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불교교류 비망록 이제, 다시 본다] 35. 2009년 중국 세계불교포럼
[남북불교교류 비망록 이제, 다시 본다] 35. 2009년 중국 세계불교포럼
  •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 승인 2022.10.0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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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불련 국제무대에 나서다”

일명 동북공정은 2002~2007년까지 중국 국가 차원에서 추진한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东北边疆历史与现状系列研究工程, 간체자)이 원래 명칭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인 청나라 때 흥기했던 중국 동북방, 즉 만주의 나라들이 처음부터 중국에 속해 있었다고 주장하는 중국 정부 주도의 수정주의형 역사 왜곡 정책이다. 글자대로라면 동북 계획이지만, 풀어서 보면 ‘동북변방 지역의 역사 및 현 상황에 대한 연구사업 계획’이다.

2007년에 공식적으로 끝난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삼한의 역사를 이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근현대 중화민국 시절부터 2022년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으로, 동북 지방의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규정하려는 역사 왜곡 시도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조차 이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동북지역에 대한 중국의 전반적인 역사 왜곡에 관한 설명이 뒤섞여 있다. 그간 동북공정을 말한 중국 학술・문화계 인사들의 주목적은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든지 “고구려 정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방정권이었다.”라는 중국 정부 주장을 관철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동북공정의 근본적 이유는 중국 둥베이(Dōngběi, 東北) 지역에 대한 안정을 위한 것이다. 즉, 하나의 중국을 위해 소위 중화민족으로 대표되는 소수민족 분쟁의 실마리를 제거하는 데 있다.

속지주의 역사관을 주요논리로 한 동북공정은 과거 조공・책봉・위소・토사제도 등을 수정주의적으로 재해석하고, 현 중화인민공화국 내지는 청대 영토를 기준으로 흥기하고 가변적으로 팽창, 축소했던 중국 왕조들의 영토 및 인접했던 세력들을 모두 지방정권 및 소수민족으로 규정하며, 중화민족이라는 큰 틀에서 묶으려는 연구사업이다. ‘하상주단대공정’(1996~2000년)과 ‘중화문명탐원공정’(2002~2005년)을 통해 중국문화의 역사성과 우월함을 주장한 이후로 타이완, 조중관계의 영향을 받는 둥베이, 민중운동이 잦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자치구,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통킹만 등 국가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변방지역으로 시선을 옮겼다.

중국이 국가 차원의 영토적인 역사화 정책과 더불어 종교적인 세계화 전략으로 추진한 것이 바로 2006년 개최한 ‘제1차 세계불교포럼(首届世界佛教论坛)’이다. 중국 정부가 세계불교 통합을 목적으로 개최한 세계불교포럼 행사는 중국 정부의 수립 후, 자국에서 처음 열린 국제종교 회의였다. 남북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 등 37개국 및 지역에서 온 1,000명 이상의 승려와 전문가들이 참석해 “조화로운 세계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라는 주제로 연설과 토론을 가졌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후, ‘중화불교의 부활’을 세계에 선포한 세계불교포럼의 개최 취지와 행사 그리고 남북불교계가 참여하여 교류한 실무 내용을 다시 살펴본다.

제1차 세계불교포럼 개막식(首届世界佛教论坛, 2006.4.13.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민대회당). 사진: 중국불교협회 홈페이지





중국불교협회 결성식, 조박초 회장의 결성보고(1953.5.30. 베이징 광제사). 사진: 중국불교협회 홈페이지



중국과 세계불교포럼

중국 근현대의 불교 모습은 첫째로 1949년~1966년의 사회주의 변혁 시기, 둘째로 1966년~1976년 문화대혁명 시기, 셋째로 1978년부터 부흥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49년 중국 신정부 건국 후, 중화불교의 주창은 정부 주도로 결성된 중국불교협회로부터 시작됐다. 중국불교협회는 1953년 6월 유명 불교계 인사들의 발의로 베이징 서성지구에 위치한 광지사원(廣濟寺)에서 결성됐다. 1954년 5월 30일~6월 3일 광제사에서 중국불교협회 성립대회 및 중화불교협회 제1차 대표회의를 개최했다. 이때부터 광제사는 중국불교협회의 총본산 절이다.

그 후 중국불교협회는 1966년 문화대혁명 이전까지 불교 인재의 육성・사찰 관리・학술연구 등 관련 부문에 역할을 담당했다. 문화대혁명 10년 동안에는 중국불교가 크게 쇠퇴했다. 1979년 이후, 중국불교협회가 활동을 재개하면서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지낸 쟈오푸츄(赵朴初) 회장을 중심으로 인간불교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불학원 설립 등 불교인재의 육성과 사찰의 관리, 학술적 연구 등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했다. 1956년 9월 28일 중국불교협회가 설립한 불학원은 문화대혁명 때인 1966년에 강제 폐쇄되었다가 1980년 9월 재개관했다.

중국에서 불교 사찰은 약 3만 3천여 개소가 현존하고 있으며, 전국에 약 22만 2천여 명의 승려가 있다. 불교 신도 수의 공식 통계치는 없지만, 1980년부터 중국 대륙의 비구와 비구니 숫자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오늘날 중국에서 비구, 비구니 수계를 받은 승려는 약 5만 명으로, 1993년부터 비구와 비구니의 수계 비율은 2:1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 시기에 중국 공산당 제16기 6중전회(2006년 10월)가 ‘결정’을 내린 바와 같이 사회의 조화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체제가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 관련 약간의 중대 문제에 관한 결정’을 공식 채택함으로써 이행됐다. 이러한 국정 기조에 복무해야 하는 중국불교협회가 새로운 노선을 채택했다. 즉, ‘조화로운 세계와 모든 인연의 화합’(和諧世界 衆緣和合)을 대주제로 세계불교포럼을 처음 개최했기 때문이다. ‘조화로운 세계’라는 슬로건은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당시 대내외적 정치 목적에서 내세웠던 정치 구호와 맥락이 같다. 당시 중국 국가종교사무국 예샤오원(葉小文) 국장이 주제인 ‘조화로운 세계’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주창한 후진타오 주석 캠페인의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한 것과 같이 ‘제1차 세계불교포럼’의 성격 내지 정치적 목적이 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영국의 저널 《더스코츠맨》은 “중국 정부가 불교포럼을 종교 탄압국이라는 세계 여론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비평했을 정도다. 세계불교포럼은 2004년 중국 베이징에서 본토, 홍콩, 대만에서 온 8명의 명사들이 세계불교 행사 개최를 처음 제안했고, 한국과 일본 불교계의 지지로 제안됐다. 2004년 10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홍콩, 마카오, 대만의 불교계가 공유하고, 중국 본토에서 불교포럼 개최를 40여 개국에서 제안하여 보편적인 지지와 적극적인 반응을 얻었다. 중국 정부도 역사적 사건을 주최하는 불교 공동체를 지원할 것이라는 공문으로 보증함에 따라 1차 세계불교포럼은 2006년 4월 13일~16일까지 중국 저장성 항저우 및 저우산 시티, 절강성 푸퉈샨(普陀山)에서 중국불교협회 주최로 열렸다.

1차 포럼에는 티벳불교 2인자로 중국 정부에 의해 11위 판첸 라마로 인정받은 기알텐 노르부(Gyaincain Norbu, 당시 16세)과 조박초 중국불교협회장,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비롯한 37개국 및 지역에서 온 1,000명 이상의 승려와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1차 세계불교포럼은 세상을 사랑하고 생명체를 돌보고, 불교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교류와 협력을 위한 사랑의 마음으로 평등과 다원주의에 대한 열린 대화를 논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조화로운 세상’(和諧世界 從心開始)을 대회 슬로건으로 1차 포럼은 불교 주제에 대한 열린 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전통이나 종교적 배경과 관계없이 모든 불교도와 비불교도에게도 개방됐다.



제2회 세계불교포럼 남북불교대표단(2009.3.28. 중국 저장성 우석시 호텔 환영만찬장, 우측부터 심상진 조불련위원장, 지관 조계종총무원장, 운산 태고종총무원장) 사진: 《불교포커스》 (2009.3.30.)





제2회 세계불교포럼 사찰순례(2009.3.28. 중국 저장성 우석시 보타산 관음원, 가운데 양복차림의 심상진 조불련위원장). 사진: 다음카페 '일향전념'(2012.8.28.)



국제무대로 나온 조불련

2006년부터 격년제로 열리는 중국 세계불교포럼은 북측 조불련의 또 다른 경험이었다. 1차 포럼에 불참했던 조불련은 2009년 3월 28일~4월 2일 중국 장쑤성 우시(無錫) 영산범궁(靈山梵宮)과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제2차 세계불교포럼’에 심상진 위원장 등이 직접 참가했다.

당초 2008년 11월 중국 우시와 홍콩에서 열기로 했던 세계불교포럼은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해 3년 만에 개최됐다. 2009년 3월 28일~30일까지 중국에서, 3월 31일~4월 2일까지 대만에서 열렸다. 양안 관계의 긴장을 풀고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알리자는 중국 정부의 취지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제2차 세계불교포럼은 중국불교협회・중화종교문화교류협회・대만 국제불광회・홍콩불교연합회가 공동 주최했다. 중국 본토와 한국・일본・인도・태국 등 50여 개국 607명의 대표와 1,700여 명의 불교도가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을 가졌다.

‘세계화합과 모든 인연의 화합을’(和諧世界 眾緣和合) 주제로 열린 2차 세계불교포럼은 중국불교협회 이첸(一诚) 회장과 중화종교문화교류협회 예샤오원(葉小文) 회장 등은 연꽃 장엄물에 각국에서 마련해 온 물을 붓는 합수 행사로 시작됐다. 이첸 회장은 개막사에서 “이번 제2차 세계불교포럼은 중국과 대만불교가 화합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세계불교의 큰 잔치이다. 16개 주제의 포럼에서 인류의 화합을 위한 지혜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고 대회 의미를 설명했다. 중국 인민정치협상회 뚜칭린(杜靑林) 부주석은 환영사에서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평화를 이룩하려면 평등과 상호존중, 조화 등의 미덕을 통해야 한다. 개방과 포용, 중생 평등의 종교인 불교가 자비로써 그 역할을 펼쳐나갈 것으로 확신한다.”며 포럼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의 기조연설과 정산 천태종 총무원장이 인사말을 발표하는 등 조계종・태고종・천태종・진각종・관음종 등 종단에서 41명이 참석했다. 남측 불교계의 제안으로 참가한 심상진 조불련 위원장, 한성기 국제부장 등 북측 불교인사들은 그해 3월 27일 우시 시내 관광코스에서도 남측 종단대표들과 거리 인사를 나눴다. 또 우시의 링산범궁(靈山梵宮) 참배와 간담을 가지고, 그날 저녁에 세계 및 남북불교 대표단들과 함께 환영만찬을 했다.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열린 2차 세계불교포럼의 남북불교 교류는 2008년 8월 5일 제5대 조불련 위원장으로 선출돼 2012년 11월 1일 사임한 심상진 위원장의 국제활동 공식 무대였다. 이때 심 위원장의 기조연설 기록은 중국불교협회 홈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불교 연구를 위해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전래한 불교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이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법봉 심상진 위원장은 1991년 10월 미국 LA에서 열린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비롯한 1994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불교 교류를 재개할 때 서기장 등의 직책으로 참가한 실무형 교류 인사로 꼽힌다. 이때 함께한 한성기 조불련 국제부장은 영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94년 6월 일본 교토회동에 처음 참여하면서 얼굴을 알린 인물이다.

이날 남북불교 대표단 회동으로 2008년 7월 11일에 발생한 금강산 민간인 피격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전면 중단된 가운데, 신계사 및 개성 영통사 복원 기념행사 등에 관한 현안이 교류 테이블에서 재론됐다. 그때 3월 30일까지 북측 조불련과의 릴레이 회동으로부터 금강산・개성관광 중단과 달리 신계사(10월 13일)와 영통사(10월 말 또는 11월 초)에서 각기 기념법회를 개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한편, 2008년 12월부터 금강산 신계사 관리인(주지)으로 삭발승 진각대사와 부전 1명이 배치되었고, 2007년 상반기에 개성 영통사 관리인으로 혜명대사가 배치됐다. 그 후 영통사 관리인은 2010년 상반기에 삭발승으로 교체되어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2009년 3월, 제3국에서의 남북불교 회동은 심상진 조불련 위원장의 국제무대 등장이란 점 이외에도 당시 파국으로 치닫던 남북 교류에 작은 소통의 길을 낸 ‘신뢰의 테이블’이었다. 비록 동아시아 불교국가들과 별도의 교류는 갖지 못했지만, 북측 조불련은 남북불교 교류의 파트너십을 일구어낸 역사를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적 대립의 길이 아닌 종교적 화해의 길을 통해 남북 교류를 이어갈 힘이 우리에게 남아 있었다.

# 다음 편은 ‘2009년 남북한 합동법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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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불교포럼 개막식(首届世界佛教论坛, 2006.4.13.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민대회당). 사진: 중국불교협회 홈페이지
중국불교협회 결성식, 조박초 회장의 결성보고(1953.5.30. 베이징 광제사). 사진: 중국불교협회 홈페이지
중국불교협회 결성식, 조박초 회장의 결성보고(1953.5.30. 베이징 광제사). 사진: 중국불교협회 홈페이지

중국과 세계불교포럼

중국 근현대의 불교 모습은 첫째로 1949년~1966년의 사회주의 변혁 시기, 둘째로 1966년~1976년 문화대혁명 시기, 셋째로 1978년부터 부흥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49년 중국 신정부 건국 후, 중화불교의 주창은 정부 주도로 결성된 중국불교협회로부터 시작됐다. 중국불교협회는 1953년 6월 유명 불교계 인사들의 발의로 베이징 서성지구에 위치한 광지사원(廣濟寺)에서 결성됐다. 1954년 5월 30일~6월 3일 광제사에서 중국불교협회 성립대회 및 중화불교협회 제1차 대표회의를 개최했다. 이때부터 광제사는 중국불교협회의 총본산 절이다.

그 후 중국불교협회는 1966년 문화대혁명 이전까지 불교 인재의 육성・사찰 관리・학술연구 등 관련 부문에 역할을 담당했다. 문화대혁명 10년 동안에는 중국불교가 크게 쇠퇴했다. 1979년 이후, 중국불교협회가 활동을 재개하면서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지낸 쟈오푸츄(赵朴初) 회장을 중심으로 인간불교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불학원 설립 등 불교인재의 육성과 사찰의 관리, 학술적 연구 등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했다. 1956년 9월 28일 중국불교협회가 설립한 불학원은 문화대혁명 때인 1966년에 강제 폐쇄되었다가 1980년 9월 재개관했다.

중국에서 불교 사찰은 약 3만 3천여 개소가 현존하고 있으며, 전국에 약 22만 2천여 명의 승려가 있다. 불교 신도 수의 공식 통계치는 없지만, 1980년부터 중국 대륙의 비구와 비구니 숫자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오늘날 중국에서 비구, 비구니 수계를 받은 승려는 약 5만 명으로, 1993년부터 비구와 비구니의 수계 비율은 2:1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 시기에 중국 공산당 제16기 6중전회(2006년 10월)가 ‘결정’을 내린 바와 같이 사회의 조화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체제가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 관련 약간의 중대 문제에 관한 결정’을 공식 채택함으로써 이행됐다. 이러한 국정 기조에 복무해야 하는 중국불교협회가 새로운 노선을 채택했다. 즉, ‘조화로운 세계와 모든 인연의 화합’(和諧世界 衆緣和合)을 대주제로 세계불교포럼을 처음 개최했기 때문이다. ‘조화로운 세계’라는 슬로건은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당시 대내외적 정치 목적에서 내세웠던 정치 구호와 맥락이 같다. 당시 중국 국가종교사무국 예샤오원(葉小文) 국장이 주제인 ‘조화로운 세계’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주창한 후진타오 주석 캠페인의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한 것과 같이 ‘제1차 세계불교포럼’의 성격 내지 정치적 목적이 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영국의 저널 《더스코츠맨》은 “중국 정부가 불교포럼을 종교 탄압국이라는 세계 여론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비평했을 정도다. 세계불교포럼은 2004년 중국 베이징에서 본토, 홍콩, 대만에서 온 8명의 명사들이 세계불교 행사 개최를 처음 제안했고, 한국과 일본 불교계의 지지로 제안됐다. 2004년 10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홍콩, 마카오, 대만의 불교계가 공유하고, 중국 본토에서 불교포럼 개최를 40여 개국에서 제안하여 보편적인 지지와 적극적인 반응을 얻었다. 중국 정부도 역사적 사건을 주최하는 불교 공동체를 지원할 것이라는 공문으로 보증함에 따라 1차 세계불교포럼은 2006년 4월 13일~16일까지 중국 저장성 항저우 및 저우산 시티, 절강성 푸퉈샨(普陀山)에서 중국불교협회 주최로 열렸다.

1차 포럼에는 티벳불교 2인자로 중국 정부에 의해 11위 판첸 라마로 인정받은 기알텐 노르부(Gyaincain Norbu, 당시 16세)과 조박초 중국불교협회장,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비롯한 37개국 및 지역에서 온 1,000명 이상의 승려와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1차 세계불교포럼은 세상을 사랑하고 생명체를 돌보고, 불교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교류와 협력을 위한 사랑의 마음으로 평등과 다원주의에 대한 열린 대화를 논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조화로운 세상’(和諧世界 從心開始)을 대회 슬로건으로 1차 포럼은 불교 주제에 대한 열린 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전통이나 종교적 배경과 관계없이 모든 불교도와 비불교도에게도 개방됐다.

제2회 세계불교포럼 남북불교대표단(2009.3.28. 중국 저장성 우석시 호텔 환영만찬장, 우측부터 심상진 조불련위원장, 지관 조계종총무원장, 운산 태고종총무원장) 사진: 《불교포커스》 (2009.3.30.)
제2회 세계불교포럼 남북불교대표단(2009.3.28. 중국 저장성 우석시 호텔 환영만찬장, 우측부터 심상진 조불련위원장, 지관 조계종총무원장, 운산 태고종총무원장) 사진: 《불교포커스》 (2009.3.30.)
제2회 세계불교포럼 사찰순례(2009.3.28. 중국 저장성 우석시 보타산 관음원, 가운데 양복차림의 심상진 조불련위원장). 사진: 다음카페 '일향전념'(2012.8.28.)
제2회 세계불교포럼 사찰순례(2009.3.28. 중국 저장성 우석시 보타산 관음원, 가운데 양복차림의 심상진 조불련위원장). 사진: 다음카페 '일향전념'(2012.8.28.)

국제무대로 나온 조불련

2006년부터 격년제로 열리는 중국 세계불교포럼은 북측 조불련의 또 다른 경험이었다. 1차 포럼에 불참했던 조불련은 2009년 3월 28일~4월 2일 중국 장쑤성 우시(無錫) 영산범궁(靈山梵宮)과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제2차 세계불교포럼’에 심상진 위원장 등이 직접 참가했다.

당초 2008년 11월 중국 우시와 홍콩에서 열기로 했던 세계불교포럼은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해 3년 만에 개최됐다. 2009년 3월 28일~30일까지 중국에서, 3월 31일~4월 2일까지 대만에서 열렸다. 양안 관계의 긴장을 풀고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알리자는 중국 정부의 취지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제2차 세계불교포럼은 중국불교협회・중화종교문화교류협회・대만 국제불광회・홍콩불교연합회가 공동 주최했다. 중국 본토와 한국・일본・인도・태국 등 50여 개국 607명의 대표와 1,700여 명의 불교도가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을 가졌다.

‘세계화합과 모든 인연의 화합을’(和諧世界 眾緣和合) 주제로 열린 2차 세계불교포럼은 중국불교협회 이첸(一诚) 회장과 중화종교문화교류협회 예샤오원(葉小文) 회장 등은 연꽃 장엄물에 각국에서 마련해 온 물을 붓는 합수 행사로 시작됐다. 이첸 회장은 개막사에서 “이번 제2차 세계불교포럼은 중국과 대만불교가 화합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세계불교의 큰 잔치이다. 16개 주제의 포럼에서 인류의 화합을 위한 지혜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고 대회 의미를 설명했다. 중국 인민정치협상회 뚜칭린(杜靑林) 부주석은 환영사에서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평화를 이룩하려면 평등과 상호존중, 조화 등의 미덕을 통해야 한다. 개방과 포용, 중생 평등의 종교인 불교가 자비로써 그 역할을 펼쳐나갈 것으로 확신한다.”며 포럼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의 기조연설과 정산 천태종 총무원장이 인사말을 발표하는 등 조계종・태고종・천태종・진각종・관음종 등 종단에서 41명이 참석했다. 남측 불교계의 제안으로 참가한 심상진 조불련 위원장, 한성기 국제부장 등 북측 불교인사들은 그해 3월 27일 우시 시내 관광코스에서도 남측 종단대표들과 거리 인사를 나눴다. 또 우시의 링산범궁(靈山梵宮) 참배와 간담을 가지고, 그날 저녁에 세계 및 남북불교 대표단들과 함께 환영만찬을 했다.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열린 2차 세계불교포럼의 남북불교 교류는 2008년 8월 5일 제5대 조불련 위원장으로 선출돼 2012년 11월 1일 사임한 심상진 위원장의 국제활동 공식 무대였다. 이때 심 위원장의 기조연설 기록은 중국불교협회 홈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불교 연구를 위해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전래한 불교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이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법봉 심상진 위원장은 1991년 10월 미국 LA에서 열린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비롯한 1994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불교 교류를 재개할 때 서기장 등의 직책으로 참가한 실무형 교류 인사로 꼽힌다. 이때 함께한 한성기 조불련 국제부장은 영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94년 6월 일본 교토회동에 처음 참여하면서 얼굴을 알린 인물이다.

이날 남북불교 대표단 회동으로 2008년 7월 11일에 발생한 금강산 민간인 피격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전면 중단된 가운데, 신계사 및 개성 영통사 복원 기념행사 등에 관한 현안이 교류 테이블에서 재론됐다. 그때 3월 30일까지 북측 조불련과의 릴레이 회동으로부터 금강산・개성관광 중단과 달리 신계사(10월 13일)와 영통사(10월 말 또는 11월 초)에서 각기 기념법회를 개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한편, 2008년 12월부터 금강산 신계사 관리인(주지)으로 삭발승 진각대사와 부전 1명이 배치되었고, 2007년 상반기에 개성 영통사 관리인으로 혜명대사가 배치됐다. 그 후 영통사 관리인은 2010년 상반기에 삭발승으로 교체되어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2009년 3월, 제3국에서의 남북불교 회동은 심상진 조불련 위원장의 국제무대 등장이란 점 이외에도 당시 파국으로 치닫던 남북 교류에 작은 소통의 길을 낸 ‘신뢰의 테이블’이었다. 비록 동아시아 불교국가들과 별도의 교류는 갖지 못했지만, 북측 조불련은 남북불교 교류의 파트너십을 일구어낸 역사를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적 대립의 길이 아닌 종교적 화해의 길을 통해 남북 교류를 이어갈 힘이 우리에게 남아 있었다.

# 다음 편은 ‘2009년 남북한 합동법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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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범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북불교 교류 60년사’ 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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