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으로 김영란법 돌파하기
평상심으로 김영란법 돌파하기
  • 박영재 교수(서강대)
  • 승인 2016.09.1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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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23.

성찰배경: 우리 보통 사람들은 대개 황금, 권력, 명예에 대한 욕망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벽에 단단히 걸어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채우기 위해 온몸을 던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부정부패에 얽히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결국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부패지수가 높은 나라에 속하게 된 오늘날, 김영란법은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제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행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우리의 행동이 김영란법에 저촉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따지며 소극적으로 살 것이 아니라 탐진치 삼독三毒에서 자유로운 우리 본래의 청정한 ‘평상심平常心’을 회복해 이를 적극적으로 정면 돌파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을 이번 추석 연휴 동안 깊이 성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무문관無門關> 제19칙에 나오는 남전 선사께서 제자인 조주 스님에게 평상심의 체득을 다그치고 있는 가르침이 담긴 화두와 흔들림 없는 평상심으로 뇌물 공세를 지혜롭게 정면 돌파하며 가난한 백성을 위해 헌신했던 청렴한 소동파 일화 및 월급 이외에 생기는 부수입의 큰쓰임[大用]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평상심으로 김영란법 돌파하기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본칙本則: 남전南泉 선사에게 조주趙州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남전 선사가 대답하였다. “평상심이 도이니라.”
조주가 다시 물었다.
“(일상생활이 모두 도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향해 취해 닦아야겠습니까?”
남전 선사가 말하였다. “향하고자 하면 곧 어긋나느니라.”
조주가 다시 물었다. “(무언가를) 향하여 닦지 않는다면 어떻게 도를 알겠습니까?”
남전 선사가 말하였다. “도는 아는 데에도 속하지 않고 모르는 데에도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망령된 깨달음이며, 모른다는 것은 무기無記이니라. 참으로 향함 없는 도에 이르렀다면 오직 태허太虛와 같아서 확연하여 통활洞豁하리니, 무엇 때문에 굳이 시비할 것인가!” 조주가 이 말에 크게 깨달았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 가로되, 남전은 조주에게 발문을 당하여, 다만 기와가 깨지고 얼음 녹듯이 무너져버려 더 이상 어떤 설명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조주가 설령 이에서 깨달았다고 해도 다시 삼십년을 참구한 후에라야 비로소 진짜가 되리라.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
봄에는 백화만발하고 가을에는 달빛 밝으며,
여름에는 바람 시원하고 겨울에는 흰 눈 내리네.
만약 사소한 일조차 마음에 두지 않으면,
바로 이것이 인간세계의 좋은 시절이로구나.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 하유량풍동유설夏有凉風冬有雪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

군더더기: <무문관>의 게송 가운데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 게송은 무문혜개 선사께서 천령범사天寧梵思 선사의 게송 가운데 평이하게 느낄 수도 있는 있을 ‘재在’를, 걸어둘 ‘괘掛’로만 바꾸었는데도 그 어감은 완전히 다른 것 같습니다. 즉 우리가 고가의 미술품을 벽에 걸어두고 애지중지하며 감상하는 것을 연상한다면, 반대로 아무 것도 마음 벽에 걸어두지 않는다면 더 이상 사소한 일조차 집착할 일이 없게 될 것이고 그 결과 평상심이 흔들릴 일없게 될 것이니 유유자적 호시절을 누리게 되겠지요.

참고로 인간의 일상생활 자체를 진리[佛道]의 전개로 통찰한, 마조도일馬祖道一(709-788) 선사는 상당법어에서 평상심에 대해 상류층이니 서민층이니 하는 분별없이, 다음과 같이 제창하고 있습니다. “평상심이라고 하는 것은 조작이 없는 마음[無造作], 옳고 그름에 집착하는 일이 없는 마음[無是非],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일이 없는 마음[無取捨],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단멸한다느니 영원하다느니 하는 견해를 떠난 마음[無斷滅], 범부나 성인이라는 집착마저도 없는 마음[無凡無聖]이니라.”
뒤이어 제자 남전보원南泉普願(748-834) 선사가 ‘평상심이 바로 도[平常心是道]’라는 선어禪語를 제창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계승·전개하였던 것입니다.

뇌물공여자를 기부자로 바꾼 소동파의 지혜

지난 11번째 글에서 이미 소개드렸었지만 이 주제와 관련된 부분을 다시 인용해 살펴보겠습니다. 소동파가 항주에 부임했을 때, 중국 최초로 가난한 백성들을 거의 무료로 치료할 목적으로 지역 유지들의 후원을 받아 ‘안락방安樂坊’이란 사설 병원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운영자금이 바닥나면서 병원 운영을 위해 다시 기금 마련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무렵 한 지역 유지가 아들 결혼식 축의금 명목으로 뇌물성이 짙은 150냥의 은자를 주었는데,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난 소동파가 이 돈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자 오히려 돈 준 유지가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소동파로부터 기부금 확인서가 담긴 편지가 왔습니다. 거기에는, ‘자네의 이름으로 안락방을 확장하는데 잘 썼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동파 거사는 흔들림 없는 평상심을 유지하며 청렴한 관리로 한평생을 치열하게 이어갔기에 임종에 이르러서조차 당당하게 세 아들에게, ‘나는 일생동안 추호도 악행惡行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다음 절대로 지옥地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부디 울며불며 통곡痛哭하지 말라![오생무악吾生無惡 사필불타死必不墮 신무곡읍慎無哭泣]’는 최후의 한마디를 남기면서 물질적인 유산遺産이 아닌 정신적인 유훈遺訓을 남기고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군더더기: 사실 아직 기부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뇌물성이 짙은 선물을 받았을 때 흔들림 없는 평상심으로 소동파의 사례처럼 준 사람의 이름으로 공익법인 등에 기부하는 것도 김영란법을 정면돌파하며 조기 기부문화 정착을 위한, 지혜로운 한 방안이라 판단됩니다.

부수입의 큰쓰임[大用]

한편 비록 동파 거사와 같이 뛰어난 재가在家 선사禪師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얼마든지 우리보다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며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 서민의 경우 월급은 대개 노후대책 마련을 포함해 대부분 가족의 생계 및 문화시민으로서의 삶을 위해 쓰게 됩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 전문직 종사자들의 경우를 보기로 들면 자신의 주된 직업 이외의 일로 생기는 부수입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부수입에 집착하다 보면 본 직업에 소홀하게 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을 집행하는 고위 공직자들을 포함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는 각개각층의 부정부패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월급 이외의 부수입은 철저히 ‘봉사의 대가!’라고 마음먹고, 최소한의 필요경비를 제외하고 다시 이를 지진 등 재난을 당한 이웃돕기 등을 포함해 본인과 코드가 맞는 뜻있는 일을 위해 대부분 환원한다면, 우리 모두 청렴함은 잘 유지하면서도 힘닿는 데까지 함께 더불어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군더더기: 물론 비록 좋은데 쓸 부수입이 별로 없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월급에 의존하는 생활비 가운데에서도 불필요한 쓰임새에 관해 지혜롭게 통찰하고 이를 보다 철저히 절약함으로서 얼마든지 재물을 모을 수 있고 이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우리 모두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화두 ‘평상심시도’를 타파하고 평상심 회복과 유지에 온몸을 던져 남은 생애 동안 앞으로 다가오는 한가위 때마다 ‘지옥조선地獄朝鮮’이라느니 ‘극락조선極樂朝鮮’이라느니 ‘달을 봐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있지 말라!’느니 하는 따위의 이원적 분별심은 모두 내던져버리고 마음 벽에 사소한 일조차 걸어둔 것 없이 단박에 ‘추유월秋有月’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온전히 느끼며 인간세상 호시절을 만끽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 드려봅니다.

관련 자료들:
통보선의 달인, 소동파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9397

연말정산 환급액의 큰 쓰임
http://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408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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