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묘지사지서 대형 온돌 건물지 확인
강화 묘지사지서 대형 온돌 건물지 확인
  • 조현성 기자
  • 승인 2022.11.28 10: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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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묘지사지 건물지 근경 (사진=문화재청)
강화 묘지사지 건물지 근경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소장 김지연)는 고려 강도 시기 사찰유적인 강화 묘지사지(妙智寺址)에서 대형 온돌 건물지를 확인했다. 강도 시기는 고려 왕조가 몽골 침략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1232~1270년까지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묘지사는 1264년(고려 원종 5년) 왕이 마니산 참성단에서 초제를 지내기 전에 거처했던 사찰이다. 마니산 동쪽의 초피봉 남사면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묘지사지는 산 사면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2개의 평탄지로 이뤄져 있다. 상단 평탄지 조사에서 해당 온돌 건물지를 처음 확인했다.

방 전체에 온돌을 시설한 전면온돌은 대체로 고려 후기부터 등장해 정착된 것으로 여겨지나, 이 시기 구조가 명확한 대형 온돌 건물지는 확인되는 사례가 드물다.

문화재청은 “이번 온돌 건물지는 13세기대 전면온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온돌 구조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학술적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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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maca 2022-11-28 11:47:13
고려는 치국의 도가 유교, 수신의 도가 불교인 나라였습니다. 천(天), 日月星晨에 대한 제사는 유교의 전통적인 하늘제사입니다. 도교나 무속신앙이 아닙니다. 원나라가 천자국의 위엄을 위해, 중국 국자감과 같은 명칭을 못쓰게 하여, 고려말 국자감이 성균관(조선.대한제국때도 성균관)으로 바뀌고, 명나라도 이를 이어, 그동안 기자조선의 승계국가인 삼한의 상달제,시월제 및, 고구려 동맹, 예의 무천 및 고려시대까지, 한국의 여러 왕조들이 행하던 제천의식이 조선초에 중단되었지요. 그러다, 고종때 제천의식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초(醮)’란 하늘이 주신 수명을 다하기 위해 모든 앙화와 액을 제거해주시기를 지고신(至高神)인 천(天)에게 탄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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