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음, 어둠 속 등불 같아”
“열린 마음, 어둠 속 등불 같아”
  • 법진 스님
  • 승인 2024.02.0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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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세암 천진관음보전. 사진 이창윤.
설악산 오세암 천진관음보전. 사진 이창윤.

844. 아난이 걸식하며 물가를 따라 걷다가 한 여인이 물가에서 물을 길어 가는 것을 보고 아난이 그녀에게 물을 청하였다. 그녀가 곧 물을 나누어 주고는 아난을 뒤따라가서 아난이 머무는 곳을 보고는 집으로 돌아가 그녀의 어머니 마등에게 말하였다.

“어머니! 나를 시집보내고자 하거든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마소서! 내가 물가에서 한 사문을 보았는데 이름이 아난입니다. 나는 아난이라면 시집가고 아난이 아니면 시집가지 않으렵니다.”

어머니가 아난을 곧 찾아가니 그가 부처님 제자임을 알고 돌아와 딸에게 말하였다. “아난은 불도를 섬기는지라 너를 위하여 남편이 되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딸이 통곡하며 식음을 전폐하였다. 마등은 삿된 술수〔蠱道〕1)를 아는 까닭에 아난을 청하여 공양하고 말하였다. “내 딸이 그대의 처가 되고 싶어 합니다.” 아난이 말하였다. “나는 부처님 계율을 지키는 까닭에 처를 거느릴 수 없습니다.” 마등이 다시 말하였다. “내 딸이 그대를 남편으로 삼지 못한다면 곧 자살하겠다고 합니다.” 아난이 말하였다. “나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니 여인과 통정할 수 없습니다.”

마등이 집으로 돌아와 딸에게 말하였다. “아난이 네 남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딸이 어머니와 마주하여 말하였다. “나를 위하여 문을 닫고 아난을 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밤이 되면 자연히 나의 남편이 될 것입니다.”

마등이 곧 문을 닫고 고도법(蠱道法)으로 아난을 꼼짝 못 하게 하여 저녁 무렵에 이르자 딸이 크게 기뻐하며 잘 치장하였으나 아난은 몸을 누우려고 하지 않았다. 마등이 정원에서 불을 피우고 아난의 옷을 끌어당기며 말하였다. “네가 내 딸의 남편이 되지 않겠다면 너를 불 속에 던져 넣으리라.” 아난이 매우 고통스러워 부처님을 부르자 부처님이 곧 아시고 아난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부처님 계신 곳으로 오게 하였다.

마등녀는 아난이 탈출한 것을 발견하고는 통곡을 그치지 않다가 다음날 아난이 걸식할 때 뒤를 따라갔다. 아난이 수치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피하였으나 (마등의) 딸이 계속 뒤따르는지라 아난이 부처님 계신 곳에 돌아와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마등의 딸이 오늘도 제 뒤를 다시 따라다닙니다.” 부처님이 (마등의) 딸을 불러 말씀하셨다. “네가 아난을 따라다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마등의) 딸이 말하였다. “저는 아난의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아난은 사문이라 머리카락이 없으니 네가 머리카락을 자르면 아난이 네 남편이 될 것이다.” (마등의) 딸이 말하였다. “머리카락을 자르겠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 어머니에게 돌아가 알리고 머리를 깎고 오너라.”

(마등의) 딸이 어머니 계신 곳에 돌아와 자세히 말하니 어머니가 말하였다. “내가 너를 낳고 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렀노라. 어찌 사문의 아내가 되려고 하느냐? 나라 안에 큰 부호가 있으니 내가 너를 이 사람에게 시집보내리라.” 딸이 말하였다. “나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난의 아내가 될 것입니다.” 마등이 말하였다. “너는 나의 종족을 욕보이려고 하는구나.” 딸이 말하였다. “어머니! 나를 사랑하신다면 내 마음이 기뻐하는 바를 따라 주소서.”

마등이 칼을 잡고 딸의 머리카락을 자르니 딸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와 말하였다. “제가 머리카락을 이미 잘랐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아난의 무엇을 사랑하는가?” (마등의) 딸이 말하였다. “나는 아난의 눈을 사랑하며, 아난의 코를 사랑하며, 아난의 입을 사랑하며, 아난의 귀를 사랑하며, 아난의 목소리를 사랑하며 아난의 걸음걸이를 사랑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눈 속에는 눈물이 있고, 콧속에는 콧물이 있고, 입 속에는 침이 있고, 귓속에는 때가 있고, 몸속에는 똥·오줌이 있어 냄새가 나는 곳이라 깨끗하지 않다. 부부를 이루게 되면 오로(惡露)2)가 문득 있게 되어 그 오로 중에 자식이 있고, 자식이 있게 되면 죽음이 있게 되고, 죽음이 있게 되면 통곡하며 우는 것이 있게 되니 이 몸에 무슨 이익 되는 것이 있겠는가?”

(마등의) 딸이 즉시 몸 가운데 오로(惡露)를 생각하고 문득 스스로 마음을 바로잡아〔正心〕 아라한도(阿羅漢道)3)를 얻었다. 부처님이 그녀가 득도한 것을 아시고 (마등의) 딸에게 말씀하시었다. “너는 일어나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거라.” (마등의) 딸이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고 부처님 앞에 꿇어앉아〔長跪〕4) 말하였다. “실로 어리석은 까닭에 아난을 쫓아다녔으나 이제 내 마음이 이미 열리어 어둠 속에서 등불을 가진 것과 같고, 부서진 배가 기슭에 닿은 것과 같고, 눈먼 이가 부축하는 이〔扶〕를 얻음과 같고, 늙은이가 지팡이를 갖게 됨과 같습니다. 이제 부처님이 저에게 도(道)를 주시어 제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마등의 딸은 전생에 오백생을 아난과 부부였고 오백 생 동안 늘 서로 공경하고, 서로 중히 여기고, 서로 탐(貪)하고, 서로 사랑하여 (부부가) 똑같이 나의 경계(經戒) 중에 득도하였느니라. 지금 부부가 서로 만나 형제와 같이 되었으니 이와 같은 불도를 어찌 이루지 못하겠는가?” - 《마등녀경(摩鄧女經)》

[주] -----

1) 고도(蠱道)는 정도(正道)가 아닌 사도(邪道)로, 주문(呪文)이나 흑마술(黑魔術)을 가리킨다.

2) 오로(惡露, 팔리어: asubha)는 보통 산후 산모에게서 나오는 체액을 뜻하는데, 고름, 피, 대소변 등 몸에서 나오는 불결한 진액(津液)을 말한다.

3) 아라한은 출가자들이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경지의 하나로, 수다원(須陀洹)·사다함(斯陀含)·아나함(阿那含)·아라한(阿羅漢)을 사사문과(四沙門果)라 한다.

4) 장궤는 고대인의 예절로, 두 무릎을 땅에 딛고 허벅지와 상체를 곧게 세우는 자세이다. 한편 호궤(胡跪)는 서역인의 예법으로,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右膝著地〕 왼쪽 무릎을 구부려〔豎左膝危坐〕 앉는다. 두 다리를 바꾸어도 되므로 호궤(互跪)라고도 한다. 두 가지 모두 불교에 수용되어 승려들이 의식을 행하거나 부처님을 공경하는 예절이 되었다.

법진 스님 |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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