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봉은사의 직영사찰 지정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변질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의 발의로 중앙종회가 봉은사의 직영사찰 지정을 11일 의결했다.
의결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총무원이 종무회의 의결을 거쳐 중앙종회에 제출한 안건은 본회의에 부의되지도 못한채 총무분과위원회에서 반려됐다. 총무분과위원인 봉은사 부주지 진화 스님의 적극적인 반대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상황은 곧 역전됐다. 수도권과 도심포교를 핵심과제로 추진 중인 총무원은 안건을 다시 제출함으로써 봉은사의 직영사찰 지정이 절실하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중앙종회는 집행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안건을 3분의 2에 육박하는 찬성을 통해 본회의에서 가결시켰다.
봉은사 긍정적 변화, 그러나...
봉은사는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정화과정에서 잃어버렸던 토지를 일부분 되찾았고, 포교·복지활동, 투명성 제고 등에 있어서도 진일보했다.
그러나 현재 봉은사의 역할과 위상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는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봉은사가 강남의 대표적인 사찰인 점은 분명함에도 지금까지는 하나의 사찰로서의 역할 밖에 하지 못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주지가 교체될 때마다 종무원 중 일부는 함께 바뀌었다.
직영해야 한다는 의견은 여기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총무원의 설명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수도권·도심포교를 위해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역할을 봉은사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명대로라면 봉은사의 직영 지정에 대해 반발해야 할 곳은 봉은사가 아니라 같은 포교권역에 있는 능인선원이나 구룡사, 불광사다. 그만큼 봉은사의 비중과 역할이 늘어날 것이고, 이들 사찰이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봉은사의 직영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가적으로 취해져야할 총무원의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봉은사가 교구본사와 같은 사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여태 그 역할을 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치적 이해관계 얽혀 반발 커져
직영사찰 지정 가결 이후 의견수렴 부족이 또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렇다면 의견수렴이 부족한 사안을 중앙종회가 무기명비밀투표로 가결시켰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14일 일요법회 법석에서 총무원을 향해 "목숨을 걸겠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독설을 내뿜기까지 했다.
그러나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총무원이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어 있을 때부터 거론된 사안이다.
종단 상황에 밝은 이들은 현재의 구조에서 봉은사에 대한 의견 수렴은 애초부터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종단내 존재하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옹립했던 무량회다.
무량회는 현 주지 명진 스님을 임명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으로부터 주지 임명을 받은 명진 스님은 이에 즉각 화답했다. 소임자 인사에서 무량회 소속 중앙종회의원인 부주지 진화 스님과 역삼청소년수련관장 주경 스님 등을 중용했다. 직영사찰 지정 과정에서 무량회가 보여준 조직적인 반발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무량회가 기득권을 스스로 내놓지 않는 한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지정하는데 의견수렴이 된다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인 셈이다. 무량회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이미 조직적인 반발에서도 드러났다.
정치적 목적 이슈화 지양해야
반발의 주체를 면밀히 살피고 있는 총무원은 무량회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명진 스님의 발언에 대해서도 불쾌함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이다. 일부 있을 수 있는 신도들의 반발은 자세한 설명을 통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고 총무원은 판단하고 있다.
총무원 관계자는 "황당한 정권개입설까지 퍼트린 진원지로 꼽힐 정도로 무량회와 명진 스님이 위기에 몰렸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종단과 종단수장에 대한 모욕의 수준이 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MB에게 쓴소리 좀했다고 주지를 바꾸라고 압박한게 사실이라면 이는 엄청난 종교판압이자 대사건"이라며 "현 정권이 명진 스님 주장대로 일관성을 가질려면 무차회에서 왜 봉은사보다 더 큰 조계사 주지를 임명하려는 총무원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지도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확산되고 있는데 대해 종단내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또 정치적 목적을 지닌 이슈화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