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 현대인에게 길을 가리키다
천문학자, 현대인에게 길을 가리키다
  • 사기순
  • 승인 2013.06.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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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의 삶 나의 거울 12. ‘직지’ 해설서 펴낸 천문학자 이시우 서울대 명예교수
불교는 범 우주적인 종교, 연기법 실천할 때 희망 있다

단 한 번의 만남만으로도 영향을 크게 미치는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 관측천문학의 개척자인 이시우 박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몇 년 전 취재차 두어 시간 만난 게 전부인데, 그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생생하게 기억나고, 불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우주 법계를 다루는 천문학은 불법에 가장 가깝다. 별들의 생성하고 소멸하는 이치가 불교의 연기법에 딱 들어맞는다.”
“불교는 범 우주적인 종교, 그런데 한국불교는 너무 자기 자신만 보고 있고 있다. 기복신앙적인 태도도 안타깝고, 개인의 깨달음만 추구하는 것도 문제다. 함께 깨쳐야지 혼자 깨치면 의미가 없다. 별은 절대 혼자 깨치는 법이 없다.”
“인간만 보지 말고 우주도 봐야 한다. 우주적 종교인 불교가 너무 인간 중심적으로 흐르고 있다. 환경문제가 근본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한 사고에서 잉태된 것이듯, 그 해결법은 인간과 자연을 둘로 보지 않고 서로 의존하고 있는 연기적 관계로 보고, 생활 속에서 작은 것이나마 실천할 때 희망이 있다.”
“화성의 과거를 알면 지구의 미래도 알 수 있듯 화성도 살기 좋은 땅이었는데 환경오염으로 황폐해졌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인식이 전환될 것이다.”

등등 천문학과 연계한 그의 주옥같은 말씀을 통해서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었던 연기법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연기론적으로 살아가면 세상이 평화로워지고, 환경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니 불교신자로서 크나큰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참으로 연기법을 생각하면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매사 여여하게 살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불편한 측면도 있다. 가사에 서툰 나는 밥을 지으면서 동시에 반찬이라도 하는 날이면 탈을 낼 때가 많다. 반찬을 만드는 데 집중하다 가스 불에 올려놓은 압력솥 밥이 탈 때도 있고, 그 다음날엔 밥에 신경을 쓰다가 반찬을 태우기도 한다. 그 때마다 새까맣게 타서 못 먹게 된 밥과 반찬에게 미안하고, 나빠진 공기에게 미안하고, 내 부주의로 인해 음식물쓰레기를 만들어낸 것이 죄스러울 정도다. 이럴 땐 아는 게 병이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듯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서 그의 말씀이 하나둘씩 생각나곤 했는데, 얼마 전 신문지상에서 “37억 년 전 화성 대기에는 산소가 풍부했을 것이다.”라는 기사를 보면서 “화성의 과거를 알면 지구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그의 말이 생각났고, 그의 최근 근황이 급 궁금해졌다. 아니, 그는 이미 나와 매우 가까이 있었다. 그는 민족사에서 몇 년 전 <붓다의 세계와 불교 우주관>을 펴낸 적이 있고, 현재 <직지>를 해설한 <직지, 길을 가리키다> 출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다른 편집자가 거의 다 진행한 상태였기에, 마음속으로만 반가워했을 뿐, 미처 연락드릴 생각은 못했다. 내심 이 책을 담당하고 있는 후배편집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무튼 화성 소식으로 궁금증의 물꼬가 터져 만남을 청해 보라매공원 근처의 자택을 찾았다.


출가하려던 천문학자, 마음만 출가한 까닭은?

몇 년 전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고독한 수행자 같았다. 그는 현재 7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형형하고 맑은 눈빛을 지니고 있었는데 유머감각이 늘어난 것 같았다.

“난 ‘삼식이’에요. 우리 집 보살이 삼시 세 끼 나 밥 해 주느라 꼼짝도 못해요. 내 유일한 친구예요. 하하하.”
세간에 나도는 영식이,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에 대한 얘기를 알고 계신 것이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그의 부인 김용주 씨가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별 관측하고 연구한다고 밖에서만 나돌다가 정년을 채우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온 남편, 하루 종일 집에서 책 읽고 수행하고 집필하고 음악 들으면서 혼자 노는 남편에게 15년 세월 동안 한 결 같이 따뜻한 밥 세 끼 꼬박꼬박 지어주며 챙겨주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에게 부처님 법을 전해 준 것도 그의 부인이라 하니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함께 인터뷰를 해야겠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는 모습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가 40여 년 동안 하늘의 별을 관측하면서 한국 관측천문학의 문을 열고 관측천문학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었던 것도, 불교와 천문학을 버무려서 무려 8권의 불교서적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아내의 든든한 내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에서의 묵묵한 보살행이 하늘의 별처럼 찬란해 보였다. 직장생활에 충실한다고 가정은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나의 삶을 반성하는 한편 그 또한 인연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인간과 우주’라는 과목을 강의하면서 불법을 만났습니다. 우주는 전공인 천문학 얘기를 하면 되겠지만, 인간에 대해선 어떻게 강의할까 궁리하다가 집사람이 독실한 불자인지라 집안에 불교관련 교양서적과 선어록(禪語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 저 책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불교서적을 보면서 천문학의 여러 현상들이 불법과 아주 유사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2,500년 전의 부처님이 천문학자보다 더 우주에 대해 확연히 알고 계신 것이 놀라웠다. 학생들에게 천문학적 세계와 불법의 세계가 어떻게 연관되었는지를 강의하다 보니 신바람이 절로 났다.

“불교의 세계관, 곧 우주관은 ‘이것이 있으면(없으면) 곧 저것이 있고(없고), 이것이 생기면(멸하면) 곧 저것이 생긴다(멸한다)’는 연기법으로 집약됩니다. 우주 법계는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주도 똑같습니다. 우주에는 약 천 억 개의 은하가 반경 140억 광년의 범위 내에 분포하고 있는데, 마치 인드라망의 그물코에 달린 보석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멀리 떨어져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만나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지구도 자전, 공전뿐만 아니라 다른 별들과 함께 여러 종류의 운동을 하면서 우주 공간을 돌고 있지요.”

그는 일생 동안 천문학을 통해 연구한 별들의 세계가 불법의 세계와 다르지 않고 불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고, 불교에 점점 더 매료되었다.

“집사람 덕분에 경북 성주 도솔암에서 지해 스님을 만나 뵈었는데, 많은 것이 통했습니다.”

지해 스님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교리로 접근했다가 수행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고, 출가를 꿈꾸게 된 것이다. 매일 밤 108배를 하고, 경전을 읽으면서 탈속의 도를 익혔다. 일주일씩 절에 가서 살기도 하고, 안거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년을 5년 8개월이나 남긴 상황에서 서울대 교수직을 사직했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한 점도 있었지만 실상은 출가하기 위해서였다. 정년인 65세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리에 더욱 연연하고 전전긍긍하면서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모든 욕심을 버리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평생 연기적으로 살아가는 별을 연구한데다 초발심시변성정각이라는 말처럼, 첫마음을 냈을 때 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그 경지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는 왜 자유인으로 천문학과 불교에 천착한 학자로 남게 되었을까?

“불법은 우주철학이요, 우주종교입니다. 그런데 요즘 스님들을 보면 불교의 근본 진리에서 벗어난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기복적인 불교는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와 같은 것입니다. 기독교는 절대신이라도 있지, 불교는 절대신이 없는 상태에서 수많은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인격화시켜서 마치 그분들을 믿음으로써 내세에 복을 받는다는 기복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불교를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치신 연기법을 가르쳐주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나 남자들도 불교를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스님들이 공부를 안 합니다. 대상은 다 다른데 항상 똑같은 법문을 하니 한 번 두 번 가다가 실망해서 절에 안 나가게 되는 겁니다.”

역시나, 맑고 고결한 성품의 그가 마음의 출가에 그친 까닭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세속화된 불교에 있다. 자본주의의 사회에 물들어 정법(正法)보다는 갖가지 방편이 득세하고 있는 불교 현실을 목격하고 어찌 실망하지 않았겠는가. 사실 그와 같은 말을 하는 이들이 많다. 불교의 가르침은 정말 좋은데, 불교 교단에 속하기는 싫단다. 조용하다가도 가끔 대중매체를 통해 잡음이 들리는 것도 불교는 좋아하지만 불교신자는 아니고 싶은 사람들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다. 예로부터 승중법중(僧重法重)이요, 승경법경(僧輕法輕)이라 하였다. 법이 아무리 좋아도 그 법을 펼치는 승(僧)이 존중받을 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법조차도 홀대받게 되니 오늘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아뢰야식 속에 저장된 것이 받아들이기 쉬워,
마음을 열고 다양한 학문을 섭렵해야...

“스님들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아뢰야식 속에 저장된 것이 잘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다양한 것을 심어야 다양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교화할 수 있는데, 고답적인 것 외에는 심은 것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모든 분들이 대들보만 되려는 것 같습니다. 서까래도 있어야 하고 문살도 있어야 집이 됩니다. 스님들이 하심하고 다양한 분야를 연구해서 교화할 수 있도록 자질을 높여야 합니다.”

그가 스님들에 대해 지적하는데 왜 내가 이다지도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그 말씀이 내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불교에 입문하고부터 불교 책만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에 즐겨 읽던 책들은 가볍게 여기고 불교 책만을 귀히 여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불교 전문 잡지·출판사의 기자와 편집자를 겸직하면서 문서포교사라는 미명하에 아뢰야식 속에 불교만 저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서포교사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더욱 열심히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여 소양을 쌓아야 했는데, 불법이 온 우주를 다 끌어안고 있기에 불법의 대해에서 노는 것 자체가 즐거워 다른 것에는 눈도 못 돌리고 마음도 열지 않았기에 그의 스님들에 대한 충고가 가슴 깊이 새겨졌던 것이다.

“부처님은 별을 보고 연기론을 깨치셨고, 우주의 법칙을 꿰뚫어 보셨는데,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정신문명에 빠져 하늘을 보지 않았습니다. 객체를 등한시하여 자연과 멀어졌고 심지어 몸까지 등한시해서 수행하다 병을 얻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불교를 전해야 합니다. 또한 불교는 첨단과학시대에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과학과 괴리되지 않는 종교입니다. 화엄경과 법화경을 보면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말씀이 많습니다. 스님들이 자연과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니까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한계 안에서 얘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과학적인 근거를 동원해서 법문을 해 주고 경전 해설도 하면 현대인들의 가슴에 새록새록 불교가 들어올 텐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가 천문학과 불교에 관련된 책을 지속적으로 출판하게 된 것도 그 안타까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천주교 신부들은 본분을 지키면서 역량에 맞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현재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한솥밥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폐쇄적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여섯 가지 상(相)을 갖추고 있고, 각각의 개별적 존재로 구성된 전체가 시간적·공간적으로 연기(緣起)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는 화엄종의 육상원융(六相圓融) 도리처럼 각자 개성에 맞는 대로 일을 했을 때 화엄법계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사실 종교 교리도 중요하지만 그 종교를 갖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가 종교의 존립 기반이 된다는 것,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과연 부처님이 깨달으신 연기법을 알고 연기법대로 살기에는 인간의 욕망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욕망에 부응하는 방편을 쓸 수밖에 없을까? 그 방편으로 인해 힌두교에 습합된 인도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리라.

연기론적 관점서 《직지(直指)》 해설,
선불교의 방향성을 제시하다

“수행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선방에 들어갔는데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선방의 권위적인 풍토에 놀랐다. 가장 높은 스님이 제대로 지도해 주지도 않은 채 억압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에도 놀랐다. 자유롭고 혁신적인,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여 심지어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라는 선불교의 풍토와는 십만팔천리 떨어져 있었다. 몇날 며칠 인격적·상식적으로 존경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걸망을 챙겨 돌아왔다. 그리고 스스로를 단련하면서 공부하고 수행하였다.

“《직지》는 과거칠불과 인도의 28조사, 그리고 중국의 110선사들의 귀중한 가르침을 모은 것으로 선불교의 중요한 교과서입니다. 내용보다는 우리나라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임을 입증한 귀중한 문헌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까지《직지》는 주로 ‘직지인심 견성성불(見性成佛 直指人心)’이란 선불교의 입장에서 살펴보았는데 저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론적인 입장에서 해설하였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깨달음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실제적인 연기법으로 결코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초월적이고 신비화된 깨달음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선종의 조사나 선사들이 남긴 선어는 깨달음의 말로써 불가사의한 신비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금단의 과일과 같아 접근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무엇이든지 신비화하고 초월화하는 것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을 절대적 권위로 치장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사상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므로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연기적 불법의 진리는 논리적 설명이 가능해야 하며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지혜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모든 학문은 연기법에 의해 통섭(統攝)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추상적이고 신비로운 것보다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통섭적 사고를 선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어를 연기법에 따라서 논리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선어의 진가를 찾을 수 있고 일반 대중이 선어에 더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삶의 지혜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가 해설한 ‘직지’는 북극성처럼 선불교를 지향하고 있는 한국 최고의 종단인 조계종에도 현대인들에게도 바른 길을 가리키고 있다.

“연기법을 알면 자타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만물이 높고 낮음이 없는 평등한 존재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보편적 존재라는 것을, 이 공간에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됩니다. 대부분 동물을 죽이면 연민의 정을 느끼는데 식물들과 바위, 물, 땅 등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는 무덤덤합니다. 자연을 생명체로 보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불법은 유정무정의 만물에 다 불성(佛性)이 있다고 했습니다. 돌에도 불성이 있고, 별에도 불성이 있습니다. 세상 만물은 우주적 이법에 따라 존재하는 것입니다. 연기법을 알면 자연과 내가 하나임을 알게 되고, 저절로 환경 운동을 하게 됩니다.
하늘의 별들은 연기법을 그대로 따라서 생주이멸합니다. 연기는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차례차례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불교에서 경계하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심은 연기를 벗어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별처럼 무위적 연기로 살아야지 유위적 연기는 이기적이어서 불안정합니다. 병든 지구를 살리고 자연과 공존하면서 궁극적으로 인간도 잘 살기 위해서는 무위적 연기로 살아야 합니다. 작은 일부터 실천하여 몸에 배이고 어느 순간 생각하지 않아도 무위적 연기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의지하고 있으니 무엇이든 함부로 하지 말고 늘 조심하며 사는 연기적 삶이 희망이다. 문명이란 인위적인 포장 속에 가속도가 붙은 욕망의 삶, 신자유주의의 병폐가 점차 드러나고 행복인 줄 알았던 것이 신기루요, 오히려 현대인들을 옥죄고 있는 형국에서 연기적 삶의 중요성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으리라. 연기적 삶을 전도하는 그가 수행하는 천문학자이기에 더욱 믿음직스럽고 더욱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희망이 샘솟는다.

   
민족사 주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법륜>, <현대불교>, <불광> 편집부장, 불교시대사 편집기획위원을 역임했다. 엮은 책으로 『행복해지는 습관-정무 스님의 세상 사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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