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민대회'를 상상하다
위정자의 잘못된 행적을 바로잡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야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2016년 가을의 촛불혁명 때 군부가 책동하려다 포기한 것도, 1980년대의 시민들의 처절한 투쟁과 그 성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묘사되고 있는 군부쿠데타로 집권해봤자, 결국에는 시민의 힘에 가로막혀 좌절된다는 역사적 사실이 7년 전의 촛불혁명을 받쳐주었다.
4대강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4대강 재자연화'라는 커다란 과제가 아직 남아있다. 자본권력이 휘두른 커다란 과오를 식자들이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다면, 동일한 과오가 반복될 것이다. 오염수 문제와 같은 일본 정부의 커다란 판단 착오를 민중이 저지하지 않는다면, 더 큰 만행이 저질러질 수 있다. 일본의 위기는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이런 일본 정부의 과오를 미국이 용인하고 핵 정책을 오판하고 있다면, 지구촌의 시민이 침묵해서는 안 된다. 더 큰 오판이 저질러지기 전에 맞대응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의 행진도 그 위기의식의 하나다.
8월13일 일요일 오후 4시 반이 지나서 교토역 서쪽 공원에 도착하니 많은 시민이 행진하기 위해 모여있다. 필자는 출발 전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교토시민이 행진하면 바꿀 수 있다>
안녕하십니까. 서울에서 걸어온 이원영이라고 합니다.
걸어오는 동안 행진을 보던 많은 시민들이 호응해 주었습니다. 차 안에서도 마주 손을 흔들어줍니다.
가령 어느 마을에서 야구 놀이를 하는 소학생들은 한국에서 온 나그네가 걸어가는 이유를 알아차렸습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무엇이 진실인지 압니다. 헤어져서 한참을 걸어가는데 그중 한 명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먹을 것을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감동했습니다. 아이들도 응원하는 행진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국제사회가 고장 났습니다. 지금 지구촌을 끌고 가야 할 강한 나라들이 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UN은 만들었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원자력진흥기구인 IAEA가 언제부터 주인행세를 했는가요? 미국이나 UN이 방관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지구를 맡겨둘 수는 없습니다.
이젠 지구촌 주인이 나서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민중이 행동으로 나서서 합니다. 이번 한일시민 도보행진은 그 걸음의 하나입니다. 교토는 일본의 양심 보루입니다. 저는 교토시민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국제적인 민중의 연대가 본격적으로 진전되는 과정에서 교토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금은 행동으로 그 길을 보여줄 때입니다. 행동으로 뜻을 모아 일본 정부를 좌절시켜야 합니다.
걸어오면서 외쳤던 구호를 외치겠습니다.
함께 외칩시다.
오센스이 나가스나! (오염수 흘리지 마)
오센스이 스테루나! (오염수 버리지 마)
약 두 시간에 걸쳐 100여 명이 교토 도심을 가로지르는 행진이다. 가두에 선 시민들의 호응이 놀랍다. 특많은 외국인 관광객은 엄지척을 올리는데 서슴지 않는다. 행진 내내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환호하는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듯 행진한다. 주최 측의 요청으로 필자는 행진 중 간간이 발언하고 나가야 상이 즉석에서 통역하면서 발언 내용이 가두에 퍼졌다. 그러면 그때마다 시민들의 호응이 있다. 즐겁고도 놀라운 체험이었다.
다음의 동영상은 백여 명의 시민이 약 두 시간에 걸친 시내 행진을 마치고 교토시청에 도착할 무렵의 행렬 뒷부분의 모습을 잠깐 촬영한 것이다.
교토시가행진 모습
교토시청 앞 넓은 광장에서 마무리하면서 필자는 중요한 하나의 가능성을 상상하였다. 그것은 교토에서 '세계시민대회'가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이다. 가두행진에서 보인 외국인들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다가왔다.
교토는 '교토의정서'라는 국제적인 규약을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고, 관광명소로 지구촌 주민으로부터 관심이 모이는 장소라는 장점들이 이번 행진을 통해 상기되었다.
만약 이곳에서 그런 '세계시민대회'가 열린다면, 그때 그 자리에서 핵오염수를 반대하는 지구촌 주민의 선언서를 채택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의지를 지구촌과 국제사회에 알리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상상이다.
그의 발언을 다시 새겨본다.
“천재는 잊었을 때 온다. 인재는 속았을 때 온다. 우리는 정부나 도쿄전력의 비과학적·비인도적인 궤변에 속지 않는다."
/ 이원영 전 수원대교수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