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42. 낮과 밤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42. 낮과 밤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12.2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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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일하고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가 잠자는 것이 일상이던 사람들이
밤 낮 없이 돌리는 공장에서 3교대 근무하듯 낮과 밤을 잊고
밤에도 낮처럼 불 밝히고 운동하고 일하고 공부한다.

언제부턴 가 동지나 입춘이 별 의미가 없어진 것은
비단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수북이 쌓인
마트가 있어서 만은 아닐 것이다.

명절이 되면 하늘로 떠난 부모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통하는 기도로 부르고
해마다 고국을 가는 사람들을 보며 고국이 그리워 달을 보고 이야기하는
가난한 이민자만 밤은 더 칠흑처럼 깊고 길다.
 







#작가의 변
어제는 아기 동지라고 팥죽을 먹으면 안 된다는 아내. 그렇다고 팥밥도, 수수팥떡도 없이 그냥 지나갔다. 아니 3주 전부터 아들과 딸 아내에게 같이 PNE 겨울 축제에 가자고 했는데 마감을 이틀 앞두고 어제야 다른 사람하고 가라는 딸과 아내. 결국은 아내가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갈 마음이 별로 없었던 아내는 계속 투덜댔다. 다운타운 쪽을 갈 땐 대중교통이 편하다는 나와 다른 사람들은 다 차 가지고 가는데 혼자만 늘 다운타운 쪽에 갈 때는 차를 안 가지고 간다고 말하면서 투덜거리다가 가는 길은 확인해 봤냐고 하면서 전철에서 구글로 확인 하니, 그걸 지금 확인하면 어떻게 하냐고 한다.

그러더니 날씨가 춥다고 또 투덜댄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은 우리 말고 다른 팀 한 팀밖에 없지 않냐고 또 불만이다. 페스티벌은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전부라 봐도 된다. 어차피 행사장 부스 음식은 비싼 걸 알고 있어 사 먹을 마음도 없었지만, 팀 홀튼 부스에서 커피를 2불에 팔고 있는데 줄이 좀 길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핫초코 마시고 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넌 2불 짜리도 안 돼라고 한다.

그 순간 정말 상처받았다.

버스 노약자석에 앉아서 갈 때 급정거하는 바람에 옆으로 나가떨어질 뻔할 때 급하게 옆을 짚어서 겨우 화를 면했다. 그후에 아내가 내가 잡아 줄까한다.

상품으로 탄 PNE 입장권을 사정사정해서 아내와 가게 되고 넌 2불 짜리도 안돼 가 뇌리에 박혀, 오늘 얘기했더니 내가 그랬어 미안해라고 말한다.그 게 그렇세 간단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쁘게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아내는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 주고 크리스마스 열차(?)를 타기로 하고 직원한테 저 뒤로 가서 기다리라고 해서 가서 줄을 서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추운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40분도 넘게 기다리다 보니 아내가 또 심술이 났다. 그리고 화장실이 없어 헤매다 아이스링크에 가서 볼일을 보고 트리 터널을 다시 가 보고는 빨리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많은 사람이 다른 쪽에서 쏟아져 나온다. 아마도 무슨 공연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도 알아 보지 않고 지금 여기 와서 그걸 보고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벌써 저녁 8시니까 빨리 가자고 한다.

요즘은 낮에도 흐리면 오후 4시만 되고 어둡다. 그래서 피트니스 센터에서 수영장을 바라보면 전등이 마치 창같이 벽 쪽에 있어서 오늘 날씨가 좋아졌나 하고 다른 쪽 창을 보고서야 내가 착각한 것임을 깨닫는다. 아니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수영장의 전등이 마치 인공 태양처럼 밝게 빛난다. 이런 호사를 우리 부모님도 누렸으면 얼마니 좋을까라는 생각한다. 이민 초에 아이들 수영 레슨, 태권도, 레슨, 피아노 레슨 등을 데리고 다니면서 데려다주고 기다리고 데려오기를 하던 때는 일에 지치고 힘든 마음에 그런 것이 감사함을 몰랐다. 그리고 고국에 있는 부모님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부모님을 멀리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이런 호사를 누린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평생 들녘에서 일만 하다고 돌아가신 우리의 인생 선배이자 가족이었던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캐나다에서는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피트니스를 마치고 사우나와 핫탑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장을 바라보면서 동네 반상회 하듯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니 한국에도 경로당이 아닌 이런 수영장을 포함한 커뮤니티센터, 한국말로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도 서울이나 경기 등 대도시는 땅값이 비싸서 건축하기 힘드니 시골부터 이런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해서 복지를 늘려 나가면 어떨까. 물론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 뭐니 뭐니 해도 수입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모여서 고스톱이나 하고있는 시골 노인들보다는 핫탑이나 사우나 같은 시설과 마사지와 운동기구들을 들여놓아서 겨울에도 운동할 수 있는 조건이면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좋은 일일 것 같다. 서울보다 시골에 이런 시설이 있고 복지가 있으면 은퇴 후에 의식주만 기본적으로 해결된다면 그다음이 건강이다. 나이 들어 이곳저곳 고장 나고 암 같은 중병이 들면 재산을 다 날리는 경우가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많다. 캐나다는 전 국민 무료 의료보험이라 그런 걱정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어릴 때 여름엔 동네 개울에서 아이들과 홀딱 벗고 개헤엄도 치고 저수지에서 놀다가 빠져 죽을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엔 문고리에 세수하고 마르지 않은 손이 쩍 하고 달라붙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목욕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무 함지에 가마솥에서 끓인 물을 받아 놓고 씻겨 주던 어린 시절 그리고 남성의 심벌이 나타나고 부터는 친구와 제천 시내 목욕탕에 다녔는데 자주 갈 형편은 안됐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목욕탕 탕 안에서 수영 하던 그 시절. 지금은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오고 욕조나 샤워 시설이 있어 샤워 하는데 문제가 없으니 목욕탕이 많이 없어 진다고 한다. 캐나다는 목욕탕보다 더 큰 냉탕과 온탕 그리고 수영장이 있으니 좋다. 그렇다고 집에 욕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겨울은 밤이 길다. 그중에 동지가 가장 길다. 동지가 지나면서 밤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한다. 어두운 밤에 끼룩대는 캐나다 구스들의 소리를 들으면 슬퍼진다. 어두운 밤에 집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는 시간에 먹을 것도 못 먹고 날고 있는 새들이 천형이다 싶기도 하다. 하늘을 날면 멀리 볼 수 있어 좋을 줄만 알았는데 하늘을 나는 날짐승에게도 먹이 사슬이 존재한다. 까마귀가 작은 새들을 공격해서 먹는 때도 있다. 다람쥐를 공격하는 것은 많이 봤어도 작은 새를 공격하는 것은 잘 보니 못해서 충격을 먹었다. 바닷속도 먹이 사슬에 의해 작은 플랑크톤에서 출발해서 상어와 고래에 이르기까지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에 따라 생태계가 이루어진다. 육지는 어느새 인간이 필요로 하는 농작물을 기르고 닭, 돼지, 소등 가축을 기르면서 많은 육지는 피폐해지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수는 급격히 줄어 들었다. 가끔 들개인 코요테를 만나거나 곰을 만나면 놀라서 경찰에 신고하면 당국에서 바로 달려가 사람을 해친 해당 동물을 사살한다.

마치 인간을 위해 지구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태초에 말씀으로 낮과 밤이 있으라 하니 있었고 바다와 육지가 생겨나고 동식물이 생겨나고 창조주와 닮은 인간 남자를 흙으로 만들고 그가 혼자 사는 것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 안쓰러워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 존재이고 생명을 불어넣기 전엔 그저 흙인 존재였다. 그리고 죽은 후에 흙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전쟁 같은 삶에서 동물보다도 참혹한 먹이 사슬이 인간 세상에도 존재한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생존경쟁 속에 인간은 어느새 괴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전쟁은 하루도 쉬지 않고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전쟁의 피해자는 어린이와 노약자가 최대 피해자가 된다. 함께 품앗이해서 농사를 짓고 하던 때에는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동네가 모두 식구 같았지만, 지금은 외국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시대가 되고 노인들만 남은 농촌이 되었다. 다들 도시에서 평생의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룬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제 오트밀로 사과 케이크를 만들려던 아들이 개봉하지 않은 코스코에서 사온 오트밀에서 바금이 벌레가 많이 나오니까 버리라고 했다. 나와 아내는 아까웠지만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92년생인 아들은 배고픔이라는 것을 모르고 밥알이 밥상 아래 떨어지면 주워 먹던 우리들과 같은 어린 시절을 지내지 않아 정말로 귀중한 것이 모르는 것 같다. 물론 땅바닥에 떨어진 것도 얼른 주워 먹었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캐나다에도 무료로 음식을 나누어 주는 푸드뱅크엔 사람들이 정말 많이도 길게 줄을 선다. 지구에 밤과 낮이 있듯이 햇빛이 나는 곳에도 양지와 음지가 있듯이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림자도 나의 일부이다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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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일하고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가 잠자는 것이 일상이던 사람들이
밤 낮 없이 돌리는 공장에서 3교대 근무하듯 낮과 밤을 잊고
밤에도 낮처럼 불 밝히고 운동하고 일하고 공부한다.

언제부턴 가 동지나 입춘이 별 의미가 없어진 것은
비단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수북이 쌓인
마트가 있어서 만은 아닐 것이다.

명절이 되면 하늘로 떠난 부모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통하는 기도로 부르고
해마다 고국을 가는 사람들을 보며 고국이 그리워 달을 보고 이야기하는
가난한 이민자만 밤은 더 칠흑처럼 깊고 길다.
 





낮엔 일하고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가 잠자는 것이 일상이던 사람들이
밤 낮 없이 돌리는 공장에서 3교대 근무하듯 낮과 밤을 잊고
밤에도 낮처럼 불 밝히고 운동하고 일하고 공부한다.

언제부턴 가 동지나 입춘이 별 의미가 없어진 것은
비단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수북이 쌓인
마트가 있어서 만은 아닐 것이다.

명절이 되면 하늘로 떠난 부모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통하는 기도로 부르고
해마다 고국을 가는 사람들을 보며 고국이 그리워 달을 보고 이야기하는
가난한 이민자만 밤은 더 칠흑처럼 깊고 길다.
 







#작가의 변
어제는 아기 동지라고 팥죽을 먹으면 안 된다는 아내. 그렇다고 팥밥도, 수수팥떡도 없이 그냥 지나갔다. 아니 3주 전부터 아들과 딸 아내에게 같이 PNE 겨울 축제에 가자고 했는데 마감을 이틀 앞두고 어제야 다른 사람하고 가라는 딸과 아내. 결국은 아내가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갈 마음이 별로 없었던 아내는 계속 투덜댔다. 다운타운 쪽을 갈 땐 대중교통이 편하다는 나와 다른 사람들은 다 차 가지고 가는데 혼자만 늘 다운타운 쪽에 갈 때는 차를 안 가지고 간다고 말하면서 투덜거리다가 가는 길은 확인해 봤냐고 하면서 전철에서 구글로 확인 하니, 그걸 지금 확인하면 어떻게 하냐고 한다.

그러더니 날씨가 춥다고 또 투덜댄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은 우리 말고 다른 팀 한 팀밖에 없지 않냐고 또 불만이다. 페스티벌은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전부라 봐도 된다. 어차피 행사장 부스 음식은 비싼 걸 알고 있어 사 먹을 마음도 없었지만, 팀 홀튼 부스에서 커피를 2불에 팔고 있는데 줄이 좀 길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핫초코 마시고 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넌 2불 짜리도 안 돼라고 한다.

그 순간 정말 상처받았다.

버스 노약자석에 앉아서 갈 때 급정거하는 바람에 옆으로 나가떨어질 뻔할 때 급하게 옆을 짚어서 겨우 화를 면했다. 그후에 아내가 내가 잡아 줄까한다.

상품으로 탄 PNE 입장권을 사정사정해서 아내와 가게 되고 넌 2불 짜리도 안돼 가 뇌리에 박혀, 오늘 얘기했더니 내가 그랬어 미안해라고 말한다.그 게 그렇세 간단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쁘게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아내는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 주고 크리스마스 열차(?)를 타기로 하고 직원한테 저 뒤로 가서 기다리라고 해서 가서 줄을 서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추운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40분도 넘게 기다리다 보니 아내가 또 심술이 났다. 그리고 화장실이 없어 헤매다 아이스링크에 가서 볼일을 보고 트리 터널을 다시 가 보고는 빨리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많은 사람이 다른 쪽에서 쏟아져 나온다. 아마도 무슨 공연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도 알아 보지 않고 지금 여기 와서 그걸 보고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벌써 저녁 8시니까 빨리 가자고 한다.

요즘은 낮에도 흐리면 오후 4시만 되고 어둡다. 그래서 피트니스 센터에서 수영장을 바라보면 전등이 마치 창같이 벽 쪽에 있어서 오늘 날씨가 좋아졌나 하고 다른 쪽 창을 보고서야 내가 착각한 것임을 깨닫는다. 아니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수영장의 전등이 마치 인공 태양처럼 밝게 빛난다. 이런 호사를 우리 부모님도 누렸으면 얼마니 좋을까라는 생각한다. 이민 초에 아이들 수영 레슨, 태권도, 레슨, 피아노 레슨 등을 데리고 다니면서 데려다주고 기다리고 데려오기를 하던 때는 일에 지치고 힘든 마음에 그런 것이 감사함을 몰랐다. 그리고 고국에 있는 부모님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부모님을 멀리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이런 호사를 누린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평생 들녘에서 일만 하다고 돌아가신 우리의 인생 선배이자 가족이었던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캐나다에서는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피트니스를 마치고 사우나와 핫탑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장을 바라보면서 동네 반상회 하듯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니 한국에도 경로당이 아닌 이런 수영장을 포함한 커뮤니티센터, 한국말로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도 서울이나 경기 등 대도시는 땅값이 비싸서 건축하기 힘드니 시골부터 이런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해서 복지를 늘려 나가면 어떨까. 물론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 뭐니 뭐니 해도 수입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모여서 고스톱이나 하고있는 시골 노인들보다는 핫탑이나 사우나 같은 시설과 마사지와 운동기구들을 들여놓아서 겨울에도 운동할 수 있는 조건이면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좋은 일일 것 같다. 서울보다 시골에 이런 시설이 있고 복지가 있으면 은퇴 후에 의식주만 기본적으로 해결된다면 그다음이 건강이다. 나이 들어 이곳저곳 고장 나고 암 같은 중병이 들면 재산을 다 날리는 경우가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많다. 캐나다는 전 국민 무료 의료보험이라 그런 걱정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어릴 때 여름엔 동네 개울에서 아이들과 홀딱 벗고 개헤엄도 치고 저수지에서 놀다가 빠져 죽을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엔 문고리에 세수하고 마르지 않은 손이 쩍 하고 달라붙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목욕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무 함지에 가마솥에서 끓인 물을 받아 놓고 씻겨 주던 어린 시절 그리고 남성의 심벌이 나타나고 부터는 친구와 제천 시내 목욕탕에 다녔는데 자주 갈 형편은 안됐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목욕탕 탕 안에서 수영 하던 그 시절. 지금은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오고 욕조나 샤워 시설이 있어 샤워 하는데 문제가 없으니 목욕탕이 많이 없어 진다고 한다. 캐나다는 목욕탕보다 더 큰 냉탕과 온탕 그리고 수영장이 있으니 좋다. 그렇다고 집에 욕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겨울은 밤이 길다. 그중에 동지가 가장 길다. 동지가 지나면서 밤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한다. 어두운 밤에 끼룩대는 캐나다 구스들의 소리를 들으면 슬퍼진다. 어두운 밤에 집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는 시간에 먹을 것도 못 먹고 날고 있는 새들이 천형이다 싶기도 하다. 하늘을 날면 멀리 볼 수 있어 좋을 줄만 알았는데 하늘을 나는 날짐승에게도 먹이 사슬이 존재한다. 까마귀가 작은 새들을 공격해서 먹는 때도 있다. 다람쥐를 공격하는 것은 많이 봤어도 작은 새를 공격하는 것은 잘 보니 못해서 충격을 먹었다. 바닷속도 먹이 사슬에 의해 작은 플랑크톤에서 출발해서 상어와 고래에 이르기까지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에 따라 생태계가 이루어진다. 육지는 어느새 인간이 필요로 하는 농작물을 기르고 닭, 돼지, 소등 가축을 기르면서 많은 육지는 피폐해지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수는 급격히 줄어 들었다. 가끔 들개인 코요테를 만나거나 곰을 만나면 놀라서 경찰에 신고하면 당국에서 바로 달려가 사람을 해친 해당 동물을 사살한다.

마치 인간을 위해 지구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태초에 말씀으로 낮과 밤이 있으라 하니 있었고 바다와 육지가 생겨나고 동식물이 생겨나고 창조주와 닮은 인간 남자를 흙으로 만들고 그가 혼자 사는 것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 안쓰러워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 존재이고 생명을 불어넣기 전엔 그저 흙인 존재였다. 그리고 죽은 후에 흙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전쟁 같은 삶에서 동물보다도 참혹한 먹이 사슬이 인간 세상에도 존재한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생존경쟁 속에 인간은 어느새 괴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전쟁은 하루도 쉬지 않고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전쟁의 피해자는 어린이와 노약자가 최대 피해자가 된다. 함께 품앗이해서 농사를 짓고 하던 때에는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동네가 모두 식구 같았지만, 지금은 외국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시대가 되고 노인들만 남은 농촌이 되었다. 다들 도시에서 평생의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룬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제 오트밀로 사과 케이크를 만들려던 아들이 개봉하지 않은 코스코에서 사온 오트밀에서 바금이 벌레가 많이 나오니까 버리라고 했다. 나와 아내는 아까웠지만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92년생인 아들은 배고픔이라는 것을 모르고 밥알이 밥상 아래 떨어지면 주워 먹던 우리들과 같은 어린 시절을 지내지 않아 정말로 귀중한 것이 모르는 것 같다. 물론 땅바닥에 떨어진 것도 얼른 주워 먹었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캐나다에도 무료로 음식을 나누어 주는 푸드뱅크엔 사람들이 정말 많이도 길게 줄을 선다. 지구에 밤과 낮이 있듯이 햇빛이 나는 곳에도 양지와 음지가 있듯이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림자도 나의 일부이다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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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어제는 아기 동지라고 팥죽을 먹으면 안 된다는 아내. 그렇다고 팥밥도, 수수팥떡도 없이 그냥 지나갔다. 아니 3주 전부터 아들과 딸 아내에게 같이 PNE 겨울 축제에 가자고 했는데 마감을 이틀 앞두고 어제야 다른 사람하고 가라는 딸과 아내. 결국은 아내가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갈 마음이 별로 없었던 아내는 계속 투덜댔다. 다운타운 쪽을 갈 땐 대중교통이 편하다는 나와 다른 사람들은 다 차 가지고 가는데 혼자만 늘 다운타운 쪽에 갈 때는 차를 안 가지고 간다고 말하면서 투덜거리다가 가는 길은 확인해 봤냐고 하면서 전철에서 구글로 확인 하니, 그걸 지금 확인하면 어떻게 하냐고 한다.

그러더니 날씨가 춥다고 또 투덜댄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은 우리 말고 다른 팀 한 팀밖에 없지 않냐고 또 불만이다. 페스티벌은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전부라 봐도 된다. 어차피 행사장 부스 음식은 비싼 걸 알고 있어 사 먹을 마음도 없었지만, 팀 홀튼 부스에서 커피를 2불에 팔고 있는데 줄이 좀 길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핫초코 마시고 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넌 2불 짜리도 안 돼라고 한다.

그 순간 정말 상처받았다.

버스 노약자석에 앉아서 갈 때 급정거하는 바람에 옆으로 나가떨어질 뻔할 때 급하게 옆을 짚어서 겨우 화를 면했다. 그후에 아내가 내가 잡아 줄까한다.

상품으로 탄 PNE 입장권을 사정사정해서 아내와 가게 되고 넌 2불 짜리도 안돼 가 뇌리에 박혀, 오늘 얘기했더니 내가 그랬어 미안해라고 말한다.그 게 그렇세 간단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쁘게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아내는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 주고 크리스마스 열차(?)를 타기로 하고 직원한테 저 뒤로 가서 기다리라고 해서 가서 줄을 서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추운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40분도 넘게 기다리다 보니 아내가 또 심술이 났다. 그리고 화장실이 없어 헤매다 아이스링크에 가서 볼일을 보고 트리 터널을 다시 가 보고는 빨리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많은 사람이 다른 쪽에서 쏟아져 나온다. 아마도 무슨 공연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도 알아 보지 않고 지금 여기 와서 그걸 보고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벌써 저녁 8시니까 빨리 가자고 한다.

요즘은 낮에도 흐리면 오후 4시만 되고 어둡다. 그래서 피트니스 센터에서 수영장을 바라보면 전등이 마치 창같이 벽 쪽에 있어서 오늘 날씨가 좋아졌나 하고 다른 쪽 창을 보고서야 내가 착각한 것임을 깨닫는다. 아니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수영장의 전등이 마치 인공 태양처럼 밝게 빛난다. 이런 호사를 우리 부모님도 누렸으면 얼마니 좋을까라는 생각한다. 이민 초에 아이들 수영 레슨, 태권도, 레슨, 피아노 레슨 등을 데리고 다니면서 데려다주고 기다리고 데려오기를 하던 때는 일에 지치고 힘든 마음에 그런 것이 감사함을 몰랐다. 그리고 고국에 있는 부모님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부모님을 멀리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이런 호사를 누린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평생 들녘에서 일만 하다고 돌아가신 우리의 인생 선배이자 가족이었던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캐나다에서는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피트니스를 마치고 사우나와 핫탑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장을 바라보면서 동네 반상회 하듯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니 한국에도 경로당이 아닌 이런 수영장을 포함한 커뮤니티센터, 한국말로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도 서울이나 경기 등 대도시는 땅값이 비싸서 건축하기 힘드니 시골부터 이런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해서 복지를 늘려 나가면 어떨까. 물론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 뭐니 뭐니 해도 수입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모여서 고스톱이나 하고있는 시골 노인들보다는 핫탑이나 사우나 같은 시설과 마사지와 운동기구들을 들여놓아서 겨울에도 운동할 수 있는 조건이면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좋은 일일 것 같다. 서울보다 시골에 이런 시설이 있고 복지가 있으면 은퇴 후에 의식주만 기본적으로 해결된다면 그다음이 건강이다. 나이 들어 이곳저곳 고장 나고 암 같은 중병이 들면 재산을 다 날리는 경우가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많다. 캐나다는 전 국민 무료 의료보험이라 그런 걱정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어릴 때 여름엔 동네 개울에서 아이들과 홀딱 벗고 개헤엄도 치고 저수지에서 놀다가 빠져 죽을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엔 문고리에 세수하고 마르지 않은 손이 쩍 하고 달라붙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목욕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무 함지에 가마솥에서 끓인 물을 받아 놓고 씻겨 주던 어린 시절 그리고 남성의 심벌이 나타나고 부터는 친구와 제천 시내 목욕탕에 다녔는데 자주 갈 형편은 안됐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목욕탕 탕 안에서 수영 하던 그 시절. 지금은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오고 욕조나 샤워 시설이 있어 샤워 하는데 문제가 없으니 목욕탕이 많이 없어 진다고 한다. 캐나다는 목욕탕보다 더 큰 냉탕과 온탕 그리고 수영장이 있으니 좋다. 그렇다고 집에 욕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낮엔 일하고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가 잠자는 것이 일상이던 사람들이
밤 낮 없이 돌리는 공장에서 3교대 근무하듯 낮과 밤을 잊고
밤에도 낮처럼 불 밝히고 운동하고 일하고 공부한다.

언제부턴 가 동지나 입춘이 별 의미가 없어진 것은
비단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수북이 쌓인
마트가 있어서 만은 아닐 것이다.

명절이 되면 하늘로 떠난 부모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통하는 기도로 부르고
해마다 고국을 가는 사람들을 보며 고국이 그리워 달을 보고 이야기하는
가난한 이민자만 밤은 더 칠흑처럼 깊고 길다.
 







#작가의 변
어제는 아기 동지라고 팥죽을 먹으면 안 된다는 아내. 그렇다고 팥밥도, 수수팥떡도 없이 그냥 지나갔다. 아니 3주 전부터 아들과 딸 아내에게 같이 PNE 겨울 축제에 가자고 했는데 마감을 이틀 앞두고 어제야 다른 사람하고 가라는 딸과 아내. 결국은 아내가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갈 마음이 별로 없었던 아내는 계속 투덜댔다. 다운타운 쪽을 갈 땐 대중교통이 편하다는 나와 다른 사람들은 다 차 가지고 가는데 혼자만 늘 다운타운 쪽에 갈 때는 차를 안 가지고 간다고 말하면서 투덜거리다가 가는 길은 확인해 봤냐고 하면서 전철에서 구글로 확인 하니, 그걸 지금 확인하면 어떻게 하냐고 한다.

그러더니 날씨가 춥다고 또 투덜댄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은 우리 말고 다른 팀 한 팀밖에 없지 않냐고 또 불만이다. 페스티벌은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전부라 봐도 된다. 어차피 행사장 부스 음식은 비싼 걸 알고 있어 사 먹을 마음도 없었지만, 팀 홀튼 부스에서 커피를 2불에 팔고 있는데 줄이 좀 길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핫초코 마시고 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넌 2불 짜리도 안 돼라고 한다.

그 순간 정말 상처받았다.

버스 노약자석에 앉아서 갈 때 급정거하는 바람에 옆으로 나가떨어질 뻔할 때 급하게 옆을 짚어서 겨우 화를 면했다. 그후에 아내가 내가 잡아 줄까한다.

상품으로 탄 PNE 입장권을 사정사정해서 아내와 가게 되고 넌 2불 짜리도 안돼 가 뇌리에 박혀, 오늘 얘기했더니 내가 그랬어 미안해라고 말한다.그 게 그렇세 간단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쁘게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아내는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 주고 크리스마스 열차(?)를 타기로 하고 직원한테 저 뒤로 가서 기다리라고 해서 가서 줄을 서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추운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40분도 넘게 기다리다 보니 아내가 또 심술이 났다. 그리고 화장실이 없어 헤매다 아이스링크에 가서 볼일을 보고 트리 터널을 다시 가 보고는 빨리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많은 사람이 다른 쪽에서 쏟아져 나온다. 아마도 무슨 공연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도 알아 보지 않고 지금 여기 와서 그걸 보고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벌써 저녁 8시니까 빨리 가자고 한다.

요즘은 낮에도 흐리면 오후 4시만 되고 어둡다. 그래서 피트니스 센터에서 수영장을 바라보면 전등이 마치 창같이 벽 쪽에 있어서 오늘 날씨가 좋아졌나 하고 다른 쪽 창을 보고서야 내가 착각한 것임을 깨닫는다. 아니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수영장의 전등이 마치 인공 태양처럼 밝게 빛난다. 이런 호사를 우리 부모님도 누렸으면 얼마니 좋을까라는 생각한다. 이민 초에 아이들 수영 레슨, 태권도, 레슨, 피아노 레슨 등을 데리고 다니면서 데려다주고 기다리고 데려오기를 하던 때는 일에 지치고 힘든 마음에 그런 것이 감사함을 몰랐다. 그리고 고국에 있는 부모님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부모님을 멀리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이런 호사를 누린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평생 들녘에서 일만 하다고 돌아가신 우리의 인생 선배이자 가족이었던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캐나다에서는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피트니스를 마치고 사우나와 핫탑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장을 바라보면서 동네 반상회 하듯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니 한국에도 경로당이 아닌 이런 수영장을 포함한 커뮤니티센터, 한국말로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도 서울이나 경기 등 대도시는 땅값이 비싸서 건축하기 힘드니 시골부터 이런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해서 복지를 늘려 나가면 어떨까. 물론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 뭐니 뭐니 해도 수입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모여서 고스톱이나 하고있는 시골 노인들보다는 핫탑이나 사우나 같은 시설과 마사지와 운동기구들을 들여놓아서 겨울에도 운동할 수 있는 조건이면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좋은 일일 것 같다. 서울보다 시골에 이런 시설이 있고 복지가 있으면 은퇴 후에 의식주만 기본적으로 해결된다면 그다음이 건강이다. 나이 들어 이곳저곳 고장 나고 암 같은 중병이 들면 재산을 다 날리는 경우가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많다. 캐나다는 전 국민 무료 의료보험이라 그런 걱정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어릴 때 여름엔 동네 개울에서 아이들과 홀딱 벗고 개헤엄도 치고 저수지에서 놀다가 빠져 죽을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엔 문고리에 세수하고 마르지 않은 손이 쩍 하고 달라붙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목욕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무 함지에 가마솥에서 끓인 물을 받아 놓고 씻겨 주던 어린 시절 그리고 남성의 심벌이 나타나고 부터는 친구와 제천 시내 목욕탕에 다녔는데 자주 갈 형편은 안됐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목욕탕 탕 안에서 수영 하던 그 시절. 지금은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오고 욕조나 샤워 시설이 있어 샤워 하는데 문제가 없으니 목욕탕이 많이 없어 진다고 한다. 캐나다는 목욕탕보다 더 큰 냉탕과 온탕 그리고 수영장이 있으니 좋다. 그렇다고 집에 욕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겨울은 밤이 길다. 그중에 동지가 가장 길다. 동지가 지나면서 밤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한다. 어두운 밤에 끼룩대는 캐나다 구스들의 소리를 들으면 슬퍼진다. 어두운 밤에 집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는 시간에 먹을 것도 못 먹고 날고 있는 새들이 천형이다 싶기도 하다. 하늘을 날면 멀리 볼 수 있어 좋을 줄만 알았는데 하늘을 나는 날짐승에게도 먹이 사슬이 존재한다. 까마귀가 작은 새들을 공격해서 먹는 때도 있다. 다람쥐를 공격하는 것은 많이 봤어도 작은 새를 공격하는 것은 잘 보니 못해서 충격을 먹었다. 바닷속도 먹이 사슬에 의해 작은 플랑크톤에서 출발해서 상어와 고래에 이르기까지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에 따라 생태계가 이루어진다. 육지는 어느새 인간이 필요로 하는 농작물을 기르고 닭, 돼지, 소등 가축을 기르면서 많은 육지는 피폐해지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수는 급격히 줄어 들었다. 가끔 들개인 코요테를 만나거나 곰을 만나면 놀라서 경찰에 신고하면 당국에서 바로 달려가 사람을 해친 해당 동물을 사살한다.

마치 인간을 위해 지구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태초에 말씀으로 낮과 밤이 있으라 하니 있었고 바다와 육지가 생겨나고 동식물이 생겨나고 창조주와 닮은 인간 남자를 흙으로 만들고 그가 혼자 사는 것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 안쓰러워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 존재이고 생명을 불어넣기 전엔 그저 흙인 존재였다. 그리고 죽은 후에 흙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전쟁 같은 삶에서 동물보다도 참혹한 먹이 사슬이 인간 세상에도 존재한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생존경쟁 속에 인간은 어느새 괴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전쟁은 하루도 쉬지 않고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전쟁의 피해자는 어린이와 노약자가 최대 피해자가 된다. 함께 품앗이해서 농사를 짓고 하던 때에는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동네가 모두 식구 같았지만, 지금은 외국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시대가 되고 노인들만 남은 농촌이 되었다. 다들 도시에서 평생의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룬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제 오트밀로 사과 케이크를 만들려던 아들이 개봉하지 않은 코스코에서 사온 오트밀에서 바금이 벌레가 많이 나오니까 버리라고 했다. 나와 아내는 아까웠지만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92년생인 아들은 배고픔이라는 것을 모르고 밥알이 밥상 아래 떨어지면 주워 먹던 우리들과 같은 어린 시절을 지내지 않아 정말로 귀중한 것이 모르는 것 같다. 물론 땅바닥에 떨어진 것도 얼른 주워 먹었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캐나다에도 무료로 음식을 나누어 주는 푸드뱅크엔 사람들이 정말 많이도 길게 줄을 선다. 지구에 밤과 낮이 있듯이 햇빛이 나는 곳에도 양지와 음지가 있듯이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림자도 나의 일부이다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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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밤이 길다. 그중에 동지가 가장 길다. 동지가 지나면서 밤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한다. 어두운 밤에 끼룩대는 캐나다 구스들의 소리를 들으면 슬퍼진다. 어두운 밤에 집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는 시간에 먹을 것도 못 먹고 날고 있는 새들이 천형이다 싶기도 하다. 하늘을 날면 멀리 볼 수 있어 좋을 줄만 알았는데 하늘을 나는 날짐승에게도 먹이 사슬이 존재한다. 까마귀가 작은 새들을 공격해서 먹는 때도 있다. 다람쥐를 공격하는 것은 많이 봤어도 작은 새를 공격하는 것은 잘 보니 못해서 충격을 먹었다. 바닷속도 먹이 사슬에 의해 작은 플랑크톤에서 출발해서 상어와 고래에 이르기까지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에 따라 생태계가 이루어진다. 육지는 어느새 인간이 필요로 하는 농작물을 기르고 닭, 돼지, 소등 가축을 기르면서 많은 육지는 피폐해지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수는 급격히 줄어 들었다. 가끔 들개인 코요테를 만나거나 곰을 만나면 놀라서 경찰에 신고하면 당국에서 바로 달려가 사람을 해친 해당 동물을 사살한다.

마치 인간을 위해 지구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태초에 말씀으로 낮과 밤이 있으라 하니 있었고 바다와 육지가 생겨나고 동식물이 생겨나고 창조주와 닮은 인간 남자를 흙으로 만들고 그가 혼자 사는 것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 안쓰러워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 존재이고 생명을 불어넣기 전엔 그저 흙인 존재였다. 그리고 죽은 후에 흙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전쟁 같은 삶에서 동물보다도 참혹한 먹이 사슬이 인간 세상에도 존재한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생존경쟁 속에 인간은 어느새 괴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전쟁은 하루도 쉬지 않고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전쟁의 피해자는 어린이와 노약자가 최대 피해자가 된다. 함께 품앗이해서 농사를 짓고 하던 때에는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동네가 모두 식구 같았지만, 지금은 외국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시대가 되고 노인들만 남은 농촌이 되었다. 다들 도시에서 평생의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룬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제 오트밀로 사과 케이크를 만들려던 아들이 개봉하지 않은 코스코에서 사온 오트밀에서 바금이 벌레가 많이 나오니까 버리라고 했다. 나와 아내는 아까웠지만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92년생인 아들은 배고픔이라는 것을 모르고 밥알이 밥상 아래 떨어지면 주워 먹던 우리들과 같은 어린 시절을 지내지 않아 정말로 귀중한 것이 모르는 것 같다. 물론 땅바닥에 떨어진 것도 얼른 주워 먹었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캐나다에도 무료로 음식을 나누어 주는 푸드뱅크엔 사람들이 정말 많이도 길게 줄을 선다. 지구에 밤과 낮이 있듯이 햇빛이 나는 곳에도 양지와 음지가 있듯이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림자도 나의 일부이다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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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일하고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가 잠자는 것이 일상이던 사람들이
밤 낮 없이 돌리는 공장에서 3교대 근무하듯 낮과 밤을 잊고
밤에도 낮처럼 불 밝히고 운동하고 일하고 공부한다.

언제부턴 가 동지나 입춘이 별 의미가 없어진 것은
비단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수북이 쌓인
마트가 있어서 만은 아닐 것이다.

명절이 되면 하늘로 떠난 부모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통하는 기도로 부르고
해마다 고국을 가는 사람들을 보며 고국이 그리워 달을 보고 이야기하는
가난한 이민자만 밤은 더 칠흑처럼 깊고 길다.
 







#작가의 변
어제는 아기 동지라고 팥죽을 먹으면 안 된다는 아내. 그렇다고 팥밥도, 수수팥떡도 없이 그냥 지나갔다. 아니 3주 전부터 아들과 딸 아내에게 같이 PNE 겨울 축제에 가자고 했는데 마감을 이틀 앞두고 어제야 다른 사람하고 가라는 딸과 아내. 결국은 아내가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갈 마음이 별로 없었던 아내는 계속 투덜댔다. 다운타운 쪽을 갈 땐 대중교통이 편하다는 나와 다른 사람들은 다 차 가지고 가는데 혼자만 늘 다운타운 쪽에 갈 때는 차를 안 가지고 간다고 말하면서 투덜거리다가 가는 길은 확인해 봤냐고 하면서 전철에서 구글로 확인 하니, 그걸 지금 확인하면 어떻게 하냐고 한다.

그러더니 날씨가 춥다고 또 투덜댄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은 우리 말고 다른 팀 한 팀밖에 없지 않냐고 또 불만이다. 페스티벌은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전부라 봐도 된다. 어차피 행사장 부스 음식은 비싼 걸 알고 있어 사 먹을 마음도 없었지만, 팀 홀튼 부스에서 커피를 2불에 팔고 있는데 줄이 좀 길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핫초코 마시고 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넌 2불 짜리도 안 돼라고 한다.

그 순간 정말 상처받았다.

버스 노약자석에 앉아서 갈 때 급정거하는 바람에 옆으로 나가떨어질 뻔할 때 급하게 옆을 짚어서 겨우 화를 면했다. 그후에 아내가 내가 잡아 줄까한다.

상품으로 탄 PNE 입장권을 사정사정해서 아내와 가게 되고 넌 2불 짜리도 안돼 가 뇌리에 박혀, 오늘 얘기했더니 내가 그랬어 미안해라고 말한다.그 게 그렇세 간단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쁘게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아내는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 주고 크리스마스 열차(?)를 타기로 하고 직원한테 저 뒤로 가서 기다리라고 해서 가서 줄을 서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추운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40분도 넘게 기다리다 보니 아내가 또 심술이 났다. 그리고 화장실이 없어 헤매다 아이스링크에 가서 볼일을 보고 트리 터널을 다시 가 보고는 빨리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많은 사람이 다른 쪽에서 쏟아져 나온다. 아마도 무슨 공연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도 알아 보지 않고 지금 여기 와서 그걸 보고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벌써 저녁 8시니까 빨리 가자고 한다.

요즘은 낮에도 흐리면 오후 4시만 되고 어둡다. 그래서 피트니스 센터에서 수영장을 바라보면 전등이 마치 창같이 벽 쪽에 있어서 오늘 날씨가 좋아졌나 하고 다른 쪽 창을 보고서야 내가 착각한 것임을 깨닫는다. 아니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수영장의 전등이 마치 인공 태양처럼 밝게 빛난다. 이런 호사를 우리 부모님도 누렸으면 얼마니 좋을까라는 생각한다. 이민 초에 아이들 수영 레슨, 태권도, 레슨, 피아노 레슨 등을 데리고 다니면서 데려다주고 기다리고 데려오기를 하던 때는 일에 지치고 힘든 마음에 그런 것이 감사함을 몰랐다. 그리고 고국에 있는 부모님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부모님을 멀리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이런 호사를 누린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평생 들녘에서 일만 하다고 돌아가신 우리의 인생 선배이자 가족이었던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캐나다에서는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피트니스를 마치고 사우나와 핫탑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장을 바라보면서 동네 반상회 하듯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니 한국에도 경로당이 아닌 이런 수영장을 포함한 커뮤니티센터, 한국말로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도 서울이나 경기 등 대도시는 땅값이 비싸서 건축하기 힘드니 시골부터 이런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해서 복지를 늘려 나가면 어떨까. 물론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 뭐니 뭐니 해도 수입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모여서 고스톱이나 하고있는 시골 노인들보다는 핫탑이나 사우나 같은 시설과 마사지와 운동기구들을 들여놓아서 겨울에도 운동할 수 있는 조건이면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좋은 일일 것 같다. 서울보다 시골에 이런 시설이 있고 복지가 있으면 은퇴 후에 의식주만 기본적으로 해결된다면 그다음이 건강이다. 나이 들어 이곳저곳 고장 나고 암 같은 중병이 들면 재산을 다 날리는 경우가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많다. 캐나다는 전 국민 무료 의료보험이라 그런 걱정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어릴 때 여름엔 동네 개울에서 아이들과 홀딱 벗고 개헤엄도 치고 저수지에서 놀다가 빠져 죽을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엔 문고리에 세수하고 마르지 않은 손이 쩍 하고 달라붙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목욕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무 함지에 가마솥에서 끓인 물을 받아 놓고 씻겨 주던 어린 시절 그리고 남성의 심벌이 나타나고 부터는 친구와 제천 시내 목욕탕에 다녔는데 자주 갈 형편은 안됐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목욕탕 탕 안에서 수영 하던 그 시절. 지금은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오고 욕조나 샤워 시설이 있어 샤워 하는데 문제가 없으니 목욕탕이 많이 없어 진다고 한다. 캐나다는 목욕탕보다 더 큰 냉탕과 온탕 그리고 수영장이 있으니 좋다. 그렇다고 집에 욕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겨울은 밤이 길다. 그중에 동지가 가장 길다. 동지가 지나면서 밤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한다. 어두운 밤에 끼룩대는 캐나다 구스들의 소리를 들으면 슬퍼진다. 어두운 밤에 집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는 시간에 먹을 것도 못 먹고 날고 있는 새들이 천형이다 싶기도 하다. 하늘을 날면 멀리 볼 수 있어 좋을 줄만 알았는데 하늘을 나는 날짐승에게도 먹이 사슬이 존재한다. 까마귀가 작은 새들을 공격해서 먹는 때도 있다. 다람쥐를 공격하는 것은 많이 봤어도 작은 새를 공격하는 것은 잘 보니 못해서 충격을 먹었다. 바닷속도 먹이 사슬에 의해 작은 플랑크톤에서 출발해서 상어와 고래에 이르기까지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에 따라 생태계가 이루어진다. 육지는 어느새 인간이 필요로 하는 농작물을 기르고 닭, 돼지, 소등 가축을 기르면서 많은 육지는 피폐해지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수는 급격히 줄어 들었다. 가끔 들개인 코요테를 만나거나 곰을 만나면 놀라서 경찰에 신고하면 당국에서 바로 달려가 사람을 해친 해당 동물을 사살한다.

마치 인간을 위해 지구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태초에 말씀으로 낮과 밤이 있으라 하니 있었고 바다와 육지가 생겨나고 동식물이 생겨나고 창조주와 닮은 인간 남자를 흙으로 만들고 그가 혼자 사는 것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 안쓰러워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 존재이고 생명을 불어넣기 전엔 그저 흙인 존재였다. 그리고 죽은 후에 흙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전쟁 같은 삶에서 동물보다도 참혹한 먹이 사슬이 인간 세상에도 존재한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생존경쟁 속에 인간은 어느새 괴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전쟁은 하루도 쉬지 않고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전쟁의 피해자는 어린이와 노약자가 최대 피해자가 된다. 함께 품앗이해서 농사를 짓고 하던 때에는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동네가 모두 식구 같았지만, 지금은 외국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시대가 되고 노인들만 남은 농촌이 되었다. 다들 도시에서 평생의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룬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제 오트밀로 사과 케이크를 만들려던 아들이 개봉하지 않은 코스코에서 사온 오트밀에서 바금이 벌레가 많이 나오니까 버리라고 했다. 나와 아내는 아까웠지만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92년생인 아들은 배고픔이라는 것을 모르고 밥알이 밥상 아래 떨어지면 주워 먹던 우리들과 같은 어린 시절을 지내지 않아 정말로 귀중한 것이 모르는 것 같다. 물론 땅바닥에 떨어진 것도 얼른 주워 먹었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캐나다에도 무료로 음식을 나누어 주는 푸드뱅크엔 사람들이 정말 많이도 길게 줄을 선다. 지구에 밤과 낮이 있듯이 햇빛이 나는 곳에도 양지와 음지가 있듯이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림자도 나의 일부이다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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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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