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의 현손'은 쌍계사 '진감 선사'
'조계의 현손'은 쌍계사 '진감 선사'
  • 조현성 기자
  • 승인 2024.03.08 18:1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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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국보 '진감선사대공영탑비' 최초 완역과 강의 책으로
덕민 스님의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강의' 펴내
국보 제47호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사진=쌍계사)



신라시대 왕명을 받고 쌍계사 비문을 쓴 최치원이 쌍계사 창건조사 진감 선사 혜소(774~850)를 '조계의 현손'이라고 적었다.

단편적으로 전해졌던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가 완역되면서 재조명 받게된 사실이다. 쌍계사는 학자들에게도 난해했던 이 비문을 원문 직역 평성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본사 쌍계사(주지 영담 스님)는 최근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강의>를 펴냈다.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국보 제47호)는 쌍계사 창건주 진감선사 혜소의 덕을 기려 세운 탑비로, 887(진성여왕 1)년 세워졌다. 

진감 선사는 804(애장왕 5)년 당나라로 가서 신감대사를 은사로 출가해 830(흥덕왕 5)년 조계육조선사의 법맥을 잇고 신라로 돌아왔다. 진감 선사는 흥덕대왕(826-836재위), 민애대왕(838-839재위), 문성왕(839-857재위), 헌강왕(875-886재위), 정강왕(886-887재위) 등 신라 다섯 임금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다가, 77세 지금의 쌍계사인 옥천사에서 입적했다. 

헌강왕은 885년 혜소 스님에게 '진감 선사' 시호를 내리고, '진감선사대공영탑'이라는 탑호를 내려 탑비를 세우게 했다. 이 비석의 글은 왕명으로 최치원이 짓고 쓴 사산비명四⼭碑銘) 가운데 하나로, 당대의 문장 연구와 불교사 연구의 중요자료이다.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강의>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전해졌던 비문을 덕민 스님(기림사 성림금강학림 학장)이 최초 완역하고 강의한 책이다.

책은 쌍계사 개산과 창건, 중창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최치원이 지은 비문 기록을 통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비문 일부(사진=쌍계사)



최치원은 비문에서 쌍계사를 '호로병 가운데 별천지가 쌍계사(壺中別有天地)'라고 묘사했다. 쌍계사가 별천지 무릉도원이라는 표현이다. 

쌍계사는 봄 계곡에는 꽃이 화려하고, 여름에는 우거진 소나무 소리에 울려퍼지는 비파소리가 있고, 가을 골짜기에는 달이 휘영청 밝고, 겨울에는 산묏부리에 눈이 쌓여있다고 했다. 따라서 별천지는 지리산 화개골 전체가 아니라, 바로 쌍계사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이 최치원의 비문을 통해 밝혀졌다.

최치원은 비문에서 “굴지법윤(屈指法胤)하면 즉선사(則禪師)는 내조계지현손(乃曹溪之玄孫)이라”고 했다. 이는 진감 선사의 법윤, 즉 법의 서열을 가리켜본즉, 진감은 조계육조 스님의 현손이라는 말이다. 즉 남악회향, 마조도일, 창주신감으로 이어지는 육조스님의 법을 이었다는 것이다. 

조계의 현손, 즉 진감 선사가 육조 스님의 법을 이었다는 표현은 신라시대 887년 최치원에 의해 최초로 기록됐다. 
국보 제47호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사진=쌍계사)

신라시대 왕명을 받고 쌍계사 비문을 쓴 최치원이 쌍계사 창건조사 진감 선사 혜소(774~850)를 '조계의 현손'이라고 적었다.

단편적으로 전해졌던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가 완역되면서 재조명 받게된 사실이다. 쌍계사는 학자들에게도 난해했던 이 비문을 원문 직역 평성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본사 쌍계사(주지 영담 스님)는 최근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강의>를 펴냈다.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국보 제47호)는 쌍계사 창건주 진감선사 혜소의 덕을 기려 세운 탑비로, 887(진성여왕 1)년 세워졌다. 

진감 선사는 804(애장왕 5)년 당나라로 가서 신감대사를 은사로 출가해 830(흥덕왕 5)년 조계육조선사의 법맥을 잇고 신라로 돌아왔다. 진감 선사는 흥덕대왕(826-836재위), 민애대왕(838-839재위), 문성왕(839-857재위), 헌강왕(875-886재위), 정강왕(886-887재위) 등 신라 다섯 임금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다가, 77세 지금의 쌍계사인 옥천사에서 입적했다. 

헌강왕은 885년 혜소 스님에게 '진감 선사' 시호를 내리고, '진감선사대공영탑'이라는 탑호를 내려 탑비를 세우게 했다. 이 비석의 글은 왕명으로 최치원이 짓고 쓴 사산비명四⼭碑銘) 가운데 하나로, 당대의 문장 연구와 불교사 연구의 중요자료이다.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강의>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전해졌던 비문을 덕민 스님(기림사 성림금강학림 학장)이 최초 완역하고 강의한 책이다.

책은 쌍계사 개산과 창건, 중창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최치원이 지은 비문 기록을 통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사진=쌍계사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비문 일부(사진=쌍계사)

최치원은 비문에서 쌍계사를 '호로병 가운데 별천지가 쌍계사(壺中別有天地)'라고 묘사했다. 쌍계사가 별천지 무릉도원이라는 표현이다. 

쌍계사는 봄 계곡에는 꽃이 화려하고, 여름에는 우거진 소나무 소리에 울려퍼지는 비파소리가 있고, 가을 골짜기에는 달이 휘영청 밝고, 겨울에는 산묏부리에 눈이 쌓여있다고 했다. 따라서 별천지는 지리산 화개골 전체가 아니라, 바로 쌍계사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이 최치원의 비문을 통해 밝혀졌다.

최치원은 비문에서 “굴지법윤(屈指法胤)하면 즉선사(則禪師)는 내조계지현손(乃曹溪之玄孫)이라”고 했다. 이는 진감 선사의 법윤, 즉 법의 서열을 가리켜본즉, 진감은 조계육조 스님의 현손이라는 말이다. 즉 남악회향, 마조도일, 창주신감으로 이어지는 육조스님의 법을 이었다는 것이다. 

조계의 현손, 즉 진감 선사가 육조 스님의 법을 이었다는 표현은 신라시대 887년 최치원에 의해 최초로 기록됐다. 

쌍계사는 "오늘날 조계종 종조는 도의 선사이지만, 이미 신라시대 진감 선사가 '조계의 현손'이라고 평가 받았다. 이는 조계종단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일해덕민 스님은 강의를 통해 "쌍계사 개산조사인 삼법대비화상, 창건조사 진감 선사와 함께 중창조사인 고산혜원 선사를 조석예불에서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고산혜원 선사(1933~2021)는 1975년 삼심산 쌍계산문에 들어와 입적 때까지 46년간 주석하며 폐허에 가까웠던 쌍계사를 일신한 쌍계사 중창주이다. 고산혜원 선사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불식촌음(不息寸陰)을 고산가풍으로 세우고, 쌍계사 창건이념인 선, 교, 율, 차와 범패 사상을 실천한 선지식이었다.

한편, 쌍계사는 오는 20일 오전 9시 30분 경내 부도전 팔영루에서 쌍계사 중창주 고산대선사 열반 3주기 다례를 봉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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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숫디막가 2024-03-09 12:34:01
역시 이 나라에는 불교는 없고 조사교만 존재한다 승복입은 유생들은 이제 그만 환속하자

無影塔 2024-03-09 06:59:46
그럼 조계 종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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