새 대군주보', '국새 제고지보(制誥之寶)', '국새 칙명지보(勅命之寶)', '국새 대원수보(大元帥寶)'와 '수운잡방',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 '예념미타도량참법 권1∼5'를 일제히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국새(國璽) 4점은 일본과 미국으로 유출됐다가 돌아온 이력이 있다. 국새는 국권을 나타내는 실무용 도장으로, 외교문서와 행정문서 등 공문서에 사용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국새 대군주보는 1882년 7월 1일 제작됐다. 손잡이는 은색 거북이고, 도장 서체는 구첩전(九疊篆·글자 획을 여러 번 구부려서 쓴 서체)이다. 고위 관원 위임장과 사령장, 대군주 명으로 반포한 법령 문서 등에 썼다.

    환수 사실이 공개될 당시 거북꼬리 아래에 외국인 소장자 이름으로 짐작되는 'W B. Tom'이라는 알파벳이 확인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글자는 대군주보의 수난사를 상징하는 흔적으로 평가됐다.

    조선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국서(國書)에 찍을 국새 제작을 추진해 6점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대군주보를 제외한 유물은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국새 제고지보[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국새 제고지보, 국새 칙명지보, 국새 대원수보는 모두 대한제국 시기에 왕실 인장(印章·도장)을 전문적으로 담당한 보장(寶匠) 전흥길 등이 주도해 만들었다. 황제 명령을 알리고 관리를 임명할 때 쓰려고 제작한 도장이다.

    대한제국이 거행한 의식을 정리한 '대례의궤'(大禮儀軌) 등 관련 문헌에 형태와 재료, 크기 등이 상세하게 기록됐고, 당시 발행한 공식문서에 찍힌 사례가 있다.

    일제는 한국 국권을 침탈하고 6개월 남짓 지난 1911년 3월 일본 왕실을 관리하는 궁내청에 국새 3점을 넘겼다. 이후 미군정이 1946년 8월 15일 궁내청에서 환수했고, 총무처를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됐다.'



국새 대원수보[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제고지보는 1897년 9월 19일 완성됐다. 손잡이 부분 용은 정수리에 점무늬가 있고, 머리에는 뿔이 솟았다. 코에는 구름 모양 형상을 새겼고, 입은 이빨 두 개가 돌출됐으며 여의주를 물었다. 등은 동그랗게 말아 위로 올렸다.

    칙명지보는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고 문서에 사용하려고 1897년에 만든 국새 10점 중 하나인 동명 국새 '칙명지보'보다 작은 도장이다. 제작 시기는 1898년 윤3월 19일이다. '칙명'(勅命)은 황제가 관료에게 내린 명령을 뜻한다.

    대원수보는 대한제국이 1899년 6월 22일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는 원수부(元帥府)를 설치하고 제작한 도장 3점 중 하나다. 대원수는 원수부의 우두머리이자 군을 이끄는 최고 지휘자이다.

    문화재청은 국새 4점에 대해 환수 문화재로서 역사적 상징성, 조형성, 희소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음식 조리서 가운데 처음으로 보물이 된 수운잡방은 16세기에 주로 활동한 안동 유학자 김유부터 손자 김영까지 3대가 보관하고 작성했으며, 122항으로 구성됐다. 김유가 지은 앞부분은 86항이고, 김영이 쓴 뒷부분은 36항이다. 제목의 '수운'(需雲)은 주역에서 유래한 말로, 연회를 베풀어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 소개된 음식은 모두 114종이다. 주류(酒類) 57종, 채소 절임과 김치류 14종, 장류(醬類) 9종, 채소·과일 파종과 저장법 7종, 과자와 사탕 5종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중국과 조선에서 나온 다른 요리서를 참조해 기록한 부분도 있지만, 안동 지역 양반가 음식을 만드는 방법도 포함됐다.'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국새 대군주보[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 2019년 미국에서 돌아온 국새인 '대군주보(大君主寶)'를 포함한 구한말 고종의 공식 도장 4점과 조선시대 중기 안동 양반가의 한문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 등 문화재 7건이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국새 대군주보', '국새 제고지보(制誥之寶)', '국새 칙명지보(勅命之寶)', '국새 대원수보(大元帥寶)'와 '수운잡방',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 '예념미타도량참법 권1∼5'를 일제히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국새(國璽) 4점은 일본과 미국으로 유출됐다가 돌아온 이력이 있다. 국새는 국권을 나타내는 실무용 도장으로, 외교문서와 행정문서 등 공문서에 사용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국새 대군주보는 1882년 7월 1일 제작됐다. 손잡이는 은색 거북이고, 도장 서체는 구첩전(九疊篆·글자 획을 여러 번 구부려서 쓴 서체)이다. 고위 관원 위임장과 사령장, 대군주 명으로 반포한 법령 문서 등에 썼다.

    환수 사실이 공개될 당시 거북꼬리 아래에 외국인 소장자 이름으로 짐작되는 'W B. Tom'이라는 알파벳이 확인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글자는 대군주보의 수난사를 상징하는 흔적으로 평가됐다.

    조선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국서(國書)에 찍을 국새 제작을 추진해 6점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대군주보를 제외한 유물은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국새 제고지보[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국새 제고지보[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국새 제고지보, 국새 칙명지보, 국새 대원수보는 모두 대한제국 시기에 왕실 인장(印章·도장)을 전문적으로 담당한 보장(寶匠) 전흥길 등이 주도해 만들었다. 황제 명령을 알리고 관리를 임명할 때 쓰려고 제작한 도장이다.

    대한제국이 거행한 의식을 정리한 '대례의궤'(大禮儀軌) 등 관련 문헌에 형태와 재료, 크기 등이 상세하게 기록됐고, 당시 발행한 공식문서에 찍힌 사례가 있다.

    일제는 한국 국권을 침탈하고 6개월 남짓 지난 1911년 3월 일본 왕실을 관리하는 궁내청에 국새 3점을 넘겼다. 이후 미군정이 1946년 8월 15일 궁내청에서 환수했고, 총무처를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됐다.'

국새 대원수보[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새 대원수보[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제고지보는 1897년 9월 19일 완성됐다. 손잡이 부분 용은 정수리에 점무늬가 있고, 머리에는 뿔이 솟았다. 코에는 구름 모양 형상을 새겼고, 입은 이빨 두 개가 돌출됐으며 여의주를 물었다. 등은 동그랗게 말아 위로 올렸다.

    칙명지보는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고 문서에 사용하려고 1897년에 만든 국새 10점 중 하나인 동명 국새 '칙명지보'보다 작은 도장이다. 제작 시기는 1898년 윤3월 19일이다. '칙명'(勅命)은 황제가 관료에게 내린 명령을 뜻한다.

    대원수보는 대한제국이 1899년 6월 22일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는 원수부(元帥府)를 설치하고 제작한 도장 3점 중 하나다. 대원수는 원수부의 우두머리이자 군을 이끄는 최고 지휘자이다.

    문화재청은 국새 4점에 대해 환수 문화재로서 역사적 상징성, 조형성, 희소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음식 조리서 가운데 처음으로 보물이 된 수운잡방은 16세기에 주로 활동한 안동 유학자 김유부터 손자 김영까지 3대가 보관하고 작성했으며, 122항으로 구성됐다. 김유가 지은 앞부분은 86항이고, 김영이 쓴 뒷부분은 36항이다. 제목의 '수운'(需雲)은 주역에서 유래한 말로, 연회를 베풀어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 소개된 음식은 모두 114종이다. 주류(酒類) 57종, 채소 절임과 김치류 14종, 장류(醬類) 9종, 채소·과일 파종과 저장법 7종, 과자와 사탕 5종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중국과 조선에서 나온 다른 요리서를 참조해 기록한 부분도 있지만, 안동 지역 양반가 음식을 만드는 방법도 포함됐다.'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은 조선시대 유교 건축물인 서울 도봉서원이 있던 자리에서 2012년 발굴된 고려시대 불교 유물 10점을 지칭한다. 이곳은 추가 조사를 통해 영국사(寧國寺)라는 사찰터로 파악됐다.

    보물이 된 문화재는 금동금강저 1점, 금동금강령 1점, 청동현향로 1점, 청동향합 1점, 청동굽다리그릇 1점, 청동유개호 1점, 청동동이 1점, 청동숟가락 3점이다.

    방망이나 아령을 닮은 금강저와 종을 연상시키는 금강령은 모두 불교 의식 용구이다. 현향로도 불교 용구로, 손잡이가 달린 향로이다. 향합은 향을 두는 그릇, 유개호는 뚜껑이 있는 항아리를 뜻한다.

    부산 고불사에 있는 예념미타도량참법 권1∼5는 세조 부인인 정희왕후가 발원(發願·신에게 소원을 빎)해 찍은 왕실 판본 불경이다. 10권 2책 중 앞부분 1책에 해당한다.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은 아미타부처에게 예배하고 참회하며 극락왕생을 비는 책이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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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21-08-25 16:35:14
이번 도봉산 영국사 보물지정을 봉축드리며
아울러 폐사된 영국사가 다시 중창되어
도봉산의 중심사찰로 우뚝 서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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