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담 풍’해도 너희는 ‘바람 풍’ 하거라.”
혀 짧은 훈장의 이 말은 자신은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 남에게는 바른 행동을 요구하는 본보기이다. 좋게 보면 자신은 못하지만 제자만큼은 잘하라는 사랑 가득한 가르침일 수도 있다.
‘바람 풍’을 버려두고 ‘바담 풍’만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까?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본부장 도법)가 종도 의식개혁을 추진 중이다. 결사본부는 지난달 범어사에서 ‘중도를 바탕으로 사람이 부처라는 인불사상에 입각해 구세대비행을 실천하자’는 구호를 도출했다. 이 구호는 조계종 집행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상반기 중 의식개혁운동으로 전개된다.
일각에서는 구호가 조계종 종지와 기능상 유사할뿐더러 종지를 훼손한다는 우려가 크다.
대한불교조계종 종헌 제1장 제2조에는 종지가 명시돼 있다.
“본종(本宗)은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자각각타(自覺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한 근본교리(根本敎理)를 봉체(奉體)하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함’을 종지(宗旨)로 한다”
종지는 종단을 운영하는 지침이고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세속말로 개인·단체·기업이 내세우는 비전이다. 조계종 스님·소속사찰은 이 ‘종지종풍 봉대(奉戴)’가 의무이다. 최근에는 신도단체 정관에 ‘종지종풍 봉대’ 명시를 강제화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종지종풍 봉대’를 강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종지를 무색케 하는 ‘구호’를 만들어 낸 현실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종헌이 살아있고 종지가 분명한데 왜 다른 구호가 필요한가? 종지를 두고 별도의 ‘구호’를 만드는 것은 옥상옥(屋上屋)이다.
또, 종지에서는 곧바로 마음을 가리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며(直指人心), 몸[色]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구호는 ‘이 몸[사람]이 부처’라고 말한다. 성불하려면 마음을 봐야한다면서 그저 사람이 부처라니. 인불 사상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혼란스러운 종도가 적지 않아 보인다.
결사본부 ‘구호’는 종지 구현 방편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믿는다. 한 마음자리도 없는데 마음이 부처면 어떻고, 몸이 부처면 어떠한가. ‘성불’은 ‘마음’으로 하고 ‘전법도생’은 ‘몸’으로 하자는 뜻이겠거니 생각도 된다. 그러나 구호에 붙은 ‘의식개혁’이란 거창한 딱지는 이런 포용을 용납하지 않는다. 범어사에서 중도와 인불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과정에서도 종지는 구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티베트 탄압을 비롯해 중국 인권은 UN 등 국제사회가 수차례 지적할 만큼 심각하다. 이런 중국도 138조로 구성된 헌법을 갖고 있다. 헌법은 “중국 공민은 누구나 언론·출판·집회·결사·여행·시위의 자유가 있다’(제35조)고 규정했다. 종교(제36조)·신체(제37조)·통신(제40조)의 자유도 명시했다.
유엔에도 111개조로 구성된 유엔헌장이 있다. 미국 등 열강들이 만든 탓에 유엔헌장은 각 나라 이익과 힘의 논리에 따라 적용된다. 헌장대로라면 북핵 실험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명백한 행위임에도 제재를 두고 국제사회가 고민하는 것이 본보기이다.
조계종 종헌은 국가의 헌법에 해당한다. 종헌이 지켜지지 않으면 종단 근간이 흔들린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종헌이 글로만 존재하는 중국 헌법이나,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유엔 헌장과 달라야 함은 물론이다. 종헌에 명시된 종지를 간섭하는 결사본부의 ‘구호’와 의식개혁운동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이유이다.
종도들은 혼란스럽다. “(우리는 열심히 잘 살고 있는데) 의식개혁을 왜 해야 하나?” “잘못은 종단 고위층 스님들이 하고 왜 도매금으로 모두 싸잡아 이 난리지?” “무엇을 어떻게 자성과 쇄신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네.” 등.
봄소식과 함께 불어올 조계종 의식개혁운동 바람이‘ 바담 풍’하면서 ‘바람 풍’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비웃음으로 끝날 일이다. ‘바람 풍’을 ‘바담 풍’으로 혹세무민하는 우(愚)만큼은 범하지 않기를 마음 속 깊이 바라고 또 바란다.
종지(宗旨)는 봄볕에 살랑이다 그치는 봄바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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