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일상인 일이
나에겐 평생 한 번뿐인 희망이었지
너에겐 늘 먹는 음식이
나에겐 꿈에도 그리던 밥상
너에겐 늘 있는 일이
나에겐 숨쉬기조차 벅찬 일이었어.
#작가의 변
사람이 다른 동물하고 다른 게 무엇일까. 사람은 다른 동물이 입지 않는 옷을 입고, 다른 동물이 짓지 않는 콘크리트 건물을 짓고, 다른 동물이 만들지 못하는 전쟁 무기를 만들고, 다른 동물이 농사짓지 못하는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며, 비행기 등을 만든다.
사람은 다른 동물이 가지지 않은 종교를 가지고, 생각이라는 걸 하여 인간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이라는 걸 만들고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이 가지고 있는 튼튼하고 따듯한 가죽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일까? 인간은 다른 동물을 죽여서 그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어 입고, 가죽 신발을 만들어 신고, 돌로 도끼를 만들고 창을 만들고 화살을 만들어서 사냥에 효율화를 기했다. 그 후에는 청동기와 철기로 무기를 만들고 동물을 잡는 것에만 그것을 쓰지 않고 사람을 잡는 데도 썼다. 그리고 사람을 마치 가축처럼 목줄이나 발목 족쇄를 하여 사고팔고 하였다.
아마존에 살던 일부 종족은 인간 사회와 접촉이 있기 전까지는 원시 부족으로 돌과 나무 등으로 무기를 만들어 생활하고, 옷을 안 입거나 풀잎이나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문명 세계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들이 마치 동물처럼 보였다. 원숭이나 다른 동물처럼 열매를 따 먹고 약한 동물을 사냥해서 먹고사는 늑대처럼 보였다. 지구상엔 이제 먹이 사슬의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동물이 점점 멸종해 간다. 대한민국처럼 도시화가 진행되고 문명화가 전 국토에 이루어진 나라일수록 동물은 그저 사람들의 먹이로 길러지고, 닭은 한 달만 살고 인간의 식탁 위에 올려지게 된다.
미국이나 아르헨티나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는 끝없이 넓은 농장에서 소가 풀을 뜯거나 좁은 우리에서 사육당하고 옥수수나, 쌀, 밀 등이 재배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오일을 만들기 위해 캐놀라가 끝없이 펼쳐진 평원도 있다. 그 꽃이 아름다운 계절도 있지만 사실 농작물도 이젠 사람만을 위해 농사가 지어지지 않는다. 바이오 연료라는 이름으로 키워지고, 여전히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이 원시부족 때처럼 농사를 짓지 않고 사냥하거나 열매를 따 먹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인구를 가지지 못했을 것은 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다에 물고기를 낚시로 낚던 시대를 지나 그물을 사용하고, 레이더로 물고기 떼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경로를 확인하고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퍼 올린다. 바다는 물고기와 해산물이 사는 세계이지만 인간은 나무배에 돛을 달아 대항해를 하던 시절을 지나 이젠 고층 아파트 단지가 움직이듯이 커다란 유람선을 만들어 움직이고 많은 물자, 석유 등의 연료나 인간을 위해 만든 화물 등을 운송한다.
사람은 더 이상 멀리 미국이나 유럽에 가기 위해 배를 타지 않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탄다.
지구는 점점 인간이 원하는 많은 것에 의해 하늘도 바다도 육지도 원래의 모습을 잃어 가고 있다. 인간을 위해 각종 공해 물질을 하늘과 육지 바다에 내뿜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기후의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지구가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지구가 이상하다. 북극의 얼음이 날마다 녹고 있고 폴로 베어가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돌고래처럼 사냥을 시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놓고 싶지 않아 한다. 아니 과거 궁전에서도 볼 수없던 모습들을 인간들이 사는 아파트에서 저택에서 볼 수 있다. 더운 나라에서도 냉방 장치로 시원하게 살고, 추운 지방에서도 난방 장치로 따뜻하게 살아간다. 원시 시대처럼 동굴에서 온 씨족 사회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자꾸만 넓은 공간을 원하면서 콘크리트 건물들을 세상에 지어 댄다. 사람들은 고급 저택이나 빌라, 아파트를 아방궁이라 부르면서 과거 왕들의 저택과 비교하지만, 사실은 과거 왕들이나 황제들도 누리지 못한 사치를 현대인들은 누리고 산다. 컴퓨터만 켜면 세계의 동태를 살피고 가정교사가 필요 없이 원하는 지식과 정보들을 얻을 수 있고 서빙고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대형 냉장고엔 겨울에도 여름 과일이 늘 그득하고 육고기와 물고기 등이 가득하다.
옷장에는 명품 하나씩은 소장이 기본이고 청소하는 로봇, 좋은 침대 등등 현대인들의 생활은 이미 과거 귀족이나 왕들의 생활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경쟁하는 사회이고 그 경쟁에서 밀리면 늑대가 그룹 리더에서 밀리듯 경쟁해야 살아남는 인간 세상에 살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편안할수록 인간에게서 소외된 사람들은 삶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게 된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잠자는 집도 과거보다 좋은 데 왜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할까? 과거엔 없던 차나 비행기를 타고 안락하게 사는데 왜 사람들은 불행해야 할까?
거울조차 없어 물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놀라던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늘 자기 사진을 찍고 SNS 계정에 올리고 사람들은 서로가 비교한다.
과거에도 지배 세력이 있었고 국민이 주인인 민주 국가에서도 공권력에 국민이 죽어 나가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각자도생 경쟁만이 있을 뿐이어서 노약자와 사회 약자는 늘 비교적 불행을 늘 달고 산다. 그렇다고 부자가 행복하냐 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부자도 해볼 걸 다 해보고 입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 다 가봐도 욕망의 배는 채워지지 않아 마약 등에 손을 대고 그런 곳에서 행복을 추구하기도 한다. 다 같이 똑같은 음식을 먹고 다 같이 따뜻하지 않은 감옥에서 잠을 자도 그 감옥 안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특권층이 있듯이 똑같은 삶을 살아도 늘 지배 계층을 꿈꾸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인간의 속성일 수도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종교가 존재했고, 한 때는 종교와 정치가 함께하는 신성 일치의 사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종교가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중세 유럽에서도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했고, 정치인과 종교인의 수탈과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십자군 전쟁은 종교의 이름을 빌려 제국의 땅을 넓히는 정복 전쟁이었고 하느님을 위한 충성처럼 기사들을 밀어 넣었지만, 과실은 지배층들이 따먹었다.
현재도 지배층은 전쟁 무기를 팔기 위해 전쟁을 조장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곳이 많다. 명분은 늘 사회 정의를 외치지만 대부분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지도층의 이익을 위해 전쟁이 일어난다.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선거 때마다 외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국민을 위한 법을 거부하고 국민의 입을 막고 국민의 시위를 막고 국민의 눈도 가리고 자신들이 가리키는 방향 만을 보라고 외친다.
일제시대 종교는 일본의 황국신민이 되어 신사 참배를 하고 그것을 신도들에게 종용했다. 유일신이라고 말하지만, 총칼 앞에 무릎 꿇는 모습을 보이고 권력 앞에 아부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종교인들이 보인 모습이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정부군과 일제의 총칼과 청나라에 의해 무너지고도 민초들은 나라를 위해 무장 투쟁을 했다. 공산주의나 민주주의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는 지나간 그들의 과거 행적을 지금의 잣대로 보고 그들을 단죄한다. 일제 황국신민이 되어 살아남던 지도층이 해방된 나라에서는 반공으로 국민을 죽이고 학살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지도층은 늘 약자들을 정복해서 노예로 삼았듯이 말이다.
정치든 종교든 진정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이 정말 사람답게 진정한 종교인으로 사회인으로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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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은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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