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내려 놓게 하소서
나를 내려 놓게 하소서
  • 김자경
  • 승인 2012.04.19 17: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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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자경] 관음성지 참배 서원
건강함이 물씬 느껴졌다. 기대고 싶었다. 올라갈 수만 있다면 손바닥 위에 올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동해바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었다.

넉넉하고 여여해 보였다. 그 품에서라면 달게 한 숨 곤히 잘 것만 같았다. 아무런 꿈 없이 깊고 푸른 잠에 푸욱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으면서 말이다.

낙산사 해수관음보살!
고개를 화악 젖혀야만 겨우 후덕한 상호 뵐 수 있는 거대한 성상이건만…. 이번이 네다섯 번째 쯤 되는 친견이건만…. 그 거대함이 불편했고, 가파른 길 올라와 그저 헐떡대며 잠시잠깐 올려다볼 뿐이었건만….

기실 저 유명한 홍련암에 먼저 들렸다. 당연지사 꾸역꾸역 몰려드는 사람들 틈에서 재주껏 꾸벅꾸벅 9배도 올렸고 암자 밑을 들락날락하는 동해 푸른 바닷결도 두 눈 법당 바닥에 딱 붙이고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 덕분에 마음이 무심해졌던 것일까! 한 배 한 배 몸을 굽히면서 모나고 뭉치고 제멋대로 생겨 먹은 내 마음 한 겹 접고, 기꺼이 굽히고, 조금 더 낮추게 해주십사 기도 올린 덕분이었을까!

선뜻 이런 나 자신이 의아스러웠지만 그 거대한 성상 곁에 오래도록 함께 있고 싶을 만큼 마음이 푸근해짐을 완연히 느꼈다.

일주일 뒤, 이번에 남해 보리암을 향해 달렸다. 뜻 맞는 지인들 덕분에 관음성지 삼사 순례를 실행키로 한 것이다. 보리암 관음보살님은 그간 나완 인연이 조금 멀었던 가보다. 그 유명한 곳을 나는 어인 일이지 초행길로 더듬고 있으니 말이다.

이른 새벽 떠나기도 했지만 사시예불이 막 시작되고 있는 지라 살그머니 법당 진입을 시도코자 했다. 그 때 한 거사님이 조심스레 건너편 누각으로 가는 게 좋겠단다. 그래도 미련이 있어 법당문 열어본 지인이 고개를 젓는다. 발 디딜 틈도 없는가 보다.

괘념치 않고 누각에 들어 꼭꼭 닫힌 법당 문 그 너머에 앉아 계실 관음보살님 향해 마음을 모았다. 일 배, 이 배....... 팔배, 구배. 삼배를 올리고 나니 문득 한 생각이 솟는다.
“나를 내려 놓게 하소서.”

무수히도 얼키고 설킨 인연들에서 나를 내려놓게 도와주소서. 중중무진 인연 지어진 그물코 흔들리든, 날리든, 내팽겨 쳐지든, 제자리 지키든 나를 내려놓게 하소서. 사배, 오배, 이어질수록 그 마음 더욱 오롯해진다. 팔배, 구배로 고두례 올리며 시큰해지던 콧등 어느새 편안한 기색 역력하다.

꾸역꾸역 사람들이 법당에서 나온다. 그 한 옆으로 비켜서며 우리는 들어갔다. 넉넉한 공간에서 다시 한번 구배 올리고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보리암 관세음보살님 상호 친견하고 보니 어여쁘신 문수보살님도 계시다. 얼마나 생기 있고 반듯하시던지 일순 마음이 상쾌해진다. 얼른 손 내밀어 악수 청해보고 싶다. 고운 목소리로 멀리 왔다며 반겨주실 것만 같다.

보리암 탑을 찾아 내려가 등산객들 틈에서 어렵사리 탑돌이를 하고, 퉁퉁 부은 얼굴의 사진사 거사님으로부터 신비로운 탑의 기운에 대해 달게 말씀을 듣는다. 불과 10여 센티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건만 나침반이 서로 다른 방향이 가리키는 이 기운을 대체 뭐라 설명해야 하는 걸까!

아둔한 중생은 그저 신기할 뿐. 탑의 시선에서 활짝 열린 바다를 바라본다. 무한히 펼쳐진 바다, 그 아득함이 한 점 먼지에 불과한 자신을 깨닫게 해준다. 인생도 이와 같은 걸 무엇을 시시비비할 것인지.....

다시 일주일 뒤. 강화 보문사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아주 커다란 트럭이 엄청 큰 콘크리트 구조물을 싣고 동행하는 가하면 승합차에 트럭에, 군용지프차에 다양한 배기량의 승용차들이 줄맞춰 배에 오른다. 승선이 시작되기 무섭게 갈매기들이 저공 비행을 시작하고, 일행 중 한 분이 어느 틈에 새우깡을 사와 허공에 던져준다. 공양 올리는 중이란다. 탕탕 빈 새우깡 봉지 들여다보며 흐뭇해하는 모습이 보기도 좋다.

불사가 마무리되어 한결 깔끔해진 보문사에는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데이트 나온 듯 젊은이들은 보기에 흐뭇하고,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의 즐거움도 전해져 온다. 참배온 이들에게선 나직한 염불소리에 고요함이 느껴져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기에 온 마음을 모으게 된다.

거대한 바위 안에 편안히 앉아 계신 관음보살님, 웃으시는가, 어쩐가 아리송한 표정이다. 이리 보면 흐뭇한 표정이고 저리 보면 과묵한 인상이다. 가슴께에 두 손 합장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구 배를 올려간다. 오늘은 어떤 마음이 솟을 것인지 지켜보면서 말이다. 한 배, 또 한 배, 다시 한 배, 심술궂은 봄바람 불어대서인가. 오만 생각 다 지나가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다 잦아들어 버린다. 마지막 구배 올리면서는 다시 한 번 “나를 내려놓게 하소서” 할 뿐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관음보살님 앞에 앉았다. 호흡을 고르려니 여기저기 염불소리 그윽하게 내 마음으로 스며든다. 먹먹해지는 마음 행여 눈치 챌 새라 추스르려 해보았지만 콧등만 시큰해질 뿐이다. 서러운 것도 없고, 답답한 일도 없건만 감은 두 눈꺼풀 틈으로 슬금슬금 스며 나오는 이 눈물을...... 닦아내지 않고 제 나올 만큼 나오게 그냥 두고만 싶다. 그저 흐르도록 내버려두고만 싶다.

뜻하지 않게 찾아뵌 세 분의 관음보살님!!
덕분에 늦게나마 행복한 한 해 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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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경은 누군가요? 2012-04-19 20:44:26
그이와 동일인인지 동명이인인지는 모르지만
대단한 인물이었지? 맑향 사무국장을 하면서 그
대단한 권세를 누리고 덕현스님을 길상사 떠나게 만든
원인 제공자이기도 한데 요즘 참회는 좀 하는지?
동일인이라면 왜 불교닷컴에 글을 올릴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군요.
가끔 그 김자경 요즘 뭘하고 지내는지 궁금할 때가 있는데...
맑향의 사무국장이 아닌 다른 이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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