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 돌아가 정법 일으켜 세우려는 의지의 발로”
“부처님 가르침 돌아가 정법 일으켜 세우려는 의지의 발로”
  • 선학원백년사편찬위원회
  • 승인 2024.02.0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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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법회를 준비하고 개최했던 중심인물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좌 스님들이었다. 그중 청담 스님과 운허 스님은 고승법회 개최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사진은 청담 스님.



2. 유교법회의 개최

당시 유교법회를 준비하고 개최했던 중심 인물들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설립부터 오랫동안 활동했던 수좌(首座) 스님이었다. 그들은 이미 조동종 맹약에 반대해 임제종운동을 전개했고, 그 이념을 1921년 선학원 창설로 이어갔으며, 우여곡절을 견디고 마침내 1934년 재단법인을 인가받아 선학원이 법적인 보호를 받게 만드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청담 스님과 운허 스님은 고승법회 개최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화계사, 봉선사 등에 법회 개최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종로경찰서와 상의하여 선학원에서 법회를 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은 것이다. 특히 유교법회는 불교는 범행단(梵行壇)이라 하여 청정하게 계율을 잘 지키고 종단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했으니 처자 권속을 거느린 총무원의 당사자들은 당연히 반대가 심했고, 방해를 많이 했다고 한다.

10일간 부내(府內) 안국정(安國町) 선학원(禪學院)에서는 운수납승(雲水衲僧) 고덕선사(高德禪師)의 유교법회(遺敎法會)를 열고 박한영(朴漢永) 송만공(宋滿空) 김상월(金霜月) 하동산(河東山) 제 선사의 범망경(梵網經) 유교경(遺敎經) 조계종지(曹溪宗旨)에 대한 설법이 잇섯다고 한다.3)

당시의 회중은 만공, 한영, 묵담(默潭), 청담, 무불(無佛), 적음(寂音), 자운(慈雲), 동산, 효봉(曉峰) 스님 등으로 당대의 노장년층 선장(禪匠) 40여 명이 운집하였다. 당시 법회에 참석했던 스님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박한영, 송만공, 채서응, 장석상, 강영명, 김상월, 하동산, 김석하, 원보산, 국묵담, 하정광, 김경권, 이운허, 이청담, 김적음, 변월주, 강석주, 박석두, 남무불, 박종현, 조성담, 김자운, 윤고암, 정금오, 도명, 이화응, 김지복, 박봉화, 귀암, 민청호, 청안, 박재운, 박본공, 강석주

반도불교(半島佛敎)의 신체제(新體制)로서는 미구(未久)에 총본사(總本寺)의 실현(實現)을 앞두고 잇는 차제(此際)에 오렛동안 보지 못하든 불교의 진정한 수양법요회(修養法要會)가 거반(去般) 중앙교계(中央敎界)에서 회집(會集) 되엿는데 즉(卽) 이 수양법요회(修養法要會)란 것은 아(我) 반도(半島)의 전교계(全敎界)를 통(通)하야 고승대덕(高僧大德)을 총동원한 소위(所謂) ‘고승수양법회(高僧修養法會)’란 명목名目으로 거去 2월 4일4)부터 경성부(京城府) 안국정(安國町) 40번지(四十番地) 중앙 선학원(中央禪學院)에서 위엄스럽고 엄숙(嚴肅)한 가운데서 개막(開幕)되엿는데 당(當) 법회(法會)에는 충남 예산 정혜사(忠南 禮山 定慧寺) 송만공사(宋萬空師),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江原道 五臺山 月精寺) 방한암사(方漢巖師) 충남 속리산 법주사(忠南 俗離山 法主寺) 장석상사(張石霜師) 등 3대 선사(三大禪師)를 초치(招致)하야 증명(證明)으로 모시고 회주(會主)에는 박영호사(朴永湖師), 김상월사(金霜月師), 강영명사(姜永明師), 채서응사(蔡瑞應師)로 하야 회제1일(會第一日)인 4일부터 동 6일仝六日까지 유교경(遺敎經), 12일(十二日)까지 자비참(慈悲讖)의 공개(公開)를 한 후 13일(十三日) 요(要) 특(特)히 아(我) 황군무운장구(皇軍武運長久), 전몰장사(戰歿將士)의 위령대법요(慰靈大法要)가 이 승대덕(僧大德)의 집법(執法)으로 영법(如法) 차(且) 엄중(嚴重)히 거행(擧行)되고 법회(法會)는 원만(圓滿)히 회향(回向)되엿는데 일반(一般)은 시국하 민중(時局下 民衆) 심신수양상(心身修養上) 가장 의의(意義)잇들 법회(法會)엿음에 무한(無限)한 법열(法悅)을 감(感)하게 되엿든 바라 한다.5)

당시 언론에 의하면 만공, 한암, 석상(石想) 스님 세 분을 증명법사로 모시고, 박한영, 김상월, 강영명, 채서응 스님을 회주로 모셨다고 한다. 이 가운데 채서응으로 불렸던 서응 동호(瑞應 東濠, 1876~1950) 스님은 석전(石顚), 금파(錦坡), 진응(震應 스님 등 대강백 문하에서 교학을 연찬하고 평생 후학 양성을 위해 정진했던 스님으로, 유교법회(遺敎法會)에 증명법사로 참석하였다. 서응 스님은 석전 박한영(1870~1948) 스님과는 스승과 제자였지만, 나이가 6살밖에 차이 나지 않아 평생 막역한 사이로 지냈다고 한다. 법회는 박한영 스님의 《유교경(遺敎經)》 강설을 중심으로 만공 스님과 동산 스님이 번갈아 설법하였다. 《범망경(梵網經)》 강의도 진행되었는데, 당시 두 경전을 강설한 것은 법회 개최의 목적이 불조혜명의 계승을 전제로 한 한국불교의 청정교단 수호에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유교법회를 준비하고 개최했던 중심인물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좌 스님들이었다. 그중 청담 스님과 운허 스님은 고승법회 개최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사진은 운허 스님.
유교법회를 준비하고 개최했던 중심인물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좌 스님들이었다. 그중 청담 스님과 운허 스님은 고승법회 개최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사진은 청담 스님.

2. 유교법회의 개최

당시 유교법회를 준비하고 개최했던 중심 인물들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설립부터 오랫동안 활동했던 수좌(首座) 스님이었다. 그들은 이미 조동종 맹약에 반대해 임제종운동을 전개했고, 그 이념을 1921년 선학원 창설로 이어갔으며, 우여곡절을 견디고 마침내 1934년 재단법인을 인가받아 선학원이 법적인 보호를 받게 만드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청담 스님과 운허 스님은 고승법회 개최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화계사, 봉선사 등에 법회 개최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종로경찰서와 상의하여 선학원에서 법회를 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은 것이다. 특히 유교법회는 불교는 범행단(梵行壇)이라 하여 청정하게 계율을 잘 지키고 종단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했으니 처자 권속을 거느린 총무원의 당사자들은 당연히 반대가 심했고, 방해를 많이 했다고 한다.

10일간 부내(府內) 안국정(安國町) 선학원(禪學院)에서는 운수납승(雲水衲僧) 고덕선사(高德禪師)의 유교법회(遺敎法會)를 열고 박한영(朴漢永) 송만공(宋滿空) 김상월(金霜月) 하동산(河東山) 제 선사의 범망경(梵網經) 유교경(遺敎經) 조계종지(曹溪宗旨)에 대한 설법이 잇섯다고 한다.3)

당시의 회중은 만공, 한영, 묵담(默潭), 청담, 무불(無佛), 적음(寂音), 자운(慈雲), 동산, 효봉(曉峰) 스님 등으로 당대의 노장년층 선장(禪匠) 40여 명이 운집하였다. 당시 법회에 참석했던 스님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박한영, 송만공, 채서응, 장석상, 강영명, 김상월, 하동산, 김석하, 원보산, 국묵담, 하정광, 김경권, 이운허, 이청담, 김적음, 변월주, 강석주, 박석두, 남무불, 박종현, 조성담, 김자운, 윤고암, 정금오, 도명, 이화응, 김지복, 박봉화, 귀암, 민청호, 청안, 박재운, 박본공, 강석주

반도불교(半島佛敎)의 신체제(新體制)로서는 미구(未久)에 총본사(總本寺)의 실현(實現)을 앞두고 잇는 차제(此際)에 오렛동안 보지 못하든 불교의 진정한 수양법요회(修養法要會)가 거반(去般) 중앙교계(中央敎界)에서 회집(會集) 되엿는데 즉(卽) 이 수양법요회(修養法要會)란 것은 아(我) 반도(半島)의 전교계(全敎界)를 통(通)하야 고승대덕(高僧大德)을 총동원한 소위(所謂) ‘고승수양법회(高僧修養法會)’란 명목名目으로 거去 2월 4일4)부터 경성부(京城府) 안국정(安國町) 40번지(四十番地) 중앙 선학원(中央禪學院)에서 위엄스럽고 엄숙(嚴肅)한 가운데서 개막(開幕)되엿는데 당(當) 법회(法會)에는 충남 예산 정혜사(忠南 禮山 定慧寺) 송만공사(宋萬空師),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江原道 五臺山 月精寺) 방한암사(方漢巖師) 충남 속리산 법주사(忠南 俗離山 法主寺) 장석상사(張石霜師) 등 3대 선사(三大禪師)를 초치(招致)하야 증명(證明)으로 모시고 회주(會主)에는 박영호사(朴永湖師), 김상월사(金霜月師), 강영명사(姜永明師), 채서응사(蔡瑞應師)로 하야 회제1일(會第一日)인 4일부터 동 6일仝六日까지 유교경(遺敎經), 12일(十二日)까지 자비참(慈悲讖)의 공개(公開)를 한 후 13일(十三日) 요(要) 특(特)히 아(我) 황군무운장구(皇軍武運長久), 전몰장사(戰歿將士)의 위령대법요(慰靈大法要)가 이 승대덕(僧大德)의 집법(執法)으로 영법(如法) 차(且) 엄중(嚴重)히 거행(擧行)되고 법회(法會)는 원만(圓滿)히 회향(回向)되엿는데 일반(一般)은 시국하 민중(時局下 民衆) 심신수양상(心身修養上) 가장 의의(意義)잇들 법회(法會)엿음에 무한(無限)한 법열(法悅)을 감(感)하게 되엿든 바라 한다.5)

당시 언론에 의하면 만공, 한암, 석상(石想) 스님 세 분을 증명법사로 모시고, 박한영, 김상월, 강영명, 채서응 스님을 회주로 모셨다고 한다. 이 가운데 채서응으로 불렸던 서응 동호(瑞應 東濠, 1876~1950) 스님은 석전(石顚), 금파(錦坡), 진응(震應 스님 등 대강백 문하에서 교학을 연찬하고 평생 후학 양성을 위해 정진했던 스님으로, 유교법회(遺敎法會)에 증명법사로 참석하였다. 서응 스님은 석전 박한영(1870~1948) 스님과는 스승과 제자였지만, 나이가 6살밖에 차이 나지 않아 평생 막역한 사이로 지냈다고 한다. 법회는 박한영 스님의 《유교경(遺敎經)》 강설을 중심으로 만공 스님과 동산 스님이 번갈아 설법하였다. 《범망경(梵網經)》 강의도 진행되었는데, 당시 두 경전을 강설한 것은 법회 개최의 목적이 불조혜명의 계승을 전제로 한 한국불교의 청정교단 수호에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유교법회를 준비하고 개최했던 중심인물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좌 스님들이었다. 그중 청담 스님과 운허 스님은 고승법회 개최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사진은 운허 스님.
유교법회를 준비하고 개최했던 중심인물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좌 스님들이었다. 그중 청담 스님과 운허 스님은 고승법회 개최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사진은 운허 스님.

우리 불법도 또한 그러하여 불자의 몸으로서 부처님의 혜명을 이어 전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불법 중에 큰 죄인이라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혜명이란 무엇인가? 세존이 설산(雪山)에 들어가시어 6년 동안을 앉아 동하지 아니하시고 납월 초여드렛날 새벽 밝은 별을 보시고 견성오도(見性悟道)하시었다 하니 그때 세존은 바로 부처의 혜명을 증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현전 대중은 이 부처님의 혜명을 이었다고 보는가? 이 혜명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모난 것도 아니요, 둥근 것도 아니요, 짧은 것도 아니요, 긴 것도 아니요,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요, 시작함도 없고 마침도 없는 것이니, 비록 우주는 괴멸해도 여래의 혜명은 마침내 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혜명을 이을 것인가? 사람들이여! 꿈도 없고 생시도 없는 경계를 아는 이가 있는가? 온 세계와 내가 모두 적멸하여야 남과 나라고 하는 상이 끊어지니, 정히 이러한 때를 당하여 나의 주인공이 어떤 곳에 있어 안신입명(安身立命)을 하는가? 이 경계를 깨달은 자라야 곧 이것이 부처님의 맏아들 적자인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주인공의 안신입명을 깨닫지 못한 자이며, 부처님의 혜명을 이은 자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부처의 혜명을 잇지 못한 자라면, 머리를 깎는 삭발은 그만 두고 눈썹까지 깎는 자라 할지라도 불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의 혜명을 계승하지 못한 자라면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용납할 수 없는 큰 죄인이 될 것이니, 마땅히 불자라면 항상 부처님의 혜명을 이을 생각을 가져야 하겠소.6)

만공 스님은 불조의 혜명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모난 것도 아니요 둥근 것도 아니요, 짧은 것도 아니요 긴 것도 아니요,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요, 시작함도 없고 마침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즉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밝힌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열반묘심(涅槃妙心)을 지칭한 것이다. 스님은 주인공의 안신입명을 깨닫지 못하고 부처님의 혜명을 잇지 못하면 수행자로서 자격이 없는 큰 죄인이라는 것이다.

한편 한영, 동산 스님이 설한 《범망경》은 대승계율인 보살계를 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승선의 자성청정(自性淸淨)을 동시에 설하고 있어 계율과 선을 아우르는 심지법문(心地法門)이다. 즉 선의 정법안장이 심지계체(心地戒體)가 되어 계선일치(戒禪一致), 선율겸수(禪律兼修)의 전거가 되는 핵심 경전이다.

만약 자신을 범부라고 집착하여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곧 일불승의 종자를 말살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옛 성인이 결코 “많고 많은 번뇌와 업과 미혹들이 모두 다 보현보살의 참다운 진리의 세계다.”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중생을 집착하여 부처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곧 시방의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코 《화엄경》에서 “부처와 마음과 중생, 이 셋이 차별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범망경》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부처님의 계에 포섭이 된다.”고 하시니라. 그리고 또 세상에 사람된 자가 어느 누군들 마음이 있지 않겠는가. 무릇 성불한다는 것은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세상에 오시어 중생들의 마음 안에 있는 부처의 지혜를 열어 보여 주시고, 달마 대사는 인도에서 중국에 오시어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直指人心〕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게 하였다〔見性成佛〕. 조사가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부처며 부처가 마음이니 마음을 떠나서 부처가 없고 부처를 떠나서 마음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인 마음과 생각인 마음들이 다 불성계(佛性戒) 안에 들어간다. 중생들의 불성의 마음은 불심계(佛心戒)를 갖추고 있다. 하물며 보살계란 오직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주고 제도하는 것으로써 근본을 삼는다. 형식에만 국한하여 집착하는 소승들의 계율과는 같을 수 없다. 그래서 보살이 유정들을 요익하는〔饒益有情〕 계는 다만 중생들을 제도하고 사람들을 이익되게 할 뿐이다.7)

선학원이 재단법인 인가와 동시에 추진했던 조선불교 선종의 <종규> 제2조와 제5조는 “본종은 불조정전(佛祖正傳)의 심법(心法)을 종지(宗旨)로 함”이라 하고, “본종은 종지를 천양(闡揚)하며 상보하화(上報下化)의 의무를 달(達)하기 위하여 선원(禪院)을 설치한다.”고 하였다. 여기서의 이른바 “상보하화(上報下化)”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대승 종지이다. 영명 연수 스님은 “모든 사물인 마음과 생각인 마음들이 다 불성계(佛性戒) 안에 들어 간다.”고 하였다. 스님은 궁극적으로 《범망경》의 대승계율인 삼취정계의 입장에서 선의 요체, 즉 선종의 종지를 천명하였다.

한편 《유교경》의 가르침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촉하신 설법이다. 비록 짧은 내용의 경전이지만 계율, 마음, 인욕, 만족, 정진, 정념, 선정, 지혜, 수행, 부촉 등등 그 외 여러 가지 법에 대해 자상하고 간절하게 유촉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유교(遺敎)는 계정혜 삼학의 수행과 전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8)

너희들 비구들이여! 내가 열반한 후에 마땅히 보배를 소중히 여기듯 바라제목차(계율)를 공경하여라. 마치 어두운 가운데서 빛을 만나는 것과 같고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계율은 너희들의 큰 스승이니, 만약 내가 세상에 머문다 하더라도 이것과 다를 것이 없느니라. 이 계율에 의하면 모든 선정을 얻을 수 있으며, 고통이 사라지고 지혜가 생겨날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라. 깨끗한 계율을 깨뜨리지 말라. 너희들 비구들이여! 만약 부지런히 정진해 나아간다면 어떤 일이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라. 비유하면 작은 물방울이 그치지 않고 오래 떨어진다면 바위라도 뚫게 되는 것과 같다.

너희들 비구들이여! 만약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마음은 선정에 들게 된다. 마음이 선정에 있으므로 능히 세간의 생사의 법상(法相)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너희들은 항상 반드시 부지런히 정진해서 모든 선정을 닦고 익힐 것이니라.

만약 지혜가 있다면 곧 탐욕과 집착이 없어질 것이다. 항상 스스로 성찰하여 그것을 잃지 않도록 하여라. 이 지혜야말로 나의 법 가운데서 능히 해탈을 얻게 하리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며 또한 세속인이라 할 수도 없다. 지금 이후로는 나의 모든 제자들이 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고 수행하게 되면 여래의 법신은 항상 머물러 멸하지 않을 것이다.9)

《유교경》은 부처님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방일(放逸)하지 말라는 당부와 계정혜(戒定慧) 삼학 수행과 육바라밀의 수지(受持), 정법수호를 부촉하고 있다. 부처님은 수행자가 계율을 만나면 “마치 어두운 가운데서 빛을 만나는 것과 같고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계율은 큰 스승이니, 만약 내가 세상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이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으며, “계율에 의해 모든 선정을 얻을 수 있으며, 고통이 사라지고 지혜가 생겨날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선종의 사상과 실천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부처님 법대로 실천하자.”는 것이었다면 1941년 유교법회는 조선불교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정법(正法)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주] -----

3) 《佛敎時報》.

4) 유교법회가 개최된 날짜는 당시 언론과 학자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필자는 선학원의 기록인 1941년 2월 26일로 기준을 삼았다.

5) 《경북불교》.

6) 만공(1982), 《만공법어》, 만공문도회, 73~75쪽.

7) 연명 연수 지음, 여천 무비 풀어씀(2008), <受菩薩戒法序>, 《보살계를 받는 길》, 염화실, 39~50쪽.〔월암(2010), <유교법회(遺敎法會)와 조계종의 오늘>, 《대각사상》 14, 대각사상연구원. 305~306쪽에서 재인용〕

8) 월암(2010), 위의 논문, 309쪽.

9) 《遺敎經》.

선학원백년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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