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부리면 역사도 바뀌는가?
억지 부리면 역사도 바뀌는가?
  • 김종만 불교저널 편집실장
  • 승인 2015.09.28 22:01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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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원정상화추진위원장 법등 스님의 위험한 역사인식
교묘히 사실왜곡 “오히려 갈등 키우는 트러블 메이커”
대한불교조계종 선학원정상화추진위원장 법등 스님이 선학원과 한국근현대불교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지난 22일 수덕사에서 열린 제41차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 자리에서다.

다음은 법등 스님이 교구본사주지협의회에서 조계종 탄생의 역사를 말한 대목이다.

“첫 교단 설립이 선학원이 아니다. 조선왕조말 종단 출범 시 1908년 3월 전국의 스님 52분이 모여 원종을 설립한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총독부에서 무산이 된다. 1911년 임제종 설립도 총독부 방해로 무산된다. 1922년 조선불교중앙원도 무위로 돌아간다. 교단설립이 어렵게 되자 선사스님들이 1921년 선리참구원이라는 연구기관으로 모임체를 구성하자고 해서 총독부에 올린다. 3년 후 승인이 나온다. 수덕사 범어사 직지사 도리사 재적 스님이 출연, 설립한다. 1934년도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바뀐다.

역사적 흐름을 보면 가만히 있다가 선학원이 갑자기 생겨 조계종을 탄생시킨 게 아니라 일제 강점기 교단설립 위해 노력했는데 총독부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한 과정이 있다. 1934년 조선불교선종 종헌을 제정한다. 1941년에는 조선불교조계종 종헌을 제정한다. 그러나 이 역시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면 일본불교와 판이한 방법 때문에 교단 승인을 해주지 않는다. 1950년 정화불사 이후 1962년 통합종단이 이루어진다. 중요한 게 그때는 대처비구 함께 한 통합종단이다. 대처가 뛰쳐나가고 국가가 1600년 한국불교 전통성을 조계종에 부여한다. 전통사찰 전부다 조계종에 귀속한다. 한국불교 정통성은 조계종에 이어져 온다.”


법등 스님은 친일파로 구성된 원종과 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제종을 성격 구분 없이 하나로 기술하고 있다. 원종의 종정 이회광은 1910년 10월 일본 조동종과 7개 조항을 체결하고 원종을 일본 조동종에 귀속시키려 했다. 이를 ‘이회광의 조일불교연합책동사건’이라 부른다. 이에 저항해 나온 것이 임제종이다. 박한영, 진진응, 한용운 등이 주축이 돼 한국 전통불교를 지키려 임제종을 설립한 것이다.

선학원의 역사도 오류로 일관하고 있다. 선학원은 1921년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온 한용운 스님을 중심으로 이판계 스님들이 친일 사판계에 대응해 ‘정법선리(正法禪理)를 포교하고자 한다’는 목표로 선학원의 건립을 발기하고 그해 11월 30일 현재의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40번지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당시 선학원은 총독부 <사찰령>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사(寺)나 암(庵)을 쓰지 않고 원(院)이라 했다.

선리참구원이란 이름은 1934년 나온다. 선학원은 같은 해에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전환하여 총독부의 인가를 받았다. 이 선리참구원을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변경 등기한 것은 1953년 4월이다. 창건 당시 선학원 이름을 회복한 것이다. 선리참구원은 1935년 조선불교선종(朝鮮佛敎禪宗)을 탄생시켰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사찰령 체제에 의한 ‘조선불교선교양종(朝鮮佛敎禪敎兩宗)’으로 왜색불교화하는 데 대한 반발이었다.

법등 스님이 말하는 조계종의 전통은 조선불교선교양종인가, 조선불교선종인가? 이러한 조선불교선교양종과 조선불교선종의 역사에서 법등 스님은 무엇을 부정하면서 조계종이 선학원을 만들었다고 억지 주장을 펴는지 분명히 답해야 한다. 역사의 연대나 배경을 무시한 채 이런 저런 일이 있었다고 나열하는 법등 스님의 발언은 주제의식이 선명치 않을뿐더러 엄밀히 말해 식민사관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조계종단 창종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역대 선사 스님들이 일구어낸 사실(史實)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법등 스님은 억지 주장 이외에 사실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1967년 채벽암 스님이 이사장할 때 선학원 정관 3조에 ‘대한불교조계종 종지종통을 봉대하고’와 6조에 선학원 임원, 이사 감사를 말하는데,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중에 덕망 있는 자’로 삽입한다. 그러면서 조계종과 선학원이 한 권속임으로 명시하게 되는 것이다”

선학원 정관 목적 조항에 ‘조계종의 종지종통을 봉대하고’가 처음 들어간 때는 조계종과 선학원이 합의를 이룬 2002년 4월 1일 정관개정 12차 때다. 법등 스님은 어떤 자료에 근거해 1967년을 주장하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임원 선출 조항에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중’을 처음 삽입한 것은 1969년 정관 제13조에서다. 이 조항은 1978년 제6조 선출조항에서 ‘임원은 이사회에서 본 법인의 분원장 중 덕망이 높은’으로 개정된다.

이 일련의 과정으로 미루어 법등 스님의 발언은 모두 정확하지 않다.

법등 스님은 선학원 임원진의 제적원 제출에 대해서도 엉뚱한 이유를 대고 있다.

“선학원 이사 중에 2/3를... 나중에 개정한 것은 1/4이지만,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 총무원장이 복수추천한다는 조항 들어갔다. 거기에 대한 감정을 품고 2013년 4월 11일 정관 2조 6조 삭제 후 제적원을 제출한다......종단은 이사장 스님을 비롯해 이사 3명 멸빈했다. 극한상황까지 와버렸다.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선학원정상화추진위를 구성해 부족한 제가 위원장을 맡아 대화 위해 무던히 애썼다. 이사장 스님을 여러 번 찾아뵙고 대화요청했다. 이사 스님들 찾아뵙고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멸빈상태에서 어떻게 대화하느냐’고 해서 제가 원장 스님과 다 상의해서 5개항을 제안했다”

선학원 임원진의 제적원 제출은 종단이 강력한 징계를 예고한 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2013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그해 2월 조계종 종헌종법개정특위(위원장 · 법안 스님)는 선학원 자문 변호사와 일부 이사, 재단 사무처 사무국장이 있는 자리에서 법인법 제정과 관련한 선학원 측의 입장을 물었고 이에 대해 재단 관계자들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자리에서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법인법이 제정될 경우 2002년 합의 사항이 깨지는 것이냐는 선학원 측의 질문에 “법인법 제정과 동시에 그 효력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선학원은 그해 3월 11일 이사회에서 “조계종이 선학원과 사전에 상의 없이 법인법을 제정할 경우 2002년 합의 이전 정관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조계종은 선학원의 이 결의를 무시하고 3월 20일 중앙종회에서 법인법을 제정 통과시켰고 4월 1일 공포했다. 선학원은 이에 따라 4월 11일 이사회에서 정관 목적조항 중 ‘조계종의 종지종통을 봉대하고’와 선출조항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를 삭제해 2002년 합의 이전으로 돌렸다.

그러자 당시 총무부장 정만 스님은 6월 25일 중앙종회 본회의장에서 “종단은 대단한 각오로 선학원에 선전포고했다. 6월 30일까지 (정관을) 원상복구하지 않으면 종단이 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고 바로 실행에 옮기려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강력 징계를 예고한 것이다. 선학원 임원진은 징계를 받느니 조계종 승적을 포기하고 대신 재단을 지켜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6월 30일 일괄 제적원을 직접 총무원 총무부에 찾아가 제출했다.

법인법 제정 자체를 반대한 것임에도 법등 스님은 마치 선학원이 총무원장의 이사 추천권과 관련해 감정을 갖고 정관개정과 제적원을 제출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법등 스님은 또 선학원 임원진이 “멸빈 상태에서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느냐”고 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마치 멸빈을 풀어주면 대화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러한 발언은 법등 스님이 선학원이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실제로 법등 스님은 선학원정상화추진위원장을 맡으면서 대화를 강조했다. 이사장과의 면담 요구를 여덟 차례에 걸쳐 해왔고 선학원은 이에 대해 다섯 차례 회신했다. 선학원은 다섯 차례의 회신 공문에서 한결같이 “선학원의 역사와 정화이념을 이해하는 집행부가 나온다면 대화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입장은 선학원 임원진이 제적원을 제출하면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

이번 교구본사주지협의회에서 있었던 발언으로 미루어 법등 스님은 선학원과 대화할 자격이 없음이 드러났다. 선학원 역사와 정화이념을 ‘몰라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법등 스님이 내놓고 있는 해결책도 허황하게 들릴 뿐이다.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원장 스님과 상의해서 5개항을 제안했다. 징계회복, 특별교구로 승격, 종회의원 2석 배정, 원로 1석 배정, 제한된 선거권 피선거권 해제한다. 이렇게 되면 종회 원로 소통기관이 있으므로 다시는 이런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선학원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전혀 응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법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종단과 재단은 1994년 개혁종단이 들어서고 1996년 1999년 2002년 세 차례에 걸쳐 합의안을 이루어낸 바 있다. 1996년과 1999년 합의안은 그때마다 조계종 중앙종회가 반대함에 따라 무효화됐다. 즉 합의내용을 정관에 반영하지 않고 왜 하위규약에 담도록 했느냐 하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2002년엔 양쪽 모두 법으로 명시함으로써 합의가 시행됐다. 조계종은 총무원법 제24조(선학원의 권리보장)에 “선학원의 인사권, 재산권, 운영관리권에 대해 일체 간여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선학원도 정관 목적조항에 ‘조계종의 종지종통을 봉대하고’와 임원선출조항에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를 삽입한다. 그러나 이 합의도 2013년 조계종이 법인법을 제정하면서 또 파기되고 만 것이다.

선학원으로선 법등 스님이 제시하고 있는 다섯 개 조항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법인법 파장의 발단이 되고 있는 종헌 제9조3항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달콤한 제안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정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선학원과 대화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먼저 조계종에서 선학원이 종헌 제9조3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 법적 장치를 하고 나서의 문제기 때문이다. 가령 이러한 법적 장치 없이 법등 스님과 선학원 임원진 간 어떤 합의를 봤다고 치자. 이것이 그대로 중앙종회의 동의를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솔직히 말해 법등 스님이 제안한 해결책이란 선학원을 조계종단처럼 정치화 세속화를 부를 뿐이란 여론이 지배적이다. 대다수의 분원장들 역시 법등 스님의 이 제안에 대해 “그간 선거권 피선거권 없이도 잘 살아왔는데 쓸데없는 소릴 하고 있다”고 면박한다.

법등 스님은 먼저 자신 스스로가 조계종과 선학원의 관계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인물인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오히려 갈등을 더욱 키우고 있는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란 지적이 우세하다. 선학원 임원진들은 최근 법등 스님의 처신을 두고 자질론을 들며 “스스로 돌아보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한다면 주변에서 일깨워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김종만 불교저널 편집장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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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 2015-10-02 10:57:09
고려사나,이조실록을 보면,
수많은 주지싸움이나 절싸움이 나온다.
그 다툼들은 신라말,고려초에 5교9산이 만들어진이후 지금까지,
한시도 싸움이 그친 날이 없었다.

고려때는 5교9산으로,조선때는 선교양종으로 나뉘어,
줄기차게 벌어진 것이 주지싸움,절싸움이다.
같은 종파에서는 주지자리를 두고 싸웠고,
다른 종파와는 절을 두고 치열하게 싸웠다.
모두들 자기들 나름의 명분을 걸고 싸운 것이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주지싸움,절싸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일어나는 것으로 요즈음의 조계종과 선학원의 싸움도 그것이다.

이 싸움은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다.
중국불교특유의 문중의식이 저변에 깔려 잇기 때문이다.
그런지라 이싸움은 조계종의 현집행부가 바뀌어도 끝나지 않는다.
수덕사의 설정이 살아 있는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설정에게 경허나 만공은 자신의 존재이유이자 과업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하여서는 선학원의 간월암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반드시 선학원에서 그것을 빼았아 와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학원은 차리리 선학원의 길을 찾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조계종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조선불교의 기둥이 되었듯이,
새로운 시대에,현대불교의 새길을 찾는 것도 한 방편일 것이다.
그것이 넒은 의미에서 한국불교를 더 활성화시킬 것이다.

과객 2015-09-30 19:20:23
조계종 승려증은 얼마일까?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74399

나는 중도아니오, 종단밥 먹지도 2015-09-30 15:58:19
맞는 얘기다.
또한 결정적인 단서가 있다.
1. 애시당초 "교단"을 만들고자 했으나 차후에 통합종단을 출법시킴.
2. 교단을 만들지 못하고 "재단법인"을 만듬.

자, 함 디벼보자.
그대가 주장하는 이 사실에서 재단법인이 교단을 대신할 수 있는가?
좌우지간 현재 비구종단은 "조계종" 아닌가?
여기에 자꾸 조계종이 비리, 부패 등에 빠져있다...분명한 사실임에도...는 지적은 전형적인 물타기이다.
현 조계종에 문제가 있으면 그건 그대로 조계종단 소속임을 분명히 하고 싸우고 강제해야 할 문제이지 재단법인이 교단을 자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재단법인은 명백히 "재산"을 "출연"하여 그 행위를 지원하고자 함이 목적이다.
'절', '사찰'이라는 종교행위의 시공간과 구성원 전체가 귀속되는 종단이 아닌 것이다.

풍년들은 땡중들 거짓말로 절뺏 2015-09-30 14:40:20
자승이 : 나는 중 정신을 모른다.
현응이 : 깨달음은 스마트폰 속에 있다.
세영이 : 성월이는 적법 절차를 거쳐 주지에 당선됐다.
법등이: 선학원은 쪼개종이 만든 것이다.
이들에 억지 말만 들어도 백천가지 답이 다 보인다.
혀서 조계종 썩은게 명백하여, 정화를 아니 할 수 없는기라~

불교재산 2015-09-30 12:28:37
좋은 음식에 , 편리한 교통편 , 좋은옷 , 거들먹대며 , 피등피등한 얼굴자랑 ,
等 부처님 신자들의 돈을 물쓰듯 하지말고 ,부처님 공양 의 무서운줄 알아라 !
만나서 잡담이나하지말고 테마별로 정화 개정 행동강령 등 을 정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