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35. 명품 겉모습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35. 명품 겉모습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10.23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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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무명씨가 명품백을 들면
명품백만 보이듯
저마다 자리가 있음에도

유명 인사 말씀에서 명언을 쏙 빼서 쓰면서
무소유를 말하지만 정작 명품엔 마음 약해진다
사람도 유명인이 있듯 물건도 명품이 있다

명품만을 상대한다는 사람은
마음이 비어서 헛헛증이 생긴 것처럼
먹고 또 먹어도 채워지지 않듯
명품을 채우고 명품 집에서 살아도
명품이 무명 같다

명품은 고이 간직하고 짝퉁을 들고 다닐 거면
명품은 왜 샀는지
맛없는 물을 먹어도 명품처럼 알하는 사람처럼
젖소가 풀과 물만 먹어도 우유를 만들듯이.
 







#작가의 변
중학교 때 ‘댄디’라는 기성 교복을 어머니가 사줘서 입고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어머니는 당신 생각에 좋고 이름있는 교복을 사서 소풍mf 가라고 사 준 것이다. 사실 그때 만해도 나도 다른 교복이 있는 줄도 몰랐고 교복이 다 교복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 산 교복을 입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소풍을 간 나는 제천 용바위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뒤가 허전했다. 해서 일어서서 만져보니 바지의 재봉틀로 박음질한 엉덩이 부위가 쫙 찢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즐거워야 할 소풍은 좌불안석이 되었다. 앉아 있어서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이 내 속옷 팬티를 볼까 두려웠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 장기 자랑을 해도 노래를 불러도 온전하게 즐길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일단 학교까지 걸어서 오고 학교에서 또 시내에 있는 버스 타는 곳까지 아주 멀리 걸어서 와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지금은 무엇으로 가렸는지 기억이 희미한데 엉덩이 쪽을 가리고 걸으니,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걸음걸이도 조심조심 걷게 되었다. 어차피 찢어진 것 편하게 걸으면 그만인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원망했다. 엄마가 사 준 교복이 소풍 가서 앉자마자 쭉 찢어졌다고 말이다. 교복을 사 준 엄마가 무슨 죄인가 싶지만, 당시엔 그것이 엄마 탓인 것만 같았다.

그 후로는 웬만해서 기성복 교복을 사서 입지 않게 됐다. 당시엔 양복점에서 교복을 맞춰 입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도 기성복의 품질을 알고 나서는 교복을 맞춰서 입게 되었다. 하복과 동복 2벌이나 필요하다. 없는 농부의 집에 두 벌씩이나 교복을 사 입는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엄마도 한 번 그 품질에 혼난 뒤여서 흔쾌히 그렇게 하도록 했다.

시골 살면서 늘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 주는 옷만 입었다. 그러니 시장표 옷이란 것이 서울 동대문에서 도매로 파는 것을 가져다가 파는 것이라 폼이 살지 않았다. 옷이 때로는 자신감을 준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특히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일수록 옷이라도 잘 입어야 없어 보이지 않고 있어 보인다. 그런데 시장표는 시골에 그렇고 그런 아이들과 별반 다름없는 모습으로 비추게 한다.

고등학교 때 만해도 프로스펙스 운동화 같은 명품을 신고 싶었지만 어디 헤어지거나 찢어지지 않으면 그냥 입고 신었다. 브렌드 네임에 대해서는 물론 광고를 보거나 입은 친구들을 보면 볼 때는 부러웠지만 다음에 별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민을 와서 정신없이 일만 하다 산우회를 처음 나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생선 뼈다귀 같은 표식이 있는 등산복과 등산 가방을 메고 입고 다녔다. 신발도 대부분 이태리제 잠발란을 신고 다녔다. 나는 이민 오기 전에 한국에서 신었던 등산화를 (20년도 넘은 것) 신었다. 그런데 방수가 되지 않아 겨울엔 물이 그대로 다 들어와서 양말이 다 젖었다. 유명한 등산화도 아니었다. 그래서 재활용품을 파는 스토어에 가서 안에 털이 달린 등산화를 샀는데 조금 컸다. 그러니 내리막엔 발이 앞으로 밀리고 올라갈 때도 불편하긴 했어도 그렇게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지금까지 신고 있다. 그러다. 새것으로 하나 장만한다고 잠발란을 사려 등산 장비 전문점에 갔는데 내 발에 맞는 사이즈가 없었다. 그리고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다른 이태리 제 등산화를 파는 곳을 알게 되어 사서 신으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사서 신고 등산을 해보니 복숭아뼈 있는 곳이 불편했다. 그래서 동료한테 얘기하니 “거봐 내가 잠발란 사라고 했잖아”하면서 당장 가서 환불해 달라고 해 그래서 그 점포에 가서 환불해 달라고 하니 환불은 안 되고 양말이나 하나 더 주겠다고 해서 그냥 가져오고 별로 신지도 못하고 보관해 놓았었는데 3년 전에 신으려고 하니 밑에 창이 입을 쫙 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신발 수선하는 곳에 가서 수리를 부탁했더니 수리 불가라고 말했다.

아크테레스는 캐나다 대표 등산복 브랜드다. 명품 중 명품으로 대부분의 등산하는 사람들이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다른 HH나 콜롬비아, 노스페이스 등 다른 브랜드도 많은데 말이다. 물론 골프를 치는 사람들도 골프를 치기 전에 골프용품과 골프복과 신발 등을 구입하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물론 아크테레스 같은 곳이 라이프 보증이라고 수선해 준다고 하지만 떨어질 때까지 입기보단 싫증나 다른 것을 구입해서 입는 경우도 많다. 캐나다 구스도 비싸고, 명품이다 보니 별로 춥지도 않은 밴쿠버에서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요가복으로 성장한 회사인 루루레몬에서도 아웃도어용 옷도 취급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등산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등산복은 아크테레스이고 등산화는 잠발란이다. 물론 한국에서 등산화를 사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명품은 명품값을 한다고 입은 사람을 주눅 들지 않게 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맞다. 더불어 좋은 옷을 입고 등산도 잘하면 좋겠지만 좋은 옷을 입고 등산을 잘 못하면 람보르기니를 타고 운전은 개떡같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에서 아웃도어용품이 인기를 끌면서 평소 입기에도 편한 등산복은 많은 사람의 일상복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편하고 브렌드 옷이라고 해외여행까지 가면서 입고 갔는데 현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고 일부는 등산복 차림 한국인 입장 반대를 내 걸은 곳도 있다고 하니 옷은 정말 사용처에 맞에 입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등산복 자켓 하나에 1000불 가까이 되다 보니 다른 옷은 살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등산하는 사람들의 평상복도 등산복일 수밖에 없고. 그냥 입는 옷들도 사실은 운동할 때 입는 신축성이 좋은 옷을 평상복으로 입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처럼 유니폼을 입는 일을 하는 사람은 평소 일할 때는 유니폼을 입으니, 집에서 입는 것은 대충 편한 것을 입게 된다.

브랜드 네임을 입고도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골프를 칠 때는 골프복을, 등산할 때는 등산복을 테니스 등 운동을 할 때는 운동복을 갖추어 입어야 하니 말이다. 오늘 난생처음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과 피트니스를 다녀왔다. 물론 수영장이야 전에도 다니긴 했지만 새로 크게 신축한 수영장과 피트니스 센터는 가보지 않아 왠지 두려움마저 있었다. 전날 받아둔 출입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서니 체인지룸이 왜 그리 많은지 수영장은 어디있고 락커룸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앉아 있던 백인에게 물었다. 나 처음 왔는데 피트니스 센터가 어디냐 하니까 2층에 있단다. 2층은 어떻게 올라가는 데 그러니까 입구에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단다. 그럼 락커룸은 어디냐 하니까 저쪽 끝에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먼저 2층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할 거라고 올라가는 데 계단뿐이라 상당히 힘들었다. 지금까지 엘리베이터만 이용하고 다녔는데 이런 난관에 봉착하다니 장애자는 다니지 말라는 거냐 하면서 말이다.

이 층에 올라가니 넓은 실내에 많은 운동 기구들이 있다. 나는 맨발에 슬러퍼를 신고 아들이 입다 작아서 못 입는 민소매를 입고 바지는 그냥 굴러다니던 검정 바지를 입고 들어섰는데 대부분은 운동화를 신고 피트니스용 옷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라 슬리퍼 끌고 나타난 맨발의 사나이. 지팡이 짚은 아저씨가 어떤 운동을 할지 궁금해지지 않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 그리고 들거나 다른 피트니스를 하는 사람들 한쪽에서 매트 깔고 운동하는 사람들까지 나도 운동을 좀 해볼 거라고 빈자리를 잡고 앉아서 드는 것을 하는데 30이 최고였다. 더 이상 들 수조차 없었다. 다리는 더 심해서 20으로 줄였다. 드는 것도 결국 20으로 줄였다. 그런데 옆에 젊은 친구들이 오더니 발로 밀어내는 허벅지 운동을 하면서 일단 60부터 시작하자고 하니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됐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용량의 운동을 했지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니 두려움이 밀려와서 직원에게 진짜 엘리베이터 없어 하니 정말 없단다. 난간을 잡고 쩔쩔매면서 내려왔다. 휘청휘청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락커를 잠가야 하는데 잠기지 않는다. 모르겠다하고 그냥 들어가서 핫탑과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나와서 샤워하는 데 비누 디스플레이는 있는데 비누가 없다. 그럼 그렇지 가져간 샴푸로 샤워하는 데 물이 찔끔 나오다 멈췄다. 나오는 시간이 자동으로 조절되어 다시 버튼을 눌러야 했다. 불편하다. 겉은 멋지게 포장이 되어 있는데 새로 짓기 전 오래된 수영장이 더 편한 것 같다. 물론 그곳엔 피트니스 센터가 없었다.

우리는 점점 살아가면서 브랜드 네임을 의식하게 된다. 먹는 것, 입는 것, 주택까지 브랜드 네임 명품 아파트는 가격과 인기는 떨어 질주를 모른다. 물론 보석이나 가전제품, 자동차 등 우리의 일상에 브랜드 네임은 나를 대신하는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입고 있는 껍데기가 알맹이보다 더 중요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명품 차를 타고 백화점이나 호텔에 나타나면 도어맨에게 우대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단 기를 팍 죽이는 효과까지 있다. 으리으리한 집에 들어서면 왠지 신발부터 벗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텐트도 스키도 우리의 일상엔 이제 명품이 우리가 갈망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바라게 만드는 중이다. 사실 캐나다의 수퍼스토어는 노 네임 브랜드로 인기를 얻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브랜드의 퀄리티 상품을 하청주고 싸고 좋은 상품을 팔아 인기를 얻었다. 코스코도 코스코 자체 상품을 아웃소싱해서 인기 상품으로 만들고 브랜드 네임의 상품과 경쟁에서 상품의 질과 가격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코스코에 납품하는 유명 브랜드조차도 코스코용은 따로 만든다고 한다. 질적으로 일반 명품과는 구분된다는 말이다. 캐나다에서는 옷을 사서 입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 동네문 시장처럼 옷을 판매하는 곳이 없고 백화점의 옷은 그다지 좋지 않거나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기도 하다.

그래서 코스코에서 사서 입는 경우가 많은데 디자인이 딱 한 가지에 색상도 몇 달갑지 않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옷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남들이 입지 않은 디자인과 고급진 옷을 입고 싶어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그 내용보다는 쭉정이에 평생 신경 쓰면서 살아간다. 색상도 디자인도 똑같은 승복을 입다가 떨어지면 기워 입으면서도 수도를 게을리하지 않던 수행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대통령 영부인이 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에 가서 명품쇼핑을 하면서 수행원을 잔뜩 데리고 다녀 국제적 망신을 산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입는 옷과 먹는 명품을 떠나 이제는 얼굴 성형 전신 성형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한다. 사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면에 있음에도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말처럼 예뻐야 유명한 연예인도 되고 유튜버도 되는 세상이라 그래야 돈을 많이 버는 세상이라 내면을 수행하기보다는 외모 지상주의에 찌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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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무명씨가 명품백을 들면
명품백만 보이듯
저마다 자리가 있음에도

유명 인사 말씀에서 명언을 쏙 빼서 쓰면서
무소유를 말하지만 정작 명품엔 마음 약해진다
사람도 유명인이 있듯 물건도 명품이 있다

명품만을 상대한다는 사람은
마음이 비어서 헛헛증이 생긴 것처럼
먹고 또 먹어도 채워지지 않듯
명품을 채우고 명품 집에서 살아도
명품이 무명 같다

명품은 고이 간직하고 짝퉁을 들고 다닐 거면
명품은 왜 샀는지
맛없는 물을 먹어도 명품처럼 알하는 사람처럼
젖소가 풀과 물만 먹어도 우유를 만들듯이.
 





명품,

무명씨가 명품백을 들면
명품백만 보이듯
저마다 자리가 있음에도

유명 인사 말씀에서 명언을 쏙 빼서 쓰면서
무소유를 말하지만 정작 명품엔 마음 약해진다
사람도 유명인이 있듯 물건도 명품이 있다

명품만을 상대한다는 사람은
마음이 비어서 헛헛증이 생긴 것처럼
먹고 또 먹어도 채워지지 않듯
명품을 채우고 명품 집에서 살아도
명품이 무명 같다

명품은 고이 간직하고 짝퉁을 들고 다닐 거면
명품은 왜 샀는지
맛없는 물을 먹어도 명품처럼 알하는 사람처럼
젖소가 풀과 물만 먹어도 우유를 만들듯이.
 







#작가의 변
중학교 때 ‘댄디’라는 기성 교복을 어머니가 사줘서 입고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어머니는 당신 생각에 좋고 이름있는 교복을 사서 소풍mf 가라고 사 준 것이다. 사실 그때 만해도 나도 다른 교복이 있는 줄도 몰랐고 교복이 다 교복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 산 교복을 입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소풍을 간 나는 제천 용바위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뒤가 허전했다. 해서 일어서서 만져보니 바지의 재봉틀로 박음질한 엉덩이 부위가 쫙 찢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즐거워야 할 소풍은 좌불안석이 되었다. 앉아 있어서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이 내 속옷 팬티를 볼까 두려웠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 장기 자랑을 해도 노래를 불러도 온전하게 즐길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일단 학교까지 걸어서 오고 학교에서 또 시내에 있는 버스 타는 곳까지 아주 멀리 걸어서 와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지금은 무엇으로 가렸는지 기억이 희미한데 엉덩이 쪽을 가리고 걸으니,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걸음걸이도 조심조심 걷게 되었다. 어차피 찢어진 것 편하게 걸으면 그만인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원망했다. 엄마가 사 준 교복이 소풍 가서 앉자마자 쭉 찢어졌다고 말이다. 교복을 사 준 엄마가 무슨 죄인가 싶지만, 당시엔 그것이 엄마 탓인 것만 같았다.

그 후로는 웬만해서 기성복 교복을 사서 입지 않게 됐다. 당시엔 양복점에서 교복을 맞춰 입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도 기성복의 품질을 알고 나서는 교복을 맞춰서 입게 되었다. 하복과 동복 2벌이나 필요하다. 없는 농부의 집에 두 벌씩이나 교복을 사 입는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엄마도 한 번 그 품질에 혼난 뒤여서 흔쾌히 그렇게 하도록 했다.

시골 살면서 늘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 주는 옷만 입었다. 그러니 시장표 옷이란 것이 서울 동대문에서 도매로 파는 것을 가져다가 파는 것이라 폼이 살지 않았다. 옷이 때로는 자신감을 준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특히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일수록 옷이라도 잘 입어야 없어 보이지 않고 있어 보인다. 그런데 시장표는 시골에 그렇고 그런 아이들과 별반 다름없는 모습으로 비추게 한다.

고등학교 때 만해도 프로스펙스 운동화 같은 명품을 신고 싶었지만 어디 헤어지거나 찢어지지 않으면 그냥 입고 신었다. 브렌드 네임에 대해서는 물론 광고를 보거나 입은 친구들을 보면 볼 때는 부러웠지만 다음에 별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민을 와서 정신없이 일만 하다 산우회를 처음 나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생선 뼈다귀 같은 표식이 있는 등산복과 등산 가방을 메고 입고 다녔다. 신발도 대부분 이태리제 잠발란을 신고 다녔다. 나는 이민 오기 전에 한국에서 신었던 등산화를 (20년도 넘은 것) 신었다. 그런데 방수가 되지 않아 겨울엔 물이 그대로 다 들어와서 양말이 다 젖었다. 유명한 등산화도 아니었다. 그래서 재활용품을 파는 스토어에 가서 안에 털이 달린 등산화를 샀는데 조금 컸다. 그러니 내리막엔 발이 앞으로 밀리고 올라갈 때도 불편하긴 했어도 그렇게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지금까지 신고 있다. 그러다. 새것으로 하나 장만한다고 잠발란을 사려 등산 장비 전문점에 갔는데 내 발에 맞는 사이즈가 없었다. 그리고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다른 이태리 제 등산화를 파는 곳을 알게 되어 사서 신으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사서 신고 등산을 해보니 복숭아뼈 있는 곳이 불편했다. 그래서 동료한테 얘기하니 “거봐 내가 잠발란 사라고 했잖아”하면서 당장 가서 환불해 달라고 해 그래서 그 점포에 가서 환불해 달라고 하니 환불은 안 되고 양말이나 하나 더 주겠다고 해서 그냥 가져오고 별로 신지도 못하고 보관해 놓았었는데 3년 전에 신으려고 하니 밑에 창이 입을 쫙 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신발 수선하는 곳에 가서 수리를 부탁했더니 수리 불가라고 말했다.

아크테레스는 캐나다 대표 등산복 브랜드다. 명품 중 명품으로 대부분의 등산하는 사람들이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다른 HH나 콜롬비아, 노스페이스 등 다른 브랜드도 많은데 말이다. 물론 골프를 치는 사람들도 골프를 치기 전에 골프용품과 골프복과 신발 등을 구입하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물론 아크테레스 같은 곳이 라이프 보증이라고 수선해 준다고 하지만 떨어질 때까지 입기보단 싫증나 다른 것을 구입해서 입는 경우도 많다. 캐나다 구스도 비싸고, 명품이다 보니 별로 춥지도 않은 밴쿠버에서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요가복으로 성장한 회사인 루루레몬에서도 아웃도어용 옷도 취급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등산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등산복은 아크테레스이고 등산화는 잠발란이다. 물론 한국에서 등산화를 사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명품은 명품값을 한다고 입은 사람을 주눅 들지 않게 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맞다. 더불어 좋은 옷을 입고 등산도 잘하면 좋겠지만 좋은 옷을 입고 등산을 잘 못하면 람보르기니를 타고 운전은 개떡같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에서 아웃도어용품이 인기를 끌면서 평소 입기에도 편한 등산복은 많은 사람의 일상복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편하고 브렌드 옷이라고 해외여행까지 가면서 입고 갔는데 현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고 일부는 등산복 차림 한국인 입장 반대를 내 걸은 곳도 있다고 하니 옷은 정말 사용처에 맞에 입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등산복 자켓 하나에 1000불 가까이 되다 보니 다른 옷은 살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등산하는 사람들의 평상복도 등산복일 수밖에 없고. 그냥 입는 옷들도 사실은 운동할 때 입는 신축성이 좋은 옷을 평상복으로 입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처럼 유니폼을 입는 일을 하는 사람은 평소 일할 때는 유니폼을 입으니, 집에서 입는 것은 대충 편한 것을 입게 된다.

브랜드 네임을 입고도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골프를 칠 때는 골프복을, 등산할 때는 등산복을 테니스 등 운동을 할 때는 운동복을 갖추어 입어야 하니 말이다. 오늘 난생처음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과 피트니스를 다녀왔다. 물론 수영장이야 전에도 다니긴 했지만 새로 크게 신축한 수영장과 피트니스 센터는 가보지 않아 왠지 두려움마저 있었다. 전날 받아둔 출입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서니 체인지룸이 왜 그리 많은지 수영장은 어디있고 락커룸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앉아 있던 백인에게 물었다. 나 처음 왔는데 피트니스 센터가 어디냐 하니까 2층에 있단다. 2층은 어떻게 올라가는 데 그러니까 입구에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단다. 그럼 락커룸은 어디냐 하니까 저쪽 끝에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먼저 2층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할 거라고 올라가는 데 계단뿐이라 상당히 힘들었다. 지금까지 엘리베이터만 이용하고 다녔는데 이런 난관에 봉착하다니 장애자는 다니지 말라는 거냐 하면서 말이다.

이 층에 올라가니 넓은 실내에 많은 운동 기구들이 있다. 나는 맨발에 슬러퍼를 신고 아들이 입다 작아서 못 입는 민소매를 입고 바지는 그냥 굴러다니던 검정 바지를 입고 들어섰는데 대부분은 운동화를 신고 피트니스용 옷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라 슬리퍼 끌고 나타난 맨발의 사나이. 지팡이 짚은 아저씨가 어떤 운동을 할지 궁금해지지 않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 그리고 들거나 다른 피트니스를 하는 사람들 한쪽에서 매트 깔고 운동하는 사람들까지 나도 운동을 좀 해볼 거라고 빈자리를 잡고 앉아서 드는 것을 하는데 30이 최고였다. 더 이상 들 수조차 없었다. 다리는 더 심해서 20으로 줄였다. 드는 것도 결국 20으로 줄였다. 그런데 옆에 젊은 친구들이 오더니 발로 밀어내는 허벅지 운동을 하면서 일단 60부터 시작하자고 하니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됐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용량의 운동을 했지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니 두려움이 밀려와서 직원에게 진짜 엘리베이터 없어 하니 정말 없단다. 난간을 잡고 쩔쩔매면서 내려왔다. 휘청휘청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락커를 잠가야 하는데 잠기지 않는다. 모르겠다하고 그냥 들어가서 핫탑과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나와서 샤워하는 데 비누 디스플레이는 있는데 비누가 없다. 그럼 그렇지 가져간 샴푸로 샤워하는 데 물이 찔끔 나오다 멈췄다. 나오는 시간이 자동으로 조절되어 다시 버튼을 눌러야 했다. 불편하다. 겉은 멋지게 포장이 되어 있는데 새로 짓기 전 오래된 수영장이 더 편한 것 같다. 물론 그곳엔 피트니스 센터가 없었다.

우리는 점점 살아가면서 브랜드 네임을 의식하게 된다. 먹는 것, 입는 것, 주택까지 브랜드 네임 명품 아파트는 가격과 인기는 떨어 질주를 모른다. 물론 보석이나 가전제품, 자동차 등 우리의 일상에 브랜드 네임은 나를 대신하는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입고 있는 껍데기가 알맹이보다 더 중요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명품 차를 타고 백화점이나 호텔에 나타나면 도어맨에게 우대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단 기를 팍 죽이는 효과까지 있다. 으리으리한 집에 들어서면 왠지 신발부터 벗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텐트도 스키도 우리의 일상엔 이제 명품이 우리가 갈망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바라게 만드는 중이다. 사실 캐나다의 수퍼스토어는 노 네임 브랜드로 인기를 얻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브랜드의 퀄리티 상품을 하청주고 싸고 좋은 상품을 팔아 인기를 얻었다. 코스코도 코스코 자체 상품을 아웃소싱해서 인기 상품으로 만들고 브랜드 네임의 상품과 경쟁에서 상품의 질과 가격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코스코에 납품하는 유명 브랜드조차도 코스코용은 따로 만든다고 한다. 질적으로 일반 명품과는 구분된다는 말이다. 캐나다에서는 옷을 사서 입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 동네문 시장처럼 옷을 판매하는 곳이 없고 백화점의 옷은 그다지 좋지 않거나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기도 하다.

그래서 코스코에서 사서 입는 경우가 많은데 디자인이 딱 한 가지에 색상도 몇 달갑지 않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옷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남들이 입지 않은 디자인과 고급진 옷을 입고 싶어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그 내용보다는 쭉정이에 평생 신경 쓰면서 살아간다. 색상도 디자인도 똑같은 승복을 입다가 떨어지면 기워 입으면서도 수도를 게을리하지 않던 수행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대통령 영부인이 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에 가서 명품쇼핑을 하면서 수행원을 잔뜩 데리고 다녀 국제적 망신을 산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입는 옷과 먹는 명품을 떠나 이제는 얼굴 성형 전신 성형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한다. 사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면에 있음에도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말처럼 예뻐야 유명한 연예인도 되고 유튜버도 되는 세상이라 그래야 돈을 많이 버는 세상이라 내면을 수행하기보다는 외모 지상주의에 찌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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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중학교 때 ‘댄디’라는 기성 교복을 어머니가 사줘서 입고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어머니는 당신 생각에 좋고 이름있는 교복을 사서 소풍mf 가라고 사 준 것이다. 사실 그때 만해도 나도 다른 교복이 있는 줄도 몰랐고 교복이 다 교복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 산 교복을 입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소풍을 간 나는 제천 용바위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뒤가 허전했다. 해서 일어서서 만져보니 바지의 재봉틀로 박음질한 엉덩이 부위가 쫙 찢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즐거워야 할 소풍은 좌불안석이 되었다. 앉아 있어서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이 내 속옷 팬티를 볼까 두려웠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 장기 자랑을 해도 노래를 불러도 온전하게 즐길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일단 학교까지 걸어서 오고 학교에서 또 시내에 있는 버스 타는 곳까지 아주 멀리 걸어서 와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지금은 무엇으로 가렸는지 기억이 희미한데 엉덩이 쪽을 가리고 걸으니,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걸음걸이도 조심조심 걷게 되었다. 어차피 찢어진 것 편하게 걸으면 그만인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원망했다. 엄마가 사 준 교복이 소풍 가서 앉자마자 쭉 찢어졌다고 말이다. 교복을 사 준 엄마가 무슨 죄인가 싶지만, 당시엔 그것이 엄마 탓인 것만 같았다.

그 후로는 웬만해서 기성복 교복을 사서 입지 않게 됐다. 당시엔 양복점에서 교복을 맞춰 입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도 기성복의 품질을 알고 나서는 교복을 맞춰서 입게 되었다. 하복과 동복 2벌이나 필요하다. 없는 농부의 집에 두 벌씩이나 교복을 사 입는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엄마도 한 번 그 품질에 혼난 뒤여서 흔쾌히 그렇게 하도록 했다.

시골 살면서 늘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 주는 옷만 입었다. 그러니 시장표 옷이란 것이 서울 동대문에서 도매로 파는 것을 가져다가 파는 것이라 폼이 살지 않았다. 옷이 때로는 자신감을 준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특히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일수록 옷이라도 잘 입어야 없어 보이지 않고 있어 보인다. 그런데 시장표는 시골에 그렇고 그런 아이들과 별반 다름없는 모습으로 비추게 한다.

고등학교 때 만해도 프로스펙스 운동화 같은 명품을 신고 싶었지만 어디 헤어지거나 찢어지지 않으면 그냥 입고 신었다. 브렌드 네임에 대해서는 물론 광고를 보거나 입은 친구들을 보면 볼 때는 부러웠지만 다음에 별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민을 와서 정신없이 일만 하다 산우회를 처음 나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생선 뼈다귀 같은 표식이 있는 등산복과 등산 가방을 메고 입고 다녔다. 신발도 대부분 이태리제 잠발란을 신고 다녔다. 나는 이민 오기 전에 한국에서 신었던 등산화를 (20년도 넘은 것) 신었다. 그런데 방수가 되지 않아 겨울엔 물이 그대로 다 들어와서 양말이 다 젖었다. 유명한 등산화도 아니었다. 그래서 재활용품을 파는 스토어에 가서 안에 털이 달린 등산화를 샀는데 조금 컸다. 그러니 내리막엔 발이 앞으로 밀리고 올라갈 때도 불편하긴 했어도 그렇게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지금까지 신고 있다. 그러다. 새것으로 하나 장만한다고 잠발란을 사려 등산 장비 전문점에 갔는데 내 발에 맞는 사이즈가 없었다. 그리고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다른 이태리 제 등산화를 파는 곳을 알게 되어 사서 신으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사서 신고 등산을 해보니 복숭아뼈 있는 곳이 불편했다. 그래서 동료한테 얘기하니 “거봐 내가 잠발란 사라고 했잖아”하면서 당장 가서 환불해 달라고 해 그래서 그 점포에 가서 환불해 달라고 하니 환불은 안 되고 양말이나 하나 더 주겠다고 해서 그냥 가져오고 별로 신지도 못하고 보관해 놓았었는데 3년 전에 신으려고 하니 밑에 창이 입을 쫙 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신발 수선하는 곳에 가서 수리를 부탁했더니 수리 불가라고 말했다.

아크테레스는 캐나다 대표 등산복 브랜드다. 명품 중 명품으로 대부분의 등산하는 사람들이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다른 HH나 콜롬비아, 노스페이스 등 다른 브랜드도 많은데 말이다. 물론 골프를 치는 사람들도 골프를 치기 전에 골프용품과 골프복과 신발 등을 구입하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물론 아크테레스 같은 곳이 라이프 보증이라고 수선해 준다고 하지만 떨어질 때까지 입기보단 싫증나 다른 것을 구입해서 입는 경우도 많다. 캐나다 구스도 비싸고, 명품이다 보니 별로 춥지도 않은 밴쿠버에서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요가복으로 성장한 회사인 루루레몬에서도 아웃도어용 옷도 취급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등산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등산복은 아크테레스이고 등산화는 잠발란이다. 물론 한국에서 등산화를 사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명품은 명품값을 한다고 입은 사람을 주눅 들지 않게 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맞다. 더불어 좋은 옷을 입고 등산도 잘하면 좋겠지만 좋은 옷을 입고 등산을 잘 못하면 람보르기니를 타고 운전은 개떡같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





명품,

무명씨가 명품백을 들면
명품백만 보이듯
저마다 자리가 있음에도

유명 인사 말씀에서 명언을 쏙 빼서 쓰면서
무소유를 말하지만 정작 명품엔 마음 약해진다
사람도 유명인이 있듯 물건도 명품이 있다

명품만을 상대한다는 사람은
마음이 비어서 헛헛증이 생긴 것처럼
먹고 또 먹어도 채워지지 않듯
명품을 채우고 명품 집에서 살아도
명품이 무명 같다

명품은 고이 간직하고 짝퉁을 들고 다닐 거면
명품은 왜 샀는지
맛없는 물을 먹어도 명품처럼 알하는 사람처럼
젖소가 풀과 물만 먹어도 우유를 만들듯이.
 







#작가의 변
중학교 때 ‘댄디’라는 기성 교복을 어머니가 사줘서 입고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어머니는 당신 생각에 좋고 이름있는 교복을 사서 소풍mf 가라고 사 준 것이다. 사실 그때 만해도 나도 다른 교복이 있는 줄도 몰랐고 교복이 다 교복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 산 교복을 입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소풍을 간 나는 제천 용바위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뒤가 허전했다. 해서 일어서서 만져보니 바지의 재봉틀로 박음질한 엉덩이 부위가 쫙 찢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즐거워야 할 소풍은 좌불안석이 되었다. 앉아 있어서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이 내 속옷 팬티를 볼까 두려웠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 장기 자랑을 해도 노래를 불러도 온전하게 즐길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일단 학교까지 걸어서 오고 학교에서 또 시내에 있는 버스 타는 곳까지 아주 멀리 걸어서 와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지금은 무엇으로 가렸는지 기억이 희미한데 엉덩이 쪽을 가리고 걸으니,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걸음걸이도 조심조심 걷게 되었다. 어차피 찢어진 것 편하게 걸으면 그만인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원망했다. 엄마가 사 준 교복이 소풍 가서 앉자마자 쭉 찢어졌다고 말이다. 교복을 사 준 엄마가 무슨 죄인가 싶지만, 당시엔 그것이 엄마 탓인 것만 같았다.

그 후로는 웬만해서 기성복 교복을 사서 입지 않게 됐다. 당시엔 양복점에서 교복을 맞춰 입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도 기성복의 품질을 알고 나서는 교복을 맞춰서 입게 되었다. 하복과 동복 2벌이나 필요하다. 없는 농부의 집에 두 벌씩이나 교복을 사 입는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엄마도 한 번 그 품질에 혼난 뒤여서 흔쾌히 그렇게 하도록 했다.

시골 살면서 늘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 주는 옷만 입었다. 그러니 시장표 옷이란 것이 서울 동대문에서 도매로 파는 것을 가져다가 파는 것이라 폼이 살지 않았다. 옷이 때로는 자신감을 준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특히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일수록 옷이라도 잘 입어야 없어 보이지 않고 있어 보인다. 그런데 시장표는 시골에 그렇고 그런 아이들과 별반 다름없는 모습으로 비추게 한다.

고등학교 때 만해도 프로스펙스 운동화 같은 명품을 신고 싶었지만 어디 헤어지거나 찢어지지 않으면 그냥 입고 신었다. 브렌드 네임에 대해서는 물론 광고를 보거나 입은 친구들을 보면 볼 때는 부러웠지만 다음에 별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민을 와서 정신없이 일만 하다 산우회를 처음 나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생선 뼈다귀 같은 표식이 있는 등산복과 등산 가방을 메고 입고 다녔다. 신발도 대부분 이태리제 잠발란을 신고 다녔다. 나는 이민 오기 전에 한국에서 신었던 등산화를 (20년도 넘은 것) 신었다. 그런데 방수가 되지 않아 겨울엔 물이 그대로 다 들어와서 양말이 다 젖었다. 유명한 등산화도 아니었다. 그래서 재활용품을 파는 스토어에 가서 안에 털이 달린 등산화를 샀는데 조금 컸다. 그러니 내리막엔 발이 앞으로 밀리고 올라갈 때도 불편하긴 했어도 그렇게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지금까지 신고 있다. 그러다. 새것으로 하나 장만한다고 잠발란을 사려 등산 장비 전문점에 갔는데 내 발에 맞는 사이즈가 없었다. 그리고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다른 이태리 제 등산화를 파는 곳을 알게 되어 사서 신으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사서 신고 등산을 해보니 복숭아뼈 있는 곳이 불편했다. 그래서 동료한테 얘기하니 “거봐 내가 잠발란 사라고 했잖아”하면서 당장 가서 환불해 달라고 해 그래서 그 점포에 가서 환불해 달라고 하니 환불은 안 되고 양말이나 하나 더 주겠다고 해서 그냥 가져오고 별로 신지도 못하고 보관해 놓았었는데 3년 전에 신으려고 하니 밑에 창이 입을 쫙 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신발 수선하는 곳에 가서 수리를 부탁했더니 수리 불가라고 말했다.

아크테레스는 캐나다 대표 등산복 브랜드다. 명품 중 명품으로 대부분의 등산하는 사람들이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다른 HH나 콜롬비아, 노스페이스 등 다른 브랜드도 많은데 말이다. 물론 골프를 치는 사람들도 골프를 치기 전에 골프용품과 골프복과 신발 등을 구입하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물론 아크테레스 같은 곳이 라이프 보증이라고 수선해 준다고 하지만 떨어질 때까지 입기보단 싫증나 다른 것을 구입해서 입는 경우도 많다. 캐나다 구스도 비싸고, 명품이다 보니 별로 춥지도 않은 밴쿠버에서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요가복으로 성장한 회사인 루루레몬에서도 아웃도어용 옷도 취급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등산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등산복은 아크테레스이고 등산화는 잠발란이다. 물론 한국에서 등산화를 사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명품은 명품값을 한다고 입은 사람을 주눅 들지 않게 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맞다. 더불어 좋은 옷을 입고 등산도 잘하면 좋겠지만 좋은 옷을 입고 등산을 잘 못하면 람보르기니를 타고 운전은 개떡같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에서 아웃도어용품이 인기를 끌면서 평소 입기에도 편한 등산복은 많은 사람의 일상복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편하고 브렌드 옷이라고 해외여행까지 가면서 입고 갔는데 현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고 일부는 등산복 차림 한국인 입장 반대를 내 걸은 곳도 있다고 하니 옷은 정말 사용처에 맞에 입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등산복 자켓 하나에 1000불 가까이 되다 보니 다른 옷은 살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등산하는 사람들의 평상복도 등산복일 수밖에 없고. 그냥 입는 옷들도 사실은 운동할 때 입는 신축성이 좋은 옷을 평상복으로 입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처럼 유니폼을 입는 일을 하는 사람은 평소 일할 때는 유니폼을 입으니, 집에서 입는 것은 대충 편한 것을 입게 된다.

브랜드 네임을 입고도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골프를 칠 때는 골프복을, 등산할 때는 등산복을 테니스 등 운동을 할 때는 운동복을 갖추어 입어야 하니 말이다. 오늘 난생처음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과 피트니스를 다녀왔다. 물론 수영장이야 전에도 다니긴 했지만 새로 크게 신축한 수영장과 피트니스 센터는 가보지 않아 왠지 두려움마저 있었다. 전날 받아둔 출입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서니 체인지룸이 왜 그리 많은지 수영장은 어디있고 락커룸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앉아 있던 백인에게 물었다. 나 처음 왔는데 피트니스 센터가 어디냐 하니까 2층에 있단다. 2층은 어떻게 올라가는 데 그러니까 입구에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단다. 그럼 락커룸은 어디냐 하니까 저쪽 끝에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먼저 2층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할 거라고 올라가는 데 계단뿐이라 상당히 힘들었다. 지금까지 엘리베이터만 이용하고 다녔는데 이런 난관에 봉착하다니 장애자는 다니지 말라는 거냐 하면서 말이다.

이 층에 올라가니 넓은 실내에 많은 운동 기구들이 있다. 나는 맨발에 슬러퍼를 신고 아들이 입다 작아서 못 입는 민소매를 입고 바지는 그냥 굴러다니던 검정 바지를 입고 들어섰는데 대부분은 운동화를 신고 피트니스용 옷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라 슬리퍼 끌고 나타난 맨발의 사나이. 지팡이 짚은 아저씨가 어떤 운동을 할지 궁금해지지 않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 그리고 들거나 다른 피트니스를 하는 사람들 한쪽에서 매트 깔고 운동하는 사람들까지 나도 운동을 좀 해볼 거라고 빈자리를 잡고 앉아서 드는 것을 하는데 30이 최고였다. 더 이상 들 수조차 없었다. 다리는 더 심해서 20으로 줄였다. 드는 것도 결국 20으로 줄였다. 그런데 옆에 젊은 친구들이 오더니 발로 밀어내는 허벅지 운동을 하면서 일단 60부터 시작하자고 하니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됐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용량의 운동을 했지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니 두려움이 밀려와서 직원에게 진짜 엘리베이터 없어 하니 정말 없단다. 난간을 잡고 쩔쩔매면서 내려왔다. 휘청휘청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락커를 잠가야 하는데 잠기지 않는다. 모르겠다하고 그냥 들어가서 핫탑과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나와서 샤워하는 데 비누 디스플레이는 있는데 비누가 없다. 그럼 그렇지 가져간 샴푸로 샤워하는 데 물이 찔끔 나오다 멈췄다. 나오는 시간이 자동으로 조절되어 다시 버튼을 눌러야 했다. 불편하다. 겉은 멋지게 포장이 되어 있는데 새로 짓기 전 오래된 수영장이 더 편한 것 같다. 물론 그곳엔 피트니스 센터가 없었다.

우리는 점점 살아가면서 브랜드 네임을 의식하게 된다. 먹는 것, 입는 것, 주택까지 브랜드 네임 명품 아파트는 가격과 인기는 떨어 질주를 모른다. 물론 보석이나 가전제품, 자동차 등 우리의 일상에 브랜드 네임은 나를 대신하는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입고 있는 껍데기가 알맹이보다 더 중요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명품 차를 타고 백화점이나 호텔에 나타나면 도어맨에게 우대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단 기를 팍 죽이는 효과까지 있다. 으리으리한 집에 들어서면 왠지 신발부터 벗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텐트도 스키도 우리의 일상엔 이제 명품이 우리가 갈망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바라게 만드는 중이다. 사실 캐나다의 수퍼스토어는 노 네임 브랜드로 인기를 얻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브랜드의 퀄리티 상품을 하청주고 싸고 좋은 상품을 팔아 인기를 얻었다. 코스코도 코스코 자체 상품을 아웃소싱해서 인기 상품으로 만들고 브랜드 네임의 상품과 경쟁에서 상품의 질과 가격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코스코에 납품하는 유명 브랜드조차도 코스코용은 따로 만든다고 한다. 질적으로 일반 명품과는 구분된다는 말이다. 캐나다에서는 옷을 사서 입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 동네문 시장처럼 옷을 판매하는 곳이 없고 백화점의 옷은 그다지 좋지 않거나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기도 하다.

그래서 코스코에서 사서 입는 경우가 많은데 디자인이 딱 한 가지에 색상도 몇 달갑지 않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옷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남들이 입지 않은 디자인과 고급진 옷을 입고 싶어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그 내용보다는 쭉정이에 평생 신경 쓰면서 살아간다. 색상도 디자인도 똑같은 승복을 입다가 떨어지면 기워 입으면서도 수도를 게을리하지 않던 수행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대통령 영부인이 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에 가서 명품쇼핑을 하면서 수행원을 잔뜩 데리고 다녀 국제적 망신을 산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입는 옷과 먹는 명품을 떠나 이제는 얼굴 성형 전신 성형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한다. 사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면에 있음에도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말처럼 예뻐야 유명한 연예인도 되고 유튜버도 되는 세상이라 그래야 돈을 많이 버는 세상이라 내면을 수행하기보다는 외모 지상주의에 찌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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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웃도어용품이 인기를 끌면서 평소 입기에도 편한 등산복은 많은 사람의 일상복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편하고 브렌드 옷이라고 해외여행까지 가면서 입고 갔는데 현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고 일부는 등산복 차림 한국인 입장 반대를 내 걸은 곳도 있다고 하니 옷은 정말 사용처에 맞에 입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등산복 자켓 하나에 1000불 가까이 되다 보니 다른 옷은 살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등산하는 사람들의 평상복도 등산복일 수밖에 없고. 그냥 입는 옷들도 사실은 운동할 때 입는 신축성이 좋은 옷을 평상복으로 입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처럼 유니폼을 입는 일을 하는 사람은 평소 일할 때는 유니폼을 입으니, 집에서 입는 것은 대충 편한 것을 입게 된다.

브랜드 네임을 입고도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골프를 칠 때는 골프복을, 등산할 때는 등산복을 테니스 등 운동을 할 때는 운동복을 갖추어 입어야 하니 말이다. 오늘 난생처음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과 피트니스를 다녀왔다. 물론 수영장이야 전에도 다니긴 했지만 새로 크게 신축한 수영장과 피트니스 센터는 가보지 않아 왠지 두려움마저 있었다. 전날 받아둔 출입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서니 체인지룸이 왜 그리 많은지 수영장은 어디있고 락커룸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앉아 있던 백인에게 물었다. 나 처음 왔는데 피트니스 센터가 어디냐 하니까 2층에 있단다. 2층은 어떻게 올라가는 데 그러니까 입구에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단다. 그럼 락커룸은 어디냐 하니까 저쪽 끝에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먼저 2층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할 거라고 올라가는 데 계단뿐이라 상당히 힘들었다. 지금까지 엘리베이터만 이용하고 다녔는데 이런 난관에 봉착하다니 장애자는 다니지 말라는 거냐 하면서 말이다.

이 층에 올라가니 넓은 실내에 많은 운동 기구들이 있다. 나는 맨발에 슬러퍼를 신고 아들이 입다 작아서 못 입는 민소매를 입고 바지는 그냥 굴러다니던 검정 바지를 입고 들어섰는데 대부분은 운동화를 신고 피트니스용 옷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라 슬리퍼 끌고 나타난 맨발의 사나이. 지팡이 짚은 아저씨가 어떤 운동을 할지 궁금해지지 않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 그리고 들거나 다른 피트니스를 하는 사람들 한쪽에서 매트 깔고 운동하는 사람들까지 나도 운동을 좀 해볼 거라고 빈자리를 잡고 앉아서 드는 것을 하는데 30이 최고였다. 더 이상 들 수조차 없었다. 다리는 더 심해서 20으로 줄였다. 드는 것도 결국 20으로 줄였다. 그런데 옆에 젊은 친구들이 오더니 발로 밀어내는 허벅지 운동을 하면서 일단 60부터 시작하자고 하니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됐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용량의 운동을 했지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니 두려움이 밀려와서 직원에게 진짜 엘리베이터 없어 하니 정말 없단다. 난간을 잡고 쩔쩔매면서 내려왔다. 휘청휘청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락커를 잠가야 하는데 잠기지 않는다. 모르겠다하고 그냥 들어가서 핫탑과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나와서 샤워하는 데 비누 디스플레이는 있는데 비누가 없다. 그럼 그렇지 가져간 샴푸로 샤워하는 데 물이 찔끔 나오다 멈췄다. 나오는 시간이 자동으로 조절되어 다시 버튼을 눌러야 했다. 불편하다. 겉은 멋지게 포장이 되어 있는데 새로 짓기 전 오래된 수영장이 더 편한 것 같다. 물론 그곳엔 피트니스 센터가 없었다.

우리는 점점 살아가면서 브랜드 네임을 의식하게 된다. 먹는 것, 입는 것, 주택까지 브랜드 네임 명품 아파트는 가격과 인기는 떨어 질주를 모른다. 물론 보석이나 가전제품, 자동차 등 우리의 일상에 브랜드 네임은 나를 대신하는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입고 있는 껍데기가 알맹이보다 더 중요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명품 차를 타고 백화점이나 호텔에 나타나면 도어맨에게 우대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단 기를 팍 죽이는 효과까지 있다. 으리으리한 집에 들어서면 왠지 신발부터 벗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텐트도 스키도 우리의 일상엔 이제 명품이 우리가 갈망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바라게 만드는 중이다. 사실 캐나다의 수퍼스토어는 노 네임 브랜드로 인기를 얻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브랜드의 퀄리티 상품을 하청주고 싸고 좋은 상품을 팔아 인기를 얻었다. 코스코도 코스코 자체 상품을 아웃소싱해서 인기 상품으로 만들고 브랜드 네임의 상품과 경쟁에서 상품의 질과 가격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코스코에 납품하는 유명 브랜드조차도 코스코용은 따로 만든다고 한다. 질적으로 일반 명품과는 구분된다는 말이다. 캐나다에서는 옷을 사서 입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 동네문 시장처럼 옷을 판매하는 곳이 없고 백화점의 옷은 그다지 좋지 않거나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기도 하다.

그래서 코스코에서 사서 입는 경우가 많은데 디자인이 딱 한 가지에 색상도 몇 달갑지 않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옷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남들이 입지 않은 디자인과 고급진 옷을 입고 싶어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그 내용보다는 쭉정이에 평생 신경 쓰면서 살아간다. 색상도 디자인도 똑같은 승복을 입다가 떨어지면 기워 입으면서도 수도를 게을리하지 않던 수행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대통령 영부인이 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에 가서 명품쇼핑을 하면서 수행원을 잔뜩 데리고 다녀 국제적 망신을 산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입는 옷과 먹는 명품을 떠나 이제는 얼굴 성형 전신 성형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한다. 사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면에 있음에도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말처럼 예뻐야 유명한 연예인도 되고 유튜버도 되는 세상이라 그래야 돈을 많이 버는 세상이라 내면을 수행하기보다는 외모 지상주의에 찌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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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무명씨가 명품백을 들면
명품백만 보이듯
저마다 자리가 있음에도

유명 인사 말씀에서 명언을 쏙 빼서 쓰면서
무소유를 말하지만 정작 명품엔 마음 약해진다
사람도 유명인이 있듯 물건도 명품이 있다

명품만을 상대한다는 사람은
마음이 비어서 헛헛증이 생긴 것처럼
먹고 또 먹어도 채워지지 않듯
명품을 채우고 명품 집에서 살아도
명품이 무명 같다

명품은 고이 간직하고 짝퉁을 들고 다닐 거면
명품은 왜 샀는지
맛없는 물을 먹어도 명품처럼 알하는 사람처럼
젖소가 풀과 물만 먹어도 우유를 만들듯이.
 







#작가의 변
중학교 때 ‘댄디’라는 기성 교복을 어머니가 사줘서 입고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어머니는 당신 생각에 좋고 이름있는 교복을 사서 소풍mf 가라고 사 준 것이다. 사실 그때 만해도 나도 다른 교복이 있는 줄도 몰랐고 교복이 다 교복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 산 교복을 입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소풍을 간 나는 제천 용바위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뒤가 허전했다. 해서 일어서서 만져보니 바지의 재봉틀로 박음질한 엉덩이 부위가 쫙 찢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즐거워야 할 소풍은 좌불안석이 되었다. 앉아 있어서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이 내 속옷 팬티를 볼까 두려웠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 장기 자랑을 해도 노래를 불러도 온전하게 즐길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일단 학교까지 걸어서 오고 학교에서 또 시내에 있는 버스 타는 곳까지 아주 멀리 걸어서 와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지금은 무엇으로 가렸는지 기억이 희미한데 엉덩이 쪽을 가리고 걸으니,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걸음걸이도 조심조심 걷게 되었다. 어차피 찢어진 것 편하게 걸으면 그만인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원망했다. 엄마가 사 준 교복이 소풍 가서 앉자마자 쭉 찢어졌다고 말이다. 교복을 사 준 엄마가 무슨 죄인가 싶지만, 당시엔 그것이 엄마 탓인 것만 같았다.

그 후로는 웬만해서 기성복 교복을 사서 입지 않게 됐다. 당시엔 양복점에서 교복을 맞춰 입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도 기성복의 품질을 알고 나서는 교복을 맞춰서 입게 되었다. 하복과 동복 2벌이나 필요하다. 없는 농부의 집에 두 벌씩이나 교복을 사 입는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엄마도 한 번 그 품질에 혼난 뒤여서 흔쾌히 그렇게 하도록 했다.

시골 살면서 늘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 주는 옷만 입었다. 그러니 시장표 옷이란 것이 서울 동대문에서 도매로 파는 것을 가져다가 파는 것이라 폼이 살지 않았다. 옷이 때로는 자신감을 준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특히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일수록 옷이라도 잘 입어야 없어 보이지 않고 있어 보인다. 그런데 시장표는 시골에 그렇고 그런 아이들과 별반 다름없는 모습으로 비추게 한다.

고등학교 때 만해도 프로스펙스 운동화 같은 명품을 신고 싶었지만 어디 헤어지거나 찢어지지 않으면 그냥 입고 신었다. 브렌드 네임에 대해서는 물론 광고를 보거나 입은 친구들을 보면 볼 때는 부러웠지만 다음에 별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민을 와서 정신없이 일만 하다 산우회를 처음 나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생선 뼈다귀 같은 표식이 있는 등산복과 등산 가방을 메고 입고 다녔다. 신발도 대부분 이태리제 잠발란을 신고 다녔다. 나는 이민 오기 전에 한국에서 신었던 등산화를 (20년도 넘은 것) 신었다. 그런데 방수가 되지 않아 겨울엔 물이 그대로 다 들어와서 양말이 다 젖었다. 유명한 등산화도 아니었다. 그래서 재활용품을 파는 스토어에 가서 안에 털이 달린 등산화를 샀는데 조금 컸다. 그러니 내리막엔 발이 앞으로 밀리고 올라갈 때도 불편하긴 했어도 그렇게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지금까지 신고 있다. 그러다. 새것으로 하나 장만한다고 잠발란을 사려 등산 장비 전문점에 갔는데 내 발에 맞는 사이즈가 없었다. 그리고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다른 이태리 제 등산화를 파는 곳을 알게 되어 사서 신으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사서 신고 등산을 해보니 복숭아뼈 있는 곳이 불편했다. 그래서 동료한테 얘기하니 “거봐 내가 잠발란 사라고 했잖아”하면서 당장 가서 환불해 달라고 해 그래서 그 점포에 가서 환불해 달라고 하니 환불은 안 되고 양말이나 하나 더 주겠다고 해서 그냥 가져오고 별로 신지도 못하고 보관해 놓았었는데 3년 전에 신으려고 하니 밑에 창이 입을 쫙 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신발 수선하는 곳에 가서 수리를 부탁했더니 수리 불가라고 말했다.

아크테레스는 캐나다 대표 등산복 브랜드다. 명품 중 명품으로 대부분의 등산하는 사람들이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다른 HH나 콜롬비아, 노스페이스 등 다른 브랜드도 많은데 말이다. 물론 골프를 치는 사람들도 골프를 치기 전에 골프용품과 골프복과 신발 등을 구입하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물론 아크테레스 같은 곳이 라이프 보증이라고 수선해 준다고 하지만 떨어질 때까지 입기보단 싫증나 다른 것을 구입해서 입는 경우도 많다. 캐나다 구스도 비싸고, 명품이다 보니 별로 춥지도 않은 밴쿠버에서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요가복으로 성장한 회사인 루루레몬에서도 아웃도어용 옷도 취급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등산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등산복은 아크테레스이고 등산화는 잠발란이다. 물론 한국에서 등산화를 사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명품은 명품값을 한다고 입은 사람을 주눅 들지 않게 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맞다. 더불어 좋은 옷을 입고 등산도 잘하면 좋겠지만 좋은 옷을 입고 등산을 잘 못하면 람보르기니를 타고 운전은 개떡같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에서 아웃도어용품이 인기를 끌면서 평소 입기에도 편한 등산복은 많은 사람의 일상복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편하고 브렌드 옷이라고 해외여행까지 가면서 입고 갔는데 현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고 일부는 등산복 차림 한국인 입장 반대를 내 걸은 곳도 있다고 하니 옷은 정말 사용처에 맞에 입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등산복 자켓 하나에 1000불 가까이 되다 보니 다른 옷은 살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등산하는 사람들의 평상복도 등산복일 수밖에 없고. 그냥 입는 옷들도 사실은 운동할 때 입는 신축성이 좋은 옷을 평상복으로 입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처럼 유니폼을 입는 일을 하는 사람은 평소 일할 때는 유니폼을 입으니, 집에서 입는 것은 대충 편한 것을 입게 된다.

브랜드 네임을 입고도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골프를 칠 때는 골프복을, 등산할 때는 등산복을 테니스 등 운동을 할 때는 운동복을 갖추어 입어야 하니 말이다. 오늘 난생처음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과 피트니스를 다녀왔다. 물론 수영장이야 전에도 다니긴 했지만 새로 크게 신축한 수영장과 피트니스 센터는 가보지 않아 왠지 두려움마저 있었다. 전날 받아둔 출입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서니 체인지룸이 왜 그리 많은지 수영장은 어디있고 락커룸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앉아 있던 백인에게 물었다. 나 처음 왔는데 피트니스 센터가 어디냐 하니까 2층에 있단다. 2층은 어떻게 올라가는 데 그러니까 입구에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단다. 그럼 락커룸은 어디냐 하니까 저쪽 끝에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먼저 2층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할 거라고 올라가는 데 계단뿐이라 상당히 힘들었다. 지금까지 엘리베이터만 이용하고 다녔는데 이런 난관에 봉착하다니 장애자는 다니지 말라는 거냐 하면서 말이다.

이 층에 올라가니 넓은 실내에 많은 운동 기구들이 있다. 나는 맨발에 슬러퍼를 신고 아들이 입다 작아서 못 입는 민소매를 입고 바지는 그냥 굴러다니던 검정 바지를 입고 들어섰는데 대부분은 운동화를 신고 피트니스용 옷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라 슬리퍼 끌고 나타난 맨발의 사나이. 지팡이 짚은 아저씨가 어떤 운동을 할지 궁금해지지 않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 그리고 들거나 다른 피트니스를 하는 사람들 한쪽에서 매트 깔고 운동하는 사람들까지 나도 운동을 좀 해볼 거라고 빈자리를 잡고 앉아서 드는 것을 하는데 30이 최고였다. 더 이상 들 수조차 없었다. 다리는 더 심해서 20으로 줄였다. 드는 것도 결국 20으로 줄였다. 그런데 옆에 젊은 친구들이 오더니 발로 밀어내는 허벅지 운동을 하면서 일단 60부터 시작하자고 하니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됐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용량의 운동을 했지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니 두려움이 밀려와서 직원에게 진짜 엘리베이터 없어 하니 정말 없단다. 난간을 잡고 쩔쩔매면서 내려왔다. 휘청휘청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락커를 잠가야 하는데 잠기지 않는다. 모르겠다하고 그냥 들어가서 핫탑과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나와서 샤워하는 데 비누 디스플레이는 있는데 비누가 없다. 그럼 그렇지 가져간 샴푸로 샤워하는 데 물이 찔끔 나오다 멈췄다. 나오는 시간이 자동으로 조절되어 다시 버튼을 눌러야 했다. 불편하다. 겉은 멋지게 포장이 되어 있는데 새로 짓기 전 오래된 수영장이 더 편한 것 같다. 물론 그곳엔 피트니스 센터가 없었다.

우리는 점점 살아가면서 브랜드 네임을 의식하게 된다. 먹는 것, 입는 것, 주택까지 브랜드 네임 명품 아파트는 가격과 인기는 떨어 질주를 모른다. 물론 보석이나 가전제품, 자동차 등 우리의 일상에 브랜드 네임은 나를 대신하는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입고 있는 껍데기가 알맹이보다 더 중요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명품 차를 타고 백화점이나 호텔에 나타나면 도어맨에게 우대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단 기를 팍 죽이는 효과까지 있다. 으리으리한 집에 들어서면 왠지 신발부터 벗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텐트도 스키도 우리의 일상엔 이제 명품이 우리가 갈망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바라게 만드는 중이다. 사실 캐나다의 수퍼스토어는 노 네임 브랜드로 인기를 얻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브랜드의 퀄리티 상품을 하청주고 싸고 좋은 상품을 팔아 인기를 얻었다. 코스코도 코스코 자체 상품을 아웃소싱해서 인기 상품으로 만들고 브랜드 네임의 상품과 경쟁에서 상품의 질과 가격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코스코에 납품하는 유명 브랜드조차도 코스코용은 따로 만든다고 한다. 질적으로 일반 명품과는 구분된다는 말이다. 캐나다에서는 옷을 사서 입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 동네문 시장처럼 옷을 판매하는 곳이 없고 백화점의 옷은 그다지 좋지 않거나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기도 하다.

그래서 코스코에서 사서 입는 경우가 많은데 디자인이 딱 한 가지에 색상도 몇 달갑지 않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옷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남들이 입지 않은 디자인과 고급진 옷을 입고 싶어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그 내용보다는 쭉정이에 평생 신경 쓰면서 살아간다. 색상도 디자인도 똑같은 승복을 입다가 떨어지면 기워 입으면서도 수도를 게을리하지 않던 수행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대통령 영부인이 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에 가서 명품쇼핑을 하면서 수행원을 잔뜩 데리고 다녀 국제적 망신을 산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입는 옷과 먹는 명품을 떠나 이제는 얼굴 성형 전신 성형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한다. 사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면에 있음에도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말처럼 예뻐야 유명한 연예인도 되고 유튜버도 되는 세상이라 그래야 돈을 많이 버는 세상이라 내면을 수행하기보다는 외모 지상주의에 찌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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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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