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질 수 없는 인연因緣
끊어질 수 없는 인연因緣
  • 박영재 교수(서강대)
  • 승인 2017.03.0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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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26.

성찰배경: 이번 성찰글에서는 2017년 1학기를 맞이하며 가장 최근 <불교닷컴>에 기고했던 글 ‘희유稀有한 인연因緣들’ 가운데 첫 번째 사례의 주인공인, 2016년 2학기에 제가 담당했던 전공과목인 ‘일반물리2’를 수강했던 학생과의 ‘끊어질 수 없는 인연’에 대해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이 수강생이 수업시간 사이사이에 들려주었던, ‘독화살의 비유’, ‘참나 찾기 게송’, ‘구루의 고양이’ 등의 자기성찰에 관한 이야기에 이끌려 학기를 마치고 방학 때 (정체불명의 다소 상업적인) 명상캠프를 다녀온 후 2017년 1학기에 개설되는 ‘참선’ 강의 수강 신청 실패에 관해 저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런 다음 그 이후 제 연구실을 방문해 면담을 통해 추가 수강신청 약속을 받은 후 ‘참선’ 강의의 첫 번째 과제로 스스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및 미래를 돌아보게 하는 ‘인생지도’를 부과했었는데, 이 학생의 과제 속에 그동안 성적에 올인을 했었던 목적 없는 삶과 ‘참나’ 찾기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기에 이를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끊어질 수 없는 인연因緣

‘참선’ 수강신청 실패 후

수강생: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작년 일반물리2 수강생입니다. 교수님, 설날은 잘 보내셨는지요? 집에 내려와 있는 관계로 교수님에게 연락을 못 드렸던 점 죄송합니다. 다음 주 중으로 학교에 갈 예정인데 혹시 교수님이 편한 시간이 있으신지요?

다름이 아니라, 작년 교수님의 일반물리2 강의를 들으면서 ‘명상’이라는 것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직접 '명상'을 통하여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는 점, 제일 바쁘게 살고 있다는 뉴욕인들마저 시간을 내어 ‘명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저는 학교 내에 걸려있는 명상캠프를 신청하였고 다녀왔지만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명상’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교수님이 직접 ‘명상’을 가르쳐주시는 참선 수업을 정말 꼭 듣고 싶었지만 안타깝게 수강신청 인원(20명)이 꽉 차버려서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 실례지만 저는 전자공학과의 전공보다 이 참선 수업을 꼭 듣고 싶습니다. 죄송할 마음뿐이지만 혹시 참선 수업의 사인을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정유년 닭의 해에도 항상 좋은 일들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작년 일반물리2 수강생(2014학번) 올림

답신: ()()() 군! 이메일 잘 받았네. 반갑네. 설 명절 자네도 뜻 깊게 보냈으리라 생각되네. 자네에게 있어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욱 보람되고 소중한 한 해가 되기를 염원하네. 다음주 2월 14일(화) 오후 2시에 내 연구실(R1013호)로 들리게.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나누기로 하세. 일반물리2 담당교수로부터

면담 후 ‘인생지도’ 과제 부과

발신: ()()() 군! 다음을 참고해 2월 28일까지 과제 1을 이메일로 제출하게. 참선 담당교수로부터

“2017년 1학기 ‘참선’ 수강생 여러분께! 우선 수강 신청에 성공한 것을 축하드리며 이 희유한 인연因緣을 끝까지 잘 이어가시기를 간절히 염원念願드립니다. 마감기일 이전에 첫 번째 과제로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담긴 ‘인생지도’(분량: A4용지로 2쪽 내외)를 사이버캠퍼스로 제출하기 바랍니다. 2017년 2월 10일 담당교수로부터

* 추신: 인생지도를 제출하면 다른 수강생들의 인생여정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몇 편을 골라 웹페이지를 통해 무기명으로 게시(아래 참고자료 예시 참조)를 해오고 있는데 게시 자체를 원하지 않는 수강생들은 과제 제출시 의사 표시를 확실히 해주기 바랍니다.”

수강생 답신: 교수님, 잘 지내고 계신지요? 교수님께서 주신 책 <날마다 온몸으로 성찰하기>(비움과 소통, 2015년)를 다 읽고 난 후 과제가 있었다는 걸 알았었는데 먼저 연락을 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기간에 맞춰 과제를 제출하겠습니다. 먼저 연락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과제를 통해 제 인생을 다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수강생 ()()() 드림.

이렇게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 드디어 어제 이 수강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메일과 ‘인생지도’ 과제를 제출받았기에 전문을 소개합니다.

이메일: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입니다. 과제를 빨리 제출하지 못한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좋지 않은 글 솜씨에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교수님의 과제 덕분에 쭉 한 번 제 삶을 돌아볼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강 첫 날인 3월 3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교수님! 늘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올림. 

인생지도: 진정한 나를 찾는 기회를 맞이하다

<과거>

 참선 수업의 첫 번째 과제를 받고 쭉 저의 삶을 돌이켜 봤습니다. 과거의 제가 살았던 삶을 생각해보니 저의 삶에 제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함양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주변에 산도 있고 강도 있고 시골에서 자랐기에 평범한 시골아이의 삶을 살았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고기도 잡고 사슴벌레, 매미 등을 잡으러 다니며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공부에 집착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음을 찾았습니다.

 전 1남 1녀 중 장남이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교에 진학하시지 못한 부모님이 있습니다. 그런 부모님 아래에서 늘 공부를 해야 했으며 잘 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나름 혼자서 공부를 하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그런 성적을 받아온 저를 자랑스럽게 보시는 부모님 때문에 공부에 더욱 집중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때는 중학교 2학년. 당시 저는 제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도중 어느 날부터 같은 반 친구들이 저의 외모를 가지고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도가 지나쳤다고 저는 기억을 합니다.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몇몇 반 친구들이 저의 외모를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전 그런 친구들 보다 뛰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공부였습니다. 전 그때부터 무섭도록 공부에 집착을 했습니다.

 그렇게 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시켜서도 아니고 단순히 누군가에게 뛰어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한 부분을 찾기 위해서 순수한 공부, 학문의 의도를 무시한 채 저는 공부를 했습니다. 중학교 학교시험을 쳐서 1등을 하면 속으로 반 친구들을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속으로 우월감에 찬 생활을 했습니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지’, ‘나는 무얼 좋아하는지’, ‘나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무시한 채 오로지 점수, 등수라는 숫자에 목을 맨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며 저는 공부를 잘한다는 친구들이 모인 고등학교로 입학했습니다. 시골에서 벗어나 잘한다는 친구들이 모인 고등학교에서 저는 당황했습니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점수와 등수들 그리고 늘 우월감에 차 있던 저에게 그곳은 열등감뿐이었습니다. 저는 제 삶을 돌이켜 보지 않고 노력을 덜 했다는 생각에 더욱 무섭게 공부와 점수에 집착했습니다. 문제 하나에 등급 하나에 울고 웃으면서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하지 않으며 살았습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했으며 전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을 지냈지만 수능 성적 또한 난생 처음 받아보는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 재수를 택했으며 재수 생활도 마찬가지로 숫자에 집착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저는 서강대학교에서 제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사람들이 맞춰놓은 틀에 맞추며 살았습니다. 그 틀이 마치 제 틀인 것 마냥 살았습니다. 취업이 잘 된다는 과에 진학을 했고 부모님도 좋아하셨기에 아무 생각 없이 한 학기의 대학생활을 지냈습니다. 대학교가 마치 전부인 마냥 놀고 또 놀았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러 군 생활을 했고 복무를 마친 후 복학을 했습니다.

 복학 후 대학생활은 많이 달랐습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는데 수만 가지의 번뇌가 떠올랐습니다. 홀로 공부를 하면서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성적에 집착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왜 누구를 이기려 하는가?’, ‘이긴다는 건 무엇이고 이기면 무얼 얻나?’, ‘어떠한 가치를 위해 사는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너무 많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답을 찾기 위해 아무리 고민을 해도 한 번도 저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매 순간이 답답했고 공허했으며 무기력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수강하고 있던 일반물리2 수업시간에 박영재 교수님의 명상과 자기성찰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항상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공부만 하던 저에겐 다른 어떤 수업보다도 교수님의 짧은 말씀에 저절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종교를 뛰어서 참선이라는 수행과정은 저에게 꼭 필요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번뇌와 고민의 답이 자기성찰에 있음을 그 순간 알았습니다. ‘좌일주칠(坐一走七)’, 즉 이른 아침 잠깐 앉은 힘으로 온 하루를 부리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가 너무나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끊임없는 자아성찰에 있음을 느꼈습니다.

<현재>

 개강을 앞 둔 현재 전 마냥 내일이 수학여행인 것처럼 설레고 들뜹니다. 전자공학의 전공 수업들보다도 바로 ‘참선’ 수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이 직접 정성스럽게 건네주신 책을 읽고 체험담들을 읽으면서 저 또한 나를 알아갈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에 무한히 기쁩니다. 물론 수행과정은 힘들겠지만 그 끝에는 진짜 나를 알 수 있기에 내가 무얼 하며 살지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난 누구인지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기에 다른 어떤 수업보다도 참선 수업이 기다려집니다.

 지금의 제 삶은 항상 주변의 틀에 맞춰져 왔습니다. 내가 직접 고민하고 선택한 행동들마저도 다시 생각을 해보니 타인의 기준과 선택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직접 저를 움직인다고 생각했지만 꼭두각시처럼 타인이 저를 움직이고 있음을 현재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 저를 되찾을 기회를 맞이했다는 것에 고맙고 감사합니다.  나를 돌아보는 과정을 성실하고 꾸준히 하면서 저를 알고 싶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헤쳐서 내가 누군지를 알고 싶습니다.

<미래>

 저는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꿈과 장래희망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성인이 된 지금도 친구가 혹은 알고 지낸 지인이 ‘너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공부하는 기계처럼 앉아서 책을 펴고 활자를 읽고 문제만 풀 줄 아는 바보 같은 성인(成人)입니다. 늘 타인의 시선에 타인의 틀에 맞춰 왔던 제가 당당히 ‘나란 누구인가?’를, ‘나는 어떠한 가치관에 따라 이러한 삶을 살 것이다!’를 말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 현재의 꿈이자 희망사항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항상 들어오던 말이지만 다시 한 번 이 말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꿈 또는 하고자 하는 성취를 이루기 위해선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야 지치더라도 힘이 들더라도 그 끝엔 의미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달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4개월간의 참선 수업 과정을 통해서 정말 제 자신을 돌이켜 보고 알고자 합니다. 그리고 참선 수업이 끝나더라도 수행 과정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참선 수행을 통해 올바른 가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으면 합니다. 답답하고 공허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중심이 없던 제가 세워져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제 자신을 만드는 것이 저의 가까운 미래입니다.
 
군더더기:  사실 이 시대의 젊은이들 대부분 이 수강생과 비슷한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지난 수 십 년간의 저의 체험에 비추어볼 때 비록 1학기 교양강좌이기는 하지만 4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자기성찰에 대한 습관을 잘 기를 경우 누구나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길을 바르게 갈 수 있기에, 젊은이들의 N포(결혼 등을 포함한 N가지 포기) 시대를 맞이해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 뜻 있는 영적 스승들의 보다 치열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한 때라 판단됩니다.

관련 자료들:

<불교닷컴> 희유稀有한 인연因緣들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35121

뜻밖의 수확收穫
http://www.seondohoe.org/102932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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