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스님
며칠 전 스님을 찾아뵙고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면서 다시 논의를 이어가기로 약속했건만, 지금 저는 스님의 부음 앞에 서 있습니다. 그 기억을 떠올리는 저로서는 슬프기보다는 황망하고 고통스럽습니다.
‘무엇이 스님을 그렇게 빨리 가시게 하였습니까.’
속세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희가 스님의 깊은 뜻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웃 종교인으로서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 스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
스님은 화합의 사람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종교의 화합을 위해, 나아가 한국 사회의 화합을 위해 앞장서 주셨습니다. 스님은 한국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 앞에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불을 밝혀 주셨습니다. 그 일이 상징하듯, 스님의 지도력은 한국의 종교인들이 서로 존중하며 시대정신을 실현하는 일에 기꺼이 함께하게 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는 환한 웃음으로,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는 수줍은 웃음으로, 공격하는 사람에게는 계면쩍은 웃음으로 협력과 연대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스님은 평화의 사람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특히 남북 간의 갈등이 고조되었던 시기에 평양(2011.9)을 방문하여 북의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남북 간의 교류 협력을 권고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스님은 참 불자이셨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의 큰 짐을 내려놓으신 후 동안거를, 그리고 전국 사찰들을 연결하는 순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것은 늘 종교인의 정체성에 대해 노심초사하던 저에게 신선한 감동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교인은 늘 하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겠지요. 스님의 순례의 길은 부처님의 뜻을 찾아가는 길이었고 그 뜻을 실천하고자 다짐하는 길이었고, 마침내 부처님과 합일하는 길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하늘의 뜻을 찾아가는 순례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는 인도 순례를 마친 후 “내가 할 일은 다했다.”라고 말씀하셨다지요.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늦게 전해 듣은 저는 며칠 전 스님을 만났을 때 “스님, 남북 간의 불신과 갈등이 매우 심각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종교인들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인 평화 통일 운동에 앞장서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리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스님께서 소신공양하신 큰 뜻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작은 생각입니다. 용서하십시오.
스님, 스님은 속세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아무리 해도 닿을 수 없는 새로운 순례를 떠나셨네요. 극락왕생하십시오.
오늘 스님의 극락왕생 길을 배웅하는 저희도 스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 종교 간의 화합은 물론, 정의 평화 생명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에 적극 나서겠습니다.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
2023년 12월 3일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김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