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 봉우리는 희지 않은고?
왜 한 봉우리는 희지 않은고?
  • 박영재 교수(서강대)
  • 승인 2016.10.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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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24

성찰배경: 예년처럼 설악산 대청봉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곧 2016년 겨울 첫눈 소식이 들려오겠지요. 그래서 지난번에 소개드린 ‘삼세심불가득’ 화두와 ‘외짝 손소리[척수성隻手聲]’ 화두에 이어 초심자를 위한 화두들 가운데 ‘눈[雪]’과 관련된 화두와 언론매체 등을 통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는 각계 지도층 인사들의 어지러운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의 행보行步들로 인해 온 나라가 어수선한 지금 시의적절하게 눈과 관련된 서산대사의 저작으로 알려진 성찰의 시 한 수를 함께 새기고자 합니다.

왜 한 봉우리는 희지 않은고?

화두: 만산에 눈이 가득 쌓였는데 왜 한 봉우리는 희지 않은고?
      [萬山充雪 因甚孤峰不白]

제창提唱: 폭설이 내렸다면 눈이 만산萬山을 온통 하얗게 뒤덮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상식이지만 ‘어째서 왜 한 봉우리는 희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특히 자연 속에 지은 전원주택의 경우 폭설이 내린 추운 겨울날 집 앞을 나서며 온통 하얗게 눈 덮인 산하대지山河大地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러면서 화두에 즉해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며 바른 스승 밑에서 지속적으로 입실점검을 받노라면 비록 초심자라고 할지라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느 때인가 상대를 초월한 절대의 견해見解가 문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 화두는 사실 제가 몸담고 있는 선도회의 입문과정 화두들 가운데 마지막 마무리로 참구하게 하는 화두입니다. 그런데 수년 전 선어록을 열람하다가 남송과 원에 걸쳐 활약했으며 고려의 선사들과 활발히 교류하셨던 몽산덕이蒙山德異 선사 관련 자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무문관>의 저자인 무문혜계無門慧開 선사의 스승이셨던 월림사관月林師觀 선사의 제자들 가운데 고봉덕수孤峰德秀-환산정응皖山正凝의 법계를 이은 몽산 선사께서 참구하셨던, 본질적으로 똑같은 화두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 원전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허주 선사께서 묻기를, “눈이 천산을 덮었는데 왜 한 봉오리만 희지 않은고?”
몽산 스님이 답하기를, “(분별의 세계와는 다른, 단지속의) 별천지이지요.”
[虛舟問 雪覆千山 為甚麼孤峰不白. 蒙山曰 別是一乾坤.]
참고로 이 문답을 마치자, 송원숭악松源崇岳-무득각통無得覺通의 법계를 이은 허주보도虛舟普度 선사께서 크게 칭찬하시고는, 환산정응 선사께 참문할 것을 권하셨으며 실제로 그 뒤 환산 선사께 참문해 그의 법을 이었다고 합니다. (출전: <속등정통續燈正統> 권팔卷八)
 
* 군더더기: 참고로 문답에 쓰인 ‘별시일건곤別是一乾坤’란 이 선어禪語는 <후한서後漢書> 비장방전費長房傳에 보이는 선인仙人 호공壺公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후한 시대에 약을 파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한 개의 단지[壺]를 가게에 걸어 놓았기 때문에 호공이라고 불리어졌습니다. 가게를 닫으면 매일 그 단지 안에 뛰어들었습니다. 비장방은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호공과 가까워지자 같이 단지 속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 단지 속은 맛있는 음식과 술이 넘쳐나고 있는 선경仙境이었다고 합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이 호공의 별 세계를 차용해 이원적 분별로는 도달 불가능한 ‘깨달은 분들의 별천지’라고 부른 것입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한편 눈 내리는 겨울철이면 제가 늘 염송하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길을 가지만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는 각자의 발자취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하는, 서산대사로 널리 알려진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 선사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란 시를 함께 성찰해 보았으면 합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도
모름지기 어지러이 걸어가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는
후일에 필히 다른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遂作後人程 今日我行跡.]

군더더기: 사실 비단 눈길만이 아니라 언론매체나 SNS 등을 포함해 각종 사회통신망을 통해 각계 지도층 인사들의 행보들이 실시간 또는 다소 지연되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사실 그대로 드러나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여럿이 있을 때도 혼자 있는 것처럼 말을 삼가고, 혼자 있을 때도 역시 여럿이 함께 있는 것처럼 몸가짐을 삼간다면 언행불일치의 낭패를 면할 수 있겠지요. 덧붙여 이런 몸가짐의 실천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의 하나로, 비단 간화선 수행자들뿐만이 아니라 종교를 초월해 일상 속에서 자기성찰의 삶을 끊임없이 이어가려는 수행자들의 경우를 보기로 들면, 늘 자기의 자취를 돌아보면서 어지러이 걷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애쓸 것이니, 2012년 초에 입적하신 지관 큰스님께서 “왜 일반적인 고승대덕들처럼 상당법문 안하시냐?”는 물음에 “니나 많이 공갈치며 살아라!”라는 말씀처럼 훗날 적어도 ‘수행으로 공갈쳤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글

사실 각계의 지도층 인사들의 어지러운 행보에 대해, 역시 끊임없이 물을 흐리고 있는 적지 않은 추한 종교인들이 속한 종교계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계율戒律 또는 회헌會憲을 포함해 수행단체의 규칙 등을 철저히 지키면서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언행일치의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이들 지혜롭지 못한 인사들의 안목을 넓혀주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매우 절실한 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도 일상 속에서의 치열한 자기성찰과 함께,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맡은 바 책무에 더욱 철저하려 애쓴다면 ‘김영란법’도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보다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되겠지요.

관련 자료들:

박영재 지음, <석가도 없고 미륵도 없네> (본북, 2011년)

설부천산雪覆千山: http://www.seondohoe.org/8503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http://www.seondohoe.org/9750

평상심으로 김영란법 돌파하기: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33658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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