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 도서출판 개마고원
  • 승인 2012.06.26 13:45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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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이.뭣.고) 저자와의 대화

2556번째 맞는 사월초파일은 을씨년스러웠다. 예년 같으면 마땅히 기쁨과 자비의 목소리로 가득찼을 불교계의 잔칫날이건만, 때맞춰 터져나온 도박 파문과 잇따른 폭로전이 불자들은 물론 일반 대중의 마음까지 어지럽힌 탓이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불자인 게 부끄럽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일부분일뿐이다. 이번 기회에 모두 고백하고 새로 태어나자”라는 반성에서 “일부 승려의 사생활문제로 불교계 전체가 매도 당하고 있다”는 자기 변호, “무소유를 말하고 그나마 권력에서 비껴서있다는 불교가 이럴진대 다른 종교는 어떻겠는가”라는 종교 전반을 향한 비판까지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충격과 분노의 감정은 차차 가라 앉겠지만 쇄신과 신뢰회복이라는 과제는 그대로 남는다. 한국 불교는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최근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이하 <이뭣고>)로 불교의 핵심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한국 불교의 문제점을 매섭게 비판한 정치학자 김영명 교수에게 벼랑 끝에 선 한국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개마고원: 안녕하세요, 선생님. 책이 나오고 한 달 만에야 인사를 드리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김영명: 네, 반가워요. 저야 뭐 학기 중이니 강의하고 지내죠. 잘 있습니다. 개마고원 장의덕 사장님은 잘 계신지 모르겠네요. 언제 소주 한잔해야 할 텐데 말이죠.

개마고원: 안부 전해 드리겠습니다.(웃음) 전문가가 아닌 초보 불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또 외부전문가의 눈으로 관찰한 불교 비판서를 쓰셨잖아요. 주변 반응이 좀 어떤지, 혹시 항의전화(?) 같은 걸 받진 않으셨는지? 출판사 쪽으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해준 책이다. 교계의 항의가 있더라도 기죽지 마시라”는 응원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편집부 선배 말로는 자기도 이런 전화는 처음 받아 본다고 하더라구요.

김영명: 그래요? 저한텐 항의 전화 같은 건 없었습니다. 좀 왔으면 좋겠는데.(웃음) 개인적인 반응은 아직 못 받아봤고 대신 인터넷 서점에 서평들은 좀 났더군요. 대체로 시원하다는 반응이에요.

개마고원: <이뭣고>는 기존불교서와 비교할 때 어떤 강점이 있을까요?

김영명: 글쎄요.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한데. 허허...굳이 꼽아 보자면 기존 책들이 못한 불교비판을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했다는 데 있지 않을까요. 예상한대로 불교 전문 출판사들이 이 원고의 출판을 꺼린 걸 봐서도 그렇고요.

개마고원: 말씀하신 불교 출판사들까지 포함해서, 사실 다른 종교에 비해서 불교 비판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데, 여기에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김영명: 불교 출판사들이야 이런 종류의 책을 내주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자기 이익이 걸린 사안에서 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입니다. 겉으로야 그리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종교인이 일반인보다 더 편협할 수 있어요. 대개 자기 신조가 더 강하거든요. 다만 일반적 경향으로 본다면 타종교와 견줄 때 그나마 불교가 신도와 비신도를 막론하고 개인들에게 구체적인 피해를 덜 주기 때문일 거라고 봐요. 절이 생활공간에 밀착돼 있지 않으니 일상적인 관심에서 떨어져 있기도 하구요.

개마고원: 출간 전에 선생님께서 원고에 붙인 가제는 <스님들은 못 쓰는 불교 이야기>였습니다. 마감 무렵까지 경합을 벌이다 출판사 안인 <이뭣고>로 정해졌는데, 아쉬움은 없으셨나요. 저는 책이 나오자마자 터져 나온 불교계 스캔들을 보면서 그냥 저자 요구대로 갔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말들을 주변에서 꽤 들었습니다.

김영명: 특별히 아꼈다기보다 그냥 괜찮은 제목이라 생각해서 후보로 얘기했던 것이고, 그동안 책을 낼 때마다 출판사 측에서 제안한 제목을 그대로 따랐는데 크게 신통한 결과가 없어서 그랬지요. 이 제목이든 저 제목이든 뭐 큰 차이가 있겠나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안 팔리긴 마찬가진데...(웃음) 어쨌든 고집을 꺾은 덴 ‘집착하지 말라’는 붓다의 가르침도 한몫했지요. 결과물에 대해선 만족합니다. 표지도 아주 예쁘게 나왔어요.

개마고원: 다행입니다.(웃음) 방금 말씀드린 대로 초파일을 코앞에 두고 불교계 추문이 연달아 터져 나왔습니다. 돈, 권력, 계율의 부조리가 동시다발로 쏟아지는 바람에 불교계는 물론 불교 밖 대중들까지 혀를 차는 지경입니다.

김영명: 책에다 ‘중생구제인지 종단 구제인지 모르겠다’고 썼는데 그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더군요. 한국 불교계가 그 정도인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노름하는 것이 일상화된 모양이더군요. 고발한 성호 스님이라는 분도 그다지 떳떳한 입장은 아닌 것 같고요. 현재로선 자정 노력이니 참회니 초심이니 하는 말보다 응급처치가 우선입니다. 일단 시줏돈 다 회계 처리하고 세금을 걷어야 합니다. 종교시설과 종교인 모두에게 세금 물리고 종단과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기관에 감사도 맡겨야 합니다. 일천 배니 일만 배니 또 이런저런 고매한 말들을 할 수야 있겠지만 그런 데 효능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한국불교가 자정능력을 상실한 상태라고 봅니다. 이게 단순히 종단 내부의 윤리문제라면 잘못을 참회하고 책임이 무거운 분들이 물러나는 선에서 자정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사태의 뿌리는 결국 돈문제와 권력다툼입니다. 중생의 보시가 그대로 주지스님 쌈짓돈이 되고 감투 놓고 파벌 투쟁이나 벌어지는 절과 종단이 어떻게 법당입니까. 복마전이죠. 이미 기득권을 틀어쥔 종단권력에만 맡겨서는 해결 못한다고 봅니다. 법정 스님이 살아 돌아오셔도 힘들어요. (이 대담 이후인 지난 6월 7일 대한불교 조계종총무원은 회계관리와 감사 등 사찰 운영 투명화와 종단선거제도 개선을 골자로 하는 쇄신안을 발표했다)

개마고원: ‘과세’와 ‘감사’라면 결국 외과 처방인데, 그렇다면 불교계와 불자들이 그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김영명: 뻔한 말들만 해 보았자 소용 없습니다. “불교 정신으로 되돌아가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새기자” “제도 불교계부터 마음을 비우자” “다시 시작하자” 등등. 우선 문화와 행동을 바꿔야죠. 불교의 신비화·신성화, 승려들이 우상처럼 떠받들여지는 이 문화를 바꿔야 해요. 부처님은 사람의 자식이었습니다. 다만 깨달음을 얻은 사람일 뿐이죠. 그런데 부처의 제자를 자처하는 한국 불교의 승려들은 스스로 신성권력을 누리려고 합니다. 일반 중생이 주지스님 얼굴 한번 보는데 큰절을 몇 번이나 해야 합니까. 말 한마디 나누는데 시주를 얼마나 해야 합니까. 신비화와 기복신앙은 동전의 양면이에요. 불교가 신성화되니 대중들은 불교가 어렵게 느껴지고 그러다보니 그저 복 비는 데만 매달리게 되고 종단 권력은 더욱 신비화되죠. 악순환입니다. 절이 점집과 같은 취급을 받고, 무당이 보살로 불리는 데는 재가불자들의 욕망도 작용했겠지만 그 꼴이 되도록 방치한 건 승려들입니다. 자기들에게도 나쁠 것 없으니, 직무유기한 셈이죠.

개마고원: 지나친 신비화, 신성화가 문제라면 결국 해결책은 결국 불교가 대중 종교로 거듭나는 데 있겠군요.

김영명: 그렇죠. 나눠보자면 교리 대중화와 중생구제 실천이 되겠죠. 교리문제부터 볼까요? 저는 한국 불교가 자기 교리를 어떻게 하면 어렵게, 알쏭달쏭하게 설명할까 연구하는 집단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해본 적 있습니다. 물론 정말 그렇지는 않겠지요. 허나 무상이니 무아니 중도니 하는 기초 원리들을 저처럼 나름대로 전문적인지적 훈련을 거친 사람조차 한글로 된 입문서를 보고서는 도무지 이해를 못해서 외국어로 쓰인 책을 찾아봐야 한다면, 오늘의 한국 불교는 1600년 제 역사 앞에 부끄러워해야 마땅합니다. 알고 보면 불교만큼 이로정연한 교리를 가진 종교도 없는데 말이죠. 체계적이고 간단명료한, 그래서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준적 교리를 만들어야 돼요. 그리고 어려운 한문 좀 그만 씁시다. 한문으로 도배된 경전 들어 보이면 오묘하고 심오한 분위기야 나겠죠. 허나 그뿐입니다. 한문에 갇혀서 그거 번역하고 해석하는 데 세월 다 갑니다. 해석도 정확치 못한 경우가 많죠. 번역된 단어 역시 입말이나 일상용어가 아니니 머리 아프긴 매한가지고요. 당장에 모든 걸 우리말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하나씩이라도 교체해나가면서 한문의 멍에에서 놓여나는 게 불교를 중생의 종교로 되돌려놓는 길이라고 봅니다.

개마고원: 한문 남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셨는데요. 출판물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영어/한자 병기를 이른바 ‘김영명표 저작’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책 역시 그렇구요. 제 입장에선 작업을 하면서 난해한 범어류가 한글로만 표기돼있어 독자들이 얼른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자로서, 또 한글운동가 입장에서 여기에 대해 변호를 하신다면요?

김영명: 저는 그것이 착각이라고 봅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병기된 책들만 보아왔기 때문이에요. 사실 모든 책들이 그런 ‘잘못된’ 관행을 보이지요. ‘둑카’를 ‘dukka'라고 쓰면 왜 이해가 더 쉽지요? 더구나 dukka는 원래 산스크리트어 표기도 아니고 로마자일 뿐입니다. 󰡔화엄경󰡕 옆에 華嚴經을 써주면 무엇을 더 이해하게 되나요?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한자를 읽지도 못합니다. 과거에는 한자가 없어서 읽기 어렵다고 투덜대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선 로마자 병기가 없어 불편하다는 말도 한다던데, 직접 듣기는 또 처음이군요. 이전의 한자 자리를 이제 로마자가 차지하게 된 잘못된 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봐요. 한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막연하고 잘못된 인식 때문이죠. 100% 습관일 뿐이고, 지금은 한글 전용이 더 읽기 쉬운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오히려 한자나 로마자를 병기하면 성가시고 거추장스러워서 독서의 속도를 떨어뜨려요.

또, 그런 문제를 떠나, 왜 우리 글자를 두고 영문이나 한자를 병기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한자 병기는 과거의 유산이라고 하더라도, 영문 병기는 새로 생긴 잘못된 습관입니다. 동양 철학을 다룬 영어책에서 한자나 한글을 병기하지 않아 이해가 어렵다는 말은 절대 안 나옵니다.

개마고원: 알겠습니다.(웃음) 중생구제 이야기로 넘어가다 말았는데요.

김영명: 중생구제 실천도 말만 묵직하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절이나 기도처, 불교 관련 기관이 가까운 자기 지역에서부터 봉사를 시작하는 겁니다. 여유가 된다면 복지 사업을 벌여도 좋고 여의치 않더라도 조그맣게 사회봉사나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해도 좋겠지요. 절에 불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이를 맡아줄 스님 역시 꼭 필요합니다. 한국 불교가 대승불교를 자처하는데 진짜배기 대승이라면 선방에만 들어앉아 자기 깨달음에만 정진할 게 아니라, 자기가 깨달은 그 만큼을 이웃과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상구보리 하화중생 아닙니까. “야단법석”인가요? 최근에 재가불자들 스스로 불교계 쇄신을 논의하는 모임이 준비되는 것 같던데 거기에서도 이런 의견들이 나오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도법이나 혜민 스님처럼 저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제도권 스님들도 있지만 그들은 소수죠. 결국 한국불교를 떠받치는 밑돌은 재가불자들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쇄신하고 종단에다 요구하고 줄기차게 압박한다면 조심스럽지만 희망이 있다고 봐요.

개마고원: 책에서 승려들의 정치적 언행을 비판하고 있는데 정치 참여 역시 큰 틀에서 자비행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닐까요? 예를 들어 한진중공업 문제나 제주해군기지 건설 논란에 불교계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에 대해서도 같은 시각을 가지고 계신 것인지? 현실참여와 종교의 월권행위, 즉 부당한 현실간섭은 사실 인물과 언행이 이리저리 얽혀 딱 잘라 구별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 나름의 경계가 있으신지요?

김영명: 책에선 승려들의 정치적 언행을 비판한 것이라기보다는 ‘가볍고 이기적인’ 정치 언행을 비판한 것입니다. 더 큰 틀에서 더 큰 사회 정의를 위한 언행을 보이라는 주문이었죠. 그리고 자기이익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기 희생적인 행동을 하라는 말이었어요. 최근 승려들의 정치 언행에서는 그런 것을 찾을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개개 사안들에 대해 불교계 전체가 반응을 보일 수는 없겠지요. 개별 사안들에 대해서는 스님이든 목사든 개인 자격이나 자기가 소속된 개별 단체 차원으로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개마고원: 아무래도 최근 이슈를 따라가다보니 불교를 성토하는 자리처럼 돼버렸는데요.(웃음) 많은 결점과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를 살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음, 간단하게 다른 종교에는 없는 불교만의 매력을 든다면요?

김영명: ‘평화의 종교’라는 점입니다. 불교의 이름으로 일어난 전쟁이 없었고, 불교 포교를 위한 침략도 없었습니다. 어때요? 편집자님 생각은. 이런 종교 본 적 있나요?

개마고원: 말씀 듣고 보니 그렇군요. 이런, 갑자기 불교가 확 끌리는데요.(웃음) 불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겪은 삶이나 태도의 변화가 있으신지, 혹은 저자의 공부 방향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면 무엇인지요?

김영명: 이전보다 좀 더 여유 있게 생각하고 살게 되었다고 할까요? 불교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개마고원: <이뭣고>의 독자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좋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이것만은 좀 알고 가시라! 하는 점이 있다면?

김영명: 두 가지인데요. 먼저, 불교계는 교리 해석을 더 과학적으로 하고, 중생구제에 더 나서시라.
다음, 사람들은 집착을 버리시라.

개마고원: 아까 교리 대중화 문제를 말씀하실 때 떠오른, 제 직업과도 연관된 질문 하나 드립니다. 한국 학계에는 대중교양서 집필을 낮춰보는 경향이랄까, 분위기가 있는 걸로 압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영명: 대중서를 잘 쓰려면 글재주가 있어야하죠. 학자들 가운데 일급 대중서 저자가 적은 건 그 때문입니다. 학자들이 대중서를 수준 낮다고 보는 건 여우가 신포도를 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봐요. 다만 잘 나가는 대중서를 모두 양서라고 여기기엔 무리가 있지요. 한국 학계에서 창의적인 논문은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듯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묵직한 대중서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죠. 같은 대중서라도 깊은 학문적 토대 위에 쓰여진 것과 얄팍한 글재주와 아이디어에만 기댄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는 앞의 것이 드물다고 할 수 있어요. 말했듯이 학자들 중 양질의 대중 교양서 집필 능력을 갖춘 이는 많지 않습니다. 결국 대중저술가들의 몫이 큰데, 글재주에 의존하기보다 좀 더 진지함과 깊이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깊이와 대중성을 같이 갖춘 대중교양서가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여담을 하자면, 신문의 신간 소개를 보면 대부분이 대중교양서인데, 그 중 대부분이 번역서입니다. 아쉽습니다. 국내에서 좋은 대중교양서가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개마고원: 마지막 질문입니다. 일본사회, 영어 사대주의, 한국 불교, 여기에 전공인 정치학 분야까지, 전방위적인 필력을 보여주고 계신데 다음엔 어떤 책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싶으신지?

김영명: “전방위적인 필력에 전방위적인 안 팔림”이죠. 내 책은 왜 이렇게 안 팔릴까요? 하하하. 물을 덜 타고 덜 대중적이라서 그렇다고 생각도 해 보는데, 그리고 이 점에서는 타협을 안 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이 어려운 책이 수십 만 권 씩 팔리는 걸 보면 꼭 들어맞는 얘긴 아닌 것 같고... 아주 대중적이거나 어떤 권위가 있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할 것 같군요. 나는 이도 저도 아니라 그런 모양... 시의를 거스르기를 좋아하는 심성도 걸림돌인 것 같고...

어쨌든 질문에 답하자면, ‘한국인의 특성’에 관한 기존의 책을 다시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요즘 한창 유행하는 다문화 담론에 대한 강한 비판도 실을 계획입니다. 아니면 ‘한국 민족주의 재론과 다문화담론 비판’ 합쳐서 새로운 책으로 낼 수도 있습니다.

또 학술서로서는 기존에 썼던 한국 현대 정치사 책을 고쳐서 󰡔대한민국 정치사󰡕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능력이 닿는 한 한국 정치에 관한 ‘한국적 정치학’을 세워나갈 작정입니다. 별로 인기 없는 일이지만...(웃음)

사실 위의 것들 외에는 내가 앞으로 어떤 책을 쓸지는 나도 모릅니다. 생각이 가는 대로 써지는 대로... 무엇을 하겠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살다보면 뭔가가 나오더군요. 붓다의 말씀대로, “집착하지 말라!”

* 이 원고는 도서출판 개마고원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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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앤버츄 2015-04-09 22:44:09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은 사실 인권평등과 사랑 그리고 지헤였다.
인권평등을 얼마나 중요시 했으면 교단내의 신분차별을 없앴을까? 지금보니까 교단내 신분차별 폐기가 별거아닌거 같짐만 우리나라도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신분차별제도가 있었으니 부리깊은 그 시대에 카스트에 정면도전한 신분제도 타파는 목숨건 시도요 석가모니 부처 아니곤 상상조하 할 수 없는 혁명적 사건이었다고 본다. 석가모니 사후 인도가 강력한 왕권국가로 통일됨에 따라 정치적압박으로 그런걸 포기하고 신분차별 타파의 이론적 배경인 무상 무아 연기같은 사상의 표방이 어려워지자 그 회피구로 공 사상을 도입한거 아닌가 한다.
공사상은 더 나아가 여래장 사상으로까지 변화하는데 이거 자세히 보면 힌두교의 영혼 브라만을 공, 여래장이라고 이름만 바꾼거 같다. 결국 가스트제도를 수용하겠다는 항복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본질을 버린 대승불교, 중국 한국으로 오면서 선가의 무자 화두로 까지 갔는데 평생 신비화된 "무"자 타파라는 걸로 소일하면, 대중과 사회에 관심없어도 되니까 그러는거 아닌가? 본질이 어긋났는데 제대로 될리가 있나? 말로만 불교지 정말 불교 맞아?

통시적시각이 전혀 없는 저자에 2012-06-29 10:54:09
저자와 같이 수박겉핥기로 불교를 이해한 자들이 마구잡이로 떠들어 꼬인 문제를 더 꼬이게 한다는 점. 지금 한국불교은 초기불교~티벳불교 그리고 과학과 불교가 만나 현대적으로 탈바꿈한 불교..이러저러한 불교들이 총 망라 돼 있어서 '단일한 불교'가 아닙니다. 초기불교적 시각으로 선불교를 깐다거나 한 종파의 시각으로 다른 종파는 불교가 아니라거나 할 수 없죠.이건 무지이고 무례에요.2년입문으로 한국불교 통째비판?

적멸 2012-06-28 13:24:19
"깨달은 사람에게는 그만이 갖고 있는 남다른 진리라는 것이 없다고 내가 가르치지 않았느냐.그래서 깨달은 사람에게는 남다른 진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붓다가 수보리에게 하는 이 말을 보고 저자는 아마도 "붓다는 미친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말이 앞뒤가 전혀 맞지 않기 때문. 저자는 불교를 책을 통해서만 접했다. 스스로 수행하지 않아 표피적 이해만 한 상태. 무슨 용기로 책을 냈을까.

무아와 윤회 모순? 헐~

적멸 2012-06-28 13:14:30
저자가 불쌍하고 딱하고,,책은 읽어볼 필요가 없겠다 싶다. 물론 기사는 충실히 읽었다.
"모든 사람은 이미 부처라고 말하며서 부처가 되기 위해 각종 수행을 하는게 저자는 이해될 리가 없을 것이다" 100% 장담하는데 이 저자는 금강경을 이해 못한다. 왜냐하면 불교는 궁극적으로 논리가 아닌 초논리로 도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리적 사고만 할 줄 아는 지식인 전형의, 딱 꽉막혀 옴짝달싹을 못하는 케이스다

풍경소리 2012-06-27 18: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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