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땅 판 뒤 "대찰, 일시에 폐망"
봉은사 땅 판 뒤 "대찰, 일시에 폐망"
  • 이혜조 기자
  • 승인 2024.04.14 19:1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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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로 살펴본 1970 봉은사 토지매각 심각성
총무원장 부장단 사표, 뱀을 소포 발송해 항의

1970년대 초 3차례에 걸쳐 한국전력공사 등 상공부에 넘어간 봉은사 땅의 주인을 가리는 소송이 지난 11일 결심공판을 마치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봉은사가 제기한 소유권이전등기말소등기 소송의 쟁점은 3가지다. 삼성동 산24의4번지가 중심적경내지로 처분행위가 정당했는지, 매매계약이 반사회적 법률행위인지, 한전의 등기부시효취득이 인정 여부 등이다.





대법원은 사찰의 중심적 경내지의 처분행위에 대해 허가와 관계없이 효력을 부인하고 있다. 중심적 경내지는 ‘사찰목적의 수행이 불능’ 또는 ‘사찰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를 제시하고 있다.(대법원1981. 12. 22. 선고81다731 판결)

환지전 삼성동 산24의4번지 토지 매각으로 봉은사가 사찰로써 목적 수행이 불가능하게 되거나, 봉은사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전 측은 봉은사 측 증인이나 제출한 서면만으로는 이를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서운 스님 등 세 분만 반대하고 종회의원들과 총무원 스님들도 다 팔자고 했다”는 증언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불교닷컴>이 당시 문서 등을 종합해보면 우선 1970년 3월 6일 봉은사 주지 서운 스님이 진정서를 제출한다. “총무원의 몇몇 몰지각한 스님들이 약 10만평의 임야를 토지를 특정인에게 팔려고 한다”고 일갈했다.



서운 스님 등이 작성한 성명서. 



들불처범 번지 "봉은사 매각 반대" …"몇사람 장난으로 자멸"

3월 7일 신도 200여명의 대통령 탄원서에 이어 3월 30일자 나병기 등 70명이 문화공보부 탄원서를 올렸다. 이들은 “봉은사 토지 11만평을 헐값에 팔자는 속셈이 무엇인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며 “전 불교계의 의사를 무시하고 조계종 총무원 인사 몇몇이 이 일을 한 줄같이 일관하겠다는 데 대해 ... 이천여년의 국토를 장식한 이 불교가 영영 몇 사람의 작난으로 영 자멸상태에 있다”고 한탄했다. 이어 “이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기에 관계당국에 진정과 동시에 1970년 3월 7일 대통령 각하께도 신도 2백여명의 탄원서를 올렸다.”고 밝혔다.

김기성 등 28명은 ‘선종수사찰 봉은사수호회’를 결성해 6월 27일 “봉은사는 지금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며 “모리배의 구미에 맞춰 염가로 매각하여 봉은사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 문광부장관은 불교재산법 9조, 11조에 위배되는 봉은사재산처분허가를 즉시 철회 취소하라“선언문을 발표했다.

7월 12일 김지효 스님 등은 성명서와 탄원서에서 “만약 매도를 강행한다면 이조불교 중앙의 기지였던 성스러운 유서와 선종갑찰로서의 빛나는 전통을 지닌 봉은사는 금후 그의 역사적 사명을 행할 수 없게 될 것이 필지입니다”라고 했다.

1970년이후로 이처럼 출재가자들의 봉은사 토지매각 반대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어 72년 12월 15일 중앙종회의원 16명이 ‘봉은사 토지 매각에 대한 절차상 재문제 다뤄달라’는 긴급동의서를 종회에 제출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피고 주장과 달리 팔려는 스님들은 ‘몇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스님과 신도들이 봉은사 매각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찰목적의 수행이 불능’ 또는 ‘사찰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도 그대로 토로하고 있다.

감사, 보고서 제출 봇물 "봉은사 경내지 위기"

총무원도 문제의 심각성을 여러차례 감찰원등을 통해 경위서와 보고서를 작성해 중앙종회에 보고하나, 정당성 주장이나 관련자 감싸기에 급급하는 형태를 보였다.

총무원이 1970년에 ‘불교회관 건립에 따르는 봉은사 일부토지처분에 대한 경위서’가 대표적이다.

감찰원이 1972년 2월 10일 작성한 ‘봉은사 재산처분에 대한 보고서’는 평가보다는 경과와 결과 위주로 사실을 기록했다.

봉은사는 ‘봉은사 경내지 부정처분진상’ 보고서를 통해 실태와 문제점을 낱낱이 기록했다.

작성자가 확인되지 않는 ‘봉은사 재산처분에 대한 보고서’에서는 경위, 문제점, 자금흐름외에도 별도로 종단의 과오 부분을 넣어 종회, 중진회의, 감찰원, 총무원 등 각 단위들의 잘못된 행위를 지적했다.

특히 중진회의 과오 부분에서는 “전 봉은사 주지 서운 스님과 법정 스님의 우려를 도외시하고 봉은사를 처분토록 영향력을 행사하여 놓고 오늘날 봉은사가 경내지가 위기에 처하도록 방관하였다는 무책임성”을 지적했다. 중진회의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후락 당시 주일대사가 들어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회서 총무원장 4부장 경질도

중앙종회도 지속적으로 감사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통해 진상파악에 나섰다.

봉은사 토지매각 빌미는 22회 중앙종회 결의였다.

다음해 7월 15일 23회 종회에서도 봉은사 문제가 거론됐다. “종단내외에 잡음이 야기되고 있어 이의 진상을 파악키 위해서 비공개리에 사무감사를 시행하다.(5명의 감사위원 구성) 감사결과 보고한 후 본건의 원만한 처리를 위하여 불교회관건립 추진 9인 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봉은사) 사찰재산처분을 위요하고 봉은사의 반발과 일부 대중의 반대운동이 본격화되어 최대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중략) 많은 재산을 처분해야 되는 사찰측에서는 사찰의 존손과 관련 중대한 문제로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중략)종단에서는 본건 이해 당사자들 참석 하에 양측의 관계서류 전체를 검토하는 등 철저한 감사를 시행하고 종회 의원 9인으로 불교회관건립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라며 심상치 않은 종단 안팎의 분위기를 기록했다.



23회 중앙종회 회의록 갈무리

대법원은 사찰의 중심적 경내지의 처분행위에 대해 허가와 관계없이 효력을 부인하고 있다. 중심적 경내지는 ‘사찰목적의 수행이 불능’ 또는 ‘사찰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를 제시하고 있다.(대법원1981. 12. 22. 선고81다731 판결)

환지전 삼성동 산24의4번지 토지 매각으로 봉은사가 사찰로써 목적 수행이 불가능하게 되거나, 봉은사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전 측은 봉은사 측 증인이나 제출한 서면만으로는 이를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서운 스님 등 세 분만 반대하고 종회의원들과 총무원 스님들도 다 팔자고 했다”는 증언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불교닷컴>이 당시 문서 등을 종합해보면 우선 1970년 3월 6일 봉은사 주지 서운 스님이 진정서를 제출한다. “총무원의 몇몇 몰지각한 스님들이 약 10만평의 임야를 토지를 특정인에게 팔려고 한다”고 일갈했다.

서운 스님 등이 작성한 성명서. 



3월 7일 신도 200여명의 대통령 탄원서에 이어 3월 30일자 나병기 등 70명이 문화공보부 탄원서를 올렸다. 이들은 “봉은사 토지 11만평을 헐값에 팔자는 속셈이 무엇인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며 “전 불교계의 의사를 무시하고 조계종 총무원 인사 몇몇이 이 일을 한 줄같이 일관하겠다는 데 대해 ... 이천여년의 국토를 장식한 이불교가 영영 몇 사람의 작난으로 영 자멸상태에 있다”고 한탄했다. 이어 “이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기에 관계당국에 진정과 동시에 1970년 3월 7일 대통령 각하께도 신도 2백여명의 탄원서를 올렸다.”고 밝혔다.

김기성 등 28명은 ‘선종수사찰 봉은사수호회’를 결성해 6월 27일 “봉은사는 지금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며 “모리배의 구미에 맞춰 염가로 매각하여 봉은사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 문광부장관은 불교재산법 9조, 11조에 위배되는 봉은사재산처분허가를 즉시 철회 취소하라“선언문을 발표했다.

7월 12일 김지효 스님 등은 성명서와 탄원서에서 “만약 매도를 강행한다면 이조불교 중앙의 기지였던 성스러운 유서와 선종갑찰로서의 빛나는 전통을 지닌 봉은사는 금후 그의 역사적 사명을 행할 수 없게 될 것이 필지입니다”라고 했다.

1970년이후로 이처럼 출재가자들의 봉은사 토지매각 반대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어 72년 12월 15일 중앙종회의원 16명이 ‘봉은사 토지 매각에 대한 절차상 재문제 다뤄달라’는 긴급동의서를 종회에 제출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피고 주장과 달리 팔려는 스님들은 ‘몇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스님과 신도들이 봉은사 매각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찰목적의 수행이 불능’ 또는 ‘사찰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도 그대로 토로하고 있다.

총무원도 문제의 심각성을 여러차례 감찰원등을 통해 경위서와 보고서를 작성해 중앙종회에 보고하나, 정당성 주장이나 관련자 감싸기에 급급하는 형태를 보였다.

총무원이 1970년에 ‘불교회관 건립에 따르는 봉은사일부토지처분에 대한 경위서’가 대표적이다.

감찰원이 1972년 2월 10일 작성한 ‘봉은사 재산처분에 대한 보고서’는 평가보다는 경과와 결과 위주로 사실을 기록했다.

봉은사는 ‘봉은사 경내지 부정처분진상’ 보고서를 통해 실태와 문제점을 낱낱이 기록했다.

작성자가 확인되지 않는 ‘봉은사 재산처분에 대한 보고서’에서는 경위, 문제점, 자금흐름외에도 별도로 종단의 과오 부분을 넣어 종회, 중진회의, 감찰원, 총무원 등 각 단위들의 잘못된 행위를 지적했다.

특히 중진회의 부분에서는 “전 봉은사 주지 서운 스님과 법정 스님의 우려를 도외시하고 봉은사를 처분토록 영향력을 행사하여 놓고 오늘날 봉은사가 경내지가 위기에 처하도록 방관하였다는 무책임성”을 지적했다. 중진회의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후락 당시 주일대사가 들어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앙종회도 지속적으로 감사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통해 진상파악에 나섰다.

봉은사 토지매각 빌미는 22회 중앙종회 결의였다.

다음해 7월 15일 23회 종회에서도 봉은사 문제가 거론됐다. “종단내외에 잡음이 야기되고 있어 이의 진상을 파악키 위해서 비공개리에 사무감사를 시행하다.(5명의 감사위원 구성) 감사결과 보고한 후 본건의 원만한 처리를 위하여 불교회관건립 추진 9인 위원회를 구성”이라며 ‘ 봉은사 재산처분에 관한 건’을 다뤘다. 종회 평가에서는 “(봉은사) 사찰재산처분을 위요하고 봉은사의 반발과 일부 대중의 반대운동이 본격화되어 최대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중략) 많은 재산을 처분해야 되는 사찰측에서는 사찰의 존손과 관련 중대한 문제로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중략)종단에서는 본건 이해 당사자들 참석 하에 양측의 관계서류 전체를 검토하는 등 철저한 감사를 시행하고 종회 의원 9인으로 불교회관건립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라며 심상치 않은 종단 안팎의 분위기를 기록했다.



23회 중앙종회 회의록 갈무리
서운 스님 등이 작성한 성명서. 

들불처범 번지 "봉은사 매각 반대" …"몇사람 장난으로 자멸"

3월 7일 신도 200여명의 대통령 탄원서에 이어 3월 30일자 나병기 등 70명이 문화공보부 탄원서를 올렸다. 이들은 “봉은사 토지 11만평을 헐값에 팔자는 속셈이 무엇인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며 “전 불교계의 의사를 무시하고 조계종 총무원 인사 몇몇이 이 일을 한 줄같이 일관하겠다는 데 대해 ... 이천여년의 국토를 장식한 이 불교가 영영 몇 사람의 작난으로 영 자멸상태에 있다”고 한탄했다. 이어 “이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기에 관계당국에 진정과 동시에 1970년 3월 7일 대통령 각하께도 신도 2백여명의 탄원서를 올렸다.”고 밝혔다.

김기성 등 28명은 ‘선종수사찰 봉은사수호회’를 결성해 6월 27일 “봉은사는 지금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며 “모리배의 구미에 맞춰 염가로 매각하여 봉은사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 문광부장관은 불교재산법 9조, 11조에 위배되는 봉은사재산처분허가를 즉시 철회 취소하라“선언문을 발표했다.

7월 12일 김지효 스님 등은 성명서와 탄원서에서 “만약 매도를 강행한다면 이조불교 중앙의 기지였던 성스러운 유서와 선종갑찰로서의 빛나는 전통을 지닌 봉은사는 금후 그의 역사적 사명을 행할 수 없게 될 것이 필지입니다”라고 했다.

1970년이후로 이처럼 출재가자들의 봉은사 토지매각 반대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어 72년 12월 15일 중앙종회의원 16명이 ‘봉은사 토지 매각에 대한 절차상 재문제 다뤄달라’는 긴급동의서를 종회에 제출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피고 주장과 달리 팔려는 스님들은 ‘몇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스님과 신도들이 봉은사 매각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찰목적의 수행이 불능’ 또는 ‘사찰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도 그대로 토로하고 있다.

감사, 보고서 제출 봇물 "봉은사 경내지 위기"

총무원도 문제의 심각성을 여러차례 감찰원등을 통해 경위서와 보고서를 작성해 중앙종회에 보고하나, 정당성 주장이나 관련자 감싸기에 급급하는 형태를 보였다.

총무원이 1970년에 ‘불교회관 건립에 따르는 봉은사 일부토지처분에 대한 경위서’가 대표적이다.

감찰원이 1972년 2월 10일 작성한 ‘봉은사 재산처분에 대한 보고서’는 평가보다는 경과와 결과 위주로 사실을 기록했다.

봉은사는 ‘봉은사 경내지 부정처분진상’ 보고서를 통해 실태와 문제점을 낱낱이 기록했다.

작성자가 확인되지 않는 ‘봉은사 재산처분에 대한 보고서’에서는 경위, 문제점, 자금흐름외에도 별도로 종단의 과오 부분을 넣어 종회, 중진회의, 감찰원, 총무원 등 각 단위들의 잘못된 행위를 지적했다.

특히 중진회의 과오 부분에서는 “전 봉은사 주지 서운 스님과 법정 스님의 우려를 도외시하고 봉은사를 처분토록 영향력을 행사하여 놓고 오늘날 봉은사가 경내지가 위기에 처하도록 방관하였다는 무책임성”을 지적했다. 중진회의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후락 당시 주일대사가 들어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회서 총무원장 4부장 경질도

중앙종회도 지속적으로 감사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통해 진상파악에 나섰다.

봉은사 토지매각 빌미는 22회 중앙종회 결의였다.

다음해 7월 15일 23회 종회에서도 봉은사 문제가 거론됐다. “종단내외에 잡음이 야기되고 있어 이의 진상을 파악키 위해서 비공개리에 사무감사를 시행하다.(5명의 감사위원 구성) 감사결과 보고한 후 본건의 원만한 처리를 위하여 불교회관건립 추진 9인 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봉은사) 사찰재산처분을 위요하고 봉은사의 반발과 일부 대중의 반대운동이 본격화되어 최대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중략) 많은 재산을 처분해야 되는 사찰측에서는 사찰의 존손과 관련 중대한 문제로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중략)종단에서는 본건 이해 당사자들 참석 하에 양측의 관계서류 전체를 검토하는 등 철저한 감사를 시행하고 종회 의원 9인으로 불교회관건립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라며 심상치 않은 종단 안팎의 분위기를 기록했다.

서운 스님 등이 작성한 성명서. 



3월 7일 신도 200여명의 대통령 탄원서에 이어 3월 30일자 나병기 등 70명이 문화공보부 탄원서를 올렸다. 이들은 “봉은사 토지 11만평을 헐값에 팔자는 속셈이 무엇인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며 “전 불교계의 의사를 무시하고 조계종 총무원 인사 몇몇이 이 일을 한 줄같이 일관하겠다는 데 대해 ... 이천여년의 국토를 장식한 이불교가 영영 몇 사람의 작난으로 영 자멸상태에 있다”고 한탄했다. 이어 “이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기에 관계당국에 진정과 동시에 1970년 3월 7일 대통령 각하께도 신도 2백여명의 탄원서를 올렸다.”고 밝혔다.

김기성 등 28명은 ‘선종수사찰 봉은사수호회’를 결성해 6월 27일 “봉은사는 지금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며 “모리배의 구미에 맞춰 염가로 매각하여 봉은사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 문광부장관은 불교재산법 9조, 11조에 위배되는 봉은사재산처분허가를 즉시 철회 취소하라“선언문을 발표했다.

7월 12일 김지효 스님 등은 성명서와 탄원서에서 “만약 매도를 강행한다면 이조불교 중앙의 기지였던 성스러운 유서와 선종갑찰로서의 빛나는 전통을 지닌 봉은사는 금후 그의 역사적 사명을 행할 수 없게 될 것이 필지입니다”라고 했다.

1970년이후로 이처럼 출재가자들의 봉은사 토지매각 반대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어 72년 12월 15일 중앙종회의원 16명이 ‘봉은사 토지 매각에 대한 절차상 재문제 다뤄달라’는 긴급동의서를 종회에 제출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피고 주장과 달리 팔려는 스님들은 ‘몇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스님과 신도들이 봉은사 매각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찰목적의 수행이 불능’ 또는 ‘사찰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도 그대로 토로하고 있다.

총무원도 문제의 심각성을 여러차례 감찰원등을 통해 경위서와 보고서를 작성해 중앙종회에 보고하나, 정당성 주장이나 관련자 감싸기에 급급하는 형태를 보였다.

총무원이 1970년에 ‘불교회관 건립에 따르는 봉은사일부토지처분에 대한 경위서’가 대표적이다.

감찰원이 1972년 2월 10일 작성한 ‘봉은사 재산처분에 대한 보고서’는 평가보다는 경과와 결과 위주로 사실을 기록했다.

봉은사는 ‘봉은사 경내지 부정처분진상’ 보고서를 통해 실태와 문제점을 낱낱이 기록했다.

작성자가 확인되지 않는 ‘봉은사 재산처분에 대한 보고서’에서는 경위, 문제점, 자금흐름외에도 별도로 종단의 과오 부분을 넣어 종회, 중진회의, 감찰원, 총무원 등 각 단위들의 잘못된 행위를 지적했다.

특히 중진회의 부분에서는 “전 봉은사 주지 서운 스님과 법정 스님의 우려를 도외시하고 봉은사를 처분토록 영향력을 행사하여 놓고 오늘날 봉은사가 경내지가 위기에 처하도록 방관하였다는 무책임성”을 지적했다. 중진회의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후락 당시 주일대사가 들어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앙종회도 지속적으로 감사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통해 진상파악에 나섰다.

봉은사 토지매각 빌미는 22회 중앙종회 결의였다.

다음해 7월 15일 23회 종회에서도 봉은사 문제가 거론됐다. “종단내외에 잡음이 야기되고 있어 이의 진상을 파악키 위해서 비공개리에 사무감사를 시행하다.(5명의 감사위원 구성) 감사결과 보고한 후 본건의 원만한 처리를 위하여 불교회관건립 추진 9인 위원회를 구성”이라며 ‘ 봉은사 재산처분에 관한 건’을 다뤘다. 종회 평가에서는 “(봉은사) 사찰재산처분을 위요하고 봉은사의 반발과 일부 대중의 반대운동이 본격화되어 최대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중략) 많은 재산을 처분해야 되는 사찰측에서는 사찰의 존손과 관련 중대한 문제로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중략)종단에서는 본건 이해 당사자들 참석 하에 양측의 관계서류 전체를 검토하는 등 철저한 감사를 시행하고 종회 의원 9인으로 불교회관건립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라며 심상치 않은 종단 안팎의 분위기를 기록했다.



23회 중앙종회 회의록 갈무리
23회 중앙종회 회의록 갈무리

24회 종회에서도 종정감사때 봉은사 토지매도 문제를 다뤘다. 종책질의에서 봉은사 토지매도 예산 문제를 따졌다.

26회 종회에서는 봉은사 토지 매각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염불암 사건마저 불거지자 이청담 총무원장을 비롯해 4부장, 감찰원장, 감찰위원의 사표를 수리했다. 문정영 스님은 징계처분했다.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이유로 청담 스님은 재선하고, 총무부장 고광덕 등을 새롭게 선출했다.

71년 11월 22일 27회 종회에서는 청담 스님의 갑작스런 열반으로 상중임에도 급기야 ‘봉은사 재산 처분에 대한 감사’를 의결했다. 11명의 중앙종회의원과 김서운 전 봉은사 주지 등 12명으로 감사위원 선출, 처분 후 봉은사 경내지는 약3,000평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이번 종회 배경을 설명하는 자료에 따르면 “많은 의혹과 잡음을 불러일으켰던 봉은사 재산처분 과정을 면밀히 감사하여 진상을 밝히고 잘못된 종단의 불협화음을 제거하고 안정과 화합으로 발전의 기틀을 공고히 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경주한 종회였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그해 12월 16일 28회 종회에서 봉은사 재산 처분 결의문을 채택하고, 의장단에서 지명한 11인으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했다. 당초 약속과 달리 정부가 거액의 투기억제세를 부과되자 “문화적 대찰이 일시에 폐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중대한 실책이다”며 “정부는 담세능력이 전무하며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요청인 봉은사를 폐망에 이르게 하는 모든 조치를 즉시 철회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루전인 12월 15일 부과된 투기억제세를 내지 못해 공매 공고가 떴다. 종회는 이날 총무 교무 사회 등 4부장의 사표를 받았다.

72년 4월 10~11일에 열린 29회 종회에서는 수좌 스님 30명이 제출한 봉은사 경내지 부정 처분 건의안이 논의됐다. 김명환 의원 “봉은사 문제는 종회 때마다 계속 거론되고 특별감사다, 조사다 하였지만 아직 의혹이 풀리지 않고 총무원의 불신임이 대두되고 있고 유인물을 풀고 있다”고 했다.

김우조 의원는 “지방에서는 모두 부정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1, 2, 3차 처분관계를 모두 다루어서 해결지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의장은 각계 대표 총무원측 감찰원측 봉은사측 종회의원3명 수좌대표 2명이 논의해 차기 종회 때 결과를 발표할 것을 의결했다.

일련의 기록물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1970년 조계종단 상황은, 삼성동 산24의4 등을 일부 세력이 개인으로 가장한 서울시과장에게 속아 상공부에 팔아넘긴 직후부터 봉은사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기 충분했다는 방증이다.

“70년대는 조계종이 부패와 내분으로 속앓이를 하던 시기였다. 71년 동화사 승려들이 봉은사와 연주암 부지 매각에 항의하기 위해 청담 총무원장에게 `뱀 소포'를 보낸 것이라든지 72년 한 승려가 조계사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일어난 것 등으로 미뤄보면 당시의 부패상과 내분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해준다.”- <연합뉴스)[해설] 대한불교 조계종 분규 略史 199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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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 2024-04-15 10:38:35
정부의 부당한 행위에 대응하는것도 필요하나 그당시 매각에 앞장선 넘이 누군지 또 동조해 매각에 도움을 준 넘이 누군지 회으록을 뒤져 다 밝혀야

소지산 2024-04-15 08:37:57
더이상 욕심내지 말고 있는 토지 관리나 잘 하세요
정부 다음으로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조계종 아니십니까
국가에 헌납했다 생각 하십시요 나라가 있었기에 불교도 있다고 받아들시길..

참괴승 2024-04-14 21:44:22
청담도 개새끼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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