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편 내세워 귀신불교 참나불교 조장"
"방편 내세워 귀신불교 참나불교 조장"
  • 강병균 포항공대 교수
  • 승인 2016.09.27 10:25
  •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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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참나불교 윤회불교의 극복

참나불교 윤회불교의 극복

강병균/포항공대 교수

▲ 강병균 포항공대 교수.ⓒ불교닷컴

한반도가 지금처럼 중국보다 더 잘살 게 된 것은 통일신라 이후로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통일신라는 기후가 온화하고 자연이 아름다와서 그곳에 가면 고질병도 낫는다. 그래서 한번 그리 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신라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잘생겼다'고 아랍기록에 남아있읍니다. (이집트 국립도서관 자료 등, 정수일 선생의 발굴입니다.) 지금은, 2,300년 만에, 중국보다 네다섯 배나 잘삽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복지 어느 것 하나 탁월하지 않은 게 없읍니다. 용화세계처럼 집과 집은 서로 이어져있고, 길은 포장되어있고, 화장실은 수세식이고, 밤새 섭화들이 마을을 청소하고, 거리엔 가로등이 호박보석처럼 빛납니다. 한국사람들의 뛰어난 용모는 아시아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읍니다.

통일신라와 대한민국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읍니다. 통일신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이자 철학이자 인본주의 사상인 불교가 융성했고,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만개하고 있읍니다. 통일신라를 꽃피운 불교를 부흥시키면 서구선진국을 뛰어넘어서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읍니다. 서구 민주주의의 핵심사상인 자유 평등 박애는 이미 불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불교에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 들어있읍니다. 뿐만 아니라, 서구사회가 신을 믿고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고 대학살을 벌일 때 불교국가는 불교이름으로 그런 일을 벌인 적이 없읍니다.

그래서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 최대사건은 불교의 서양전파라고 평가하였고, 아인슈타인은 과학시대를 이끌어갈 종교는 불교라고 선언했읍니다.

"무아론의 괴상한 변형, 한국불교의 '참나'"

'일체 만물과 생명 현상 뒤에 불변하는 주제자로서의 실체가 없다'는 부처님의 무아론은 경천동지할 발견이었읍니다. 자그마치 2,500년 전의 일입니다. 그간은 너무 앞서가신 부처님 때문에, 그리고 무아론을 뒷받침할 과학이론이 없어서, 무아론이 괴상하게 변형이 되었읍니다. 그게 한국불교의 참나입니다.

서양은, 플라톤의 이데아적 영혼론의 영향을 받은, 유구한 역사의 유아론을 자랑합니다. 그 흔적이 350년 전까지, 근대수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의, '영육 이원론'으로 남아있었읍니다. 하지만 지금은, 뇌과학과 생물학의 발달로 인하여, 무아론은 부동의 진리로 자리잡아 가고 있읍니다. 그래서 미국과학자들은 뛰어난 학자일수록 무신론자이고 무아론자입니다. 특히 최상층인 노벨상후보자급의 한림원 과학자들은 거의가 무신론자들이고 무아론자들입니다. 이리된 데에는 1859년의 다윈의 진화론이 기폭제가 되었읍니다. 몸의 무아를 증명한 진화론은 현대뇌과학의 도움을 받아 유신론자들과 유아론자들을 일거에 쓸어버렸읍니다. 그 결과, 지금 서구사회에 기독교 신자가 크게 줄었읍니다.

승려들은, 우매한 민중이 무얼 알아 진리를 감당하겠느냐고 하며, 방편이라는 이름으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내세워 기복불교와 귀신불교와 참나불교를 조장합니다. 그리고 재물을 챙깁니다.

원래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고 지옥과 같은 고통에 빠진 타인을 구해주는 게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인데, 이 보살들은 롤모델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고 자기 잇속을 챙기는 수단으로 변질되었읍니다.

"방편 내세워 귀신불교 참나불교 조장"

지금 무식한 자들은 일부 승려들이지 신도들이 아닙니다. 신도들이 이들의 흉계와 마수에서 벗어나 자기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지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불교는 어렵지 않으며, 알고보면 선정보다 실행이 더 쉽읍니다. 무슨 수로 84,000경전을 다 공부하고 수십 년 장좌불와를 할 수 있겠읍니까? 하지만 우리가 지켜야할 것은, 단 한 줄 '8정도'입니다. 실행을 함으로써 살아있는 불교를 할 때, 우리는 삶의 지혜가 생기고 더 평화로와지고 더 행복해집니다.

인류역사에는 항상 리더역할을 하는 나라가 있었지만, 그 나라가 아주 큰 나라일 필요는 없었읍니다.

현대는 무력으로 남의 걸 빼앗는 시대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힘으로 생산성 향상과 신제품개발로 스스로 부를 이룩하는 시대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질병없는 장수를 선사할' 생명공학과 '노동력착취를 영구소멸시킬' 인공지능 연구는 철저한 무아론에 의거하고 있고, 세계로 확산되는 자연과 뭇 생명체에 대한 배려는 연기론에 입각한 자비심에 기초하고 있읍니다. 바햐흐로, 불법의 이해가 곧 세속의 번영을 가져오는 시대가 열리고 있읍니다.

우리정도 사이즈인 섬나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이 한때 세계역사를 주도했읍니다. 제국들을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위대한 문명을 일구어 세계사에 우리문명을, 더 나은 문명제국의 롤모델로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민주주의와 경제가 발달하고 불교가 아직 살아있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여러모로 너무 뒤처진 중국은 더 이상 우리의 극복대상이 아닙니다. 한번 가버린 제국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은 세계역사가 증명합니다.)

참된 연기무아론의 지혜와 자비의 불교를 따라가면 그 길로 이를 것이라 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옛길을 따라가면, 인류평화와 번영의 길로 갈 것이라 믿읍니다. 하지만, 이 길은 개인의 정체성 유지와 복을 추구하는 참나와 윤회론으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윤회론은 기본적으로 생물계 카스트제도, 종쇼비니즘, 성악설, 잔혹한 형벌적 법치주의이기 때문이고, 이미 사실로 입증확립된 진화론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이 원고는 9월 30일 오후 7시 서울 방배동 마지 아카데미홀에서 열릴 ‘Three Tenors 가을 밤 한국불교를 휘젖다’ 토론회에서 발표할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교수)의 발제문이다. 강병균 교수는 <불교닷컴>에 수년 간 연재한 글을 모아 <어느 수학자가 본 기이한 세상>을 출간해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강 교수는 ‘참나’ ‘윤회’는 없다고 단언한다. 한국불교 비판에서 교리 논쟁의 새로운 불을 붙인 이가 강병균 교수다. 그는 왜 ‘참나’를 찾는 현재 한국불교를 비판할까. 또 ‘윤회’는 없다고 단정할까. 비불교학자의 눈에 비친 한국불교의 현실과 교리 해석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쓰리 터너스 토론회’ 주최 측의 이해를 구해 발제문을 미리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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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2016-09-28 22:17:51
불교는 이론보다
행이다
지금 조계종을 불신한 이유
종단 고위직 승려들 행태를
보면 기가막히다
딸딸이 아빠가 수장이되고 쌍둥이 아빠가
용주사 주지되고 나체사진이 돌고있고 결혼서약서
까지 써준 승려가 본사주지 하고 비구니 자매 성취행
자가 본사주지 후보되고 처자식있는자가 방장되는
조계종 현실이 불교를 죽이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불쌍한 불자들이여
정신차리고 불자다운 불자 되어야 한다

재가불자 2016-09-27 15:24:57
정말 한심한 발언이다. 부처께서는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을 “순세외도”, 즉 유물론자들이라고 했고, 경계하라고 하셨다. 그들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물질적 즐거움과 행복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는, 존재하는 것은 원소들 뿐이고, 인간에게는 과거생도 내생도 없고, 어차피 죽으면 몸을 구성하던 원소들을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은 살아있을 때 최대한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했다. 언제부터 불법이 세속의 번영을 가져오는 시대가 되었는지...정말 말법 시대는 말법 시대인가 보다. 불법은 해탈의 가르침이고, 해탈은 삼사라, 즉 삼계로부터 영원히 벗어나는 것이다. 무슨 세속의 번영 같은 헛소리인지 모르겠다. 생명공학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에게서 법문을 들어야할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민주주의와 경제가 발달하고 불교가 아직 살아있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여러모로 너무 뒤처진 중국은 더 이상 우리의 극복대상이 아닙니다. 한번 가버린 제국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은 세계역사가 증명합니다.)”

강교수는 현실인식조차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지금 전 세계가 중국 때문에 벌벌 떨고 있는데, 이 좁은 한반도의 국민으로서 어떻게든 자부심과 긍정적 마인드를 갖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만족으로 눈을 감고 있다면 되겠는가! 한국의 불교는 아직 살아있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살아있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조선 왕조 500년의 억불정책과 해방이후의 혼란과 서양세력으로 인해서, 불교는 현재 너무나도 큰 후유증을 앓고 있다.

“참된 연기무아론의 지혜와 자비의 불교를 따라가면 그 길로 이를 것이라 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옛길을 따라가면, 인류평화와 번영의 길로 갈 것이라 믿읍니다. 하지만, 이 길은 개인의 정체성 유지와 복을 추구하는 참나와 윤회론으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윤회론은 기본적으로 생물계 카스트제도, 종쇼비니즘, 성악설, 잔혹한 형벌적 법치주의이기 때문이고, 이미 사실로 입증확립된 진화론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윤회론은 무아론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이다. 윤회론을 배제하면 무아론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제발 불교를 제대로 공부할 것을 권하고 싶다. 혼자 자기 입맛에 맞는 불교서적만 뒤적이지 말고, 기초부터 차근차근히 공부할 것을 권하고 싶다. 평생을 불교학에 전념한 불교학자라면 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강교수는 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기 입맛에 맞는 불교적 개념들을 취합해서 자신만의 불교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윤회는 강교수가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상관없이 존재하고, 적용된다. 그것은 인간이, 죽는다고 주장하든, 안 죽는다고 주장하든, 상관없이 죽는 것과 같다. 윤회는 절대적인 자연의 원리다. 문제는 윤회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선정을 이룰 때까지는 절대로 직접 알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그 전까지는 믿음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과법도 마찬가지다.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도 그런 차원에서 믿어야 할

재가불자 2016-09-27 15:25:59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도 그런 차원에서 믿어야 할 존재들이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이 알면 얼마나 알고, 인간의 지성으로 할 수 있는 얼마나 된단 말인가! 3,5 정도의 지진으로도 원전으로 인해서 전 국민이 공포감에 휩싸인다. 그것이 현재의 과학의 수준이다. 인간이 겪는 두려움과 고통은 매우 뿌리가 깊다. 진화론이나 인공지능을 적용해서 이해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인간은 죽는다는 것에 부처의 진정한 고민이 있었고, 해탈의 길이 거기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진화론과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불교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있다면, 그 만큼 인간이 덧없는 삶을 사는 존재이고, 무기력하고,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수많은 힘들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자각을 보다 더 뚜렷하게 해 주는 것이다.

단견에의한비판은 2016-10-03 04:37:43
<강병균교수>가 상견인 [참나]를 비판하는 것은 일견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강교수처럼 단견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중도에 벗어난 것으로서 잘못입니다.
부처님께서 상견과 함께 강병균교수처럼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단견을 부정하시고 경계하신 것은, 단견에 의한다면 그저 한 세상 버티고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재가불자 2016-09-27 14:43:14
“일체 만물과 생명 현상 뒤에 불변하는 주재자로서의 실체가 없다”는 말이 불교 경전 어디에 나오는지 묻고 싶다.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는 오온과 별개로 존재하는 개인적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일체 만물과 생명현상으로 확대 해석되었다. 오온을 떠나서 인간에게 자아라고 할 만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일체 만물과 생명 현상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인본주의적 사고이고, 말 그대로 자아의 망상이다. 누가 그런 주장을 “부처님의 무아론”이라고 정의내렸는지, 불교 공부를 좀 더 할 것을 권하고 싶다. 최소한 자신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수학이 수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불교에 대해서도 그 정도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온에 실재하는 자아가 없다는 것은 부처 이전에 이미 주장된 것이었고, 부처만의 경천 동지할 발견이 아니다.

“무아론을 뒷받침할 과학이론이 없어서, 무아론이 괴상하게 변형이 되었읍니다. 그게 한국불교의 참나입니다.”

과학을 통해서 불교를 이해하려고 무리수를 두다 보니, 이런 해괴한 주장이 나온다. 과학이론조차 진화하고 있고, 한 때 절대적으로 신뢰를 받던 과학이론이 나중에는 잘못된 오류에 근거한 과학이론이었음이 증명되면서, 폐기된다는 것을 안다면, 과학이론의 불완전성과 한계를 알 텐데, 과거에는 무아론을 뒷받침할 과학이론이 없었다면, 부처조차도 무아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부처님 당시의 과학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었는 생각해보라. 다시 말하면, 부처의 무아론은 과학의 도움이 없이 이해될 수 있고 깨달아질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의 도움이 없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 만큼 타고난 이해력과 명상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금은, 뇌과학과 생물학의 발달로 인하여, 무아론은 부동의 진리로 자리잡아 가고 있읍니다. 그래서 미국과학자들은 뛰어난 학자일수록 무신론자이고 무아론자입니다. 특히 최상층인 노벨상후보자급의 한림원 과학자들은 거의가 무신론자들이고 무아론자들입니다.”

불교의 무아론과 서양의 무신론이 동일하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데는 할 말이 없다. 부처의 가르침이 어렵기는 정말 어려운가 보다. 이 분의 뇌는 종교적 성찰이나 불교적 명상을 해낼 수 있는 뇌세포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무신론은 유신론과 대치되는 개념이고, 무아론은 유아론과 대치되는 개념이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설정된 개념을 동일한 맥락에서 섞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뇌과학과 생물학이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가르침이라도 된단 말인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그리고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서구의 유신론은 근본적으로 다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플라톤의 이데아=서양의 유신론↔과학자들의 무신론=불교의 무아론”

이것이 강교수가 이해하는 무아론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서양의 유신론의 차이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불교의 무아론은 오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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