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스님 성전] 손끝에서 새를 만나다
[미소스님 성전] 손끝에서 새를 만나다
  • 김영태
  • 승인 2006.02.27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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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양을 마치면 손바닥에 땅콩 몇 개를 얹고 휘파람을 분다. 새를 부르는 것이다. 휘파람 소리를 듣고 나뭇가지에 앉았던 새가 파르륵 날아와 모이를 채어 날아간다. 모이를 채어가는 순간 새는 잽싸다. 새가 손끝에 내려앉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손에 놓인 모이는 사라지고 새 또한 손끝을 떠나는 것이다. 새가 떠나도 새가 손끝에 앉았던 순간의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은 간지러움이기도 하고 또는 여린 긁힘이기도 하다.

새 먹이대를 설치하고 한 달만의 일이다. 처음에 새들은 먹이대 위에 놓인 모이조차 먹지를 않았다. 그러나 이제 새들은 사람 손에 놓인 모이까지도 스스럼없이 날아와 먹고 간다. 사람과 새 사이에 비로소 신뢰가 생긴 것이다. 사람이 결코 해치는 존재가 아니라 모이를 나누어 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것을 알아 버린 것이다.

새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생각은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두려워 하고 망설이다 안심하고 날아오는 새들의 동작을 보면서 새들 역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은 사람의 전유물이라는 나의 오만을 새들은 일깨워 준 것이다. 새와 내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은 새를 더 이상 함부로 할 수 있는 미물일 수 없게 했다. 그것은 관심을 가지고 함께 사랑을 나누어야 할 생명으로 다가서게 했다. 인간의 오만을 버리고 겸손해 지는 것이 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요즘 새에게서 배우고 있다.

얼마 전 선생님 한 분과 학생 몇이 절을 찾아 왔다. 그들은 모두 새를 사랑하거나 새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천수만에 새를 보기 위해 왔다는 그들은 절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아침 학생들은 산새들을 관찰하는데 선생님은 녹색의 철망을 잘라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궁금해 가까이 가서 물었다. 그는 새에게 줄 기름망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기름을 보여주었다. 새가 기름을 먹는다는 것은 낯선 사실이었다. 곡물류는 탄수화물이 많아 소화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때로 이렇게 기름을 주어야 새의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또 하나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언 기름덩이를 잘게 자르고 그 속에 땅콩을 버무려 넣고 그 망을 하나하나 나무에 거는 모습은 새 박사라기보다는 새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무언가를 잘 알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보았다. 가끔씩 절에서 아침을 맞는 방문자들은 새들이 손끝에 앉았다 모이를 채어가는 모습을 보며 놀란다. 다가서면 언제나 새가 달아나는 그들의 세계에서 새들이 손끝에 앉아 노니는 이 세계는 신비롭기만 할 것이다. 새와 사람 사이의 거리 그리고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차이는 사랑이다. 사랑이 있을 때 그 아득했던 거리는 사라지고 모든 것이 내게로 온다. 오늘도 나는 휘파람을 불며 새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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