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학원 연구, 일제하 불교사 위상·가치 평가에 중요
선학원 연구, 일제하 불교사 위상·가치 평가에 중요
  • 이창윤 기자
  • 승인 2023.12.2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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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원의 남녀선우회(男女禪友會)와 부인선우회. 《선원》 1호.



선리참구원은 또한 “비구니(比丘尼)와 부인(婦人)은 여선실(女禪室)이 별(別)로히 설치된 선원에 한하야 방부(榜附)를 허(許)하기로 하자”는83) 적음 스님의 건의를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김적음은 1931년부터 이미 대중들에게 설법·강화(講話) 등의 행사와 남녀선우회(男女禪友會)와 부인선우회를 조직하여 선풍진작과 대중화에 진력하였다. 남녀선우회는 회원이 70여 명이나 되었다. 부인선우회 역시 1931년 3월 21일 총회가 개최되어 한용운이 설법하기도 하였다.84) 특히 부인선우회(婦人禪友會)는 단순히 복을 비는 기복신앙(祈福信仰)에서 벗어나 자력 수행을 통해 자신들의 신행이 모순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무위진인(無位眞人)이 되고자 하였다. 선의 대중화가 가져온 결과인 것이다.

심유한 산곡일협에서 고고히 애원성을 규환하며 때때로 고사에서 울녀 나오는 쇠북소리가 그윽한 산곡을 물드렷스며 아츰 저녁으로 공양짓는 한 줄기 희색빛 연기가 헛되이 사바를 울닐 뿐이엿든 그 불교가 오래동안 침체하엿든 그 무거운 침묵을 깨트리고 마을로 도시로 진출된 지가 몃개 성상을 거듭하엿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오직 우리 선종만이 올올히 산당에 안저 자리만 탐구할 리타들 목적하지 안엇슴으로 우리 모든 신도들은 선-즉 참선이 무엇이라는 것을 몰으게 되엿스며 오로지 불교라면 ‘남무아미타불’ 염불하는 것인줄 알엇스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관세음보살만 불으면 이생에서는 아무 일이 업시 만사성취하는 요소인 줄 알엇스며 지장보살만 불으면 죽을 때는 무사히 죽고 남무아미타불만 불으면 죽어서 극락세계를 간다는 단편한 불교의 교리인 줄만 알엇섯다. 더욱이 이것은 조선의 부인에게는 말할 수 업시 유행되엿든 것이다. 그러나 부인게서도 엇더한 게급에 잇서서 좀더 참다운 교리를 탐구하려고 신고한 사람도 만엇서슬 것이다.85)

부인선원의 회주 김 씨 묘연화의 술회다. 그동안 조선의 여인들에게 불교는 지장보살·관세음보살의 명호만을 지극정성으로 외우는 것만으로 복락을 얻는 타력 신앙에 의존해 왔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의 불교는 오랫동안 침체되었으며, 신도들은 선불교란 고요한 산속에서 자리(自利)만을 탐하고 이타(利他)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것으로만 이해할 뿐 참선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선종도 점점 혼몽한 꿈을 깨고 광명을 찾아 점점 농촌으로 도시로 진출하게 되어 조선 부인계에 참다운 불교의 교리인 선리(참선)를 지시하게 되었고, 김적음이 미약한 부인계의 손을 이끌어 암암한 토굴에서 광명의 길로 인도하게 되어 그 사상에 공명약출한 부인계에서는 환희작약하여 암매한 부인들을 부처님의 참다운 소득처인 그 선리를 점점 선포하게 하였다.”고 한다. 부인선우회는 선학원이 재건된 이후 중앙선원의 일부 공간에서 좌선을 시작했지만, 안국동 41번지에 가옥을 마련하여 ‘조선불교 중앙부인선원’으로 독립하였다. 부인선원은 강령까지 마련하여 그 수행질서를 체계화시키기도 하였다. 그 유지 또한 회원입회금과 회원의 자원금, 그 외 각 신도들의 자원금이 바탕이 되었다.

1934년 동안거부터 1967년까지의 중앙선원 안거방함록에는 출가수행자뿐만 아니라 부인선원에서 수행했던 부인들의 명단도 수록되었다.86)



도표. 부인선원 제회 세존응화 2961년 갑술 동안거. 
선학원의 남녀선우회(男女禪友會)와 부인선우회. 《선원》 1호.

선리참구원은 또한 “비구니(比丘尼)와 부인(婦人)은 여선실(女禪室)이 별(別)로히 설치된 선원에 한하야 방부(榜附)를 허(許)하기로 하자”는83) 적음 스님의 건의를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김적음은 1931년부터 이미 대중들에게 설법·강화(講話) 등의 행사와 남녀선우회(男女禪友會)와 부인선우회를 조직하여 선풍진작과 대중화에 진력하였다. 남녀선우회는 회원이 70여 명이나 되었다. 부인선우회 역시 1931년 3월 21일 총회가 개최되어 한용운이 설법하기도 하였다.84) 특히 부인선우회(婦人禪友會)는 단순히 복을 비는 기복신앙(祈福信仰)에서 벗어나 자력 수행을 통해 자신들의 신행이 모순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무위진인(無位眞人)이 되고자 하였다. 선의 대중화가 가져온 결과인 것이다.

심유한 산곡일협에서 고고히 애원성을 규환하며 때때로 고사에서 울녀 나오는 쇠북소리가 그윽한 산곡을 물드렷스며 아츰 저녁으로 공양짓는 한 줄기 희색빛 연기가 헛되이 사바를 울닐 뿐이엿든 그 불교가 오래동안 침체하엿든 그 무거운 침묵을 깨트리고 마을로 도시로 진출된 지가 몃개 성상을 거듭하엿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오직 우리 선종만이 올올히 산당에 안저 자리만 탐구할 리타들 목적하지 안엇슴으로 우리 모든 신도들은 선-즉 참선이 무엇이라는 것을 몰으게 되엿스며 오로지 불교라면 ‘남무아미타불’ 염불하는 것인줄 알엇스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관세음보살만 불으면 이생에서는 아무 일이 업시 만사성취하는 요소인 줄 알엇스며 지장보살만 불으면 죽을 때는 무사히 죽고 남무아미타불만 불으면 죽어서 극락세계를 간다는 단편한 불교의 교리인 줄만 알엇섯다. 더욱이 이것은 조선의 부인에게는 말할 수 업시 유행되엿든 것이다. 그러나 부인게서도 엇더한 게급에 잇서서 좀더 참다운 교리를 탐구하려고 신고한 사람도 만엇서슬 것이다.85)

부인선원의 회주 김 씨 묘연화의 술회다. 그동안 조선의 여인들에게 불교는 지장보살·관세음보살의 명호만을 지극정성으로 외우는 것만으로 복락을 얻는 타력 신앙에 의존해 왔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의 불교는 오랫동안 침체되었으며, 신도들은 선불교란 고요한 산속에서 자리(自利)만을 탐하고 이타(利他)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것으로만 이해할 뿐 참선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선종도 점점 혼몽한 꿈을 깨고 광명을 찾아 점점 농촌으로 도시로 진출하게 되어 조선 부인계에 참다운 불교의 교리인 선리(참선)를 지시하게 되었고, 김적음이 미약한 부인계의 손을 이끌어 암암한 토굴에서 광명의 길로 인도하게 되어 그 사상에 공명약출한 부인계에서는 환희작약하여 암매한 부인들을 부처님의 참다운 소득처인 그 선리를 점점 선포하게 하였다.”고 한다. 부인선우회는 선학원이 재건된 이후 중앙선원의 일부 공간에서 좌선을 시작했지만, 안국동 41번지에 가옥을 마련하여 ‘조선불교 중앙부인선원’으로 독립하였다. 부인선원은 강령까지 마련하여 그 수행질서를 체계화시키기도 하였다. 그 유지 또한 회원입회금과 회원의 자원금, 그 외 각 신도들의 자원금이 바탕이 되었다.

1934년 동안거부터 1967년까지의 중앙선원 안거방함록에는 출가수행자뿐만 아니라 부인선원에서 수행했던 부인들의 명단도 수록되었다.86)

도표. 부인선원 제회 세존응화 2961년 갑술 동안거. 
도표. 부인선원 제회 세존응화 2961년 갑술 동안거. 

87)는 1934년 제1회 동안거 안거방함록에 수록된 부인선원 결제 대중 명단이다.1회에서는 청신사와 청신녀 각 1명씩이 수행했지만, 점차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살필 수 있다. 중앙선원의 부인선원은 지방까지 확산되어 표훈사 부인선원 역시 개설되어 10여 명이 수행하기도 하였다.87) 선학원의 부인선원 개설과 수행은 일제하 불교계에서는 그 유례가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부인선우회는 1931년 11월 정기회에서 재만(在滿)동포구제사업을 하자는 간부 우풍운(禹風雲)의 발의가 일치 가결되어 현금 7원과 의복 80여 점을 수집하여 재만동포구제회(在滿同胞救濟會)에 송치(送致)하기도 하였다.88)

선학원은 1939년에도 수좌대회의 명칭을 변경하여 조선불교선종정기선회를 개최하였다. 창종한 후 종단명을 사용한 것이다. 이 선회는 초참납자(初參衲子)의 지도를 위해 금강산 마하연 선방을 모범 선원으로 지정하겠다고 논의하였다. 선회는 또한 모범총림을 위해 지리산, 가야산, 오대산, 금강산, 묘향산 등 5대산을 지정하여 당시 교단 측과 교섭하였다. 그리고 전국 선원 수좌들의 소식을 민활하게 하기 위해 방함록(芳啣錄)을 수합하여 배포하기도 하였다. 선회의 이와 같은 논의 이후 선학원은 전국의 수좌와 선원의 확고한 구심점으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선학원의 1934년 재단법인 인가와 1935년 조선불교선종 선포는 선학원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를 중심으로 한 근대 불교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학원은 1921년 “조선 총독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우리만의 수행도량을 만들어 보자.”는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이 목적은 한국불교의 독자성을 계승하고 면면히 유지하자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일제의 폭압과 간섭, 대처풍조는 청정 비구승의 수행을 좌절시켰고, 조선 총독부의 탄압을 받은 선학원의 침체는 한국불교의 정체성 수호와 선불교를 중흥시키는데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1931년 적음 스님을 비롯한 설립 조사들의 선학원 중흥을 위한 노력은 10여 년 만에 재단법인 인가와 조선불교선종 선포로 귀결되었다.

재정은 안정되었고, 선원과 안거 대중 수는 크게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구참노덕(舊參老德)의 수행을 위한 양로선원의 신설은 수행 여건의 뚜렷한 향상이었다. 칭명염불(稱名念佛)이 불교의 전부로만 믿었던 청신사·청신녀 역시 선불교와 수행에 대한 적극적 인식으로 남녀선우회를 결성하고 부인선원까지 마련하여 안거에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조선불교선종 선포 역시 재단법인의 기초 하에 그 체계를 확고히 하여 선불교의 근본적인 독립발전을 모색할 수 있었다. 더욱이 종명(宗名)은 당시 불교계의 ‘조선불교선교양종’과는 달리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임제종운동의 이념을 계승하고 있었다. 때문에 조선불교선종은 유구한 한국불교 수행 전통의 산물이었고, 왜색화되어 갔던 당시 불교계와는 다른 한국불교의 정통성 계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리참구원의 양로선원 신설과 재가 신자의 선불교 인식과 본격적인 수행은 일제하 불교계의 변화로 지적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노력이기도 하지만, 수행 여건 향상과 선불교의 대중화는 대처승 일색의 당시 불교계 풍조에서는 확실히 이채로운 것이었다.

선학원 연구는 단순히 선학원 차원에서 머무를 수 없는 근대 불교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설립 이념과 참여했던 인물들은 시세를 거슬렀고 동시대에도 주목받지 못했었다. 따라서 선학원 연구는 일제하 불교사의 다양성을 살피고 그 위상과 가치를 평가하는 데 중요하다.

[주] -----

83) 禪宗中央宗務院, <其他事項>, 정광호, <한국 전통선맥의 계승운동 - 선학원을 중심으로>, 《일본침략시기의 한일불교관계사》, 아름다운세상, 2001, 19쪽.

84) 선학원, 앞의 자료, 29쪽.

85) 선학원(1935),《禪苑》 4호, 경성: 선학원, 32~33쪽.

86) 1997년 9월 선학원의 중앙선원 3층 법당 서고(書庫)에서는 두 권의 《방함록(芳啣錄)》이 발견되었다. 정식 명칭은 ‘中央禪院 安居芳啣錄’이다. 1권은 세로 34㎝, 가로 25.5㎝ 크기의 52쪽, 2권은 세로 34.5㎝, 가로 28.2㎝ 크기의 78쪽 분량이다. 1권은 1934년 동안거부터 1942년 동안거까지 15회, 2권은 1942년 하안거부터 1967년 하안거까지의 26회의 안거와 그 소임자를 포함한 참여자를 각각 수록하였다. 〔法眞(2007), 《選佛場 - 安居芳啣錄과 首座大會會錄》,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참조.〕

87) 선학원(1932),《禪苑》 3호, 경성: 선학원, 72쪽.

88) 선학원(1932),《禪苑》 3호, 경성: 선학원, 85쪽.

선학원백년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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