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믿는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최후의 심판일에 사람은 누구나 예외없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여,
선인은 천국에서 낙을 누리고, 악인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문을 당한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최후의 심판일’에 일어날 (사람들의) 육체적 부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는 '부모도 자기도 평생 오로지 사람만 잡아먹고 산 식인종'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만약 잡아먹힌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사람들이 (식인종이 가져가 식인종의 몸이 된 자기들 피와 살과 뼈를 다 되찾아) 육체적으로 부활하면, 그 식인종은 자기 몫의 피와 살과 뼈가 없으므로 육체적으로 부활할 길이 없다. 그러면 이 악당 식인종은, 육체가 없으므로, '지옥에서 고문을 당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심각한 모순이 발생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옥에서의 고통은 '육체적 고문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이지, 정신적 고통이 아니다. 하나님이 죄인에 대해 아무리 화가 치민다 해도, 잘못을 뉘우치며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를 어떻게 계속해서 영원히 고문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옥에는 정신적인 고통이 없다. 이 세상에는, 정신적 고통은 충분히 있지만 육체적 고통은 그렇지 않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옥에서의 육체적 형벌은 효과가 사라질 것이다.)
'천하의 악인이 지옥형벌을 받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 토마스 아퀴나스를 몹시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아퀴나스가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은, 끝없이 자라는 손톱이나 머리카락에서 알 수 있듯이 평생 우리 몸을 구성했던 피와 살과 뼈는 충분히 많으므로, 식인종에게 먹힌 사람도 '먹히기 오래 전의 몸을 이용해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답이 옳건 그르건, 기독교역사상 최고의 신학자라는 명성에 걸맞은 천재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맹점이 있다. 단세포 수정란이 어미와 함께 (식인종에게) 먹히는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수정란은, 구성 세포가 하나뿐이므로, 부활할 몸을 이룰 여분의 세포가 없지 않은가? 아퀴나스가 난자와 정자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이 식인종 부활의 문제로 여전히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그가 지금 태어난다면 전혀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생물학의 발달로 '줄기세포배양'을 통해 새로운 장기를 만들 수 있으므로, 몸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꼭 죽은 몸의 세포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부 장기만 가능하지만, 과학자들의 전망에 의하면, 머지않아 모든 장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몸의 세포는 반년이면 모두 바뀌므로 영원히 같은 상태로 머무르는 세포 즉 몸은 존재하지 않기에, 부활할 몸을 만들 재료로서 죽은 순간의 몸(세포)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줄기세포가 만들어내는 (새) 세포이면 충분하다: 몸의 정체성인 유전자는, 전혀 변함이 없이, 여전히 보존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유전자의 존재를 몰랐고, 따라서 식인종이 사람을 잡아먹어도, 피해자의 몸이 제공하는 영양분만 취할 뿐이지 피해자의 유전자를 취하는 것이 아니므로, 식인종의 유전자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총명한 그가 이 사실만 알았어도, (최후심판 때의) 육체적 부활이라는 교리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논리적 모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예, 기독교 신앙 자체를 불합리한 망상이라고 내쳤을 가능성도 있다. '열악한 지적 환경에 살았던 옛날 사람의 말을 그대로 다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이런 사람은 몸은 21세기에 살아도 마음은 무지몽매한 과거에 산다. 종교계에는 이런 일이, 과거에도 지금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불교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은 다른 종교의 망상에는 배를 잡고 웃지만, 자기 종교에도 망상이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종교적 망상들은 대부분은 시공(時空 시대와 환경)의 한계로 인한 무지에서 생겨난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무지에서 발생한다. 종교인들은, 단순히 무지에 기초한 ‘망상 모음집’에 지나지 않는 자기들 경전에, '진리의 보고로서의 절대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맹종한다. 맹종의 대상으로서는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가 전형적인 예이다.
그가 쓴 수십 권짜리 신학대전은 수백년 동안 성경 다음으로 높은 권위를 누렸다. 하지만 '성사와 종말' 장에 나와 있는 천사의 종류와 계급 등의 내용은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은 내용으로서, 토마스 아퀴나스 자신의 환망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에서 얻은 조그만 옥수수알만 한 정보를 수미산만 한 초특대 환망공상으로 뻥튀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후의 심판과 (모든 사람의) 육체적 부활 역시 (다른 종교인들 눈에는) 환망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과학의 눈으로 보면 더욱 환망공상이다.
아퀴나스와 다른 의견을 지닌 신학자가 있었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윤회론을 믿었던, 초기 교부인 알렉산드리아 주교 오리겐(Origen, AD185~254)은 '부활하는 몸은 죽을 당시의 몸과 구조만 같으면 되지 같은 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소크라테스-플라톤식의 '이데아'주의자로서, 힌두교도들처럼 '영혼은 육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부분의 현대철학자들처럼, 몸이 없으면 영혼(의식)도 없다고 믿었다; 현대철학자들과 다른 점은, 그가 '의식은 머리가 아닌 심장에 있다'고 망상을 했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경우건 오리겐의 경우건, 몸의 틀을 유지하는 이데아 역할을 하는 것은 유전자이다. 즉 생명체의 이데아는 유전자이다. 단 유전자는 수백만, 수천만, 수억, 수십억 년의 장구한 세월을 거쳐 돌연변이를 통해서 변하므로, ‘공즉시유전자’이고 ‘유전자즉시공’이다: 空卽是遺傳子 遺傳子卽是空. 여기서 우리는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는 반야심경의 가르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윤회와 부활은 둘 다 유전자복제과정이다. (여기서 유전자는 생체유전자와 문화유전자를 말한다.) 윤회하고 부활하는 것은, 개체적인 유형의 생물학적인 몸과 집단적인 무형의 사회적인 몸이다. 유전자를 통해서, 불교와 기독교라는 이질적인 두 종교의 핵심교리인, 윤회와 부활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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