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불교에 대해 갖는 시각이 저런 유물론에 빠진 환망공상의 불교인듯 하다.
한국불교가 기복불교로 빠진 병폐를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지만 참나 윤회의 부정은
수행이 없고 머리로만 이해한, 그 조차도 올바른 머리가 아니라 극단적인 유물론에 경도된
머리로 불교를 이해하니 벌어진 촌극과도 같다.
저 나이가 되도록 교수가 되고서도 이런 반쪽짜리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게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강병균교수는 대승불교를 내세우면서도 불보살님들이 상주하신다는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그저 환망공상으로 치부하여 기복불교와 귀신불교라고 폄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원래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고 지옥과 같은 고통에 빠진 타인을 구해주는 게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라고 합니다.
보살들을 귀신 취급하면서 그렇게 환망공상인 보살들의 동체대비의 자비심을 중생들이 현실적으로 일으켜야 할 자비심이라고 내세워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황망한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강교수가 대승경전의 보살들을 입에 담으니 하는 말입니다. 대승 경전을 언급하려면 제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골라 뽑아서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고 다른 부분은 미신불교니 귀신불교니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렇거든 경전 전체를 그렇게 보아서 대승경전의 보살을 입에 올리는 일을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환망공상이라고 비판을 해대는 사람이, 보살들을 황망공상의 귀신이라 하면서 그 자비심을 본받아 실천하지 못한다고 비난을 해서야...황망공상을 갖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인가?
<강병균교수>가 상견인 [참나]를 비판하는 것은 일견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강교수처럼 단견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중도에 벗어난 것으로서 잘못입니다.
부처님께서 상견과 함께 강병균교수처럼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단견을 부정하시고 경계하신 것은, 단견에 의한다면 그저 한 세상 버티고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국불교가 기복불교로 빠진 병폐를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지만 참나 윤회의 부정은
수행이 없고 머리로만 이해한, 그 조차도 올바른 머리가 아니라 극단적인 유물론에 경도된
머리로 불교를 이해하니 벌어진 촌극과도 같다.
저 나이가 되도록 교수가 되고서도 이런 반쪽짜리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게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