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립 동국대 학생들입니다. 종정스님을 뵙기 위해 150km를 걸어왔습니다.”
“학생들 불자 아니지요? 기독교인이지요?”
동국대 학생들이 20일 부산 해운정사에 도착했다. 문화재절도 이사장과 표절총장 선출로 불거진 학교 사태 해결을 위해 도보순례를 시작한지 5일 만이다. 지난 15일부터 학생들은 동국대 경주캠퍼스-불국사-백양사-통도사-내원사-범어사 등 150km를 걸었다. 스님과 신도를 만나 동국대 사태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안타까운 현실 전하려 왔는데
동국대 총학생회(회장 최광백)과 대학원총학생회(회장 최장훈), 경주캠퍼스 총학생회(회장 김중기)는 20일 부산 해운정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과의 면담을 촉구했다.
학생들은 ‘동국대 총장 선거 종단 개입, 절도 이사장, 논문표절 총장 이제 종정스님께서 답하셔야 한다’ 제하의 기자회견문에서 “이번 사태로 불교종립대학인 동국대 위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학생들은 불교와 스님에 대해 반감을 넘어 혐오스런 시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은 “일부 인사의 행태로 우리 불교계 전체가 오해받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조계종의 가장 큰 어른인 종정스님을 만나 불교종립대학의 안타까운 현실을 전하고 큰 스님의 책임 있는 대답을 듣고자 한다”고 했다.
“안거 중이라 스님 안 계셔” 학생들은 해운정사 원통보전을 찾아 3배를 했다. 종무소 직원에게 “종정스님을 친견하러 왔다”고 하니 돌아온 대답은 “학생들 불자 아니지요?”였다.
박대성 신도회장이 학생들을 만났다. 박 회장은 학생들에게 “선방을 운영하는 사찰이다. 안거중이라 스님은 안 계신다”고 했다.
박 회장은 “나도 대불련 활동을 했다. 학생들이 이런 일로 종정스님을 찾는 것은 결례이다. 종정은 선승으로서 상징성이 있는 것이다. 역대로 종립학교 구성원이 찾아와 인사한 적도 없다”고 했다.
박 회장이 물었다.
“학생들 종교가 뭐냐?”
최장훈 회장이 답했다.
“불교에 가까운 무교였다. 이번 사태로 불교와 멀어진 것 같다.”
“선배들은 누가 총장인지 안 따졌다” 박 회장은 “나는 (유신헌법이 정한)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사람이다. 선배들은 민주화를 외쳤지 누가 총장인지를 두고 소리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종정스님을 찾은 것은 선배인 내가 볼 때 예의가 아니다. 이런 모습으로 불쑥 나타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종정스님도 동국대 일은 다 알고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은 “동국대 일을 다 알고 있다면 우리가 왜 찾아올 수밖에 없는지도 잘 아실 것”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그런 것은 사회법이나 종헌‧종법에 호소해라. 종정스님에게 말할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최 회장은 “종도인 스님이 무슨 일을 저질러도 종정스님은 상관 없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불교 안 믿는다니 대화하기 어렵다” 박 회장은 “종립학교 학생들이라면 이전부터 종정스님과 왕래가 있었어야 했다. 일면불식이다가 불쑥 만나자는 것이 말이 되느냐. 교황청인들 이러면 만나주겠느냐”고 했다.
최 회장은 “우리가 예의가 없다는 이유로 종정스님이 우리를 만나지 않는 것은 불교계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방관하는 것이다”고 했다.
박 회장은 “종정스님 말씀은 선문답이다. 최 회장이 불교를 안믿는다니까 말하기 어렵다. 사상이 같아야 대화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경주캠퍼스 경영학과 강수현 학생회장이 “나는 불교집안에서 자란 불자이다. 내 말은 들어주겠느냐”며 “학생들은 지난 8개월 동안 호소했다. 하다하다 안 되서 150km를 걸어 종정스님을 찾아왔다. 불쑥 찾아온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고통받고 있다. 절실하다”라고 했다.
강 회장은 “어려서부터 스님들에게 ‘정직하게 바르게 착하게 살라’ ‘남의 것 훔치지 말라’ ‘비우고 살라’ 등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문화재절도 일면 스님이나 논문표절 보광 스님을 보고 스님들에게 크게 실망했다”고 했다.
“계시고 안계시고 떠나 친견 못 한다” 최 회장은 “종정스님이 해운정사에 안 계신 것이 맞느냐”고 재차 물었다.
박 회장은 “계시고 안계시고를 떠나 친견할 수 없다”고 했다.
최 회장은 “종정스님을 뵐 수 있다는 큰 기대를 하고 왔다. 밖에서 108배로 아쉬움을 달래겠다. 예의를 어떻게 지켜야할지 모르겠다. 고민하고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해운정사 원통보전 앞마당에서 108배를 하는 동안 비가 내렸다. 108배를 마친 학생들은 종무실을 찾아 다시 한 번 “종정스님이 계시느냐”고 물었다. 종무실에서는 “오전 일찍 나가셔서 안 계신다”고 했다.
학생들은 기자에게 “종정스님이 계신줄 알고 왔다. 그래서 수차례 물었던 것이다.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보순례 계획이 알려지자 방해가 극심했다. 사찰에서 숙식제공을 꺼린 것도 그 이유였던 것으로 안다. ‘종교가 뭐냐. 기독교인 아니냐’고 대뜸 묻는 것도 알만하다. 해도 해도 너무들 한다”고 했다.
5명으로 시작…우린 옳았다 지난 15일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도보순례가 시작될 때 5명이었다. 도보순례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에서 학생들이 내려왔다. 경주캠퍼스 학생들도 함께 걸었다.
(학생들 주장대로라면 누군가의 방해에 의해) 숙식은커녕 방문을 꺼리던 사찰도 직접 찾아가니 달랐다. 학생들은 문전박대를 당해도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불국사에서 “미래를 위해 이젠 화합하라”는 훈수를 들었다. 백양사에서 어렵게 주지스님을 만나 공감을 얻었다. 통도사에서 총무스님을 만나 격려 받았다. 내원사 주지스님에게 힘이 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범어사 종무실장을 만나 지지를 받고, 주지스님에게 학생들 의견을 잘 전달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학생들은 종정스님을 만나러 왔다가 이교도로 몰리고 부처님 전에 108배로 대신한 채 해운정사를 나왔다. 이들은 교육부가 총장인가를 1년째 미루고 있는 경북대와, 구성원들이 재단과 싸우고 있는 청주대를 찾아 힘을 보탠다며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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