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40. 태어나고 소멸하고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40. 태어나고 소멸하고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12.04 1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고 싶으면 울어

울고 싶은 땐 울어라
참고 참아 가슴에
응어리 맺히기 전에
슬픔이 묻은 손 강물에 씻고
슬픔을 담은 눈 호수처럼 가슴에 묻어 두고







#작가의 변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엄마는 세상 그 자체이다. 엄마 얼굴을 보며 세상을 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개를 가누기도 힘든 영아기엔 더욱 그러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울어서 내가 소변을 마렵다고 알려 주는 일. 아니 내가 똥을 쌌다고 알려 주고 내가 똥을 싸서 엉덩이가 불편하니 갈아 달라고 우는 것이 전부이다. 기분이 좋으면 배시시 웃어 주기도 하고 가끔 윙크도 날려주면 엄마는 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것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다.

주먹도 쥐고 손발을 휘젓기도 하다가 뒤집기도 하고, 기고 손에 잡히는 모든 걸을 끌어다가 입으로 가져가고 짚고 일어서면서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잡고 올라가고 끌어당기고 밀고 쓰러트리고 한마디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쏟고 부수고 화장지를 풀어 놓고 마치 고양이나 멍멍이가 하는 짓을 어린아이는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계속 말썽을 저지르게 된다. 어머니와 눈 맞추던 영아기가 지나면서 말썽꾸러기가 되어 간다. 엄마가 가장 돌보기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먹을 것이나 기타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면 계속 칭얼거리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울어야 젖을 주듯 그렇게 해야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힘으로 감당할 수 없게 뒤로 힘을 주면서 버티기도 한다.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길에 드러눕기도 한다.

영아기에 울어야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던 그 기억을 잠재의식에 숨겨 두고 계속 부모에게 떼를 쓰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영아기 때와 마찬가지로 떼를 쓰기도 한다. 부모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을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먹고 살기도 바쁜 부모들은 점점 스스로 일어서고 걷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는 일이 많아지고 그 시간이 길어진다. 스스로 밥숟가락을 들고 다부지게 먹는 아이를 보는 건 흐뭇한 일이다. 우리 아이가 저만큼 커 주었구나, 하면서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만만치 않다. 어린이 때부터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점점 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상이 되었다. 적자생존 즉 남보다 뛰어나고 남보다 앞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 혹자는 2등은 필요 없어 1등만 기억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모의 능력이 자녀의 능력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부모가 집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집을 가지고 부모가 기업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기업을 가지게 된다. 기업은 중세시대 영주의 성처럼 자신들의 왕국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가난하고 못 가진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도태시키게 된다. 옛날에 사법 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졸업자도 판검사가 되는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법학 대학원을 나와야 한다. 돈이 없으면 힘든 세상이 됐다. 살면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계층은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등으로 외국 유학도 다녀오고 스스로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도 이미 앞서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나 이 시스템은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즉 모두가 잘사는 세상은 마르스크의 사상에서만 살아 있는 이상인지도 모른다.

지구에는 수만 종의 생물들이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거나 잡아먹거나 먹히면서 먹이 사슬과 상호작용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과 현대 무기를 끝없이 개발 발전시키면서 점점 지구의 모든 생물을 인류를 위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지구가 창조주에 의해서 태어났던지, 아니면 입자에 의해 탄생이 되었든지 태어난 모든 게 소멸하게 되어 있다. 그 시기가 다를 뿐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하고 다시 생성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인류만 영원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바다의 어류와 하늘의 새들이 인류의 먹거리로 전락해 모두가 사라지게 된다고 상상해 보라 지구는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사하라 사막처럼 독거미와 뱀이 우글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처럼 인류가 만들어 가는 지구는 황폐화의 길로 가고 있다. 당장은 인류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서 좋을지 몰라도 미래는 없다.







나는 어릴 적 내가 살던 초가집이 나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기껏해야 80년을 살다가 갈 테지만 집은 많은 집들이 그보다 오래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웃 남자의 부모 폭행 사건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안 돼서 내가 살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점사를 보는 보살이 새로 집을 지어 살게 되었었다.

우리가 이사했으니 우리 집은 아니었지만, 보살이 재 지내고 남는 떡을 먹으라고 주고 우리에게 잘해 주어도 집을 부수어 없애버렸다는 점에서 보살을 좋게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내가 심어 둔 대추나무는 베지 않고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대추가 열렸다는 것이다. 내가 심어 놓고 우리는 대추를 따 먹지도 못했는데 열매를 따 먹게 되는 사람은 따로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사한 집은 흙벽돌로 만들고 슬레이트 지붕에 철사로 얽어서 천정을 만들어 신문지를 풀 쑤어 바르고 벽지를 바른 것이었는데 쥐들이 그곳에서 운동장처럼 뛰어다녀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불 뚝 배부른 벽과 문틀과 맞지 않아 구멍이 숭숭 나 있어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문도 창호지라 성에처럼 겨울엔 그렇게 얼음이 얼었다. 방안에 물그릇도 얼었다. 그러니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세수하고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들어붙었다. 지금 이야기를 이렇게 하면서도 마치 오래된 옛날이야기 같다.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엔 개발의 열풍과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초가집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강남은 참외밭에서 고층 빌딩이 들어선 대한민국의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산동네들은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신도시들이 만들어지면서 지방의 인구를 빨아 들였다. 지금은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직업을 따른 인구의 이동도 지방 소멸의 한 원인이 된다. 몽골처럼 목축하는 사람들은 여름 집 겨울 나는 곳 등으로 게르라는 천막집을 이동하면서 살기 때문에 능살 이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런 인도도 자식들을 도시로 공부시키러 유학을 보내고 가업인 목축업 대신 도시에서 자리를 잡는 자녀들이 늘어나면서 목축업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다큐멘터리로 보았다. 대한민국의 농촌은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지키고 있다. 도시에 나와도 직장을 잡을 수 없는 60대 이상은 시골에 정착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시에서 자리를 잡으려 한다. 한때 나는 아버지가 서울에 터를 잡지 않고 시골에 터전을 잡고 살게 된 것을 원망한 적이 있다. 도시에 빈민으로 살더라도 도시에서 살다 보면 기회가 더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나의 기억은 평생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의 이상향으로 남아 있다.

부모가 떠나듯이 고향도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하고 마을 모습도 예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인 경우가 많다. 출신 학교에 가서 아는 선생님이 한 분 없고 학교 모습이 바뀌거나 학교를 페교했을 때 그 심정은 마음의 일부가 무너진 것처럼 아프다.

세상은 물 으르듯 바뀌어 간다. 지난해 새순이 돋아나던 잎은 떨어져 낙엽이 되고 거름이 되듯이 내년 봄에는 새로운 싹이 돋아나게 된다. 사람도 내가 죽으면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고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고구려나 백제 시대를 살아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잘 모르고 청자나 금관, 광개토왕비 같은 것으로 그 시대를 엿보듯이 우리 후손들은 풍요로운 세상 이면에 늘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들이 있었고, 전쟁은 모든 걸 앗아 가서 화재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싹이 나고 나무가 자라게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

울고 싶으면 울어

울고 싶은 땐 울어라
참고 참아 가슴에
응어리 맺히기 전에
슬픔이 묻은 손 강물에 씻고
슬픔을 담은 눈 호수처럼 가슴에 묻어 두고





울고 싶으면 울어

울고 싶은 땐 울어라
참고 참아 가슴에
응어리 맺히기 전에
슬픔이 묻은 손 강물에 씻고
슬픔을 담은 눈 호수처럼 가슴에 묻어 두고







#작가의 변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엄마는 세상 그 자체이다. 엄마 얼굴을 보며 세상을 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개를 가누기도 힘든 영아기엔 더욱 그러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울어서 내가 소변을 마렵다고 알려 주는 일. 아니 내가 똥을 쌌다고 알려 주고 내가 똥을 싸서 엉덩이가 불편하니 갈아 달라고 우는 것이 전부이다. 기분이 좋으면 배시시 웃어 주기도 하고 가끔 윙크도 날려주면 엄마는 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것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다.

주먹도 쥐고 손발을 휘젓기도 하다가 뒤집기도 하고, 기고 손에 잡히는 모든 걸을 끌어다가 입으로 가져가고 짚고 일어서면서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잡고 올라가고 끌어당기고 밀고 쓰러트리고 한마디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쏟고 부수고 화장지를 풀어 놓고 마치 고양이나 멍멍이가 하는 짓을 어린아이는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계속 말썽을 저지르게 된다. 어머니와 눈 맞추던 영아기가 지나면서 말썽꾸러기가 되어 간다. 엄마가 가장 돌보기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먹을 것이나 기타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면 계속 칭얼거리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울어야 젖을 주듯 그렇게 해야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힘으로 감당할 수 없게 뒤로 힘을 주면서 버티기도 한다.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길에 드러눕기도 한다.

영아기에 울어야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던 그 기억을 잠재의식에 숨겨 두고 계속 부모에게 떼를 쓰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영아기 때와 마찬가지로 떼를 쓰기도 한다. 부모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을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먹고 살기도 바쁜 부모들은 점점 스스로 일어서고 걷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는 일이 많아지고 그 시간이 길어진다. 스스로 밥숟가락을 들고 다부지게 먹는 아이를 보는 건 흐뭇한 일이다. 우리 아이가 저만큼 커 주었구나, 하면서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만만치 않다. 어린이 때부터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점점 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상이 되었다. 적자생존 즉 남보다 뛰어나고 남보다 앞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 혹자는 2등은 필요 없어 1등만 기억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모의 능력이 자녀의 능력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부모가 집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집을 가지고 부모가 기업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기업을 가지게 된다. 기업은 중세시대 영주의 성처럼 자신들의 왕국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가난하고 못 가진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도태시키게 된다. 옛날에 사법 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졸업자도 판검사가 되는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법학 대학원을 나와야 한다. 돈이 없으면 힘든 세상이 됐다. 살면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계층은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등으로 외국 유학도 다녀오고 스스로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도 이미 앞서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나 이 시스템은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즉 모두가 잘사는 세상은 마르스크의 사상에서만 살아 있는 이상인지도 모른다.

지구에는 수만 종의 생물들이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거나 잡아먹거나 먹히면서 먹이 사슬과 상호작용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과 현대 무기를 끝없이 개발 발전시키면서 점점 지구의 모든 생물을 인류를 위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지구가 창조주에 의해서 태어났던지, 아니면 입자에 의해 탄생이 되었든지 태어난 모든 게 소멸하게 되어 있다. 그 시기가 다를 뿐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하고 다시 생성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인류만 영원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바다의 어류와 하늘의 새들이 인류의 먹거리로 전락해 모두가 사라지게 된다고 상상해 보라 지구는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사하라 사막처럼 독거미와 뱀이 우글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처럼 인류가 만들어 가는 지구는 황폐화의 길로 가고 있다. 당장은 인류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서 좋을지 몰라도 미래는 없다.







나는 어릴 적 내가 살던 초가집이 나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기껏해야 80년을 살다가 갈 테지만 집은 많은 집들이 그보다 오래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웃 남자의 부모 폭행 사건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안 돼서 내가 살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점사를 보는 보살이 새로 집을 지어 살게 되었었다.

우리가 이사했으니 우리 집은 아니었지만, 보살이 재 지내고 남는 떡을 먹으라고 주고 우리에게 잘해 주어도 집을 부수어 없애버렸다는 점에서 보살을 좋게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내가 심어 둔 대추나무는 베지 않고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대추가 열렸다는 것이다. 내가 심어 놓고 우리는 대추를 따 먹지도 못했는데 열매를 따 먹게 되는 사람은 따로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사한 집은 흙벽돌로 만들고 슬레이트 지붕에 철사로 얽어서 천정을 만들어 신문지를 풀 쑤어 바르고 벽지를 바른 것이었는데 쥐들이 그곳에서 운동장처럼 뛰어다녀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불 뚝 배부른 벽과 문틀과 맞지 않아 구멍이 숭숭 나 있어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문도 창호지라 성에처럼 겨울엔 그렇게 얼음이 얼었다. 방안에 물그릇도 얼었다. 그러니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세수하고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들어붙었다. 지금 이야기를 이렇게 하면서도 마치 오래된 옛날이야기 같다.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엔 개발의 열풍과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초가집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강남은 참외밭에서 고층 빌딩이 들어선 대한민국의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산동네들은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신도시들이 만들어지면서 지방의 인구를 빨아 들였다. 지금은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직업을 따른 인구의 이동도 지방 소멸의 한 원인이 된다. 몽골처럼 목축하는 사람들은 여름 집 겨울 나는 곳 등으로 게르라는 천막집을 이동하면서 살기 때문에 능살 이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런 인도도 자식들을 도시로 공부시키러 유학을 보내고 가업인 목축업 대신 도시에서 자리를 잡는 자녀들이 늘어나면서 목축업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다큐멘터리로 보았다. 대한민국의 농촌은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지키고 있다. 도시에 나와도 직장을 잡을 수 없는 60대 이상은 시골에 정착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시에서 자리를 잡으려 한다. 한때 나는 아버지가 서울에 터를 잡지 않고 시골에 터전을 잡고 살게 된 것을 원망한 적이 있다. 도시에 빈민으로 살더라도 도시에서 살다 보면 기회가 더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나의 기억은 평생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의 이상향으로 남아 있다.

부모가 떠나듯이 고향도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하고 마을 모습도 예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인 경우가 많다. 출신 학교에 가서 아는 선생님이 한 분 없고 학교 모습이 바뀌거나 학교를 페교했을 때 그 심정은 마음의 일부가 무너진 것처럼 아프다.

세상은 물 으르듯 바뀌어 간다. 지난해 새순이 돋아나던 잎은 떨어져 낙엽이 되고 거름이 되듯이 내년 봄에는 새로운 싹이 돋아나게 된다. 사람도 내가 죽으면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고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고구려나 백제 시대를 살아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잘 모르고 청자나 금관, 광개토왕비 같은 것으로 그 시대를 엿보듯이 우리 후손들은 풍요로운 세상 이면에 늘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들이 있었고, 전쟁은 모든 걸 앗아 가서 화재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싹이 나고 나무가 자라게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

#작가의 변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엄마는 세상 그 자체이다. 엄마 얼굴을 보며 세상을 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개를 가누기도 힘든 영아기엔 더욱 그러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울어서 내가 소변을 마렵다고 알려 주는 일. 아니 내가 똥을 쌌다고 알려 주고 내가 똥을 싸서 엉덩이가 불편하니 갈아 달라고 우는 것이 전부이다. 기분이 좋으면 배시시 웃어 주기도 하고 가끔 윙크도 날려주면 엄마는 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것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다.

주먹도 쥐고 손발을 휘젓기도 하다가 뒤집기도 하고, 기고 손에 잡히는 모든 걸을 끌어다가 입으로 가져가고 짚고 일어서면서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잡고 올라가고 끌어당기고 밀고 쓰러트리고 한마디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쏟고 부수고 화장지를 풀어 놓고 마치 고양이나 멍멍이가 하는 짓을 어린아이는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계속 말썽을 저지르게 된다. 어머니와 눈 맞추던 영아기가 지나면서 말썽꾸러기가 되어 간다. 엄마가 가장 돌보기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먹을 것이나 기타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면 계속 칭얼거리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울어야 젖을 주듯 그렇게 해야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힘으로 감당할 수 없게 뒤로 힘을 주면서 버티기도 한다.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길에 드러눕기도 한다.

영아기에 울어야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던 그 기억을 잠재의식에 숨겨 두고 계속 부모에게 떼를 쓰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영아기 때와 마찬가지로 떼를 쓰기도 한다. 부모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을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먹고 살기도 바쁜 부모들은 점점 스스로 일어서고 걷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는 일이 많아지고 그 시간이 길어진다. 스스로 밥숟가락을 들고 다부지게 먹는 아이를 보는 건 흐뭇한 일이다. 우리 아이가 저만큼 커 주었구나, 하면서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만만치 않다. 어린이 때부터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점점 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상이 되었다. 적자생존 즉 남보다 뛰어나고 남보다 앞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 혹자는 2등은 필요 없어 1등만 기억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모의 능력이 자녀의 능력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부모가 집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집을 가지고 부모가 기업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기업을 가지게 된다. 기업은 중세시대 영주의 성처럼 자신들의 왕국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가난하고 못 가진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도태시키게 된다. 옛날에 사법 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졸업자도 판검사가 되는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법학 대학원을 나와야 한다. 돈이 없으면 힘든 세상이 됐다. 살면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계층은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등으로 외국 유학도 다녀오고 스스로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도 이미 앞서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나 이 시스템은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즉 모두가 잘사는 세상은 마르스크의 사상에서만 살아 있는 이상인지도 모른다.

지구에는 수만 종의 생물들이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거나 잡아먹거나 먹히면서 먹이 사슬과 상호작용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과 현대 무기를 끝없이 개발 발전시키면서 점점 지구의 모든 생물을 인류를 위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지구가 창조주에 의해서 태어났던지, 아니면 입자에 의해 탄생이 되었든지 태어난 모든 게 소멸하게 되어 있다. 그 시기가 다를 뿐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하고 다시 생성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인류만 영원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바다의 어류와 하늘의 새들이 인류의 먹거리로 전락해 모두가 사라지게 된다고 상상해 보라 지구는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사하라 사막처럼 독거미와 뱀이 우글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처럼 인류가 만들어 가는 지구는 황폐화의 길로 가고 있다. 당장은 인류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서 좋을지 몰라도 미래는 없다.





울고 싶으면 울어

울고 싶은 땐 울어라
참고 참아 가슴에
응어리 맺히기 전에
슬픔이 묻은 손 강물에 씻고
슬픔을 담은 눈 호수처럼 가슴에 묻어 두고







#작가의 변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엄마는 세상 그 자체이다. 엄마 얼굴을 보며 세상을 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개를 가누기도 힘든 영아기엔 더욱 그러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울어서 내가 소변을 마렵다고 알려 주는 일. 아니 내가 똥을 쌌다고 알려 주고 내가 똥을 싸서 엉덩이가 불편하니 갈아 달라고 우는 것이 전부이다. 기분이 좋으면 배시시 웃어 주기도 하고 가끔 윙크도 날려주면 엄마는 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것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다.

주먹도 쥐고 손발을 휘젓기도 하다가 뒤집기도 하고, 기고 손에 잡히는 모든 걸을 끌어다가 입으로 가져가고 짚고 일어서면서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잡고 올라가고 끌어당기고 밀고 쓰러트리고 한마디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쏟고 부수고 화장지를 풀어 놓고 마치 고양이나 멍멍이가 하는 짓을 어린아이는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계속 말썽을 저지르게 된다. 어머니와 눈 맞추던 영아기가 지나면서 말썽꾸러기가 되어 간다. 엄마가 가장 돌보기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먹을 것이나 기타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면 계속 칭얼거리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울어야 젖을 주듯 그렇게 해야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힘으로 감당할 수 없게 뒤로 힘을 주면서 버티기도 한다.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길에 드러눕기도 한다.

영아기에 울어야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던 그 기억을 잠재의식에 숨겨 두고 계속 부모에게 떼를 쓰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영아기 때와 마찬가지로 떼를 쓰기도 한다. 부모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을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먹고 살기도 바쁜 부모들은 점점 스스로 일어서고 걷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는 일이 많아지고 그 시간이 길어진다. 스스로 밥숟가락을 들고 다부지게 먹는 아이를 보는 건 흐뭇한 일이다. 우리 아이가 저만큼 커 주었구나, 하면서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만만치 않다. 어린이 때부터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점점 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상이 되었다. 적자생존 즉 남보다 뛰어나고 남보다 앞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 혹자는 2등은 필요 없어 1등만 기억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모의 능력이 자녀의 능력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부모가 집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집을 가지고 부모가 기업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기업을 가지게 된다. 기업은 중세시대 영주의 성처럼 자신들의 왕국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가난하고 못 가진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도태시키게 된다. 옛날에 사법 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졸업자도 판검사가 되는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법학 대학원을 나와야 한다. 돈이 없으면 힘든 세상이 됐다. 살면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계층은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등으로 외국 유학도 다녀오고 스스로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도 이미 앞서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나 이 시스템은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즉 모두가 잘사는 세상은 마르스크의 사상에서만 살아 있는 이상인지도 모른다.

지구에는 수만 종의 생물들이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거나 잡아먹거나 먹히면서 먹이 사슬과 상호작용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과 현대 무기를 끝없이 개발 발전시키면서 점점 지구의 모든 생물을 인류를 위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지구가 창조주에 의해서 태어났던지, 아니면 입자에 의해 탄생이 되었든지 태어난 모든 게 소멸하게 되어 있다. 그 시기가 다를 뿐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하고 다시 생성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인류만 영원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바다의 어류와 하늘의 새들이 인류의 먹거리로 전락해 모두가 사라지게 된다고 상상해 보라 지구는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사하라 사막처럼 독거미와 뱀이 우글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처럼 인류가 만들어 가는 지구는 황폐화의 길로 가고 있다. 당장은 인류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서 좋을지 몰라도 미래는 없다.







나는 어릴 적 내가 살던 초가집이 나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기껏해야 80년을 살다가 갈 테지만 집은 많은 집들이 그보다 오래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웃 남자의 부모 폭행 사건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안 돼서 내가 살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점사를 보는 보살이 새로 집을 지어 살게 되었었다.

우리가 이사했으니 우리 집은 아니었지만, 보살이 재 지내고 남는 떡을 먹으라고 주고 우리에게 잘해 주어도 집을 부수어 없애버렸다는 점에서 보살을 좋게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내가 심어 둔 대추나무는 베지 않고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대추가 열렸다는 것이다. 내가 심어 놓고 우리는 대추를 따 먹지도 못했는데 열매를 따 먹게 되는 사람은 따로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사한 집은 흙벽돌로 만들고 슬레이트 지붕에 철사로 얽어서 천정을 만들어 신문지를 풀 쑤어 바르고 벽지를 바른 것이었는데 쥐들이 그곳에서 운동장처럼 뛰어다녀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불 뚝 배부른 벽과 문틀과 맞지 않아 구멍이 숭숭 나 있어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문도 창호지라 성에처럼 겨울엔 그렇게 얼음이 얼었다. 방안에 물그릇도 얼었다. 그러니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세수하고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들어붙었다. 지금 이야기를 이렇게 하면서도 마치 오래된 옛날이야기 같다.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엔 개발의 열풍과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초가집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강남은 참외밭에서 고층 빌딩이 들어선 대한민국의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산동네들은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신도시들이 만들어지면서 지방의 인구를 빨아 들였다. 지금은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직업을 따른 인구의 이동도 지방 소멸의 한 원인이 된다. 몽골처럼 목축하는 사람들은 여름 집 겨울 나는 곳 등으로 게르라는 천막집을 이동하면서 살기 때문에 능살 이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런 인도도 자식들을 도시로 공부시키러 유학을 보내고 가업인 목축업 대신 도시에서 자리를 잡는 자녀들이 늘어나면서 목축업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다큐멘터리로 보았다. 대한민국의 농촌은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지키고 있다. 도시에 나와도 직장을 잡을 수 없는 60대 이상은 시골에 정착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시에서 자리를 잡으려 한다. 한때 나는 아버지가 서울에 터를 잡지 않고 시골에 터전을 잡고 살게 된 것을 원망한 적이 있다. 도시에 빈민으로 살더라도 도시에서 살다 보면 기회가 더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나의 기억은 평생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의 이상향으로 남아 있다.

부모가 떠나듯이 고향도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하고 마을 모습도 예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인 경우가 많다. 출신 학교에 가서 아는 선생님이 한 분 없고 학교 모습이 바뀌거나 학교를 페교했을 때 그 심정은 마음의 일부가 무너진 것처럼 아프다.

세상은 물 으르듯 바뀌어 간다. 지난해 새순이 돋아나던 잎은 떨어져 낙엽이 되고 거름이 되듯이 내년 봄에는 새로운 싹이 돋아나게 된다. 사람도 내가 죽으면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고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고구려나 백제 시대를 살아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잘 모르고 청자나 금관, 광개토왕비 같은 것으로 그 시대를 엿보듯이 우리 후손들은 풍요로운 세상 이면에 늘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들이 있었고, 전쟁은 모든 걸 앗아 가서 화재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싹이 나고 나무가 자라게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

나는 어릴 적 내가 살던 초가집이 나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기껏해야 80년을 살다가 갈 테지만 집은 많은 집들이 그보다 오래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웃 남자의 부모 폭행 사건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안 돼서 내가 살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점사를 보는 보살이 새로 집을 지어 살게 되었었다.

우리가 이사했으니 우리 집은 아니었지만, 보살이 재 지내고 남는 떡을 먹으라고 주고 우리에게 잘해 주어도 집을 부수어 없애버렸다는 점에서 보살을 좋게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내가 심어 둔 대추나무는 베지 않고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대추가 열렸다는 것이다. 내가 심어 놓고 우리는 대추를 따 먹지도 못했는데 열매를 따 먹게 되는 사람은 따로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사한 집은 흙벽돌로 만들고 슬레이트 지붕에 철사로 얽어서 천정을 만들어 신문지를 풀 쑤어 바르고 벽지를 바른 것이었는데 쥐들이 그곳에서 운동장처럼 뛰어다녀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불 뚝 배부른 벽과 문틀과 맞지 않아 구멍이 숭숭 나 있어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문도 창호지라 성에처럼 겨울엔 그렇게 얼음이 얼었다. 방안에 물그릇도 얼었다. 그러니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세수하고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들어붙었다. 지금 이야기를 이렇게 하면서도 마치 오래된 옛날이야기 같다.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엔 개발의 열풍과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초가집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강남은 참외밭에서 고층 빌딩이 들어선 대한민국의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산동네들은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신도시들이 만들어지면서 지방의 인구를 빨아 들였다. 지금은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직업을 따른 인구의 이동도 지방 소멸의 한 원인이 된다. 몽골처럼 목축하는 사람들은 여름 집 겨울 나는 곳 등으로 게르라는 천막집을 이동하면서 살기 때문에 능살 이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런 인도도 자식들을 도시로 공부시키러 유학을 보내고 가업인 목축업 대신 도시에서 자리를 잡는 자녀들이 늘어나면서 목축업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다큐멘터리로 보았다. 대한민국의 농촌은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지키고 있다. 도시에 나와도 직장을 잡을 수 없는 60대 이상은 시골에 정착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시에서 자리를 잡으려 한다. 한때 나는 아버지가 서울에 터를 잡지 않고 시골에 터전을 잡고 살게 된 것을 원망한 적이 있다. 도시에 빈민으로 살더라도 도시에서 살다 보면 기회가 더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나의 기억은 평생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의 이상향으로 남아 있다.

부모가 떠나듯이 고향도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하고 마을 모습도 예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인 경우가 많다. 출신 학교에 가서 아는 선생님이 한 분 없고 학교 모습이 바뀌거나 학교를 페교했을 때 그 심정은 마음의 일부가 무너진 것처럼 아프다.

세상은 물 으르듯 바뀌어 간다. 지난해 새순이 돋아나던 잎은 떨어져 낙엽이 되고 거름이 되듯이 내년 봄에는 새로운 싹이 돋아나게 된다. 사람도 내가 죽으면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고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고구려나 백제 시대를 살아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잘 모르고 청자나 금관, 광개토왕비 같은 것으로 그 시대를 엿보듯이 우리 후손들은 풍요로운 세상 이면에 늘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들이 있었고, 전쟁은 모든 걸 앗아 가서 화재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싹이 나고 나무가 자라게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





울고 싶으면 울어

울고 싶은 땐 울어라
참고 참아 가슴에
응어리 맺히기 전에
슬픔이 묻은 손 강물에 씻고
슬픔을 담은 눈 호수처럼 가슴에 묻어 두고







#작가의 변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엄마는 세상 그 자체이다. 엄마 얼굴을 보며 세상을 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개를 가누기도 힘든 영아기엔 더욱 그러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울어서 내가 소변을 마렵다고 알려 주는 일. 아니 내가 똥을 쌌다고 알려 주고 내가 똥을 싸서 엉덩이가 불편하니 갈아 달라고 우는 것이 전부이다. 기분이 좋으면 배시시 웃어 주기도 하고 가끔 윙크도 날려주면 엄마는 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것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다.

주먹도 쥐고 손발을 휘젓기도 하다가 뒤집기도 하고, 기고 손에 잡히는 모든 걸을 끌어다가 입으로 가져가고 짚고 일어서면서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잡고 올라가고 끌어당기고 밀고 쓰러트리고 한마디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쏟고 부수고 화장지를 풀어 놓고 마치 고양이나 멍멍이가 하는 짓을 어린아이는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계속 말썽을 저지르게 된다. 어머니와 눈 맞추던 영아기가 지나면서 말썽꾸러기가 되어 간다. 엄마가 가장 돌보기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먹을 것이나 기타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면 계속 칭얼거리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울어야 젖을 주듯 그렇게 해야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힘으로 감당할 수 없게 뒤로 힘을 주면서 버티기도 한다.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길에 드러눕기도 한다.

영아기에 울어야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던 그 기억을 잠재의식에 숨겨 두고 계속 부모에게 떼를 쓰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영아기 때와 마찬가지로 떼를 쓰기도 한다. 부모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을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먹고 살기도 바쁜 부모들은 점점 스스로 일어서고 걷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는 일이 많아지고 그 시간이 길어진다. 스스로 밥숟가락을 들고 다부지게 먹는 아이를 보는 건 흐뭇한 일이다. 우리 아이가 저만큼 커 주었구나, 하면서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만만치 않다. 어린이 때부터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점점 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상이 되었다. 적자생존 즉 남보다 뛰어나고 남보다 앞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 혹자는 2등은 필요 없어 1등만 기억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모의 능력이 자녀의 능력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부모가 집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집을 가지고 부모가 기업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기업을 가지게 된다. 기업은 중세시대 영주의 성처럼 자신들의 왕국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가난하고 못 가진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도태시키게 된다. 옛날에 사법 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졸업자도 판검사가 되는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법학 대학원을 나와야 한다. 돈이 없으면 힘든 세상이 됐다. 살면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계층은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등으로 외국 유학도 다녀오고 스스로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도 이미 앞서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나 이 시스템은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즉 모두가 잘사는 세상은 마르스크의 사상에서만 살아 있는 이상인지도 모른다.

지구에는 수만 종의 생물들이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 영향을 주고 도움을 주거나 잡아먹거나 먹히면서 먹이 사슬과 상호작용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과 현대 무기를 끝없이 개발 발전시키면서 점점 지구의 모든 생물을 인류를 위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지구가 창조주에 의해서 태어났던지, 아니면 입자에 의해 탄생이 되었든지 태어난 모든 게 소멸하게 되어 있다. 그 시기가 다를 뿐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하고 다시 생성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인류만 영원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바다의 어류와 하늘의 새들이 인류의 먹거리로 전락해 모두가 사라지게 된다고 상상해 보라 지구는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사하라 사막처럼 독거미와 뱀이 우글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처럼 인류가 만들어 가는 지구는 황폐화의 길로 가고 있다. 당장은 인류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서 좋을지 몰라도 미래는 없다.







나는 어릴 적 내가 살던 초가집이 나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기껏해야 80년을 살다가 갈 테지만 집은 많은 집들이 그보다 오래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웃 남자의 부모 폭행 사건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안 돼서 내가 살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점사를 보는 보살이 새로 집을 지어 살게 되었었다.

우리가 이사했으니 우리 집은 아니었지만, 보살이 재 지내고 남는 떡을 먹으라고 주고 우리에게 잘해 주어도 집을 부수어 없애버렸다는 점에서 보살을 좋게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내가 심어 둔 대추나무는 베지 않고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대추가 열렸다는 것이다. 내가 심어 놓고 우리는 대추를 따 먹지도 못했는데 열매를 따 먹게 되는 사람은 따로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사한 집은 흙벽돌로 만들고 슬레이트 지붕에 철사로 얽어서 천정을 만들어 신문지를 풀 쑤어 바르고 벽지를 바른 것이었는데 쥐들이 그곳에서 운동장처럼 뛰어다녀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불 뚝 배부른 벽과 문틀과 맞지 않아 구멍이 숭숭 나 있어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문도 창호지라 성에처럼 겨울엔 그렇게 얼음이 얼었다. 방안에 물그릇도 얼었다. 그러니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세수하고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들어붙었다. 지금 이야기를 이렇게 하면서도 마치 오래된 옛날이야기 같다.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엔 개발의 열풍과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초가집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강남은 참외밭에서 고층 빌딩이 들어선 대한민국의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산동네들은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신도시들이 만들어지면서 지방의 인구를 빨아 들였다. 지금은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직업을 따른 인구의 이동도 지방 소멸의 한 원인이 된다. 몽골처럼 목축하는 사람들은 여름 집 겨울 나는 곳 등으로 게르라는 천막집을 이동하면서 살기 때문에 능살 이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런 인도도 자식들을 도시로 공부시키러 유학을 보내고 가업인 목축업 대신 도시에서 자리를 잡는 자녀들이 늘어나면서 목축업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다큐멘터리로 보았다. 대한민국의 농촌은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지키고 있다. 도시에 나와도 직장을 잡을 수 없는 60대 이상은 시골에 정착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시에서 자리를 잡으려 한다. 한때 나는 아버지가 서울에 터를 잡지 않고 시골에 터전을 잡고 살게 된 것을 원망한 적이 있다. 도시에 빈민으로 살더라도 도시에서 살다 보면 기회가 더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나의 기억은 평생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의 이상향으로 남아 있다.

부모가 떠나듯이 고향도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하고 마을 모습도 예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인 경우가 많다. 출신 학교에 가서 아는 선생님이 한 분 없고 학교 모습이 바뀌거나 학교를 페교했을 때 그 심정은 마음의 일부가 무너진 것처럼 아프다.

세상은 물 으르듯 바뀌어 간다. 지난해 새순이 돋아나던 잎은 떨어져 낙엽이 되고 거름이 되듯이 내년 봄에는 새로운 싹이 돋아나게 된다. 사람도 내가 죽으면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고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고구려나 백제 시대를 살아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잘 모르고 청자나 금관, 광개토왕비 같은 것으로 그 시대를 엿보듯이 우리 후손들은 풍요로운 세상 이면에 늘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들이 있었고, 전쟁은 모든 걸 앗아 가서 화재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싹이 나고 나무가 자라게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

#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18-04-05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