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은 1396년(태조 4)에 건축을 시작하여 1398년(태조 7)에 완성되었다. 1447년(세종 29)에 개축하였으며, 1479년(성종 10)에도 보수공사가 있었고 1961∼1963년에 도 해체 수리가 있었다.
또한 숭례문은 당시 각희 스님이 설계와 시공의 총 책임자 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해체시 발견된 1396년 10월 6일자 상량문에는 대목이 법륜사의 각희(覺希)라고 명기돼 있다. 고려말 나옹 선사의 문하로 알려지고 있다.
4년 전 숭례문 화재 시 스님들과 시민들이 현장에서 재를 올리기도 했다.
서기를 일상에서 사용하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숭례문은 수백 년 역사의 보물로서 한국전통의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전통의 상징이어서 국보 1호이고, 전통의 방식으로 복원했다. 그렇다면 그 상량문의 모든 연호 또한 전통의 방식인 단기 또는 임진년 등 육십갑자로 사용해야 옳다 할 것이다.
아니면 단기나 육십갑자를 쓰고 괄호를 하고 서기를 넣으면 된다. 전통방식으로 건축하고서는 그 역사와 기록의 중심인 상량문을 서기로 하는 것은 어딘지 모순이다. 이는 숭례문을 외형만 전통방식으로 하고 그 정신은 바다 건너온 서구식으로 장식함과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혼’이 없다.
서기는 서력기원의 약칭이다.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연대를 표시하는 방식이다.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원 원년(1년)으로 하고 그 이전을 기원전(B.C. Before Christ 예수 이전), 이후를 기원후(A.D. Anno Domini 주의 해)라고 한다.
단기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기원전 2333년)을 원년으로 시간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기독교계에서는 단군을 우상이라고 부르며 단군상을 파괴하기 까지 했다. 설마 그러한 영향때문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작성자, 감수자, 문화재청 관계자의 역사의식과 문화재에 대한 가치, 철학이 의심받기 충분한 대목이다. 아울러 숭례문 자체를 모독하는 행위와 다름 아니다. 아울러 남대문시장 방향의 성곽의 일부 돌의 색깔과 모양도 너무나 제각각이다.
숭례문 화재당시 화재 진압은 파괴가 필수라는 기본적인 원칙을 명령할 식견 있는 책임자가 없어서 큰 손실을 입히더니 이제 상량문마저도 국가, 국민, 문화재의 정체성마저 훼손시키고 있다. 역사와 문화의식이 전무한 그 야말로 ‘야만’이라는 오명을 듣지 않을까 우려된다.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불교는 사회 현실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종교이다보니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것.
무지와 왜곡은 둘 다 나쁜 것이다. 스님 한 분 한 분이 개념을 좀 챙겨야 한다.
과거처럼 쌀 한되박 머리에 이고 불공 한 번 올린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시대는 아니잖나?
무지한 보살들이 그나마 지식인이라고 믿고 의지하던 시절의 승려가 아니다.
평균학력, 경제력에서 승려가 과거와 같은 기능의 스승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현실을 알지 못하면 세상 사람 앞에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지식없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건 오해다.
스님들이여~! 공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