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당나라 때의 인물 한산(寒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사유비유 비유역유. 사도비도 비도역도. 사승비승 비승역승. 사속비속 비속역속”
(似儒非儒 非儒亦儒. 似道非道,非道亦道. 似僧非僧 非僧亦僧. 似俗非俗 非俗亦俗)
원적하신 월운 스님의 임종게 ‘사승비승 사속비속(似僧非僧 似俗非俗) 허두장노 월운영가(虛頭長老月雲靈駕)’를 한글로 풀어 쓴 여러 표현들이 있다.
우선, <불교신문> 온라인(2023.06.19)판은 “중 같지만 중도 아니고, 속인 같지만 속인도 아닌 헛소리하는 늙은이 월운 영가”라고 풀었다.
스님께서 주석해 오신 본사 봉선사에는 “나 보고 중이냐 물으면 중은 아니요. 속인인가 하면 속인도 아니다. 난 머리 빈 늙은 월운일 뿐이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월운 스님의 임종게를 해석하려면 앞서 제시한 한산 시 구절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대략 번역을 해 본다.
유가 같으나 유가가 아니며, 유가가 아니나 유가이다.
도가 같으나 도가가 아니며, 도가가 아니나 도가이다.
스님 같으나 스님이 아니며, 스님이 아니나 스님이다.
속인 같으나 속인이 아니며, 속인이 아니나 속인이다.
한산은 유가, 도가, 승가(불교)는 물론 성속의 경계 자체를 뛰어넘었던 전설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노래하며 초월적인 내면을 드러낸 작품들이 많지만, 아울러 삶의 현장을 포착하거나 승려와 세상을 비판하는 시들도 적지 않다.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진속이제를 넘어선 자유인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월운 스님은 한산 게송의 전체 문장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 구절 중에서도 그 앞 구절(似僧非僧 似俗非俗)만 차용하신 것이니 임종게를 이해하려면 전체 문장을 우선 알아야 할 것이다. 동양 문화에서 옛 선인의 글을 차용하거나 모방함은 흠이 아니고 오히려 덕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월운 스님의 임종게 첫 구절 “사승비승 사속비속(似僧非僧 似俗非俗)”을 보자. 승려지만 승려가 아니고 속인이지만 속인도 아니라고 하셨다. ‘승’과 ‘속’ 만 예를 들었으나 일체의 사상적, 신분적, 진속이제의 굴레를 벗어난 대자유인 이면서도 또한 인간임을 긍정하는 문장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문제는 다음 구절에 있다. “허두장노월운영가(虛頭長老月雲靈駕)”의 ‘허두(虛頭)’를 <불교신문>은 “헛소리하는” 이라고 했다. 봉선사 현수막은 “머리 빈”이라고 해석을 했다. ‘헛소리’ 또는 ‘아는 것 없는’ 것이 본래의 의미에 가깝다.
요즘 사람들에겐 허두(虛頭)라는 말이 낯설 수도 있으나 과거 중국 선불교에서 쓰였던 말이고 우리나라의 선사들도 해방 전후의 시기까지는 이 말을 종종 사용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테면 중국의 경우 조당집(祖堂集)에 “德山云 什摩處學得虛頭來?”라는 문장이 나온다. ‘덕산 선사가 말하기를 “어디서 그런 헛소리(허탕)를 배웠는가?”’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용성선사어록(龍城禪師語錄)에도 나온다. ‘화주승은 과연 거짓말쟁이구나(化僧 果然虛頭漢)’ 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허두선객(虛頭禪客)이 되고 말았다’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렇게 ‘허두’는 주로 인칭명사 앞에 서술어로 등장하며 선문에서 종종 쓰였다.
“허두장노월운영가(虛頭長老月雲靈駕)”에서 ‘장노(長老)’는 덕과 지혜가 구족한 스님을 칭하는바 단어 그대로 사용함이 좋을 것이다. ‘영가’는 사후의 명칭이다. 월운 스님의 임종게 마지막 장에서 ‘허두’, ‘장노’, ‘영가’ 그리고 법명을 사용해서 겸손과 독보적 존재 그리고 당연히 생사를 초월한 경계를 보였음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허두’는 ‘말(語)의 첫머리’라는 의미도 가진다. 월운 스님이 대장경 역경의 첫 테이프를 끊으신 분이기에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허두장로를 ‘한글대장경의 첫 문을 연 장로’로 이해한다면 과욕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듯 허두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월운 스님은 이를 즐겼거나 어쩌면 후학을 시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월운 스님의 임종게는 생사 등 일체를 초월한 스님의 세계관과 당신의 일생을 이해 할 때 근접할 것이다. 나는 승이나 승이 아니며, 속인이나 속인도 아니다.(그렇다면 무엇일까?) 대장경 헛소리 일삼은 장로 월운 영가일 뿐이다. 지혜가 출중한 제방 선지식의 멋진 해석을 기대해 본다.
40여 년 전의 인연으로 가시는 길에 한 구절 올립니다.
큰스님 대장경을 한글로 새로이 여시니
넘기는 책장은 연꽃으로 화하여 날리고
경문들은 명약이 되어 중생에게 갑니다.
이제 누가 있어 그 큰 짐을 질 것인가.
크낙새는 높이 날고 송림은 청청합니다.
/法應 和南
생평기광남녀군 미천죄업과수미라 하신 성철선사의 임종게에 버금가는
멋진 임종의 말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