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을 잃는 법입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해결하는 것도 ‘나’입니다. 내 길은 내가 잘 이끌어가야 합니다. 간절히 살피세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분명하게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면 그가 바로 대성공자입니다.
세상과 수행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일갈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 범일 보성 스님의 지혜와 가르침이 담긴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평생 산에서만 살아온 저자는 자비로운 법문을 통해 지친 마음을 놓아주고 오늘을 사는 힘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이 책에 담아 전한다.
1부 山에서 만난 사람들에서는 효봉 스님 손상좌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효봉 가풍과 떠나시던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또 오늘의 해인총림이 있기까지와 달라이 라마와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 山에 살며에서는 한국불교의 현주소와 가야 할 길에 대해 일갈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세상과 소통하는 일상의 언어를 통해, 지금 분명히 살지 않는다면 다음 시간은 없다며 오늘을 열심히 살 것을 강조한다. 3부 山에 사는 후학들에게에서는 절집에 사는 의미, 스승과 제자, 학문과 가르침에 대한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
절집에 사는 의미
오직 일대사一大事를 마치겠다는 일념으로
한집에 모여
같이 머리 깎고
같이 자고
같이 밥 먹는
이 일대사의 거처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청정승가의 표상으로 평가받는 송광사에는 방장 스님의 가르침이 있다.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정靜을 잃지 않는 힘. 그가 총림을 이끄는 힘은 바로 계율戒律이다.
계정혜에 대하여
계율戒律은 집을 지을 때 터를 닦는 것과 같습니다.
선정禪定은 집을 지을 재료를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智慧는 도편수가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선정이 무너져 번뇌가 움직이는 것이 ‘죄’이고, 지혜가 움직이는 것이 ‘깨달음’이며, 번뇌의 도적을 잡는 것이 ‘계율’입니다.
도적에게 죄를 묻는 것이 ‘지혜’이고, 도적에게 죄를 주는 것이 ‘선정’이며, 그 모든 것을 제어하는 것이 ‘계율’입니다.
보성 스님은 효봉 스님(曉峰·1880~1966년)의 말씀을 늘 새기고 있다며 옛 어른 모습 그대로 살면 틀림이 없다고 강조한다. 보성 스님은 효봉 스님의 손상좌다.
효봉 스님 신발은 왼쪽 오른쪽이 없다
효봉 스님 시봉할 때 얘깁니다. 하루는 보니까 신발이 잘못 놓여 있어요. 왼쪽 오른쪽이 바뀌어 있더군요. 바로 놓아드렸지요. 그런데 또 보면 거꾸로 앉아 있어요. 속으로 ‘이 어른이 왼쪽 오른쪽 분간도 못 하나’ 하고 생각하면서 또 바꿔놨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냥 내가 하는 대로 가만 놔둬라.”
“스님은 오른쪽 왼쪽도 모르세요?”
“내가 그걸 모를 리 있나.”
“그럼 신발을 왜 반대로 놓으세요?”
“다 이유가 있지.”
“무슨 이유요?”
“바로만 신으면 바깥쪽으로만 닳잖아.”
그제야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그렇지만 어디 그냥 넘어갈 수 있나요. 한 마디 했죠.
“스님, 그러면 제가 가끔씩 박박 문질러 드릴까요.”
“이놈의 자식, 내 신은 내가 알아서 해.”
하시면서 껄껄 웃으시더라고요.
이렇게 중노릇을 배웠습니다.
가난은 그 자체로 훌륭한 수행이라고 말하는 스님은 소유한 것이라곤 남도 주지 못할 만큼 낡은 옷 보따리가 전부다. 특히 게으름을 용서하지 않는다. 수행이든 울력이든 공양이든 늘 솔선수범하며 맑게 소박하게 생활하기 때문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상좌 스님들은 입을 모은다.
보성 스님은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자신의 삶을 맑게 소박하게 가꿔간다면 그것이 참다운 나에게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간절히 남을 따라 찾지 말라. 점점 나하고 멀어간다.
지금 내가 스스로 가니, 가는 곳마다 만나는구나.
본문 중에서
원과 기도
원願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기도를 많이 하면
아만我慢만 늘어나게 됩니다.
하심2
상대에게 나를 낮춘다는 것은
반쯤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걷는 법
요즘 사람들은 걸어다니면서도 걸을 줄 모릅니다.
허공에 뜬 것처럼 허둥댑니다.
걸을 때
발바닥이 땅에 닿는 줄 아십니까?
그러면 당신은 걸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밥통 깨는 얘기
당장 밥 한 그릇 못 얻어먹고 쫓겨난다 하더라도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요즘 부처님 오신 날을 보면 꼭 자기 아비, 자기 할아비 생일 팔아먹는 형국입니다.
불자들에게 사월 초파일은 부모 생일과 같은 날입니다. 모두가 함께 즐겁게 지내면서 부처님 오신 참뜻을 새겨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주지 스님이 어디 가서 탁발해다가 신도들 좀 먹이면 어떻습니까? 내가 중이 된 것도 부처님 덕인데 아무리 절 살림이 어렵더라도 찾아오는 신도들한테 밥 한 끼라도 따뜻하게 대접해드릴 수 없을까 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러한 어른이다’ 하는 말을 들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등 값이 얼마나 들어왔나 따지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이런 소리 하면 ‘저 노인네 남의 밥통 다 깨네’ 하고 야단들일지도 모르겠습니만, 이 얘기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범일 보성│203쪽│1만원│Y브릭로드│02-3670-1090│
어이 할아범 제발 송광사 절이나 좀 지키고 살어.
방장이면 진득하니 방에 처박혀 사는 맛이 있어야지, 맨날 부산 관음사로 뽀로록 달려가서 보살탱이들 보고 안마나 하라하고 그게 중노릇 제대로 하는 것인지 제대로 말이나 한 번 해보구려.
입만 살아서 나불대긴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