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불교교류 비망록 이제, 다시 본다] 38. 2010년 남북불교 교류사업
[남북불교교류 비망록 이제, 다시 본다] 38. 2010년 남북불교 교류사업
  •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 승인 2022.11.14 21:03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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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남으로 대화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고난의 행군’이라 불린 북측의 심각한 식량 위기는 2010년에 다시 대두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추정한 2009년 북측의 자체 식량 생산량은 최소소요량 522만 톤에 비해 120만 톤가량이 부족하다고 발표했다. 2010년 5월 21일 조선로동당 차원에서 “정부 차원의 식량 배급이 불가하니 자력갱생할 것”을 선언하는 등 식량 사정은 국제사회가 얼마만큼 지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망됐다.

이런 상황을 걱정하던 남측 종교인들은 장고 끝에 입장을 취했다. 개신교・불교・원불교・카톨릭교・천도교 등 5대 종단 종교인들이 모여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와 평화를 전제한 남북정상회담을 촉구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약칭 종교인모임)으로 결성한 이들은 2010년 6월 17일 오전 10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남북은 북한 주민을 살릴 밥 길을 열어라.”며 MB정권에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고 나선 종교인모임에는 개신교 122명・불교 108명・원불교 81명・천도교 150명・천주교 66명의 종교인들이 서명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날 〈남북정상회담과 대북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며〉를 발표한 성명에는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남북 간에는 물론이고, 남한 사회 안에서도 서로를 불신하고 반목하는 상황이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 이 시점에서 한반도 긴장 해소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는 일입니다. 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받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함과 동시에 국군 포로와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인도적 지원 문제 등을 협의하여 한반도에 평화를 깃들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라며 “우리 종교인들은 민족통일을 위한 화해와 평화의 일꾼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제물들이 되기를 엄숙하게 다짐하며 소원합니다.”고 당시의 남북관계를 대변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에서도 같은 해 11월 15일 성명을 통해 “이명박 정부에 대북 인도적 지원 창구를 열어 달라.”고 촉구했다.

남북 종교인들의 물밑 교류는 2010년 1월 말,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등 조계종단의 방북을 시작으로, 그해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0년을 맞아 안 의사를 추모하는 남북 종교인들이 손잡으며 이어졌다. 중국 다롄의 뤼순감옥에서 26일 오전 열린 남북공동 추모식에 함세웅 신부(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와 장재언 북측 조선종교인협회장 등의 참가로 이뤄졌다. 우여곡절 끝에 처음으로 남북이 함께 마련한 추모행사에서 안 의사 흉상을 앞에 두고 뜨거운 악수를 했다. 이들은 뤼순감옥에 모인 남북의 후손・종교인들과 함께 안 의사 뜻 이어받아 민족 화합과 통일을 이루자고 다짐했다.

그해 동안 남북불교 교류행사에서도 수해지원 물품이란 명칭이 자주 사용됐다. 각계각층이 북녘동포 돕기에 동참하면서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좁은 틈을 열었다. 금강산에 오색단풍이 물들던 시절, 다시 만나 얼굴 보며 이야기하던 그때 그 시절로 다시 가본다.

외금강산 동석동계곡 가을. 사진=현대아산 홈페이지.





금강산 신계사 복원3돌 남북불교도 합동법회(2010.10.13.). 사진=민추본 홈페이지.



금강산과 개성에서의 만남

자유로이 오갔던 금강산은 분단 후, 10년간 열렸다가 2008년 7월 12일부터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남측의 발길이 뚝 끊겼다. 특히 2010년 2월 5일 조계종 총무원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그해 1월 말,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평양방문 때 조불련과 협의한 5천 명 규모의 남측 순례단을 구성해 “올해, 금강산 신계사를 순례하겠다.”라는 뜻을 밝혔으나 MB정권의 불허 조치로 무산됐다.

그러나 풍악을 이룬 금강산 신계사에서 같은 해 10월 13일 열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여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남북 합동법회를 가졌다. 그때 천하절승 금강산의 단풍빛은 맑은 빛을 더했고, 금강산 붉은 승려들과의 대화엔 단풍꽃이 피었다.

이날 금강산 신계사 합동법회는 2010년 3월 30일 개성공단 내 남북경협 사무소에서 열린 남북 불교회의로 사전에 조율돼 열렸다. 그해 초, 조불련 중앙위원회 포교부장에 선임된 차금철 부장 등 3명과 진효 민추본 사무처장 등 6명이 참석한 개성 회동에서는 6월 8일 민추본 창립 10주년 기념법회에 조불련 대표단 초청 및 남북불교도 합동 대토론회 제안을 비롯한 신계사 성지순례 재개 노력과 부처님오신날 공동법회 개최 등 현안을 다뤘다. 차금철 조불련 포교부장은 이날 해당 직책에 임명된 뒤 처음으로 남북회의를 주재했다.

‘금강산 신계사 복원3돐 조국통일기원 북남불교도 합동법회’는 2010년 10월 13일 오후 2시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과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위원장 심상진)가 주최하고,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명진)의 주관으로 개최됐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에 이어 참가자들이 함께 헌향했다. 이어 혜경 조계종 사회부장과 차금철 조불련 포교부장의 인사말과 남북공동 발원문을 낭독한 뒤, 사홍서원을 끝으로 마무리했다.

혜경 사회부장의 인사말에 이어 북측의 차금철 포교부장은 “신계사 복원의 날 복원에 참가한 모두는 북과 남이 따로 없었으며, 함께 의논도 하고 함께 지혜와 힘을 모으며, 우리 민족끼리 하나가 된 참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이곳 신계사가 민족통일의 참 다운 도량으로 다시 될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첫 연설을 했다. 진효 민추본 사무처장과 진각 신계사 관리인(주지)이 함께 낭독한 발원문에서 “우리 겨레는 이 땅에 통일도 함께 안아오고, 통일된 조국에서 번영도 함께 누려가야 할 형제입니다. 우리 남과 북의 불교도들은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이 아무리 커도 언제나 불심한 마음으로 통일의 길을 따라 변함없이 용맹정진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이같이 동쪽 금강산 루트가 개방된 다음, 서쪽 루트는 남측 천태종단에 의해 다시 왕래 길이 열렸다. 북측 조불련과 남측 천태종단은 2010년 11월 10일 개성 오관산 영통사에서 ‘대각국사 의천스님 열반 909주기 합동 다례재’를 봉행했다. 2004년 영통사에서 ‘대각국사 열반 추모 합동 다례재’를 처음 봉행한 후 세 번째로, 영통사 복원 3돐 기념 남북 합동법회는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했다.

이날 합동 다례재에는 무원 천태종 총무부장을 비롯한 남측 7명과 조불련 차금철 포교부장・송춘일 책임부원과 영통사 주지 혜명・부전 정각대사 등 북측에서 5명이 참석했다. 무원 총무부장의 인사말에 이어 차금철 포교부장은 “다례재 봉행에는 통일애국의 실천행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남북불교도들의 한결같은 통일 염원과 의지가 담긴 만큼 남북불교도들이 불심 화합해 경색 국면의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자.”고 연설했다. 경천 천태종 사회부장과 혜명 영통사 주지가 함께 낭독한 공동발원문에는 “7천만 민족 모두가 다 함께 자주의 존엄을 떨칠 수 있도록 오늘 법회가 내 나라 통일을 위해, 내 나라 불국정토를 위해, 남과 북의 사부대중들이 새로운 통일시대로 나아가는 어엿한 통일보살로 거듭나는 소중한 법회가 되도록 무량한 가호를 내려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에 앞서 천태종단은 2010년 4월 21일 개성에서 가진 조불련과의 회동에서 영통사 합동 다례재를 비롯한 별도의 대중법회 개최에 대해 합의했다. 즉, 그해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 5월 10일~15일 사이 ‘조국통일기원 부처님오신날 봉축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영통사에서 개최하기로 했었다. 이때 양측의 세부적인 실무준비가 진척되는 가운데, 남측 MB정권의 불허 조치로 말미암아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때 남측 불교계의 인도적 지원이 줄지었다. 민추본과 조불련은 2010년 10월 13일 금강산 신계사 합동법회에 앞서서 그날 오전, 금강산샘물공장 마당에서 북녘 수해지원 물품 인도인수식을 가졌다. 그해 9월 18일 1차 수해 구호물품 지원에 이어 2차로 통일쌀 30톤을 조불련에 전달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10월 27일 서울 조계사에서 북한 수해피해 복구 물품 상차식을 통해 햅쌀 30톤을 금강산 육로로 전달했다. 천태종단에서도 개성 봉동역을 경유해 조불련에 9월 13일 1차 수해 지원에 이어서 11월 18일 2차로 햅쌀 10톤을 전달했다.

남측의 인도적 지원과 합동법회 개최로 인한 남북불교 교류의 해빙 분위기는 그해 봄부터 시작됐다. 그해 3월 30일 중앙신도회와 문화재제자리찾기는 국외 반출문화재 환수사업을, 3월 31일 평불협은 금강국수공장의 밀가루・어린이용 식품・사찰 수리용 페인트 등 건축자재 지원사업을 조불련과 개성공단 남북경협 사무소에서 회의를 가졌다. 또 5월 18일 문화재제자리찾기와 조계종 중앙신도회 문화재환수위원회는 ‘해외 약탈문화재 환수운동과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의 입장’ 성명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상시국회의는 5월 26일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5월 28일 조불련은 민추본과 천태종 등 종교・사회단체와 제정당에 “천안함 사태의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는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 5월 31일 조계종 민추본은 “대결과 전쟁을 반대하고, 화해와 평화를 발원한다.”는 제하의 성명을 발표하고, 6월 15일 조불련은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을 맞아 민추본 등 남측 불교계에 서신을 보냈다. 또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는 평양에서 열기로 한 10주년 합동기념 행사가 MB정권의 불허로 무산된 후, 시민사회 및 종교계와 함께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에서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 기념 민족대회’를 단독으로 개최했다. 8월 13일 평불협은 조불련과 동시법회 형식으로 행사를 열고, “일본은 대조선 재침야망을 즉시 포기하라.”라는 제호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민추본은 8월 15일 서울 봉은사에서 조국통일기원 8.15 남북불교도 동시법회를 개최하고 공동발원문을 낭독했다.

한편, 황해북도 인민위원회는 독일대사관의 지원으로 2009년 6월부터 1년간 황북 연탄군 연탄읍 자비산 남쪽의 심원사에 대해 대규모 보수작업을 완료했다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2010년 7월 2일에 보도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는 같은 해 9월 15일 중국 베이징 킹핀스키호텔에서 북측 조선종교인협회(회장 장재언)와 조선적십자사회 중앙위원회 임원 4명과 회동하고, 종교교류에 관한 사항과 2011년 중국 상하이에서 남북여성종교인모임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북녘 수해 지원물자 인도인수식(2010.10.13. 금강산생물공장 앞마당). 사진=민추본 홈페이지.





WFB 제25차 총회 개막식(2010.11.14. 스리랑카 콜롬보 시나몬호텔). 사진=밀교신문( 2010.12.1.)





WFB 세계불교비지니스포럼(2010.11.14. 스리랑카 콜롬보 시나몬호텔, 우측 리영호 조불련 책임부원, 네 번째 심상진 조불련 위원장). 사진=밀교신문(2010.12.1.)



조불련, 첫 실론에 가다

심상진 제5대 조불련 위원장은 2010년 11월 13일~18일까지 스리랑카 콜롬보 시나몬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세계대회에 처음 참가했다. 평양에서 중국 베이징-상하이까지 열차 이동과 인도와 스리랑카 콜롬보까지 항공편을 통한 왕복 보름간의 참가 여정은 그 자체가 고행의 항로였다.

조불련 심상진 위원장과 리영호 책임부원 등 3명은 그해 11월 WFB 창립 60주년 기념식 및 제25차 스리랑카 총회에 참가해서 혜정 진각종 통리원장과 회성 WFB 한국본부 부회장・수각 WFB 세계본부 재정분과위원장 등 진각종 임원, 진월 조계종 승려・손안식 조계종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2022.9.13. 타계)・엄상호 불교인재개발원장, 중국종교계평화위원회 비서장 쉐청(學誠) 등 중국불교협회 소속 승려들, 일본・태국 등 각국의 불교 인사들과 교류했다.

기원전 80년에 불교경전의 편찬이 처음 시작된 스리랑카 즉,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의 실론(Ceylon, 1972년 공화국 선포와 함께 스리랑카로 국호 개정)에서 개최된 WFB 창립 60돌 기념식에는 나힌다 라자팍세 스리랑카 대통령이 참석해 축하했다. 중국대표단은 티베트 망명정부 대표단의 WFB 총회 참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외교적 마찰이 발생한 가운데, 제25차 총회와 개막식 그리고 상임분과위원 회의와 제1차 세계불교비지니스 포럼이 정상적으로 개최되고, 그해 11월 17일 스리랑카 캔디시 불치사에서 세계평화기원법회를 끝으로 공식 일정이 마무리됐다.

국제 불교단체인 WFB는 1950년 5월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테라바다(상좌부)・동아시아의 마하야나(대승부)・바즈라야나(티베트 계통)의 3대 불교분파에 속하는 27개국 대표들이 참석해 창설했다. 오늘날 미국・캐나다・인도・호주・아프리카・유럽 등 40개국 170여 개의 WFB 지역본부가 설립돼 있다. 남측은 1956년 11월 네팔 카트만두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대회에 동산・금오・청담대사 등이 참가해 가입하고, 1963년 국내 지부위원회가 결성됐다. 북측 조불련은 1986년 11월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WFB 제15차 총회에서 러시아와 몽골의 지지를 받아 지역본부로 정식 가입했다. 그때 북측 가입에 대해 한국대표단은 판단 유보의 뜻을 취했다.

그 당시에도 로마 교황의 방북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WFB 측에서 2010년 11월 스리랑카 총회에 참가한 북측 조불련에게 평양방문을 공식 제안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으로, 지금까지도 제의한 것이 없다. 그때 혜정 진각종 통리원장은 비공식적으로 2차 평양행을 제안하며, 북녘에 붓다의 가르침이 다다를 수 있기를 기원했다.

# 다음 편은 ‘2011년 대장경 천년 기념사업’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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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금강산 동석동계곡 가을. 사진=현대아산 홈페이지.
금강산 신계사 복원3돌 남북불교도 합동법회(2010.10.13.). 사진=민추본 홈페이지.
금강산 신계사 복원3돌 남북불교도 합동법회(2010.10.13.). 사진=민추본 홈페이지.

금강산과 개성에서의 만남

자유로이 오갔던 금강산은 분단 후, 10년간 열렸다가 2008년 7월 12일부터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남측의 발길이 뚝 끊겼다. 특히 2010년 2월 5일 조계종 총무원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그해 1월 말,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평양방문 때 조불련과 협의한 5천 명 규모의 남측 순례단을 구성해 “올해, 금강산 신계사를 순례하겠다.”라는 뜻을 밝혔으나 MB정권의 불허 조치로 무산됐다.

그러나 풍악을 이룬 금강산 신계사에서 같은 해 10월 13일 열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여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남북 합동법회를 가졌다. 그때 천하절승 금강산의 단풍빛은 맑은 빛을 더했고, 금강산 붉은 승려들과의 대화엔 단풍꽃이 피었다.

이날 금강산 신계사 합동법회는 2010년 3월 30일 개성공단 내 남북경협 사무소에서 열린 남북 불교회의로 사전에 조율돼 열렸다. 그해 초, 조불련 중앙위원회 포교부장에 선임된 차금철 부장 등 3명과 진효 민추본 사무처장 등 6명이 참석한 개성 회동에서는 6월 8일 민추본 창립 10주년 기념법회에 조불련 대표단 초청 및 남북불교도 합동 대토론회 제안을 비롯한 신계사 성지순례 재개 노력과 부처님오신날 공동법회 개최 등 현안을 다뤘다. 차금철 조불련 포교부장은 이날 해당 직책에 임명된 뒤 처음으로 남북회의를 주재했다.

‘금강산 신계사 복원3돐 조국통일기원 북남불교도 합동법회’는 2010년 10월 13일 오후 2시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과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위원장 심상진)가 주최하고,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명진)의 주관으로 개최됐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에 이어 참가자들이 함께 헌향했다. 이어 혜경 조계종 사회부장과 차금철 조불련 포교부장의 인사말과 남북공동 발원문을 낭독한 뒤, 사홍서원을 끝으로 마무리했다.

혜경 사회부장의 인사말에 이어 북측의 차금철 포교부장은 “신계사 복원의 날 복원에 참가한 모두는 북과 남이 따로 없었으며, 함께 의논도 하고 함께 지혜와 힘을 모으며, 우리 민족끼리 하나가 된 참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이곳 신계사가 민족통일의 참 다운 도량으로 다시 될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첫 연설을 했다. 진효 민추본 사무처장과 진각 신계사 관리인(주지)이 함께 낭독한 발원문에서 “우리 겨레는 이 땅에 통일도 함께 안아오고, 통일된 조국에서 번영도 함께 누려가야 할 형제입니다. 우리 남과 북의 불교도들은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이 아무리 커도 언제나 불심한 마음으로 통일의 길을 따라 변함없이 용맹정진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이같이 동쪽 금강산 루트가 개방된 다음, 서쪽 루트는 남측 천태종단에 의해 다시 왕래 길이 열렸다. 북측 조불련과 남측 천태종단은 2010년 11월 10일 개성 오관산 영통사에서 ‘대각국사 의천스님 열반 909주기 합동 다례재’를 봉행했다. 2004년 영통사에서 ‘대각국사 열반 추모 합동 다례재’를 처음 봉행한 후 세 번째로, 영통사 복원 3돐 기념 남북 합동법회는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했다.

이날 합동 다례재에는 무원 천태종 총무부장을 비롯한 남측 7명과 조불련 차금철 포교부장・송춘일 책임부원과 영통사 주지 혜명・부전 정각대사 등 북측에서 5명이 참석했다. 무원 총무부장의 인사말에 이어 차금철 포교부장은 “다례재 봉행에는 통일애국의 실천행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남북불교도들의 한결같은 통일 염원과 의지가 담긴 만큼 남북불교도들이 불심 화합해 경색 국면의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자.”고 연설했다. 경천 천태종 사회부장과 혜명 영통사 주지가 함께 낭독한 공동발원문에는 “7천만 민족 모두가 다 함께 자주의 존엄을 떨칠 수 있도록 오늘 법회가 내 나라 통일을 위해, 내 나라 불국정토를 위해, 남과 북의 사부대중들이 새로운 통일시대로 나아가는 어엿한 통일보살로 거듭나는 소중한 법회가 되도록 무량한 가호를 내려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에 앞서 천태종단은 2010년 4월 21일 개성에서 가진 조불련과의 회동에서 영통사 합동 다례재를 비롯한 별도의 대중법회 개최에 대해 합의했다. 즉, 그해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 5월 10일~15일 사이 ‘조국통일기원 부처님오신날 봉축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영통사에서 개최하기로 했었다. 이때 양측의 세부적인 실무준비가 진척되는 가운데, 남측 MB정권의 불허 조치로 말미암아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때 남측 불교계의 인도적 지원이 줄지었다. 민추본과 조불련은 2010년 10월 13일 금강산 신계사 합동법회에 앞서서 그날 오전, 금강산샘물공장 마당에서 북녘 수해지원 물품 인도인수식을 가졌다. 그해 9월 18일 1차 수해 구호물품 지원에 이어 2차로 통일쌀 30톤을 조불련에 전달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10월 27일 서울 조계사에서 북한 수해피해 복구 물품 상차식을 통해 햅쌀 30톤을 금강산 육로로 전달했다. 천태종단에서도 개성 봉동역을 경유해 조불련에 9월 13일 1차 수해 지원에 이어서 11월 18일 2차로 햅쌀 10톤을 전달했다.

남측의 인도적 지원과 합동법회 개최로 인한 남북불교 교류의 해빙 분위기는 그해 봄부터 시작됐다. 그해 3월 30일 중앙신도회와 문화재제자리찾기는 국외 반출문화재 환수사업을, 3월 31일 평불협은 금강국수공장의 밀가루・어린이용 식품・사찰 수리용 페인트 등 건축자재 지원사업을 조불련과 개성공단 남북경협 사무소에서 회의를 가졌다. 또 5월 18일 문화재제자리찾기와 조계종 중앙신도회 문화재환수위원회는 ‘해외 약탈문화재 환수운동과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의 입장’ 성명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상시국회의는 5월 26일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5월 28일 조불련은 민추본과 천태종 등 종교・사회단체와 제정당에 “천안함 사태의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는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 5월 31일 조계종 민추본은 “대결과 전쟁을 반대하고, 화해와 평화를 발원한다.”는 제하의 성명을 발표하고, 6월 15일 조불련은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을 맞아 민추본 등 남측 불교계에 서신을 보냈다. 또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는 평양에서 열기로 한 10주년 합동기념 행사가 MB정권의 불허로 무산된 후, 시민사회 및 종교계와 함께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에서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 기념 민족대회’를 단독으로 개최했다. 8월 13일 평불협은 조불련과 동시법회 형식으로 행사를 열고, “일본은 대조선 재침야망을 즉시 포기하라.”라는 제호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민추본은 8월 15일 서울 봉은사에서 조국통일기원 8.15 남북불교도 동시법회를 개최하고 공동발원문을 낭독했다.

한편, 황해북도 인민위원회는 독일대사관의 지원으로 2009년 6월부터 1년간 황북 연탄군 연탄읍 자비산 남쪽의 심원사에 대해 대규모 보수작업을 완료했다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2010년 7월 2일에 보도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는 같은 해 9월 15일 중국 베이징 킹핀스키호텔에서 북측 조선종교인협회(회장 장재언)와 조선적십자사회 중앙위원회 임원 4명과 회동하고, 종교교류에 관한 사항과 2011년 중국 상하이에서 남북여성종교인모임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북녘 수해 지원물자 인도인수식(2010.10.13. 금강산생물공장 앞마당). 사진=민추본 홈페이지.
북녘 수해 지원물자 인도인수식(2010.10.13. 금강산생물공장 앞마당). 사진=민추본 홈페이지.
WFB 제25차 총회 개막식(2010.11.14. 스리랑카 콜롬보 시나몬호텔). 사진=밀교신문( 2010.12.1.)
WFB 제25차 총회 개막식(2010.11.14. 스리랑카 콜롬보 시나몬호텔). 사진=밀교신문( 2010.12.1.)
WFB 세계불교비지니스포럼(2010.11.14. 스리랑카 콜롬보 시나몬호텔, 우측 리영호 조불련 책임부원, 네 번째 심상진 조불련 위원장). 사진=밀교신문(2010.12.1.)
WFB 세계불교비지니스포럼(2010.11.14. 스리랑카 콜롬보 시나몬호텔, 우측 리영호 조불련 책임부원, 네 번째 심상진 조불련 위원장). 사진=밀교신문(2010.12.1.)

조불련, 첫 실론에 가다

심상진 제5대 조불련 위원장은 2010년 11월 13일~18일까지 스리랑카 콜롬보 시나몬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세계대회에 처음 참가했다. 평양에서 중국 베이징-상하이까지 열차 이동과 인도와 스리랑카 콜롬보까지 항공편을 통한 왕복 보름간의 참가 여정은 그 자체가 고행의 항로였다.

조불련 심상진 위원장과 리영호 책임부원 등 3명은 그해 11월 WFB 창립 60주년 기념식 및 제25차 스리랑카 총회에 참가해서 혜정 진각종 통리원장과 회성 WFB 한국본부 부회장・수각 WFB 세계본부 재정분과위원장 등 진각종 임원, 진월 조계종 승려・손안식 조계종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2022.9.13. 타계)・엄상호 불교인재개발원장, 중국종교계평화위원회 비서장 쉐청(學誠) 등 중국불교협회 소속 승려들, 일본・태국 등 각국의 불교 인사들과 교류했다.

기원전 80년에 불교경전의 편찬이 처음 시작된 스리랑카 즉,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의 실론(Ceylon, 1972년 공화국 선포와 함께 스리랑카로 국호 개정)에서 개최된 WFB 창립 60돌 기념식에는 나힌다 라자팍세 스리랑카 대통령이 참석해 축하했다. 중국대표단은 티베트 망명정부 대표단의 WFB 총회 참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외교적 마찰이 발생한 가운데, 제25차 총회와 개막식 그리고 상임분과위원 회의와 제1차 세계불교비지니스 포럼이 정상적으로 개최되고, 그해 11월 17일 스리랑카 캔디시 불치사에서 세계평화기원법회를 끝으로 공식 일정이 마무리됐다.

국제 불교단체인 WFB는 1950년 5월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테라바다(상좌부)・동아시아의 마하야나(대승부)・바즈라야나(티베트 계통)의 3대 불교분파에 속하는 27개국 대표들이 참석해 창설했다. 오늘날 미국・캐나다・인도・호주・아프리카・유럽 등 40개국 170여 개의 WFB 지역본부가 설립돼 있다. 남측은 1956년 11월 네팔 카트만두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대회에 동산・금오・청담대사 등이 참가해 가입하고, 1963년 국내 지부위원회가 결성됐다. 북측 조불련은 1986년 11월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WFB 제15차 총회에서 러시아와 몽골의 지지를 받아 지역본부로 정식 가입했다. 그때 북측 가입에 대해 한국대표단은 판단 유보의 뜻을 취했다.

그 당시에도 로마 교황의 방북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WFB 측에서 2010년 11월 스리랑카 총회에 참가한 북측 조불련에게 평양방문을 공식 제안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으로, 지금까지도 제의한 것이 없다. 그때 혜정 진각종 통리원장은 비공식적으로 2차 평양행을 제안하며, 북녘에 붓다의 가르침이 다다를 수 있기를 기원했다.

# 다음 편은 ‘2011년 대장경 천년 기념사업’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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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범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북불교교류 60년사’ 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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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씨 2022-11-16 00:57:42
고 장자연씨 자살과 관련돈ㅣ 조선일보관련도ㅣ는 분과 삼성저ㄴ기 사장등. 관련되시는 분들 해명바랍니다. (그당시. 입니다) 장자연씨와. 해결이. 안되었나 보군요. ㅇㅣ. 고인과. 만나 해결 바랍니다 왜. 당신들 수준예서. 해결됭ㆍ야. 할 것들이. 당신의 부모자녀에까지. 관련되ㅇㆍ야. 하는지 고민스럽답니다. 원하면 그렇게 한답니다

아자씨 2022-11-16 00:52:18
고 장자연씨 자살과 관련돈ㅣ 조선일보관련도ㅣ는 분과 삼성저ㄴ기 사장등. 관련되시는 분들 해명바랍니다. (그당시. 입니다) 장자연씨와. 해결이. 안되었나 보군요. ㅇㅣ. 고인과. 만나 해결 바랍니다

아자씨 2022-11-16 00:44:29
일제 피해자. 위안부 김복동할머니는 사후예 극락왕생안하시고 일본전범자위패 있는곳을. 점령하고 이습니다. 글고 임진왜란 당시. 참혹한 피해자 조선인들과 협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와. 관련자망자들도. 함께 잡아놨다고 하는데. 조산일보 해명바랍니다. 만액 사실이면 당사자들이. 해겨ㄹ바랍니다
조선일보가. 조선은 일본과. 간격큰데. 왜. 조선일보가. 일본과. 가까을가. 해명바랍니다. 조선일보에게. 불교도. 힘 만씁니다. 부딪히면 우리도 힘쓰ㅂ니다. 그릭ㆍ. 옛날. 여 탤런트 어을함 표현하는데 입장표명부탁드립니다.

잠고로 조선일보잘못보이면 패가망신한다는대. 궁금합니다. 그리고 텔런트 고인이. 당신들을 방운한다고 알려달라고. 합니다. 물론. 불교가 호위합니다. 옛날에 불교가. 보호한다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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