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큰어른 백기완의 촌철살인, 그립습니다
이 시대 큰어른 백기완의 촌철살인,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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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1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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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글] 87년 13대 대선 당시 백기완 선거대책본부장 박용일 변호사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서 15일 오후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서 15일 오후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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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님은 90평생 우리나라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온 몸과 마음으로 살다 가신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셨습니다. 지난 한 해 병상에 계신 줄을 알고 있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문병도 못하고 이렇게 보내드려 너무나 죄송스럽습니다.

선생님은 군사독재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과 모진 고문으로 평생 고생하시다가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셈이니 선생님의 파란 만장한 일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섭니다. 더욱이나 평생 꿈꾸던 조국 통일은커녕 진정한 이 사회의 민주화도 보시지 못하고 코로나 사태라는 인류 미증유의 재난 가운데 돌아가셨으니 남은 저희들은 황망할 따름입니다.

제가 이 추모의 글을 쓰게 된 것은 1980-1990년대 민변의 변호사로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고 특히 1987년 13대 대선 시 백기완 선거대책본부장이라는 인연 때문입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곳은 1980년대 중반 대학동창인 장기표의 안내로 통일문제연구소와 민통연(민족통일민주운동연합)에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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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87년 6월민주항쟁 때 국민운동본부에서 자주 뵈었는데 6.29선언 시 국민운동본부 회의에서 선생님과 저는 6.29는 '속이구'라며 전두환의 즉각 퇴진을 요구한 강경파로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제 13대 대선에서 선대본부장이란 과분한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소위 백본(백기완선거대책본부)으로 알려진 선배 그룹은 이애주, 김용태, 최열, 임진택, 김도연, 홍선웅 등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가까운 문화운동가들 이었는데 선거 운동도 새로운 선거문화를 이루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 때 그 장면 
 

 평생을 반독재 민주화, 민중, 통일 운동에 바쳐온 백기완 선생이 15일 타계했다.
▲  평생을 반독재 민주화, 민중, 통일 운동에 바쳐온 백기완 선생이 15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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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독자적인 민중후보 출마는 민중의 시대를 열어 진정한 민주화로 나아가자는 뜻과 함께 양김으로 분열된 야권을 통합하여 노태우의 당선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였습니다.

짧은 선거운동기간 동안 선생님은 수만명이 운집한 대학로 선거유세 등에서 열렬한 지지를 얻었고 한편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3자 회동을 위해 DJ의 동교동을 찾아가는 등 고군분투 하였습니다.

3자 회동의 불발로 야권 단일화는 끝내 이루지 못하고 고심 끝에 비통한 마음으로 후보를 사퇴하였습니다. 선거결과는 양김의 분열로 6월 항쟁을 반쪽짜리로 만들었으며 이어 운동권의 분열과 지역갈등 등 역사적인 퇴행을 맞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당시 급하게 만들어진 선거조직으로 전국적인 선거운동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유료TV방송 시 비용이 모자라 몇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겨우 녹화를 하게 되었는데 선생님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일사천리로 열변을 토하여 타고난 웅변가임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가슴 조리며 기다리던 저는 선생님의 연설을 들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방송 이후 선생님에 대한 지지는 급상승하였습니다.

선거에서 민주화세력의 패배로 선생님은 누구보다 크게 낙망하고 통분해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다정다감하시고 유머도 풍부하시고 타고난 이야기꾼이셨습니다. 선거직후 인사드리러 간 아버님 산소에서 아버님과 어릴 적 월남하면서 "서울 가면 축구선수 시켜주겠다" 등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하셨습니다.

또한 젊은 시절 농민운동 하던 이야기와 명동에서 예술인들과 어울리던 얘기 등 구수한 얘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선거 다음 해인 1988년 제가 민변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1989년 전민련, 1991년 민중당의 각 인권위원장으로 참여한 것은 6월항쟁의 경험과 함께 1987년 대선 참여를 통한 선생님의 민족자주통일과 민주화 및 민중운동에의 헌신이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민중의 정치세력화에 계속 매진하여 1992년에도 대선 후보로 다시 출마하셨고 이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활동에 큰 힘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내부의 분열과 신자유주의의 거센 풍랑과 함께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10년간 민주주의 퇴행을 맞아 선생님은 물론 민주화세력에게 엄청난 좌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2016, 2017년 촛불혁명 때 선생님은 청년 못지않은 열정으로 빠짐없이 집회에 나오셔서 저희들에게 큰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과제이자 선생님의 평생 소원인 자주적 민족통일과 사회적 불평등 해소는커녕 기후재앙 등으로 인류 멸종이라는 엄청난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백기완 선생님은 문익환 목사님, 박형규 목사님, 계훈제 선생님, 이효재 선생님, 박순경 선생님 등과 함께 우리 시대의 어른으로서 큰 역할을 해 오셨는데 선생님 마저 가시니 이제는 의지할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선생님의 독창적인 사고와 유머러스하고 촌철살인의 말씀과 함께 순수한 우리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너무나 서운하고 SNS 등장으로 어른의 권위까지 찾기 어렵게 되었으니 어쩌면 선생님은 이 시대의 마지막 큰 어른이신 것 같습니다.

남은 저희는 이 어려운 시대를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민족의 자주적 통일과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는데 온힘을 쏟고자 합니다.

부디 선생님 편히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2021년 2월 16일 박용일 드림

*이 글은 제휴매체인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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