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 지배 벗어나 종단 밖에 마련한 민족불교 피난처”
“총독부 지배 벗어나 종단 밖에 마련한 민족불교 피난처”
  • 선학원백년사간행위원회
  • 승인 2022.12.0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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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학원의 설립 배경

1919년 3·1운동은 혁명이라 할 만큼 조선의 각 분야 각 계층의 의식 있는 사람들을 격동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다.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한 강렬한 흐름을 만들었지만 불교계에 가장 큰 변화를 준 사건도 3·1운동이었다. 3·1운동의 만세 시위에 직접 참가한 청년 승려들의 각성은 3·1운동 이후 사찰령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의 성장과 자주적 통제기관의 설치를 위한 노력으로 나타났다.

이에 1920년 6월 20일 김상호·도진호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불교청년회가 결성되었고,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 조선불교유신회(朝鮮佛敎維新會)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1922년 1월 5일부터 200여 명의 대표가 모여 정교분리를 결의하고, 2700여 명의 서명을 얻어 건의문을 채택했다. 그 내용은 사찰령 이후의 각종 혼란과 폐단을 지적하고, 사찰령을 폐지하여 불교 자체의 통제에 맡기라는 것 등이었다. 이러한 청년 승려들의 불교유신운동과 사찰령 철폐 운동은 임제종운동을 계승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에 조선불교계는 변화를 요구하는 유신운동 계열의 조선불교총무원과 기존의 사찰령 체제에 순응하는 본산 주지 계열의 조선불교교무원 체제로 나뉘어 갈등하였다.

조동종맹약.



총독부는 사찰령과 30본산 체제에 순응하는 교무원을 중심으로 불교계를 재편하고자 했다. 이에 총독부는 총무원을 탄압하고 교무원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1922년 재단법인 설립을 고민하였다. 결국 1924년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朝鮮佛敎中央敎務院)을 발족시켰다.1) 1922년부터 재단법인 체제의 조선불교교무원 설립을 고민했던 총독부와 친일적 본산 주지들의 행태에 불만과 대항의 의미로 독자적 공간의 선학원 건립을 진행하게 되었다.

특히 사찰령에 편승한 본산 주지들에 반대한 조선불교총무원의 조직은 불교청년회, 특히 불교유신회의 활동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불교유신회는 1922년 1월 7일 30본산주지회의를 조선불교도총회로 바꾸었고, 이 불교도총회에 의해 1922년 1월 9일 조선불교총무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의사회를 구성하여 강도봉, 기석호, 정황진, 강신창, 이지광, 박한영, 김석두 등 7명을 의사(議事)로 선임하였다. 선학원의 주도 세력이었던 강도봉과 김석두 스님이 조선불교총무원 의사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선학원은 1921년 11월 뜻있는 수행자들이 모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수행풍토를 정립하려는 취지에서 설립되었다. 선종의 중앙기관으로서 선학원의 시원은 1910년 국치 이듬해인 1911년 한용운(韓龍雲), 진진응(陳震應), 김종래(金鍾來), 김경운(金擎雲), 김학산(金鶴山), 박한영(朴漢永) 등의 승려들이 모여 한국불교가 임제종(臨濟宗)임을 천명하면서 송광사에 ‘조선 임제종 임시사무소’를 설치하며 시작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다.2)

이러한 임제종운동은 1919년 3·1운동으로 발전하였고, 3·1운동으로 각성된 승려들에 의해 사찰령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공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 몇몇 의식 있는 승려들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뜻을 모았다. 즉 수덕사의 송만공(宋滿空), 서울 인사동 범어사 포교당의 포교사 김남전(金南泉), 서울 사간동 석왕사 포교당 포교사 강도봉(姜道峰) 등이다. 이들은 서로 교감하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중 1921년 5월 15일 서울 사간동 석왕사 포교당에서 보살계 계단을 개설했다. 선학원 건립 자금을 모금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날 송만공의 발언을 통해 선학원을 만들고자 했던 이들의 기본적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지금 조선불교는 완전히 식민지 총독 관할 밑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 총독의 허가 없이는, 사찰의 이전・폐합으로부터 절간에 있는 온갖 재산, 기물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손을 댈 수가 없게 돼 있는 것입니다. …… 이런 판국이라 지금 조선 중들은 자꾸만 일본 중처럼 변질이 돼 가고 있단 말입니다. 진실로 불조 정맥을 계승해 보려는 납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 말이죠. … 우리 사찰령과는 관계가 없는, 순전히 조선 사람끼리만 운영을 하는 선방을 하나 따로 만들어 보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오늘 회의를 부치게 된 거 올시다.3)

즉 일제의 사찰령 체제 속에 조선불교가 종속되어 있다는 정확한 인식과 사찰의 이전과 폐합 및 재산 기물에 대한 처리조차 조선 총독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선불교계의 불구성을 폭로하고 있다. 동시에 조선 전통의 청정 비구 승가제도가 무너지고 일본식 대처승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사찰령에 구속되지 않는 순전히 조선식 전통의 선방을 따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들 선학원 설립 조사들의 사찰령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당시 불교 청년들이 1921년 조선불교유신회를 조직하면서 정교분리(政敎分離)를 통한 사찰령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은 1910년대부터 친일적 성향의 원종(圓宗) 종무원에 대한 반대를 목적으로 한 임제종운동과 1919년 3·1운동을 이끈 세력이기도 했다. 이들은 불교계 문제는 불교계 자체의 통제에 두어야 한다는 정당한 인식과 실천으로 점차 조선불교를 통제하고 관할하는 기관의 건설운동으로 진전하게 되었다. 이에 우선 사찰령에 구속되지 않는 독자적 공간 확보에 대한 자연스러운 의견 일치는 선학원의 건립으로 현실화되었던 것이다.



선학원 중앙선원.
조동종맹약.

총독부는 사찰령과 30본산 체제에 순응하는 교무원을 중심으로 불교계를 재편하고자 했다. 이에 총독부는 총무원을 탄압하고 교무원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1922년 재단법인 설립을 고민하였다. 결국 1924년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朝鮮佛敎中央敎務院)을 발족시켰다.1) 1922년부터 재단법인 체제의 조선불교교무원 설립을 고민했던 총독부와 친일적 본산 주지들의 행태에 불만과 대항의 의미로 독자적 공간의 선학원 건립을 진행하게 되었다.

특히 사찰령에 편승한 본산 주지들에 반대한 조선불교총무원의 조직은 불교청년회, 특히 불교유신회의 활동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불교유신회는 1922년 1월 7일 30본산주지회의를 조선불교도총회로 바꾸었고, 이 불교도총회에 의해 1922년 1월 9일 조선불교총무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의사회를 구성하여 강도봉, 기석호, 정황진, 강신창, 이지광, 박한영, 김석두 등 7명을 의사(議事)로 선임하였다. 선학원의 주도 세력이었던 강도봉과 김석두 스님이 조선불교총무원 의사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선학원은 1921년 11월 뜻있는 수행자들이 모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수행풍토를 정립하려는 취지에서 설립되었다. 선종의 중앙기관으로서 선학원의 시원은 1910년 국치 이듬해인 1911년 한용운(韓龍雲), 진진응(陳震應), 김종래(金鍾來), 김경운(金擎雲), 김학산(金鶴山), 박한영(朴漢永) 등의 승려들이 모여 한국불교가 임제종(臨濟宗)임을 천명하면서 송광사에 ‘조선 임제종 임시사무소’를 설치하며 시작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다.2)

이러한 임제종운동은 1919년 3·1운동으로 발전하였고, 3·1운동으로 각성된 승려들에 의해 사찰령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공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 몇몇 의식 있는 승려들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뜻을 모았다. 즉 수덕사의 송만공(宋滿空), 서울 인사동 범어사 포교당의 포교사 김남전(金南泉), 서울 사간동 석왕사 포교당 포교사 강도봉(姜道峰) 등이다. 이들은 서로 교감하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중 1921년 5월 15일 서울 사간동 석왕사 포교당에서 보살계 계단을 개설했다. 선학원 건립 자금을 모금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날 송만공의 발언을 통해 선학원을 만들고자 했던 이들의 기본적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지금 조선불교는 완전히 식민지 총독 관할 밑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 총독의 허가 없이는, 사찰의 이전・폐합으로부터 절간에 있는 온갖 재산, 기물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손을 댈 수가 없게 돼 있는 것입니다. …… 이런 판국이라 지금 조선 중들은 자꾸만 일본 중처럼 변질이 돼 가고 있단 말입니다. 진실로 불조 정맥을 계승해 보려는 납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 말이죠. … 우리 사찰령과는 관계가 없는, 순전히 조선 사람끼리만 운영을 하는 선방을 하나 따로 만들어 보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오늘 회의를 부치게 된 거 올시다.3)

즉 일제의 사찰령 체제 속에 조선불교가 종속되어 있다는 정확한 인식과 사찰의 이전과 폐합 및 재산 기물에 대한 처리조차 조선 총독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선불교계의 불구성을 폭로하고 있다. 동시에 조선 전통의 청정 비구 승가제도가 무너지고 일본식 대처승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사찰령에 구속되지 않는 순전히 조선식 전통의 선방을 따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들 선학원 설립 조사들의 사찰령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당시 불교 청년들이 1921년 조선불교유신회를 조직하면서 정교분리(政敎分離)를 통한 사찰령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은 1910년대부터 친일적 성향의 원종(圓宗) 종무원에 대한 반대를 목적으로 한 임제종운동과 1919년 3·1운동을 이끈 세력이기도 했다. 이들은 불교계 문제는 불교계 자체의 통제에 두어야 한다는 정당한 인식과 실천으로 점차 조선불교를 통제하고 관할하는 기관의 건설운동으로 진전하게 되었다. 이에 우선 사찰령에 구속되지 않는 독자적 공간 확보에 대한 자연스러운 의견 일치는 선학원의 건립으로 현실화되었던 것이다.

선학원 중앙선원.
선학원 중앙선원.

‘사(寺)’나 ‘암(庵)’ 등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선학원(禪學院)’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① 당시의 모든 사암(寺庵)이 사찰령(寺刹令)과 사법(寺法)에 종횡으로 묶여, 암자의 주지 취임까지 관(官)의 인가를 받아야 했고, 모든 행사와 동(動)·부동산(不動産)의 동태 이동상황까지 낱낱이 사찰(査察)을 받고 있었으므로 사암(寺庵) 등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총독부(總督府)의 ‘통치(統治)’를 피하려고 했기 때문이고, ②또 다른 한 가지 뜻은 선(禪)을 대중에게 가르쳐 보급한다는 데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4)

1986년 발간된 《선학원약사》의 선학원 건립에 대한 취지와 의미의 언급에는 “선학원은 총독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종단(宗團) 밖에 마련한 민족불교의 피난처”이자, “한국불교의 이념적 정통은 선지식들에 의해서 사설(私設)된 선학원(禪學院)”이라는 자부심이 있다.5) 이는 선학원이 불법의 정통을 지키고 널리 홍법을 펼치고자 하는 취지를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선학원은 선풍진작을 염원하였던 승려들에 의해 1921년에 창건된 도량으로 일제 강점기 사찰령 체제하에서 전국 선원 및 수좌의 중앙 거점 역할을 담당하였다. 선학원은 일제의 불교 정책에 대항하여 선불교 중흥과 계율 수호의 노선을 지키고자 하여 건립되었던 것이다.

[주] -----

1) 정광호(1994), 《근대한일불교관계사연구》, 인하대학교출판부. ; 김광식(1996), 《한국 근대불교사연구》, 민족사. ; 김경집(1998), 《한국근대불교사》, 경서원. ; 김순석(2001),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고려대 박사 논문 ; 한동민(2005), <‘寺刹令’ 體制下 本山制度 硏究>, 중앙대 박사논문.

2) 선학원(1986), 《財團法人 禪學院略史》, 3쪽.

3) 혜공(1969), 《만공어록》, 수덕사, 50쪽. ; 정광호(1994), <한국 전통선맥의 계승운동>, 《근대한일불교관계사연구》, 인하대출판부, 191쪽. ; 김광식, <선학원의 설립과 전개>, 《선문화연구》 1, 283쪽.

4) 선학원(1986), 《財團法人 禪學院略史》, 6쪽.

5) 선학원(1986), 《財團法人 禪學院略史》,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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