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수산죽비(首山竹篦)
신무문관: 수산죽비(首山竹篦)
  • 박영재
  • 승인 2023.12.2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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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66.

성찰배경: 바로 앞글에서 임제-흥화-남원 선사의 법을 이은 풍혈연소(風穴延沼, 896-973) 선사께서 제창한 <무문관(無門關)> 제24칙 ‘이각어언(離却語言)’ 공안을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법을 이은 수산성념(首山省念, 926-993) 선사께서 제창한 <무문관> 제44칙 ‘수산죽비(首山竹篦)’ 공안과 수산 선사의 법을 이은 분양선소(汾陽善昭, 947-1024) 선사의 오도(悟道) 기연(機緣)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 신무문관: 수산죽비(首山竹篦)

본칙(本則): 수산 선사께서 죽비를 들고 대중에게 ‘그대들이 만약 이것을 (명칭에 집착해) 죽비라고 부른다면, 즉시 저촉(抵觸)될 것이요, 반대로 죽비라고 부르지 아니하면, (나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이니) 역시 위배(違背)될 것이다. 그대들이여! 자, 일러보아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라고 다그치셨다.

평창(評唱):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 선사께서 “(수산 선사께서) 죽비라고 부르면 저촉되고 죽비라고 부르지 않으면 위배된다고 하셨는데, (이에 대해 걸림 없는 바른 경계는) 말로 응답해도 안 되고 침묵으로 응대해도 안 된다! 속히 일러보아라.[無門曰 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不得有語 不得無語. 速道速道.]”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죽비를 들어 올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영을 내리면서/ 위배와 저촉으로 번갈아 다그치니/ 부처와 조사들조차 목숨을 구걸하리라![拈起竹篦 行殺活令 背觸交馳 佛祖乞命.]

군더더기: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의 어록에 보면 ‘수산죽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배촉(背觸)의 뜻은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것이네./ 비록 취모검(吹毛劍)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도처에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칼과 창이 널려 있구나.[背觸非遮護 明明直舉揚 吹毛雖不動 遍地是刀槍.]”

그런데 이들 두 게송을 비교해 보면 간화선 수행체계를 확립한 대혜 선사의 좀 더 서술적인 게송과 간화선 수행체계를 완성한 무문혜개 선사의 정곡을 찌르는 간결한 게송이 멋진 대비를 이루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 신부는 나귀타고 시어머니는 고삐를 끄네

요즈음 우리는 통계청이 발표한 ‘2022-2072 인구추계’에 따르면 2041년 5000만 명 아래로 내려가고, 출산율은 2024년 0.7명으로 붕괴하는 등 출산 절벽에 관한 우려의 기사들을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한 외적(外的)인 개선책 마련뿐만이 아니라, 앞 칼럼에서도 필자가 한 번 인용한 적이 있는 다음과 같은 문답을 통해 1000년 전 수산 선사께서 제창한 선어(禪語) 역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자발적인 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내적(內的) 대비책이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수산 선사께 어느 때 한 승려가 ‘부처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선사께서 ‘신부는 나귀타고 시어머니[阿家]는 고삐를 끄네![新婦騎驢阿家牽]’라고 응대하셨다.”

군더더기: 부연하자면 혈연(血緣)공동체의 핵심 일원인 고부(姑婦) 사이의 갈등을 완전히 멈추게 하는, 시어머니[甲]란 분별도 며느리[乙]란 분별도 떠난 ‘갑을불이(甲乙不二)’의 무심한 경지를 머리만이 아닌 온몸으로 체득하고 혈연공동체의 발전에 함께 더불어 헌신한다면 ‘부처란 무엇입니까?’란 물음의 답은 스스로 자명할 것이고 또한 집안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이루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럴 경우 젊은 부부들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녀들을 출산하고 양육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게 되겠지요. 따라서 혈연공동체 구성원들의 큰 축제인 2024년 새해 설날 명절부터 이런 마음 자세로 새출발하시기를 간절히 염원드려 봅니다. 

◇ 분양선소 선사의 오도 기연

먼저 <인천보감(人天寶鑑)>에 분양선소 선사의 수행관(修行觀)을 잘 엿볼 수 있는, 행각(行脚)에 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분양 선사는 태원(太原) 출신이다. 도량과 식견이 넓고 깊어 겉치레가 없고 큰 뜻을 가슴에 품었다. 어떤 문장[文字]이든 스승께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그 뜻을 환하게 깨우쳤다.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세상과 인생이 괴롭고 싫어져 출가하였다. 명성이 자자한 스승[老尊宿] 칠십여 분께 참문(參問)하며 이분들의 현묘(玄妙)한 가풍을 모두 체득하였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오래 머물지 않고 산수유람(山水遊覽)도 즐기지 않으니, 어떤 사람들은 그런 선사를 멋[韻致] 없는 사람이라고 비웃었다. 그러자 선사께서는 ‘옛 어른들은 행각(行脚)할 때 성인(聖人)의 마음과 일치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지체하지 않고 곧장 스승들을 찾아가 결택(決擇)하였거늘, 어찌 한가로이 산수를 유람하면서 스승들을 찾아가겠는가!’라고 탄식하였다.”

한편 분양 스님은 행각을 이어가며 스승들을 찾아 참문하다가 마침내 수산 선사를 찾아뵙고 다음과 같은 문답을 통해 대오(大悟)하게 됩니다. 

“분양 스님이 ‘마조 선사께서 상당하였을 때, 백장 스님이 앞으로 나가 자리를 말아서 거두자 선사께서 즉시 법좌에서 내려왔는데 이때 백장 스님이 자리를 말아 올린 뜻이 무엇입니까?’하고 여쭈었다. 이에 수산 선사께서 ‘곤룡포(袞龍袍)의 소맷자락[袖]을 걷어 올려 젖히니 온몸이 드러나네.[龍袖拂開全體見.]’라고 답하셨다. 그러자 거듭 분양 스님이 ‘스승께선 이를 어떻게 꿰뚫어 보고 계십니까?[師意如何.]’하고 여쭈었다. 이에 수산 선사께서 ‘코끼리[부처] 가는 곳에 여우[중생]의 자취 끊겼느니라.[象王行處絕狐踪.]’라고 답하셨다.
마침내 분양 스님께서 (이 일전어를 듣고) 크게 깨닫고 ‘만고에 푸른 못과 허공에 뜬 달은 거듭 두세 번 애써 걸러내고서야 비로소 마땅히 알 수 있구나.[萬古碧潭空界月 再三勞漉始應知.]’라는 게송을 바친 후 오체투지의 절을 올리고 대중처소로 돌아갔다.” 

군더더기: 분양 선사는 중국 천하를 행각할 때 명승 유적에는 전혀 한눈팔지 않고 70여 분의 스승들을 찾아 오직 치열하게 참문하며 향상(向上) 여정을 이어가다가, 마침내 수산 선사 회상에서 문답을 통해 인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필자의 견해로는 인가가 끝이 아니라 인가 후 독자적으로 제자들의 입실점검뿐만이 아니라, 입적(入寂) 순간까지도 오후(悟後) 수행을 포함해 있는 그 자리에서 함께 더불어 통찰(洞察)과 나눔[布施]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의 실천적 삶을 치열하게 이어가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비유컨대 학문의 세계의 경우 대학원생이 지도교수 지도하에 전공 주제에 관한 연구 결과를 국제저명학술지에 여러 편 게재하게 되면, 인가장(印可狀)에 해당하는 박사학위 졸업장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는 결코 더이상 연구행위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동시에 박사학위 제자도 길러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천재 물리학자였던 아인슈타인(1879-1955) 박사님은 세상 떠나기 직전까지도 몸소 계산을 하면서 연구활동을 이어가셨다고 합니다.

끝으로 매년 연말이 되면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를 발표하는데, 올해는 ‘이익을 보고 의로움을 잊는다’라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가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동체의 공익(公益)이 아닌 개인적인 사리사욕(私利私慾)에 혈안이 되었다는 점을 반증(反證)한 것이라 사료됩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2024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갑을불이’와도 맞닿아 있는, 본래 <논어(論語)>에 담긴 ‘이익을 보면 공익[의로움]을 생각한다’라는 뜻의 ‘견리사의(見利思義)’ 정신을 되살리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행원 선사로부터 두 차례 독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투과하기: 무문관>(본북, 2011),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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