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09. 꽃잎이 비바람에 날리면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09. 꽃잎이 비바람에 날리면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04.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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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집시에게 비 오는 날은 깃털 젖은 새처럼 춥고 서러운 날인 것을
베어 놓은 벼에 싹이 날까 걱정하는 농부처럼 가난한 도시 빈민에겐 걱정만 늘어

개울가에 무덤 만든 개구리처럼 지하 방에 물 찰까 개굴개굴

해놓은 거 이루어 놓은 거 없는 이민자에 눈물처럼 비가 내리면 어깨가 시리고 무릎이 아파 온다는 것을

눈이 오는 겨울도 얼음이 어는 추위도 아닌데 비 오는 날은 추위에 어깨는 움츠려 들고 서러움이 꽃비처럼 내린다는 것을.

 







#작가의 변
무능력자와 무소유

“자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았어야 돼.”, “다른 사람 속 썩이지 말고 수도승이 되었어야 무소유 삶을 살지.”

나도 부자가 되고 싶었다. 나도 지지리 궁상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한평생 발버둥 쳐왔다. 하지만 디파짓(보증금)도 없이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산 아파트를 모기지 다 갚을 즈음에 날려 먹었다. 팔지 말았어야 한다고 아내는 늘 말하지만, 그때도 나 혼자 결정한 일이 아니고 우린 상의하고 결정한 일이지만 이제 난 아파트 하나 장만하지 못한 무능력한 남편으로 전락해 버렸다.

요즘 들어 아내가 내게 심하다 싶은 정도로 집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세상에 자기 집 가지지 못한 무능력한 남편이 나 하나뿐만은 아닐 텐데 점점 나이 먹고 직장에서도 일하다 엘리베이터 사고로 아주 일 못하고 쉬고 있은 지 벌써 반년이 넘어가고 나이는 육십이 되었는데 집도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삶의 불안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실 몇 년 전에 우울증 때문에 치료하고 지금도 약을 계속 먹고 있다. 당시 상담 의사는 집과 직장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나에게 지금 바로 연락해서 입원 치료를 받게 해 줄까 하고 물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통원하면서 치료했고 지금은 약만 먹을 뿐 치료는 중단된 상태다.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게 없을 정도로 많이 호전된 것이 그 이유다.

의사는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는 것은 어떠냐고 권유했었지만 그래도 버티어 보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치료가 잘 돼서 정말 다행이란 말과 함께 정신과 응급 전화와 자기 명함을 주면서 언제든 힘이 들면 연락하라고 했다.

나에겐 어린 시절 부모를 비 오는 한밤중에 폭행하던 이웃집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당시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꼬마가 4살이나 어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숨소리조차 입을 막고 내지 않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세상이 캄캄해지는 순간이 오는 트라우마 재림 시간은 버티기 힘들다. 어린 시절 그 사건은 늘 나를 자책하게 했다. “무엇이든 해야 했어. 그리고 쫓아 나가서 그 남자를 이길 수 없다면 물어뜯었어야 해. 아버지의 팔을 문지방에 올려 부러트린다고 말했을 때 쫓아 나가 그를 밀어 버리고 아버질 구했어야 해. 엄마를 쓰러트리고 올라타서 목을 조르던 그를 밀쳐내고 엄마를 구했어야 해”.

아버진 왜 그날따라 상갓집에 가서 술에 취해서 집에 돌아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을까, 원망했다. 술에 안 취했다면 아버진 그에게 저항할 수 있었을까, 태권도 유단자였던 그를, 손발이 묶인 듯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날이 떠오르면 난 한없이 작아진다. 호랑이한테 물려 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고 하지만 긴장하고 놀라면 온몸이 얼어 얼음이 된다. 마음 따로 몸 따로가 된다.







난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를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많이 가지려 했지만 가지지 못했을 뿐이다. 많이 가지고 싶다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를 주장하지만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려면 돈은 필수다. 가진 것이 없으면 사람처럼 취급하지 않고 사람처럼 살기도 힘들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릴 적 아버지를 보면 늘 농협에서 돈을 빌렸다. 씨앗을 사고 비료를 사고 농약을 사고 농사를 위해 들어가는 것은 참 많다. 물론 당시엔 경운기나 트랙터가 없어서 소와 쟁기로 밭 갈고 논을 갈고 써레질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기계에 돈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아이들이 아프거나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학교에 낼 돈 학용품 값 등 현금이 필요한 곳도 분명히 있었다.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하고 선생님이 안 낸 학생 일어서 내일까지 부모님에게 말해서 가져와 할 때면 왜 육성회비를 주지 못하는지 알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열무라도 뽑아 개울에서 다듬고 씻어 이고 버스를 타고 제천 시내 시장에 가서 팔아 오면 그 돈으로 육성회비를 냈다. 어쩌다 엄마가 찐빵이라도 사서 빈 소쿠리에 담아 오면 어린 마음에 그것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이 원하는 돈 척척 준다고 아이들이 행복한 게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한다. 고추를 심고 배추를 심고 고추를 따고 땡볕에 밭매고 하는 일을 해봐야 농사가 힘들어서 다른 것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객지에 나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농사짓는 것만큼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세상은 힘든 일을 하면 그만큼 노동의 댓 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힘들게 일하고도 댓 가는 조금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날 때부터 이미 부자로 도련님으로 태어나 같은 사람이라도 같은 사람으로 대접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릴 때 한국에서 미국 가서 설거지만 해도 돈을 많이 번다고 들었다. 하지만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보니 캐나다도 관공서에 일하는 공무원 등 좋은 일자리는 학력이 높거나 부모 이전 세대부터 부자로 살아 온 집 아이들이 더 쉽게 얻는 걸 많이 접한다. 람보르기니 같은 비싼 차들에 둘러싸여 운전하면서 운전자들을 보면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벌었을 리 없다. 부모의 덕이다. 그냥 놀러 만 다녀도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서 산다. 그래서 나도 부자가 되게 나도 나의 좋은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싶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광야에서 수도와 기도를 하는 것은 일반인으로 현대를 살 가는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전 속의 좋은 말씀을 실천하려 해도 늘 삶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기도 바쁘다. 죽었다 부활할 능력도 앉은뱅이를 걷게 할 능력도 없다. 부처님처럼 모든 유혹을 끊어 내고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이를 자신도 없다.

몸이 병들고 보니 건강이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가난하고 곤란하게 사니 사치하거나 누굴 업신여기는 마음보다는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기도하면서도 집중이 안 되지만 그래도 기도하는 것에 만족한다. 세상은 늘 유혹투성이다. 그래도 방향은 늘 바르게 두고 산다. 쉽게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나이 들어 가면서 어쩌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이루는 것보다 적다는 것도 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가 고맙다. 하지만 억울함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니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하다 가도 꽃도 빛나는 날이 있고 시들어 썩어지듯 사람마다 아픈 사연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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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집시에게 비 오는 날은 깃털 젖은 새처럼 춥고 서러운 날인 것을
베어 놓은 벼에 싹이 날까 걱정하는 농부처럼 가난한 도시 빈민에겐 걱정만 늘어

개울가에 무덤 만든 개구리처럼 지하 방에 물 찰까 개굴개굴

해놓은 거 이루어 놓은 거 없는 이민자에 눈물처럼 비가 내리면 어깨가 시리고 무릎이 아파 온다는 것을

눈이 오는 겨울도 얼음이 어는 추위도 아닌데 비 오는 날은 추위에 어깨는 움츠려 들고 서러움이 꽃비처럼 내린다는 것을.

 





집 없는 집시에게 비 오는 날은 깃털 젖은 새처럼 춥고 서러운 날인 것을
베어 놓은 벼에 싹이 날까 걱정하는 농부처럼 가난한 도시 빈민에겐 걱정만 늘어

개울가에 무덤 만든 개구리처럼 지하 방에 물 찰까 개굴개굴

해놓은 거 이루어 놓은 거 없는 이민자에 눈물처럼 비가 내리면 어깨가 시리고 무릎이 아파 온다는 것을

눈이 오는 겨울도 얼음이 어는 추위도 아닌데 비 오는 날은 추위에 어깨는 움츠려 들고 서러움이 꽃비처럼 내린다는 것을.

 







#작가의 변
무능력자와 무소유

“자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았어야 돼.”, “다른 사람 속 썩이지 말고 수도승이 되었어야 무소유 삶을 살지.”

나도 부자가 되고 싶었다. 나도 지지리 궁상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한평생 발버둥 쳐왔다. 하지만 디파짓(보증금)도 없이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산 아파트를 모기지 다 갚을 즈음에 날려 먹었다. 팔지 말았어야 한다고 아내는 늘 말하지만, 그때도 나 혼자 결정한 일이 아니고 우린 상의하고 결정한 일이지만 이제 난 아파트 하나 장만하지 못한 무능력한 남편으로 전락해 버렸다.

요즘 들어 아내가 내게 심하다 싶은 정도로 집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세상에 자기 집 가지지 못한 무능력한 남편이 나 하나뿐만은 아닐 텐데 점점 나이 먹고 직장에서도 일하다 엘리베이터 사고로 아주 일 못하고 쉬고 있은 지 벌써 반년이 넘어가고 나이는 육십이 되었는데 집도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삶의 불안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실 몇 년 전에 우울증 때문에 치료하고 지금도 약을 계속 먹고 있다. 당시 상담 의사는 집과 직장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나에게 지금 바로 연락해서 입원 치료를 받게 해 줄까 하고 물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통원하면서 치료했고 지금은 약만 먹을 뿐 치료는 중단된 상태다.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게 없을 정도로 많이 호전된 것이 그 이유다.

의사는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는 것은 어떠냐고 권유했었지만 그래도 버티어 보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치료가 잘 돼서 정말 다행이란 말과 함께 정신과 응급 전화와 자기 명함을 주면서 언제든 힘이 들면 연락하라고 했다.

나에겐 어린 시절 부모를 비 오는 한밤중에 폭행하던 이웃집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당시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꼬마가 4살이나 어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숨소리조차 입을 막고 내지 않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세상이 캄캄해지는 순간이 오는 트라우마 재림 시간은 버티기 힘들다. 어린 시절 그 사건은 늘 나를 자책하게 했다. “무엇이든 해야 했어. 그리고 쫓아 나가서 그 남자를 이길 수 없다면 물어뜯었어야 해. 아버지의 팔을 문지방에 올려 부러트린다고 말했을 때 쫓아 나가 그를 밀어 버리고 아버질 구했어야 해. 엄마를 쓰러트리고 올라타서 목을 조르던 그를 밀쳐내고 엄마를 구했어야 해”.

아버진 왜 그날따라 상갓집에 가서 술에 취해서 집에 돌아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을까, 원망했다. 술에 안 취했다면 아버진 그에게 저항할 수 있었을까, 태권도 유단자였던 그를, 손발이 묶인 듯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날이 떠오르면 난 한없이 작아진다. 호랑이한테 물려 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고 하지만 긴장하고 놀라면 온몸이 얼어 얼음이 된다. 마음 따로 몸 따로가 된다.







난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를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많이 가지려 했지만 가지지 못했을 뿐이다. 많이 가지고 싶다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를 주장하지만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려면 돈은 필수다. 가진 것이 없으면 사람처럼 취급하지 않고 사람처럼 살기도 힘들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릴 적 아버지를 보면 늘 농협에서 돈을 빌렸다. 씨앗을 사고 비료를 사고 농약을 사고 농사를 위해 들어가는 것은 참 많다. 물론 당시엔 경운기나 트랙터가 없어서 소와 쟁기로 밭 갈고 논을 갈고 써레질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기계에 돈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아이들이 아프거나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학교에 낼 돈 학용품 값 등 현금이 필요한 곳도 분명히 있었다.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하고 선생님이 안 낸 학생 일어서 내일까지 부모님에게 말해서 가져와 할 때면 왜 육성회비를 주지 못하는지 알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열무라도 뽑아 개울에서 다듬고 씻어 이고 버스를 타고 제천 시내 시장에 가서 팔아 오면 그 돈으로 육성회비를 냈다. 어쩌다 엄마가 찐빵이라도 사서 빈 소쿠리에 담아 오면 어린 마음에 그것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이 원하는 돈 척척 준다고 아이들이 행복한 게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한다. 고추를 심고 배추를 심고 고추를 따고 땡볕에 밭매고 하는 일을 해봐야 농사가 힘들어서 다른 것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객지에 나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농사짓는 것만큼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세상은 힘든 일을 하면 그만큼 노동의 댓 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힘들게 일하고도 댓 가는 조금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날 때부터 이미 부자로 도련님으로 태어나 같은 사람이라도 같은 사람으로 대접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릴 때 한국에서 미국 가서 설거지만 해도 돈을 많이 번다고 들었다. 하지만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보니 캐나다도 관공서에 일하는 공무원 등 좋은 일자리는 학력이 높거나 부모 이전 세대부터 부자로 살아 온 집 아이들이 더 쉽게 얻는 걸 많이 접한다. 람보르기니 같은 비싼 차들에 둘러싸여 운전하면서 운전자들을 보면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벌었을 리 없다. 부모의 덕이다. 그냥 놀러 만 다녀도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서 산다. 그래서 나도 부자가 되게 나도 나의 좋은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싶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광야에서 수도와 기도를 하는 것은 일반인으로 현대를 살 가는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전 속의 좋은 말씀을 실천하려 해도 늘 삶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기도 바쁘다. 죽었다 부활할 능력도 앉은뱅이를 걷게 할 능력도 없다. 부처님처럼 모든 유혹을 끊어 내고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이를 자신도 없다.

몸이 병들고 보니 건강이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가난하고 곤란하게 사니 사치하거나 누굴 업신여기는 마음보다는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기도하면서도 집중이 안 되지만 그래도 기도하는 것에 만족한다. 세상은 늘 유혹투성이다. 그래도 방향은 늘 바르게 두고 산다. 쉽게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나이 들어 가면서 어쩌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이루는 것보다 적다는 것도 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가 고맙다. 하지만 억울함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니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하다 가도 꽃도 빛나는 날이 있고 시들어 썩어지듯 사람마다 아픈 사연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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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무능력자와 무소유

“자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았어야 돼.”, “다른 사람 속 썩이지 말고 수도승이 되었어야 무소유 삶을 살지.”

나도 부자가 되고 싶었다. 나도 지지리 궁상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한평생 발버둥 쳐왔다. 하지만 디파짓(보증금)도 없이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산 아파트를 모기지 다 갚을 즈음에 날려 먹었다. 팔지 말았어야 한다고 아내는 늘 말하지만, 그때도 나 혼자 결정한 일이 아니고 우린 상의하고 결정한 일이지만 이제 난 아파트 하나 장만하지 못한 무능력한 남편으로 전락해 버렸다.

요즘 들어 아내가 내게 심하다 싶은 정도로 집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세상에 자기 집 가지지 못한 무능력한 남편이 나 하나뿐만은 아닐 텐데 점점 나이 먹고 직장에서도 일하다 엘리베이터 사고로 아주 일 못하고 쉬고 있은 지 벌써 반년이 넘어가고 나이는 육십이 되었는데 집도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삶의 불안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실 몇 년 전에 우울증 때문에 치료하고 지금도 약을 계속 먹고 있다. 당시 상담 의사는 집과 직장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나에게 지금 바로 연락해서 입원 치료를 받게 해 줄까 하고 물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통원하면서 치료했고 지금은 약만 먹을 뿐 치료는 중단된 상태다.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게 없을 정도로 많이 호전된 것이 그 이유다.

의사는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는 것은 어떠냐고 권유했었지만 그래도 버티어 보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치료가 잘 돼서 정말 다행이란 말과 함께 정신과 응급 전화와 자기 명함을 주면서 언제든 힘이 들면 연락하라고 했다.

나에겐 어린 시절 부모를 비 오는 한밤중에 폭행하던 이웃집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당시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꼬마가 4살이나 어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숨소리조차 입을 막고 내지 않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세상이 캄캄해지는 순간이 오는 트라우마 재림 시간은 버티기 힘들다. 어린 시절 그 사건은 늘 나를 자책하게 했다. “무엇이든 해야 했어. 그리고 쫓아 나가서 그 남자를 이길 수 없다면 물어뜯었어야 해. 아버지의 팔을 문지방에 올려 부러트린다고 말했을 때 쫓아 나가 그를 밀어 버리고 아버질 구했어야 해. 엄마를 쓰러트리고 올라타서 목을 조르던 그를 밀쳐내고 엄마를 구했어야 해”.

아버진 왜 그날따라 상갓집에 가서 술에 취해서 집에 돌아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을까, 원망했다. 술에 안 취했다면 아버진 그에게 저항할 수 있었을까, 태권도 유단자였던 그를, 손발이 묶인 듯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날이 떠오르면 난 한없이 작아진다. 호랑이한테 물려 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고 하지만 긴장하고 놀라면 온몸이 얼어 얼음이 된다. 마음 따로 몸 따로가 된다.





집 없는 집시에게 비 오는 날은 깃털 젖은 새처럼 춥고 서러운 날인 것을
베어 놓은 벼에 싹이 날까 걱정하는 농부처럼 가난한 도시 빈민에겐 걱정만 늘어

개울가에 무덤 만든 개구리처럼 지하 방에 물 찰까 개굴개굴

해놓은 거 이루어 놓은 거 없는 이민자에 눈물처럼 비가 내리면 어깨가 시리고 무릎이 아파 온다는 것을

눈이 오는 겨울도 얼음이 어는 추위도 아닌데 비 오는 날은 추위에 어깨는 움츠려 들고 서러움이 꽃비처럼 내린다는 것을.

 







#작가의 변
무능력자와 무소유

“자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았어야 돼.”, “다른 사람 속 썩이지 말고 수도승이 되었어야 무소유 삶을 살지.”

나도 부자가 되고 싶었다. 나도 지지리 궁상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한평생 발버둥 쳐왔다. 하지만 디파짓(보증금)도 없이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산 아파트를 모기지 다 갚을 즈음에 날려 먹었다. 팔지 말았어야 한다고 아내는 늘 말하지만, 그때도 나 혼자 결정한 일이 아니고 우린 상의하고 결정한 일이지만 이제 난 아파트 하나 장만하지 못한 무능력한 남편으로 전락해 버렸다.

요즘 들어 아내가 내게 심하다 싶은 정도로 집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세상에 자기 집 가지지 못한 무능력한 남편이 나 하나뿐만은 아닐 텐데 점점 나이 먹고 직장에서도 일하다 엘리베이터 사고로 아주 일 못하고 쉬고 있은 지 벌써 반년이 넘어가고 나이는 육십이 되었는데 집도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삶의 불안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실 몇 년 전에 우울증 때문에 치료하고 지금도 약을 계속 먹고 있다. 당시 상담 의사는 집과 직장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나에게 지금 바로 연락해서 입원 치료를 받게 해 줄까 하고 물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통원하면서 치료했고 지금은 약만 먹을 뿐 치료는 중단된 상태다.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게 없을 정도로 많이 호전된 것이 그 이유다.

의사는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는 것은 어떠냐고 권유했었지만 그래도 버티어 보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치료가 잘 돼서 정말 다행이란 말과 함께 정신과 응급 전화와 자기 명함을 주면서 언제든 힘이 들면 연락하라고 했다.

나에겐 어린 시절 부모를 비 오는 한밤중에 폭행하던 이웃집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당시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꼬마가 4살이나 어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숨소리조차 입을 막고 내지 않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세상이 캄캄해지는 순간이 오는 트라우마 재림 시간은 버티기 힘들다. 어린 시절 그 사건은 늘 나를 자책하게 했다. “무엇이든 해야 했어. 그리고 쫓아 나가서 그 남자를 이길 수 없다면 물어뜯었어야 해. 아버지의 팔을 문지방에 올려 부러트린다고 말했을 때 쫓아 나가 그를 밀어 버리고 아버질 구했어야 해. 엄마를 쓰러트리고 올라타서 목을 조르던 그를 밀쳐내고 엄마를 구했어야 해”.

아버진 왜 그날따라 상갓집에 가서 술에 취해서 집에 돌아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을까, 원망했다. 술에 안 취했다면 아버진 그에게 저항할 수 있었을까, 태권도 유단자였던 그를, 손발이 묶인 듯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날이 떠오르면 난 한없이 작아진다. 호랑이한테 물려 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고 하지만 긴장하고 놀라면 온몸이 얼어 얼음이 된다. 마음 따로 몸 따로가 된다.







난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를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많이 가지려 했지만 가지지 못했을 뿐이다. 많이 가지고 싶다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를 주장하지만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려면 돈은 필수다. 가진 것이 없으면 사람처럼 취급하지 않고 사람처럼 살기도 힘들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릴 적 아버지를 보면 늘 농협에서 돈을 빌렸다. 씨앗을 사고 비료를 사고 농약을 사고 농사를 위해 들어가는 것은 참 많다. 물론 당시엔 경운기나 트랙터가 없어서 소와 쟁기로 밭 갈고 논을 갈고 써레질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기계에 돈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아이들이 아프거나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학교에 낼 돈 학용품 값 등 현금이 필요한 곳도 분명히 있었다.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하고 선생님이 안 낸 학생 일어서 내일까지 부모님에게 말해서 가져와 할 때면 왜 육성회비를 주지 못하는지 알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열무라도 뽑아 개울에서 다듬고 씻어 이고 버스를 타고 제천 시내 시장에 가서 팔아 오면 그 돈으로 육성회비를 냈다. 어쩌다 엄마가 찐빵이라도 사서 빈 소쿠리에 담아 오면 어린 마음에 그것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이 원하는 돈 척척 준다고 아이들이 행복한 게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한다. 고추를 심고 배추를 심고 고추를 따고 땡볕에 밭매고 하는 일을 해봐야 농사가 힘들어서 다른 것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객지에 나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농사짓는 것만큼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세상은 힘든 일을 하면 그만큼 노동의 댓 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힘들게 일하고도 댓 가는 조금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날 때부터 이미 부자로 도련님으로 태어나 같은 사람이라도 같은 사람으로 대접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릴 때 한국에서 미국 가서 설거지만 해도 돈을 많이 번다고 들었다. 하지만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보니 캐나다도 관공서에 일하는 공무원 등 좋은 일자리는 학력이 높거나 부모 이전 세대부터 부자로 살아 온 집 아이들이 더 쉽게 얻는 걸 많이 접한다. 람보르기니 같은 비싼 차들에 둘러싸여 운전하면서 운전자들을 보면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벌었을 리 없다. 부모의 덕이다. 그냥 놀러 만 다녀도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서 산다. 그래서 나도 부자가 되게 나도 나의 좋은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싶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광야에서 수도와 기도를 하는 것은 일반인으로 현대를 살 가는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전 속의 좋은 말씀을 실천하려 해도 늘 삶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기도 바쁘다. 죽었다 부활할 능력도 앉은뱅이를 걷게 할 능력도 없다. 부처님처럼 모든 유혹을 끊어 내고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이를 자신도 없다.

몸이 병들고 보니 건강이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가난하고 곤란하게 사니 사치하거나 누굴 업신여기는 마음보다는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기도하면서도 집중이 안 되지만 그래도 기도하는 것에 만족한다. 세상은 늘 유혹투성이다. 그래도 방향은 늘 바르게 두고 산다. 쉽게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나이 들어 가면서 어쩌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이루는 것보다 적다는 것도 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가 고맙다. 하지만 억울함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니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하다 가도 꽃도 빛나는 날이 있고 시들어 썩어지듯 사람마다 아픈 사연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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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를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많이 가지려 했지만 가지지 못했을 뿐이다. 많이 가지고 싶다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를 주장하지만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려면 돈은 필수다. 가진 것이 없으면 사람처럼 취급하지 않고 사람처럼 살기도 힘들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릴 적 아버지를 보면 늘 농협에서 돈을 빌렸다. 씨앗을 사고 비료를 사고 농약을 사고 농사를 위해 들어가는 것은 참 많다. 물론 당시엔 경운기나 트랙터가 없어서 소와 쟁기로 밭 갈고 논을 갈고 써레질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기계에 돈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아이들이 아프거나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학교에 낼 돈 학용품 값 등 현금이 필요한 곳도 분명히 있었다.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하고 선생님이 안 낸 학생 일어서 내일까지 부모님에게 말해서 가져와 할 때면 왜 육성회비를 주지 못하는지 알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열무라도 뽑아 개울에서 다듬고 씻어 이고 버스를 타고 제천 시내 시장에 가서 팔아 오면 그 돈으로 육성회비를 냈다. 어쩌다 엄마가 찐빵이라도 사서 빈 소쿠리에 담아 오면 어린 마음에 그것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이 원하는 돈 척척 준다고 아이들이 행복한 게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한다. 고추를 심고 배추를 심고 고추를 따고 땡볕에 밭매고 하는 일을 해봐야 농사가 힘들어서 다른 것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객지에 나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농사짓는 것만큼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세상은 힘든 일을 하면 그만큼 노동의 댓 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힘들게 일하고도 댓 가는 조금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날 때부터 이미 부자로 도련님으로 태어나 같은 사람이라도 같은 사람으로 대접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릴 때 한국에서 미국 가서 설거지만 해도 돈을 많이 번다고 들었다. 하지만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보니 캐나다도 관공서에 일하는 공무원 등 좋은 일자리는 학력이 높거나 부모 이전 세대부터 부자로 살아 온 집 아이들이 더 쉽게 얻는 걸 많이 접한다. 람보르기니 같은 비싼 차들에 둘러싸여 운전하면서 운전자들을 보면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벌었을 리 없다. 부모의 덕이다. 그냥 놀러 만 다녀도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서 산다. 그래서 나도 부자가 되게 나도 나의 좋은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싶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광야에서 수도와 기도를 하는 것은 일반인으로 현대를 살 가는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전 속의 좋은 말씀을 실천하려 해도 늘 삶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기도 바쁘다. 죽었다 부활할 능력도 앉은뱅이를 걷게 할 능력도 없다. 부처님처럼 모든 유혹을 끊어 내고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이를 자신도 없다.

몸이 병들고 보니 건강이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가난하고 곤란하게 사니 사치하거나 누굴 업신여기는 마음보다는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기도하면서도 집중이 안 되지만 그래도 기도하는 것에 만족한다. 세상은 늘 유혹투성이다. 그래도 방향은 늘 바르게 두고 산다. 쉽게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나이 들어 가면서 어쩌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이루는 것보다 적다는 것도 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가 고맙다. 하지만 억울함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니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하다 가도 꽃도 빛나는 날이 있고 시들어 썩어지듯 사람마다 아픈 사연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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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집시에게 비 오는 날은 깃털 젖은 새처럼 춥고 서러운 날인 것을
베어 놓은 벼에 싹이 날까 걱정하는 농부처럼 가난한 도시 빈민에겐 걱정만 늘어

개울가에 무덤 만든 개구리처럼 지하 방에 물 찰까 개굴개굴

해놓은 거 이루어 놓은 거 없는 이민자에 눈물처럼 비가 내리면 어깨가 시리고 무릎이 아파 온다는 것을

눈이 오는 겨울도 얼음이 어는 추위도 아닌데 비 오는 날은 추위에 어깨는 움츠려 들고 서러움이 꽃비처럼 내린다는 것을.

 







#작가의 변
무능력자와 무소유

“자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았어야 돼.”, “다른 사람 속 썩이지 말고 수도승이 되었어야 무소유 삶을 살지.”

나도 부자가 되고 싶었다. 나도 지지리 궁상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한평생 발버둥 쳐왔다. 하지만 디파짓(보증금)도 없이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산 아파트를 모기지 다 갚을 즈음에 날려 먹었다. 팔지 말았어야 한다고 아내는 늘 말하지만, 그때도 나 혼자 결정한 일이 아니고 우린 상의하고 결정한 일이지만 이제 난 아파트 하나 장만하지 못한 무능력한 남편으로 전락해 버렸다.

요즘 들어 아내가 내게 심하다 싶은 정도로 집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세상에 자기 집 가지지 못한 무능력한 남편이 나 하나뿐만은 아닐 텐데 점점 나이 먹고 직장에서도 일하다 엘리베이터 사고로 아주 일 못하고 쉬고 있은 지 벌써 반년이 넘어가고 나이는 육십이 되었는데 집도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삶의 불안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실 몇 년 전에 우울증 때문에 치료하고 지금도 약을 계속 먹고 있다. 당시 상담 의사는 집과 직장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나에게 지금 바로 연락해서 입원 치료를 받게 해 줄까 하고 물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통원하면서 치료했고 지금은 약만 먹을 뿐 치료는 중단된 상태다.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게 없을 정도로 많이 호전된 것이 그 이유다.

의사는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는 것은 어떠냐고 권유했었지만 그래도 버티어 보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치료가 잘 돼서 정말 다행이란 말과 함께 정신과 응급 전화와 자기 명함을 주면서 언제든 힘이 들면 연락하라고 했다.

나에겐 어린 시절 부모를 비 오는 한밤중에 폭행하던 이웃집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당시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꼬마가 4살이나 어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숨소리조차 입을 막고 내지 않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세상이 캄캄해지는 순간이 오는 트라우마 재림 시간은 버티기 힘들다. 어린 시절 그 사건은 늘 나를 자책하게 했다. “무엇이든 해야 했어. 그리고 쫓아 나가서 그 남자를 이길 수 없다면 물어뜯었어야 해. 아버지의 팔을 문지방에 올려 부러트린다고 말했을 때 쫓아 나가 그를 밀어 버리고 아버질 구했어야 해. 엄마를 쓰러트리고 올라타서 목을 조르던 그를 밀쳐내고 엄마를 구했어야 해”.

아버진 왜 그날따라 상갓집에 가서 술에 취해서 집에 돌아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을까, 원망했다. 술에 안 취했다면 아버진 그에게 저항할 수 있었을까, 태권도 유단자였던 그를, 손발이 묶인 듯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날이 떠오르면 난 한없이 작아진다. 호랑이한테 물려 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고 하지만 긴장하고 놀라면 온몸이 얼어 얼음이 된다. 마음 따로 몸 따로가 된다.







난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를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많이 가지려 했지만 가지지 못했을 뿐이다. 많이 가지고 싶다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를 주장하지만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려면 돈은 필수다. 가진 것이 없으면 사람처럼 취급하지 않고 사람처럼 살기도 힘들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릴 적 아버지를 보면 늘 농협에서 돈을 빌렸다. 씨앗을 사고 비료를 사고 농약을 사고 농사를 위해 들어가는 것은 참 많다. 물론 당시엔 경운기나 트랙터가 없어서 소와 쟁기로 밭 갈고 논을 갈고 써레질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기계에 돈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아이들이 아프거나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학교에 낼 돈 학용품 값 등 현금이 필요한 곳도 분명히 있었다.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하고 선생님이 안 낸 학생 일어서 내일까지 부모님에게 말해서 가져와 할 때면 왜 육성회비를 주지 못하는지 알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열무라도 뽑아 개울에서 다듬고 씻어 이고 버스를 타고 제천 시내 시장에 가서 팔아 오면 그 돈으로 육성회비를 냈다. 어쩌다 엄마가 찐빵이라도 사서 빈 소쿠리에 담아 오면 어린 마음에 그것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이 원하는 돈 척척 준다고 아이들이 행복한 게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한다. 고추를 심고 배추를 심고 고추를 따고 땡볕에 밭매고 하는 일을 해봐야 농사가 힘들어서 다른 것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객지에 나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농사짓는 것만큼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세상은 힘든 일을 하면 그만큼 노동의 댓 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힘들게 일하고도 댓 가는 조금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날 때부터 이미 부자로 도련님으로 태어나 같은 사람이라도 같은 사람으로 대접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릴 때 한국에서 미국 가서 설거지만 해도 돈을 많이 번다고 들었다. 하지만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보니 캐나다도 관공서에 일하는 공무원 등 좋은 일자리는 학력이 높거나 부모 이전 세대부터 부자로 살아 온 집 아이들이 더 쉽게 얻는 걸 많이 접한다. 람보르기니 같은 비싼 차들에 둘러싸여 운전하면서 운전자들을 보면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벌었을 리 없다. 부모의 덕이다. 그냥 놀러 만 다녀도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서 산다. 그래서 나도 부자가 되게 나도 나의 좋은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싶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광야에서 수도와 기도를 하는 것은 일반인으로 현대를 살 가는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전 속의 좋은 말씀을 실천하려 해도 늘 삶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기도 바쁘다. 죽었다 부활할 능력도 앉은뱅이를 걷게 할 능력도 없다. 부처님처럼 모든 유혹을 끊어 내고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이를 자신도 없다.

몸이 병들고 보니 건강이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가난하고 곤란하게 사니 사치하거나 누굴 업신여기는 마음보다는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기도하면서도 집중이 안 되지만 그래도 기도하는 것에 만족한다. 세상은 늘 유혹투성이다. 그래도 방향은 늘 바르게 두고 산다. 쉽게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나이 들어 가면서 어쩌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이루는 것보다 적다는 것도 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가 고맙다. 하지만 억울함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니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하다 가도 꽃도 빛나는 날이 있고 시들어 썩어지듯 사람마다 아픈 사연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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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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