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44. 마음을 열면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44. 마음을 열면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4.01.08 1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 만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잠자리
눈 두 개로 보는 사람
보는 세상은 달라도 행복은 하나

눈이 크다고 세상을 넓게 보는 것이 아니듯
사는 아파트 평수가 작다고 꿈도 작은 것이 아니다

펜트하우스에 살아도 지옥일 수 있고
지하 방에 살아도 천국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변
마음을 꺼내 보일 수도 없고 내가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 내 속 썩는 걸 누가 알아. 호주머니처럼 뒤집어 보일 수 있다면 보이고 싶다. 우리가 답답할 때, 의심을 받을 때 많이 말하는 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입을 꾹 닫고 있으면 네 마음을 어떻게 알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보통 말로 눈빛으로, 눈길로, 손짓으로, 표정으로 드러낸다. 아니 다른 표현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편지를 써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연애편지를 잘 쓰는 아이들은 인기가 좋았다. 나도 글을 잘 쓴다는 이유로 연애편지 대필을 주문받은 적은 있지만 써준 적은 없는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스웨덴에 여학생이랑 국제 펜팔을 했다. 영어를 못하는 데 펜팔을 하려니 사전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고 내용을 알기 위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잘 안 풀리면 응한이라는 친구에게 이거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 친구도 내 국제 펜팔의 내용을 잘 알고 있고 사실 별거 없었다. 그냥 안부를 묻는 정도이고 일상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말이 다름에서 오는 답답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국내 펜팔로 바꿔서 국내 여학생들과 편지를 나누다 보니 선물도 보내고 국제 펜팔보다는 훨씬 마음을 전하기가 쉬웠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 이렇게 속이 후련한 것인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말로는 잘 못할 말도 글로는 술술 잘 써지는 것도 있었다. 여동생이 없어서 오빠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부러웠는데 편지로라도 오빠라고 불러 주니 기분이 좋았다.

중학교 졸업하고 주산 학원과 부기 학원, 그리고 합기도 학원에 다닐 때도 여학생이 많았지만 내성적이라 말도 잘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이었고, 문예반은 여학생이 대부분이었다. 1학년도 3학년 졸업 할 때까지 문예반 반장을 하면서 선생님 대신 수업을 할 때도 많아서 여학생들과 같이 있었지만, 여학생이라기보단 동료 의식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믿게 되려면 일단 눈으로 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것에는 선입견이 잔뜩 들어간다. 그리고 그동안 경험이 덧붙여지고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선입견과 나의 경험치 등으로 남을 판단한다. 물론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면서 조금의 시간을 함께하고는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 학교 즉 학연과 혈연, 지연 등을 물어보면서 공통 분모를 찾게 된다. 아무리 찾아도 공통 분모가 없으면 종교, 군대 등등 인연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와서 산지 어언 30여 년이 됐다. 정말 시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난 이민 올 때 600만 원 정도를 가지고 왔는데 그 돈으로 후불로 지급하기로 한 이삿짐 비용과 렌트비와 일주일 호텔비를 내고 먹을 거 사 먹고 하니 2달 렌트비 내면 돈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그 중엔 자전거를 산 것과 소파를 산 것, 그리고 중고 재봉틀을 산 것이었다. 자전거는 자동차 면허도 없고 당장 움직여야 하니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산 것이고 소파는 짐도 오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는 데다가 짐이 와도 소파는 없었기 때문이다. 재봉틀은 이민을 와서 보니 옷도 비싸고 마음에 드는 것도 없고 옷감으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아내 말에 덜컥 중고 재봉틀을 샀다. 자전거는 이웃집에 아저씨가 겨울에 자전거 타기 힘드니 반납하고 돈으로 바꾸라고 조언했지만 바꾸지 않았고 소파는 그래도 가격 대비 잘 샀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가죽으로 사는 것이 나았는데 천으로 사서 때가 껴 안 좋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재봉틀은 다양한 기능이 있는 것이었는데 아내가 다양한 기능이 있어서 더 불편하니 가서 반납하라고 해서 가져가니, 파이널 세일은 리턴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쓰지도 못하고 얼마 전까지 가지고 있다가 결국은 기부하고 말았다. 피아노도 그때만 해도 피아노 레슨이 한창 유행할 때이고 우리 아이들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중고 피아노를 샀는데 아이들도 우리 부모도 피아노엔 관심이 없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아주 작은 것도 자주 소통하면서 사고, 구매하는 것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럼에도 어떤 것을 구매할 때 두 사람 마음을 맞추기 힘드니 그냥 사는 경우가 더 많다. 소통은 마음을 여는 일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시작인 셈이다. 마음을 열지 않고 그냥 무심결에 대답하듯 무심하게 대답하는 것은 소통에 가장 치명적이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사무적인 일이야 어떻게 된다고 해도 중요한 순간에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로 인해 더 큰 오해와 불신이 쌓이게 된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함께 일을 하거나 함께 살아도 서로 모르는 것이 많을 수 있다. 설령 서로 마음을 열었더라도 오랜 시간 서로 만나지 않고 떨어져 있으면 서먹하고 통하지 않는데 하물며 서로 소통이 잘 안 되는데 그냥 같이 일하거나 살았다고 한들 나중에 만나도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 없고 녹음기도 없고 CCTV도 없던 시절엔 말만으로 계약해 속 썩이던 사람도 많았다.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야 하면서 말이다. 계약서를 썼더라도 법적 효력이 있니 없니 다투기도 하면서. 녹음기로 녹음해도 불법 녹음이라 안 된다고 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감으로 수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증인의 증언은 얼마든 조작될 수 있는데 증거 없이 증인의 말만으로 인생이 바뀌기도 했다. 최근에 각종 과학기술의 발달과 CCTV나 스마트폰, 녹음기들 다양한 기록물이 있고, DNA검사를 통해 범인을 잡기도 한다. 어릴 때 헤어진 아들, 딸이나 부모, 형제를 찾기도 한다.

옛날에 소통의 방법이 직접 대화나 전화 통화, 편지를 통한 대화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인터넷을 통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대화하고 상상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물론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실제 거리는 멀지만 정신적이나 마음으로는 아주 가까이 있는 친구 같은 착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당장 내가 아프면 멀리 있는 형제나 부모는 아무것도 못 해 주지만, 가까이 이웃이 있다면 이웃이 돌봐 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유가 소통 부재의 시대, 당연히 서로 모른다. 그리고 층간소음, 쓰레기 문제 등으로 이웃과 다투지 않으면 다행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되기보단 나에게 피해 입히는 존재로 각인되기 쉽다. 저 사람이 내가 명품 옷을 안 입고 다닌다고 무시하네, 차가 좋은 차가 아니라고 무시하는 주차 요원하고 같은 눈초리를 느끼고 “흥”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잠자리처럼 많은 눈을 가지고 상세히 볼 수 있다고 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두 개의 눈으로 보는 사람보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따사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도덕책을 봐서 아는 것과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은 양심, 마음에 의해서이니까 아는 것과는 별개이다.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은 나쁘지만 죄인 줄 알고 죄를 짓는 것은 더 나쁘다. 세계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본다고 해서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아집만 더 키울 수도 있다. 나는 다 보았다. 너는 가보지도 않았으니 말할 자격조차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예전에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남대문에 문지방이 있니 없니로 싸우다 가보지 않은 사람이 이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봤어도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면 문지방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커다란 대저택에 수많은 일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산다고 날마다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하 방에 산다고 날마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경이 좋다면 일단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더 좋은 것 또한 사실이다.

부처님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예수님도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부처도 예수도 종교의 틀에서 신으로 여기면서 오랫동안 동양과 서양의 주 종교적 인물이었다. 하지만 서양의 종교가 동양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부처님을 버리고 예수를 부른다. 예수는 지금도 교회 안에 계신다고 믿으면서 사찰에 모신 부처님은 돌이거나 나무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닫고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불교와 기독교 신자가 만나면 대화가 안 된다. 마음이 닫혔으니 대화가 될 리가 없다. 마음을 열면 그곳이 천국임을 모르고 있다.

--------------------

 

삼 만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잠자리
눈 두 개로 보는 사람
보는 세상은 달라도 행복은 하나

눈이 크다고 세상을 넓게 보는 것이 아니듯
사는 아파트 평수가 작다고 꿈도 작은 것이 아니다

펜트하우스에 살아도 지옥일 수 있고
지하 방에 살아도 천국이 되기도 한다.

 





 

삼 만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잠자리
눈 두 개로 보는 사람
보는 세상은 달라도 행복은 하나

눈이 크다고 세상을 넓게 보는 것이 아니듯
사는 아파트 평수가 작다고 꿈도 작은 것이 아니다

펜트하우스에 살아도 지옥일 수 있고
지하 방에 살아도 천국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변
마음을 꺼내 보일 수도 없고 내가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 내 속 썩는 걸 누가 알아. 호주머니처럼 뒤집어 보일 수 있다면 보이고 싶다. 우리가 답답할 때, 의심을 받을 때 많이 말하는 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입을 꾹 닫고 있으면 네 마음을 어떻게 알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보통 말로 눈빛으로, 눈길로, 손짓으로, 표정으로 드러낸다. 아니 다른 표현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편지를 써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연애편지를 잘 쓰는 아이들은 인기가 좋았다. 나도 글을 잘 쓴다는 이유로 연애편지 대필을 주문받은 적은 있지만 써준 적은 없는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스웨덴에 여학생이랑 국제 펜팔을 했다. 영어를 못하는 데 펜팔을 하려니 사전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고 내용을 알기 위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잘 안 풀리면 응한이라는 친구에게 이거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 친구도 내 국제 펜팔의 내용을 잘 알고 있고 사실 별거 없었다. 그냥 안부를 묻는 정도이고 일상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말이 다름에서 오는 답답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국내 펜팔로 바꿔서 국내 여학생들과 편지를 나누다 보니 선물도 보내고 국제 펜팔보다는 훨씬 마음을 전하기가 쉬웠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 이렇게 속이 후련한 것인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말로는 잘 못할 말도 글로는 술술 잘 써지는 것도 있었다. 여동생이 없어서 오빠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부러웠는데 편지로라도 오빠라고 불러 주니 기분이 좋았다.

중학교 졸업하고 주산 학원과 부기 학원, 그리고 합기도 학원에 다닐 때도 여학생이 많았지만 내성적이라 말도 잘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이었고, 문예반은 여학생이 대부분이었다. 1학년도 3학년 졸업 할 때까지 문예반 반장을 하면서 선생님 대신 수업을 할 때도 많아서 여학생들과 같이 있었지만, 여학생이라기보단 동료 의식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믿게 되려면 일단 눈으로 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것에는 선입견이 잔뜩 들어간다. 그리고 그동안 경험이 덧붙여지고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선입견과 나의 경험치 등으로 남을 판단한다. 물론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면서 조금의 시간을 함께하고는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 학교 즉 학연과 혈연, 지연 등을 물어보면서 공통 분모를 찾게 된다. 아무리 찾아도 공통 분모가 없으면 종교, 군대 등등 인연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와서 산지 어언 30여 년이 됐다. 정말 시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난 이민 올 때 600만 원 정도를 가지고 왔는데 그 돈으로 후불로 지급하기로 한 이삿짐 비용과 렌트비와 일주일 호텔비를 내고 먹을 거 사 먹고 하니 2달 렌트비 내면 돈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그 중엔 자전거를 산 것과 소파를 산 것, 그리고 중고 재봉틀을 산 것이었다. 자전거는 자동차 면허도 없고 당장 움직여야 하니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산 것이고 소파는 짐도 오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는 데다가 짐이 와도 소파는 없었기 때문이다. 재봉틀은 이민을 와서 보니 옷도 비싸고 마음에 드는 것도 없고 옷감으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아내 말에 덜컥 중고 재봉틀을 샀다. 자전거는 이웃집에 아저씨가 겨울에 자전거 타기 힘드니 반납하고 돈으로 바꾸라고 조언했지만 바꾸지 않았고 소파는 그래도 가격 대비 잘 샀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가죽으로 사는 것이 나았는데 천으로 사서 때가 껴 안 좋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재봉틀은 다양한 기능이 있는 것이었는데 아내가 다양한 기능이 있어서 더 불편하니 가서 반납하라고 해서 가져가니, 파이널 세일은 리턴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쓰지도 못하고 얼마 전까지 가지고 있다가 결국은 기부하고 말았다. 피아노도 그때만 해도 피아노 레슨이 한창 유행할 때이고 우리 아이들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중고 피아노를 샀는데 아이들도 우리 부모도 피아노엔 관심이 없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아주 작은 것도 자주 소통하면서 사고, 구매하는 것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럼에도 어떤 것을 구매할 때 두 사람 마음을 맞추기 힘드니 그냥 사는 경우가 더 많다. 소통은 마음을 여는 일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시작인 셈이다. 마음을 열지 않고 그냥 무심결에 대답하듯 무심하게 대답하는 것은 소통에 가장 치명적이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사무적인 일이야 어떻게 된다고 해도 중요한 순간에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로 인해 더 큰 오해와 불신이 쌓이게 된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함께 일을 하거나 함께 살아도 서로 모르는 것이 많을 수 있다. 설령 서로 마음을 열었더라도 오랜 시간 서로 만나지 않고 떨어져 있으면 서먹하고 통하지 않는데 하물며 서로 소통이 잘 안 되는데 그냥 같이 일하거나 살았다고 한들 나중에 만나도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 없고 녹음기도 없고 CCTV도 없던 시절엔 말만으로 계약해 속 썩이던 사람도 많았다.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야 하면서 말이다. 계약서를 썼더라도 법적 효력이 있니 없니 다투기도 하면서. 녹음기로 녹음해도 불법 녹음이라 안 된다고 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감으로 수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증인의 증언은 얼마든 조작될 수 있는데 증거 없이 증인의 말만으로 인생이 바뀌기도 했다. 최근에 각종 과학기술의 발달과 CCTV나 스마트폰, 녹음기들 다양한 기록물이 있고, DNA검사를 통해 범인을 잡기도 한다. 어릴 때 헤어진 아들, 딸이나 부모, 형제를 찾기도 한다.

옛날에 소통의 방법이 직접 대화나 전화 통화, 편지를 통한 대화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인터넷을 통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대화하고 상상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물론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실제 거리는 멀지만 정신적이나 마음으로는 아주 가까이 있는 친구 같은 착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당장 내가 아프면 멀리 있는 형제나 부모는 아무것도 못 해 주지만, 가까이 이웃이 있다면 이웃이 돌봐 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유가 소통 부재의 시대, 당연히 서로 모른다. 그리고 층간소음, 쓰레기 문제 등으로 이웃과 다투지 않으면 다행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되기보단 나에게 피해 입히는 존재로 각인되기 쉽다. 저 사람이 내가 명품 옷을 안 입고 다닌다고 무시하네, 차가 좋은 차가 아니라고 무시하는 주차 요원하고 같은 눈초리를 느끼고 “흥”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잠자리처럼 많은 눈을 가지고 상세히 볼 수 있다고 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두 개의 눈으로 보는 사람보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따사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도덕책을 봐서 아는 것과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은 양심, 마음에 의해서이니까 아는 것과는 별개이다.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은 나쁘지만 죄인 줄 알고 죄를 짓는 것은 더 나쁘다. 세계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본다고 해서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아집만 더 키울 수도 있다. 나는 다 보았다. 너는 가보지도 않았으니 말할 자격조차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예전에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남대문에 문지방이 있니 없니로 싸우다 가보지 않은 사람이 이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봤어도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면 문지방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커다란 대저택에 수많은 일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산다고 날마다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하 방에 산다고 날마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경이 좋다면 일단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더 좋은 것 또한 사실이다.

부처님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예수님도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부처도 예수도 종교의 틀에서 신으로 여기면서 오랫동안 동양과 서양의 주 종교적 인물이었다. 하지만 서양의 종교가 동양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부처님을 버리고 예수를 부른다. 예수는 지금도 교회 안에 계신다고 믿으면서 사찰에 모신 부처님은 돌이거나 나무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닫고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불교와 기독교 신자가 만나면 대화가 안 된다. 마음이 닫혔으니 대화가 될 리가 없다. 마음을 열면 그곳이 천국임을 모르고 있다.

--------------------

#작가의 변
마음을 꺼내 보일 수도 없고 내가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 내 속 썩는 걸 누가 알아. 호주머니처럼 뒤집어 보일 수 있다면 보이고 싶다. 우리가 답답할 때, 의심을 받을 때 많이 말하는 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입을 꾹 닫고 있으면 네 마음을 어떻게 알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보통 말로 눈빛으로, 눈길로, 손짓으로, 표정으로 드러낸다. 아니 다른 표현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편지를 써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연애편지를 잘 쓰는 아이들은 인기가 좋았다. 나도 글을 잘 쓴다는 이유로 연애편지 대필을 주문받은 적은 있지만 써준 적은 없는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스웨덴에 여학생이랑 국제 펜팔을 했다. 영어를 못하는 데 펜팔을 하려니 사전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고 내용을 알기 위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잘 안 풀리면 응한이라는 친구에게 이거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 친구도 내 국제 펜팔의 내용을 잘 알고 있고 사실 별거 없었다. 그냥 안부를 묻는 정도이고 일상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말이 다름에서 오는 답답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국내 펜팔로 바꿔서 국내 여학생들과 편지를 나누다 보니 선물도 보내고 국제 펜팔보다는 훨씬 마음을 전하기가 쉬웠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 이렇게 속이 후련한 것인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말로는 잘 못할 말도 글로는 술술 잘 써지는 것도 있었다. 여동생이 없어서 오빠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부러웠는데 편지로라도 오빠라고 불러 주니 기분이 좋았다.

중학교 졸업하고 주산 학원과 부기 학원, 그리고 합기도 학원에 다닐 때도 여학생이 많았지만 내성적이라 말도 잘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이었고, 문예반은 여학생이 대부분이었다. 1학년도 3학년 졸업 할 때까지 문예반 반장을 하면서 선생님 대신 수업을 할 때도 많아서 여학생들과 같이 있었지만, 여학생이라기보단 동료 의식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믿게 되려면 일단 눈으로 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것에는 선입견이 잔뜩 들어간다. 그리고 그동안 경험이 덧붙여지고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선입견과 나의 경험치 등으로 남을 판단한다. 물론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면서 조금의 시간을 함께하고는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 학교 즉 학연과 혈연, 지연 등을 물어보면서 공통 분모를 찾게 된다. 아무리 찾아도 공통 분모가 없으면 종교, 군대 등등 인연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와서 산지 어언 30여 년이 됐다. 정말 시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난 이민 올 때 600만 원 정도를 가지고 왔는데 그 돈으로 후불로 지급하기로 한 이삿짐 비용과 렌트비와 일주일 호텔비를 내고 먹을 거 사 먹고 하니 2달 렌트비 내면 돈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그 중엔 자전거를 산 것과 소파를 산 것, 그리고 중고 재봉틀을 산 것이었다. 자전거는 자동차 면허도 없고 당장 움직여야 하니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산 것이고 소파는 짐도 오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는 데다가 짐이 와도 소파는 없었기 때문이다. 재봉틀은 이민을 와서 보니 옷도 비싸고 마음에 드는 것도 없고 옷감으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아내 말에 덜컥 중고 재봉틀을 샀다. 자전거는 이웃집에 아저씨가 겨울에 자전거 타기 힘드니 반납하고 돈으로 바꾸라고 조언했지만 바꾸지 않았고 소파는 그래도 가격 대비 잘 샀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가죽으로 사는 것이 나았는데 천으로 사서 때가 껴 안 좋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재봉틀은 다양한 기능이 있는 것이었는데 아내가 다양한 기능이 있어서 더 불편하니 가서 반납하라고 해서 가져가니, 파이널 세일은 리턴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쓰지도 못하고 얼마 전까지 가지고 있다가 결국은 기부하고 말았다. 피아노도 그때만 해도 피아노 레슨이 한창 유행할 때이고 우리 아이들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중고 피아노를 샀는데 아이들도 우리 부모도 피아노엔 관심이 없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아주 작은 것도 자주 소통하면서 사고, 구매하는 것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럼에도 어떤 것을 구매할 때 두 사람 마음을 맞추기 힘드니 그냥 사는 경우가 더 많다. 소통은 마음을 여는 일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시작인 셈이다. 마음을 열지 않고 그냥 무심결에 대답하듯 무심하게 대답하는 것은 소통에 가장 치명적이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사무적인 일이야 어떻게 된다고 해도 중요한 순간에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로 인해 더 큰 오해와 불신이 쌓이게 된다.





 

삼 만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잠자리
눈 두 개로 보는 사람
보는 세상은 달라도 행복은 하나

눈이 크다고 세상을 넓게 보는 것이 아니듯
사는 아파트 평수가 작다고 꿈도 작은 것이 아니다

펜트하우스에 살아도 지옥일 수 있고
지하 방에 살아도 천국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변
마음을 꺼내 보일 수도 없고 내가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 내 속 썩는 걸 누가 알아. 호주머니처럼 뒤집어 보일 수 있다면 보이고 싶다. 우리가 답답할 때, 의심을 받을 때 많이 말하는 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입을 꾹 닫고 있으면 네 마음을 어떻게 알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보통 말로 눈빛으로, 눈길로, 손짓으로, 표정으로 드러낸다. 아니 다른 표현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편지를 써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연애편지를 잘 쓰는 아이들은 인기가 좋았다. 나도 글을 잘 쓴다는 이유로 연애편지 대필을 주문받은 적은 있지만 써준 적은 없는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스웨덴에 여학생이랑 국제 펜팔을 했다. 영어를 못하는 데 펜팔을 하려니 사전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고 내용을 알기 위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잘 안 풀리면 응한이라는 친구에게 이거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 친구도 내 국제 펜팔의 내용을 잘 알고 있고 사실 별거 없었다. 그냥 안부를 묻는 정도이고 일상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말이 다름에서 오는 답답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국내 펜팔로 바꿔서 국내 여학생들과 편지를 나누다 보니 선물도 보내고 국제 펜팔보다는 훨씬 마음을 전하기가 쉬웠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 이렇게 속이 후련한 것인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말로는 잘 못할 말도 글로는 술술 잘 써지는 것도 있었다. 여동생이 없어서 오빠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부러웠는데 편지로라도 오빠라고 불러 주니 기분이 좋았다.

중학교 졸업하고 주산 학원과 부기 학원, 그리고 합기도 학원에 다닐 때도 여학생이 많았지만 내성적이라 말도 잘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이었고, 문예반은 여학생이 대부분이었다. 1학년도 3학년 졸업 할 때까지 문예반 반장을 하면서 선생님 대신 수업을 할 때도 많아서 여학생들과 같이 있었지만, 여학생이라기보단 동료 의식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믿게 되려면 일단 눈으로 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것에는 선입견이 잔뜩 들어간다. 그리고 그동안 경험이 덧붙여지고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선입견과 나의 경험치 등으로 남을 판단한다. 물론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면서 조금의 시간을 함께하고는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 학교 즉 학연과 혈연, 지연 등을 물어보면서 공통 분모를 찾게 된다. 아무리 찾아도 공통 분모가 없으면 종교, 군대 등등 인연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와서 산지 어언 30여 년이 됐다. 정말 시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난 이민 올 때 600만 원 정도를 가지고 왔는데 그 돈으로 후불로 지급하기로 한 이삿짐 비용과 렌트비와 일주일 호텔비를 내고 먹을 거 사 먹고 하니 2달 렌트비 내면 돈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그 중엔 자전거를 산 것과 소파를 산 것, 그리고 중고 재봉틀을 산 것이었다. 자전거는 자동차 면허도 없고 당장 움직여야 하니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산 것이고 소파는 짐도 오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는 데다가 짐이 와도 소파는 없었기 때문이다. 재봉틀은 이민을 와서 보니 옷도 비싸고 마음에 드는 것도 없고 옷감으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아내 말에 덜컥 중고 재봉틀을 샀다. 자전거는 이웃집에 아저씨가 겨울에 자전거 타기 힘드니 반납하고 돈으로 바꾸라고 조언했지만 바꾸지 않았고 소파는 그래도 가격 대비 잘 샀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가죽으로 사는 것이 나았는데 천으로 사서 때가 껴 안 좋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재봉틀은 다양한 기능이 있는 것이었는데 아내가 다양한 기능이 있어서 더 불편하니 가서 반납하라고 해서 가져가니, 파이널 세일은 리턴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쓰지도 못하고 얼마 전까지 가지고 있다가 결국은 기부하고 말았다. 피아노도 그때만 해도 피아노 레슨이 한창 유행할 때이고 우리 아이들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중고 피아노를 샀는데 아이들도 우리 부모도 피아노엔 관심이 없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아주 작은 것도 자주 소통하면서 사고, 구매하는 것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럼에도 어떤 것을 구매할 때 두 사람 마음을 맞추기 힘드니 그냥 사는 경우가 더 많다. 소통은 마음을 여는 일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시작인 셈이다. 마음을 열지 않고 그냥 무심결에 대답하듯 무심하게 대답하는 것은 소통에 가장 치명적이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사무적인 일이야 어떻게 된다고 해도 중요한 순간에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로 인해 더 큰 오해와 불신이 쌓이게 된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함께 일을 하거나 함께 살아도 서로 모르는 것이 많을 수 있다. 설령 서로 마음을 열었더라도 오랜 시간 서로 만나지 않고 떨어져 있으면 서먹하고 통하지 않는데 하물며 서로 소통이 잘 안 되는데 그냥 같이 일하거나 살았다고 한들 나중에 만나도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 없고 녹음기도 없고 CCTV도 없던 시절엔 말만으로 계약해 속 썩이던 사람도 많았다.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야 하면서 말이다. 계약서를 썼더라도 법적 효력이 있니 없니 다투기도 하면서. 녹음기로 녹음해도 불법 녹음이라 안 된다고 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감으로 수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증인의 증언은 얼마든 조작될 수 있는데 증거 없이 증인의 말만으로 인생이 바뀌기도 했다. 최근에 각종 과학기술의 발달과 CCTV나 스마트폰, 녹음기들 다양한 기록물이 있고, DNA검사를 통해 범인을 잡기도 한다. 어릴 때 헤어진 아들, 딸이나 부모, 형제를 찾기도 한다.

옛날에 소통의 방법이 직접 대화나 전화 통화, 편지를 통한 대화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인터넷을 통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대화하고 상상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물론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실제 거리는 멀지만 정신적이나 마음으로는 아주 가까이 있는 친구 같은 착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당장 내가 아프면 멀리 있는 형제나 부모는 아무것도 못 해 주지만, 가까이 이웃이 있다면 이웃이 돌봐 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유가 소통 부재의 시대, 당연히 서로 모른다. 그리고 층간소음, 쓰레기 문제 등으로 이웃과 다투지 않으면 다행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되기보단 나에게 피해 입히는 존재로 각인되기 쉽다. 저 사람이 내가 명품 옷을 안 입고 다닌다고 무시하네, 차가 좋은 차가 아니라고 무시하는 주차 요원하고 같은 눈초리를 느끼고 “흥”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잠자리처럼 많은 눈을 가지고 상세히 볼 수 있다고 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두 개의 눈으로 보는 사람보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따사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도덕책을 봐서 아는 것과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은 양심, 마음에 의해서이니까 아는 것과는 별개이다.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은 나쁘지만 죄인 줄 알고 죄를 짓는 것은 더 나쁘다. 세계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본다고 해서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아집만 더 키울 수도 있다. 나는 다 보았다. 너는 가보지도 않았으니 말할 자격조차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예전에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남대문에 문지방이 있니 없니로 싸우다 가보지 않은 사람이 이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봤어도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면 문지방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커다란 대저택에 수많은 일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산다고 날마다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하 방에 산다고 날마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경이 좋다면 일단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더 좋은 것 또한 사실이다.

부처님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예수님도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부처도 예수도 종교의 틀에서 신으로 여기면서 오랫동안 동양과 서양의 주 종교적 인물이었다. 하지만 서양의 종교가 동양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부처님을 버리고 예수를 부른다. 예수는 지금도 교회 안에 계신다고 믿으면서 사찰에 모신 부처님은 돌이거나 나무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닫고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불교와 기독교 신자가 만나면 대화가 안 된다. 마음이 닫혔으니 대화가 될 리가 없다. 마음을 열면 그곳이 천국임을 모르고 있다.

--------------------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함께 일을 하거나 함께 살아도 서로 모르는 것이 많을 수 있다. 설령 서로 마음을 열었더라도 오랜 시간 서로 만나지 않고 떨어져 있으면 서먹하고 통하지 않는데 하물며 서로 소통이 잘 안 되는데 그냥 같이 일하거나 살았다고 한들 나중에 만나도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 없고 녹음기도 없고 CCTV도 없던 시절엔 말만으로 계약해 속 썩이던 사람도 많았다.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야 하면서 말이다. 계약서를 썼더라도 법적 효력이 있니 없니 다투기도 하면서. 녹음기로 녹음해도 불법 녹음이라 안 된다고 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감으로 수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증인의 증언은 얼마든 조작될 수 있는데 증거 없이 증인의 말만으로 인생이 바뀌기도 했다. 최근에 각종 과학기술의 발달과 CCTV나 스마트폰, 녹음기들 다양한 기록물이 있고, DNA검사를 통해 범인을 잡기도 한다. 어릴 때 헤어진 아들, 딸이나 부모, 형제를 찾기도 한다.

옛날에 소통의 방법이 직접 대화나 전화 통화, 편지를 통한 대화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인터넷을 통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대화하고 상상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물론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실제 거리는 멀지만 정신적이나 마음으로는 아주 가까이 있는 친구 같은 착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당장 내가 아프면 멀리 있는 형제나 부모는 아무것도 못 해 주지만, 가까이 이웃이 있다면 이웃이 돌봐 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유가 소통 부재의 시대, 당연히 서로 모른다. 그리고 층간소음, 쓰레기 문제 등으로 이웃과 다투지 않으면 다행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되기보단 나에게 피해 입히는 존재로 각인되기 쉽다. 저 사람이 내가 명품 옷을 안 입고 다닌다고 무시하네, 차가 좋은 차가 아니라고 무시하는 주차 요원하고 같은 눈초리를 느끼고 “흥”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잠자리처럼 많은 눈을 가지고 상세히 볼 수 있다고 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두 개의 눈으로 보는 사람보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따사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도덕책을 봐서 아는 것과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은 양심, 마음에 의해서이니까 아는 것과는 별개이다.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은 나쁘지만 죄인 줄 알고 죄를 짓는 것은 더 나쁘다. 세계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본다고 해서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아집만 더 키울 수도 있다. 나는 다 보았다. 너는 가보지도 않았으니 말할 자격조차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예전에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남대문에 문지방이 있니 없니로 싸우다 가보지 않은 사람이 이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봤어도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면 문지방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커다란 대저택에 수많은 일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산다고 날마다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하 방에 산다고 날마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경이 좋다면 일단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더 좋은 것 또한 사실이다.

부처님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예수님도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부처도 예수도 종교의 틀에서 신으로 여기면서 오랫동안 동양과 서양의 주 종교적 인물이었다. 하지만 서양의 종교가 동양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부처님을 버리고 예수를 부른다. 예수는 지금도 교회 안에 계신다고 믿으면서 사찰에 모신 부처님은 돌이거나 나무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닫고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불교와 기독교 신자가 만나면 대화가 안 된다. 마음이 닫혔으니 대화가 될 리가 없다. 마음을 열면 그곳이 천국임을 모르고 있다.

--------------------





 

삼 만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잠자리
눈 두 개로 보는 사람
보는 세상은 달라도 행복은 하나

눈이 크다고 세상을 넓게 보는 것이 아니듯
사는 아파트 평수가 작다고 꿈도 작은 것이 아니다

펜트하우스에 살아도 지옥일 수 있고
지하 방에 살아도 천국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변
마음을 꺼내 보일 수도 없고 내가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 내 속 썩는 걸 누가 알아. 호주머니처럼 뒤집어 보일 수 있다면 보이고 싶다. 우리가 답답할 때, 의심을 받을 때 많이 말하는 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입을 꾹 닫고 있으면 네 마음을 어떻게 알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보통 말로 눈빛으로, 눈길로, 손짓으로, 표정으로 드러낸다. 아니 다른 표현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편지를 써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연애편지를 잘 쓰는 아이들은 인기가 좋았다. 나도 글을 잘 쓴다는 이유로 연애편지 대필을 주문받은 적은 있지만 써준 적은 없는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스웨덴에 여학생이랑 국제 펜팔을 했다. 영어를 못하는 데 펜팔을 하려니 사전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고 내용을 알기 위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잘 안 풀리면 응한이라는 친구에게 이거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 친구도 내 국제 펜팔의 내용을 잘 알고 있고 사실 별거 없었다. 그냥 안부를 묻는 정도이고 일상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말이 다름에서 오는 답답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국내 펜팔로 바꿔서 국내 여학생들과 편지를 나누다 보니 선물도 보내고 국제 펜팔보다는 훨씬 마음을 전하기가 쉬웠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 이렇게 속이 후련한 것인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말로는 잘 못할 말도 글로는 술술 잘 써지는 것도 있었다. 여동생이 없어서 오빠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부러웠는데 편지로라도 오빠라고 불러 주니 기분이 좋았다.

중학교 졸업하고 주산 학원과 부기 학원, 그리고 합기도 학원에 다닐 때도 여학생이 많았지만 내성적이라 말도 잘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이었고, 문예반은 여학생이 대부분이었다. 1학년도 3학년 졸업 할 때까지 문예반 반장을 하면서 선생님 대신 수업을 할 때도 많아서 여학생들과 같이 있었지만, 여학생이라기보단 동료 의식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믿게 되려면 일단 눈으로 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것에는 선입견이 잔뜩 들어간다. 그리고 그동안 경험이 덧붙여지고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선입견과 나의 경험치 등으로 남을 판단한다. 물론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면서 조금의 시간을 함께하고는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 학교 즉 학연과 혈연, 지연 등을 물어보면서 공통 분모를 찾게 된다. 아무리 찾아도 공통 분모가 없으면 종교, 군대 등등 인연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와서 산지 어언 30여 년이 됐다. 정말 시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난 이민 올 때 600만 원 정도를 가지고 왔는데 그 돈으로 후불로 지급하기로 한 이삿짐 비용과 렌트비와 일주일 호텔비를 내고 먹을 거 사 먹고 하니 2달 렌트비 내면 돈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그 중엔 자전거를 산 것과 소파를 산 것, 그리고 중고 재봉틀을 산 것이었다. 자전거는 자동차 면허도 없고 당장 움직여야 하니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산 것이고 소파는 짐도 오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는 데다가 짐이 와도 소파는 없었기 때문이다. 재봉틀은 이민을 와서 보니 옷도 비싸고 마음에 드는 것도 없고 옷감으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아내 말에 덜컥 중고 재봉틀을 샀다. 자전거는 이웃집에 아저씨가 겨울에 자전거 타기 힘드니 반납하고 돈으로 바꾸라고 조언했지만 바꾸지 않았고 소파는 그래도 가격 대비 잘 샀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가죽으로 사는 것이 나았는데 천으로 사서 때가 껴 안 좋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재봉틀은 다양한 기능이 있는 것이었는데 아내가 다양한 기능이 있어서 더 불편하니 가서 반납하라고 해서 가져가니, 파이널 세일은 리턴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쓰지도 못하고 얼마 전까지 가지고 있다가 결국은 기부하고 말았다. 피아노도 그때만 해도 피아노 레슨이 한창 유행할 때이고 우리 아이들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중고 피아노를 샀는데 아이들도 우리 부모도 피아노엔 관심이 없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아주 작은 것도 자주 소통하면서 사고, 구매하는 것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럼에도 어떤 것을 구매할 때 두 사람 마음을 맞추기 힘드니 그냥 사는 경우가 더 많다. 소통은 마음을 여는 일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시작인 셈이다. 마음을 열지 않고 그냥 무심결에 대답하듯 무심하게 대답하는 것은 소통에 가장 치명적이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사무적인 일이야 어떻게 된다고 해도 중요한 순간에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로 인해 더 큰 오해와 불신이 쌓이게 된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함께 일을 하거나 함께 살아도 서로 모르는 것이 많을 수 있다. 설령 서로 마음을 열었더라도 오랜 시간 서로 만나지 않고 떨어져 있으면 서먹하고 통하지 않는데 하물며 서로 소통이 잘 안 되는데 그냥 같이 일하거나 살았다고 한들 나중에 만나도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 없고 녹음기도 없고 CCTV도 없던 시절엔 말만으로 계약해 속 썩이던 사람도 많았다.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야 하면서 말이다. 계약서를 썼더라도 법적 효력이 있니 없니 다투기도 하면서. 녹음기로 녹음해도 불법 녹음이라 안 된다고 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감으로 수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증인의 증언은 얼마든 조작될 수 있는데 증거 없이 증인의 말만으로 인생이 바뀌기도 했다. 최근에 각종 과학기술의 발달과 CCTV나 스마트폰, 녹음기들 다양한 기록물이 있고, DNA검사를 통해 범인을 잡기도 한다. 어릴 때 헤어진 아들, 딸이나 부모, 형제를 찾기도 한다.

옛날에 소통의 방법이 직접 대화나 전화 통화, 편지를 통한 대화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인터넷을 통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대화하고 상상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물론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실제 거리는 멀지만 정신적이나 마음으로는 아주 가까이 있는 친구 같은 착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당장 내가 아프면 멀리 있는 형제나 부모는 아무것도 못 해 주지만, 가까이 이웃이 있다면 이웃이 돌봐 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유가 소통 부재의 시대, 당연히 서로 모른다. 그리고 층간소음, 쓰레기 문제 등으로 이웃과 다투지 않으면 다행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되기보단 나에게 피해 입히는 존재로 각인되기 쉽다. 저 사람이 내가 명품 옷을 안 입고 다닌다고 무시하네, 차가 좋은 차가 아니라고 무시하는 주차 요원하고 같은 눈초리를 느끼고 “흥”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잠자리처럼 많은 눈을 가지고 상세히 볼 수 있다고 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두 개의 눈으로 보는 사람보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따사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도덕책을 봐서 아는 것과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은 양심, 마음에 의해서이니까 아는 것과는 별개이다.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은 나쁘지만 죄인 줄 알고 죄를 짓는 것은 더 나쁘다. 세계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본다고 해서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아집만 더 키울 수도 있다. 나는 다 보았다. 너는 가보지도 않았으니 말할 자격조차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예전에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남대문에 문지방이 있니 없니로 싸우다 가보지 않은 사람이 이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봤어도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면 문지방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커다란 대저택에 수많은 일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산다고 날마다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하 방에 산다고 날마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경이 좋다면 일단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더 좋은 것 또한 사실이다.

부처님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예수님도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부처도 예수도 종교의 틀에서 신으로 여기면서 오랫동안 동양과 서양의 주 종교적 인물이었다. 하지만 서양의 종교가 동양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부처님을 버리고 예수를 부른다. 예수는 지금도 교회 안에 계신다고 믿으면서 사찰에 모신 부처님은 돌이거나 나무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닫고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불교와 기독교 신자가 만나면 대화가 안 된다. 마음이 닫혔으니 대화가 될 리가 없다. 마음을 열면 그곳이 천국임을 모르고 있다.

--------------------

#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