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학원 설립조사 중 한 분인 만해 한용운 스님은 불교계 민족대표 중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참가해 옥고를 치른 뒤 1922년 출옥한다.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간 스님은 1925년 여름 두 권의 책을 완성하는데, 이듬해 출판된《십현담 주해(十玄談註解)》와 《님의 침묵》이 그것이다.
《님의 침묵》이 시인이자 사상가, 실천가인 스님의 문학적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십현담 주해》는 스님의 선학 사상 요체를 담은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십현담 주해》에서 보여준 선적 사유가 있었기에 《님의 침묵》의 깊이 있고 아름다운 시어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십현담 주해》는 만해 스님이 남긴 유일한 선학 텍스트 주해서다. 흔히 만해 스님을 시인이자 독립투사로 이해하고 있지만 스님은 당대를 대표하는 선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선사로서 만해 스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저술이다. 그럼에도 《십현담 주해》는 만해 연구에서 주목 받지도, 대중에게 널리 읽히지도 않았다. 본문이 모두 한문체인데다가 난해한 선학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직접 밝혔듯이 만해 스님은 1925년 여름 오세암에서 우연히 김시습의 《십현담 요해》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지었다.
만해 스님은 《십현담 주해》에서 동안 상찰(同安 常察, ?~961) 스님이 지은 《십현담》 10편 80구 하나하나를 뜻풀이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해(註解) 형식을 빌어 자신의 깨달음과 선사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이 책에서 만해 스님은 주해자로서 자신이 직접 주장자를 든 선사의 모습으로 여러 번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십현담 주해》은 만해 스님의 지속적인 참선 수행과 깨달음의 산물이다.
서준섭 옮김 | 어의운하 | 1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