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민중의 뜻과 힘을 모을 때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마지막 행진을 위해 2시에 광장에 모인 동지와 시민들. 나중에 듣기로는 2백명쯤이다. 도쿄에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것은, 기무라 마사히데상('經産省텐트히로바' 리더)이 지역의 동지들에게 홍보하고 참여를 권유한 덕분이다.
필자는 출발전 발언을 통해 다음의 요지를 말했다.
"일본정부는 엄청난 판단착오를 하고 있다. 이런 엄청난 일을 국민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저질렀다. 민주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잘못하고 있을 때는 국민이 직접 바로잡아야 한다. 이제 가서 바로잡자."
한국에서 조상호 차윤화 동지도 동참했다. 행진도중에는 한국시민사회에도 열심히 참여중인 배은미 재일동포 동지도 왔다. 미처 몰랐지만 더탐사(뉴탐사 전신)에서는 이 행진을 생중계로 보도했다.
이렇게 일본정부가 아니라 국회로 전달하러 가는 것은 일본이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정부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이를 통제하는 역할은 일본국회가 될 수밖에 없다. 통제하지 못하는 국회를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민주주의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국회가 유명무실한 것이 문제다. 국회가 바로 서야 일본정부의 만행도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런 의미의 행진이다.
국회앞에 도착하니 공간이 없다. 필자는 이런 협소한 야외에서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무라상은 일본경찰과의 사전협의가 있으니, 이 공간에서나마 전달식을 하자고 했다. 필자도 이런 공간인줄 모르고 출발전에는 동조를 했나, 현장에 와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적어도 대중이 보는 가운데서 전달식을 진행한다면 제대로 된 공간에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다소 강경하게 주장했다. 국회의사당내의 넓은 공간이 보이니 거기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필자의 주장은 처음있는 것이기에 일본의 경찰로서도 판단이 서지 않은듯 시간만 흘러갔다.
이때 필자는 일본의 경찰이 예의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주권자인 국민이 평화롭게 행진하는 것은 보호해야 하고 국민이 평화롭게 말을 하고 뜻을 펼치는 일은, 경찰과 같은 공복이 성실하게 도와주어야 함에도 그런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이었다. 기실 민주주의 국가라면 국민이 평화롭게 퍼포먼스를 하는 이상, 이를 착실히 돕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장시간의 대치 끝에 오오츠바키 참의원 의원이 등장했다. 참의원은 미국으로 치면 상원의원과 같다. 그녀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국회의사당내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자신의 입회하에 국회의장 직속의 담당관에게 진정서와 메세지문집을 전달하면 어떻겠냐의 절충안이었다. 필자와 우리 일행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때 국회에 전달한 진정서는 1편에 소개한 바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1,600km를 걸어서] 1. 일본 국회에 전한 것은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여전히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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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후 필자는 또다시 꿈을 꾸었다. 그것은 아래와 같은 2024년 6월의 세계시민행진이다. 한일 양국이 아니라 지구촌민중이 연대하여 악행을 저지하는 그림이다.
[2024년 6월 세계시민행진 개요]
[2024년 6월 세계시민행진 취지문(초안)]
“왜 굳이 바다에 버리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희석해도 방사능의 절대량은 그대로입니다. 바다생태계가 파괴됩니다. 방사능은 반감기가 있으므로 보관만 잘 해두면 현저히 줄일 수 있습니다. 왜 보관하지 못합니까? 일본정부는 뭇 생명을 고의로 파괴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인류자멸의 테러는 중지되어야 합니다.
이젠 지구촌 주인이 나서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이 걸어서 이를 일깨워주고 방류를 막고자 합니다. 함께 걸으면 이룰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작년 여름 서울에서 도쿄까지 1600km를 행진하면서 양국의 시민들이 함께 외쳤던 구호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세 차례의 큰 핵사고로, 인류는 핵전쟁이 아닌 핵발전소 폭발로 멸망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전세계 450개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은 미래 세대에게도 치명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최선을 다해 방어하려 해도 이미 바다는 불가피하게 오염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이미 방류된 오염물질이라도 이를 거두어들여 따로 처리해야 합니다. 이런 마당에, 일본정부의 행태처럼 핵오염물질을 고의로 바다에 버리는 것은 지구의 생명을 죽이려하는 극도의 범법행위입니다. 이를 용인하고 조장하는 미국과 국제기구(IAEA)도 공범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생성과 존립에서 다른 생명체와 상호 기여하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탐욕으로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생명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위기는 곧 인류의 위기입니다.
일본정부는 자신을 위시한 많은 나라들이 스스로 약속한 런던협약(1996)도 무시하고 있고, 국제연합(UN)은 스스로 만든 세계자연헌장(1982)과 리우환경회의를 거친 지구헌장(2000)의 정신조차 외면하면서 파괴를 방관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인류는 다른 생명체를 존중해 지구생태계를 지키고 보살필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지구생태계를 지속적으로 보호할 방안을 찾아서 온전하게 미래세대에게 넘겨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최근 100개 해양학 연구소가 모인 전미해양연구소협회(NAML) 그리고 노벨평화상(1985년)수상단체인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의(IPPNW)는 핵오염수방출의 반대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련의 국가권력은 하나뿐인 지구를 파괴하고 미래를 저당잡히고 있습니다. 미국정부도 자신의 나라에서는 메사츠세츠주와 뉴욕주의 사례에서 보듯 핵오염수방출을 금지하면서 지구촌에서는 이 문제를 도외시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들딸 손자손녀들에게 잘못된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식들의 미래를 희생해서 지금세대의 편리를 누리려는 이기적 행위를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손자손녀들은 이런 행태를 그대로 배워서 그 후손들을 상대로 마찬가지의 악행을 펼칠 것입니다. 이래서는 파멸뿐입니다.
오직 하나뿐인 지구입니다. 앞으로 수많은 생명과 후손이 살아갈 터전인 지구입니다. 이젠 각국 인민이 함께 뜻과 힘을 모아 과오를 응징하고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IT의 발달로 지구촌 인민들이 뜻을 모으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뜻으로 모인 힘이 발휘되는 이치를 알고 있습니다. 자본권력이 기술시대를 등에 엎고 지구촌을 장악하고 있는 이때 민중도 그런 기술시대에 걸맞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를 표징하는 퍼포먼스가 가능합니다.
어느 소수의 나라가 아니라 많은 나라의 민중이 모일 수 있다는 표징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이번 6월의 핵오염수STOP세계시민행진의 또하나의 취지입니다. 행진하면서 세계시민의 뜻을 펼치고 선언서를 결의하여 UN과 세계인들에게 공유하고자 합니다.
다함께 뜻과 힘을 모읍시다!
2024년 3월
GLOMA위원회
(글쓴이 이원영은, 전 수원대 교수로서 2023년 6월부터 9월까지 약3개월간 방사능오염수방류중지 한일시민도보행진을 진행하였다. 이 글과 사진은 그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 이원영 전 수원대교수 leewysu@gmail.com
* 이 글은 <한겨레온>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