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29. 가족과 국가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29. 가족과 국가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09.05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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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홍범도

머슴으로 태어나 사냥을 배우고 사냥꾼으로 살 수도 있었건만

돼지처럼 제 배 속만 채우려는 매국노들 때문에 쓰러진 조국을 다시 세우겠다고 손발이 얼고 마음조차 얼어 버린 청산리에서 봉오동에서 총소리와 함께 호령하던 장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데 공산당이었다고 빨치산이었다고 조국에 묻히지도 못하고 머어언 이국땅 시베리아 동토 카자흐스탄에서 조국으로 돌아와 누운 장군의 늠름한 기개가 빛나던 육사 교정에서 나무 뿌리가 뽑히듯 뽑혀 나간 님

나의 아버진 머슴으로 살고 필부로 떠났건만 님은 아들과 아내마저 조국에 내어 준 아버지 남편으로는 실패한 가장

글도 제대로 못쓰는 글자로 직업 의병 입국 목적 조국 독립을 썼던 그 기개가 느껴져 가슴에 울분만 치솟는다

사람답게 사는 데는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망설임 없이 뚜렷하게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듯 뚜벅뚜벅 갈 뿐
쓸데 없는 생각이 마음을 흔들리게 하듯 코뿔소처럼 앞만 보고 가면 된다
백 년이 지난 조국에서 다시 독립 운동 하듯이 살아야 하는 이 시대 민초처럼.
 







#작가의 변

가족은 내가 태어나 성년이 되기까지 길러 준 부모와 함께 살던 가족, 그리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살면서 또다시 만들어 진 가족,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 만든 또 다른 가족,
가족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가족,
어머니 쪽 외가와 이모, 이모부 외사촌과 이종사촌,
아버지계의 고모와 고모부 숙부와 숙모 그리고 고종사촌과 사촌 형제자매,
누이와 결혼한 매형과 조카들,
동생과 결혼한 아내와 조카들,

가족도 가장의 이상을 강제하거나 목표를 강제하면 반발하는 시대다. 아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듯이 아내와 아들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고 생각이 있다. 그럼에도 내 이상과 욕심만을 요구하고 강제하면 가족은 깨지게 된다.

아내의 부모와 형제자매, 아내의 외삼촌과 외숙모. 아내의 부모 형제 그리고 사촌 형제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가족 관계,

하지만 현대사회는 이런 가족 관계조차 자주 만나지 못하고 관혼상제가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다.
형제자매도 평소엔 자주 보기 힘든 아주 바쁜 세상에 살고 있다. 때로는 보고 싶어도 경제적 차이, 학력의 차이로 내가 자랑스러워 보이지 않으면 보지 않으려 한다.
형제자매조차 내 자식보다 다른 조카들이 잘되면 부럽고 배가 아프고 내가 능력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

학교 동창회도 성공한 친구들은 동창회에 참석해 찬조금도 툭툭 던져 친구들의 화제의 중심이 되지만 학교 다닐 땐 공부도 잘하고 잘나갈 것 같던 친구가 사회생활도 꼬이고 결혼도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힘들면 친구들과도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웃도 마찬가지도 옛날 내가 크던 동네의 60가구는 대부분 집안 속사정을 다 알고 지냈다.
품앗이로 모내기하고 김을 매고 벼 베고 타작하는 과정에서 그 집에 숟가락이 모자라거나 교자상이 모자라면, 서로 돌려쓰고 그랬다.
이젠 시골엔 빈집이 흉가처럼 늘어나고 도시에선 아파트 난생처음으로 서로 소음 복수를 넘어 살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지붕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면서 보기엔 더 좋아 보였지만, 더 추웠고 정부 권장 종묘로 농산물을 생산하면 너무 많은 물량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그래도 재빠르게 강남 참외밭에 투자한 사람들은 졸부 소릴 들어도 부자가 됐고 자녀들도 권력의 영역 안에 섰다.
하지만 농협중앙회 돈으로 농사짓고 다 못 갚고도 또 빚을 내고, 그러다 아들 학자금 한다고 땅을 팔고 도시에 직장을 잡은 아들 따라 도시에 와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폐지를 줍고, 살기 위해 사는 것인지 죽기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헌법도 법도 법꾸라지들이 자기들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지들끼리 용서하고 지들끼리 손잡고 내 편이 아니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이용해 법을 이용해 찍는다. 그러다 죽어 간 수많은 시민은 원혼이 되어 도시 도로에 메아리가 된다.
선한 마음으로 살고 정의를 위해 살면 조국에 온 가족을 바치고도 이념에 따라 내동댕이쳐지는 시대.
거울만 봐도 영혼이 달아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길을 간다. 가족끼리 대화도 없고 각자의 모니터 앞에서 또 다른 세상을 본다.

이민자에게 조국은 버릴 수 없는 뿌리다. 그런데 조국에서 버림받으면 뿌리 잃은 나무처럼 시들시들 말라서 비틀어진다. 조국을 뺏기고 만주와 연해주, 일본, 시베리아 여러 나라와 카자흐스탄에 흩어진 독립군 자녀와 가족은 버림받은 홍범도처럼 자신들도 버림받은 느낌이다.

왜 조국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제국주의 앞에 협상하고 아부하던 자들이 득세한 세상에 조국을 위해 가족을 바친 영웅은 바보가 됐다.
추운 겨울 동토의 땅에서 일제와 맞설 때 독립군을 잡겠다고 일본 도를 휘두르던 동족 간도특설대가 마치 다시 살아난 것만 같다.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려 우리가 얻는 것이 없는데도 세금으로 광고하고 일본을 광고하고 동해를 일본해라 말해도 아니다 라고 말하지 못하는 대한민국호 선장.

날마다 새로운 뉴스는 언론 탄압과 말도 안 되는 식사기에 게이트로 불러도 될 대통령과의 부동산 문제, 학력 부정, 순직사병 조사개입, 홍범도 흉상 철거, 핵오염수 방류, 세계잼버리대회 부실 등이 터져 나오는데 대부분 언론은 야당만 물고 늘어진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책임자도 없다. 현장 실무자가 아닌 책임자가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일들임에도 말이다.







가족만을 챙기려면 이장이 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가족만 챙길 것이기 때문이다.
동창회를 이용해 정치할 거라면 차라리 동창회에 참석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는 많은 동창과 시민에게 아픔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기 가족 자기 친지 동료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결국 자기 가족과 친구만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념에 매몰된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이념에 매몰되어 사리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 탓만 하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이상을 펼치기 위해 국가수반이 되었다면 그 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배가 잘 항해할 수 있도록 길을 잡고 고치고 사기를 북돋아 주는 자리지 이상이나 이념을 펼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왕조시대의 왕조차 늘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는 중신들과 대립해 왔다. 현대의 정치는 왕정도 왕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다. 국민은 일부 특정 세력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나라 밖에서 칭찬을 듣는 국가지도자는 국내에서 지지도가 떨어 수도 있다. 현대 정치는 가족을 돌보듯 국민을 돌봐야 한다. 치열한 국가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에 그것이 이익이 되는지 미래의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지 치열하게 따져 봐야 한다. 내 결정으로 누군가가 죽어 간다면 그것은 간접 살인과 같다. 패거리 정치를 하면 결국은 국민화합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뒷골목 깡패와 같은 정치가 되고 만다. 갱단들도 자신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지 다른 갱단에 이익을 위해 싸운다면 그것은 배신자일 뿐이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언론 탄압이 심해서 신문과 방송을 검열하고 국민에게 보내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 적이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는 세계 인터넷망에 국민의 접근을 막고 있다. 대한민국도 한때 북한의 학생 군사훈련에 대응해 학도호국단을 만들었고 예비군을 만들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만들만 한국도 만들고, 북한이 잠수함을 만들면 우리도 잠수함을 만들었다. 6.25전쟁에서 탱크 한 대조차 제대로 없어 속절없이 밀려 경상도 낙동강까지 밀렸던 시절에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있었다.

그때도 국민보다 서울시민보다 대통령은 먼저 도망가서 국민에게 안심하라고 방송했다. 마치 금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남한산성에 숨어든 임금이나, 임진왜란에서 의주로 피신한 왕처럼 말이다. 나라의 임금은 도망가고 관군은 패퇴를 거듭할 때 분연히 일어선 것은 핍박받던 천민과 승병들이었다. 임금은 항복해도 귀족으로 살던 시대에도 백성들은 노예가 되어 소, 말처럼 팔려 다녀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라가 아무것도 안 해줘도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다.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나라의 권력자들은 일제의 권력에 붙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해방되고는 다시 미군정과 새 정부에 붙어 권력을 누렸다. 백성은 늘 희생양이어야 했다. 왕정시대에도 민주국가가 세워진 군이 통치하던 시대에도.

지금 또다시 검찰 시대처럼 곳곳에 검사들이 포진한 정부를 맞이했다. 거리엔 날마다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언론은 환관처럼 아부하기 바쁘다.

프랑스혁명의 잔 다르크처럼 민중의 중심이 필요한 시대이다. 민중항쟁으로 나라가 다시 서는 줄 알았지만, 다시 항쟁의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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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홍범도

머슴으로 태어나 사냥을 배우고 사냥꾼으로 살 수도 있었건만

돼지처럼 제 배 속만 채우려는 매국노들 때문에 쓰러진 조국을 다시 세우겠다고 손발이 얼고 마음조차 얼어 버린 청산리에서 봉오동에서 총소리와 함께 호령하던 장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데 공산당이었다고 빨치산이었다고 조국에 묻히지도 못하고 머어언 이국땅 시베리아 동토 카자흐스탄에서 조국으로 돌아와 누운 장군의 늠름한 기개가 빛나던 육사 교정에서 나무 뿌리가 뽑히듯 뽑혀 나간 님

나의 아버진 머슴으로 살고 필부로 떠났건만 님은 아들과 아내마저 조국에 내어 준 아버지 남편으로는 실패한 가장

글도 제대로 못쓰는 글자로 직업 의병 입국 목적 조국 독립을 썼던 그 기개가 느껴져 가슴에 울분만 치솟는다

사람답게 사는 데는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망설임 없이 뚜렷하게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듯 뚜벅뚜벅 갈 뿐
쓸데 없는 생각이 마음을 흔들리게 하듯 코뿔소처럼 앞만 보고 가면 된다
백 년이 지난 조국에서 다시 독립 운동 하듯이 살아야 하는 이 시대 민초처럼.
 





영웅 홍범도

머슴으로 태어나 사냥을 배우고 사냥꾼으로 살 수도 있었건만

돼지처럼 제 배 속만 채우려는 매국노들 때문에 쓰러진 조국을 다시 세우겠다고 손발이 얼고 마음조차 얼어 버린 청산리에서 봉오동에서 총소리와 함께 호령하던 장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데 공산당이었다고 빨치산이었다고 조국에 묻히지도 못하고 머어언 이국땅 시베리아 동토 카자흐스탄에서 조국으로 돌아와 누운 장군의 늠름한 기개가 빛나던 육사 교정에서 나무 뿌리가 뽑히듯 뽑혀 나간 님

나의 아버진 머슴으로 살고 필부로 떠났건만 님은 아들과 아내마저 조국에 내어 준 아버지 남편으로는 실패한 가장

글도 제대로 못쓰는 글자로 직업 의병 입국 목적 조국 독립을 썼던 그 기개가 느껴져 가슴에 울분만 치솟는다

사람답게 사는 데는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망설임 없이 뚜렷하게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듯 뚜벅뚜벅 갈 뿐
쓸데 없는 생각이 마음을 흔들리게 하듯 코뿔소처럼 앞만 보고 가면 된다
백 년이 지난 조국에서 다시 독립 운동 하듯이 살아야 하는 이 시대 민초처럼.
 







#작가의 변

가족은 내가 태어나 성년이 되기까지 길러 준 부모와 함께 살던 가족, 그리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살면서 또다시 만들어 진 가족,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 만든 또 다른 가족,
가족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가족,
어머니 쪽 외가와 이모, 이모부 외사촌과 이종사촌,
아버지계의 고모와 고모부 숙부와 숙모 그리고 고종사촌과 사촌 형제자매,
누이와 결혼한 매형과 조카들,
동생과 결혼한 아내와 조카들,

가족도 가장의 이상을 강제하거나 목표를 강제하면 반발하는 시대다. 아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듯이 아내와 아들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고 생각이 있다. 그럼에도 내 이상과 욕심만을 요구하고 강제하면 가족은 깨지게 된다.

아내의 부모와 형제자매, 아내의 외삼촌과 외숙모. 아내의 부모 형제 그리고 사촌 형제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가족 관계,

하지만 현대사회는 이런 가족 관계조차 자주 만나지 못하고 관혼상제가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다.
형제자매도 평소엔 자주 보기 힘든 아주 바쁜 세상에 살고 있다. 때로는 보고 싶어도 경제적 차이, 학력의 차이로 내가 자랑스러워 보이지 않으면 보지 않으려 한다.
형제자매조차 내 자식보다 다른 조카들이 잘되면 부럽고 배가 아프고 내가 능력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

학교 동창회도 성공한 친구들은 동창회에 참석해 찬조금도 툭툭 던져 친구들의 화제의 중심이 되지만 학교 다닐 땐 공부도 잘하고 잘나갈 것 같던 친구가 사회생활도 꼬이고 결혼도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힘들면 친구들과도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웃도 마찬가지도 옛날 내가 크던 동네의 60가구는 대부분 집안 속사정을 다 알고 지냈다.
품앗이로 모내기하고 김을 매고 벼 베고 타작하는 과정에서 그 집에 숟가락이 모자라거나 교자상이 모자라면, 서로 돌려쓰고 그랬다.
이젠 시골엔 빈집이 흉가처럼 늘어나고 도시에선 아파트 난생처음으로 서로 소음 복수를 넘어 살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지붕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면서 보기엔 더 좋아 보였지만, 더 추웠고 정부 권장 종묘로 농산물을 생산하면 너무 많은 물량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그래도 재빠르게 강남 참외밭에 투자한 사람들은 졸부 소릴 들어도 부자가 됐고 자녀들도 권력의 영역 안에 섰다.
하지만 농협중앙회 돈으로 농사짓고 다 못 갚고도 또 빚을 내고, 그러다 아들 학자금 한다고 땅을 팔고 도시에 직장을 잡은 아들 따라 도시에 와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폐지를 줍고, 살기 위해 사는 것인지 죽기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헌법도 법도 법꾸라지들이 자기들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지들끼리 용서하고 지들끼리 손잡고 내 편이 아니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이용해 법을 이용해 찍는다. 그러다 죽어 간 수많은 시민은 원혼이 되어 도시 도로에 메아리가 된다.
선한 마음으로 살고 정의를 위해 살면 조국에 온 가족을 바치고도 이념에 따라 내동댕이쳐지는 시대.
거울만 봐도 영혼이 달아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길을 간다. 가족끼리 대화도 없고 각자의 모니터 앞에서 또 다른 세상을 본다.

이민자에게 조국은 버릴 수 없는 뿌리다. 그런데 조국에서 버림받으면 뿌리 잃은 나무처럼 시들시들 말라서 비틀어진다. 조국을 뺏기고 만주와 연해주, 일본, 시베리아 여러 나라와 카자흐스탄에 흩어진 독립군 자녀와 가족은 버림받은 홍범도처럼 자신들도 버림받은 느낌이다.

왜 조국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제국주의 앞에 협상하고 아부하던 자들이 득세한 세상에 조국을 위해 가족을 바친 영웅은 바보가 됐다.
추운 겨울 동토의 땅에서 일제와 맞설 때 독립군을 잡겠다고 일본 도를 휘두르던 동족 간도특설대가 마치 다시 살아난 것만 같다.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려 우리가 얻는 것이 없는데도 세금으로 광고하고 일본을 광고하고 동해를 일본해라 말해도 아니다 라고 말하지 못하는 대한민국호 선장.

날마다 새로운 뉴스는 언론 탄압과 말도 안 되는 식사기에 게이트로 불러도 될 대통령과의 부동산 문제, 학력 부정, 순직사병 조사개입, 홍범도 흉상 철거, 핵오염수 방류, 세계잼버리대회 부실 등이 터져 나오는데 대부분 언론은 야당만 물고 늘어진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책임자도 없다. 현장 실무자가 아닌 책임자가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일들임에도 말이다.







가족만을 챙기려면 이장이 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가족만 챙길 것이기 때문이다.
동창회를 이용해 정치할 거라면 차라리 동창회에 참석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는 많은 동창과 시민에게 아픔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기 가족 자기 친지 동료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결국 자기 가족과 친구만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념에 매몰된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이념에 매몰되어 사리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 탓만 하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이상을 펼치기 위해 국가수반이 되었다면 그 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배가 잘 항해할 수 있도록 길을 잡고 고치고 사기를 북돋아 주는 자리지 이상이나 이념을 펼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왕조시대의 왕조차 늘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는 중신들과 대립해 왔다. 현대의 정치는 왕정도 왕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다. 국민은 일부 특정 세력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나라 밖에서 칭찬을 듣는 국가지도자는 국내에서 지지도가 떨어 수도 있다. 현대 정치는 가족을 돌보듯 국민을 돌봐야 한다. 치열한 국가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에 그것이 이익이 되는지 미래의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지 치열하게 따져 봐야 한다. 내 결정으로 누군가가 죽어 간다면 그것은 간접 살인과 같다. 패거리 정치를 하면 결국은 국민화합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뒷골목 깡패와 같은 정치가 되고 만다. 갱단들도 자신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지 다른 갱단에 이익을 위해 싸운다면 그것은 배신자일 뿐이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언론 탄압이 심해서 신문과 방송을 검열하고 국민에게 보내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 적이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는 세계 인터넷망에 국민의 접근을 막고 있다. 대한민국도 한때 북한의 학생 군사훈련에 대응해 학도호국단을 만들었고 예비군을 만들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만들만 한국도 만들고, 북한이 잠수함을 만들면 우리도 잠수함을 만들었다. 6.25전쟁에서 탱크 한 대조차 제대로 없어 속절없이 밀려 경상도 낙동강까지 밀렸던 시절에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있었다.

그때도 국민보다 서울시민보다 대통령은 먼저 도망가서 국민에게 안심하라고 방송했다. 마치 금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남한산성에 숨어든 임금이나, 임진왜란에서 의주로 피신한 왕처럼 말이다. 나라의 임금은 도망가고 관군은 패퇴를 거듭할 때 분연히 일어선 것은 핍박받던 천민과 승병들이었다. 임금은 항복해도 귀족으로 살던 시대에도 백성들은 노예가 되어 소, 말처럼 팔려 다녀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라가 아무것도 안 해줘도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다.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나라의 권력자들은 일제의 권력에 붙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해방되고는 다시 미군정과 새 정부에 붙어 권력을 누렸다. 백성은 늘 희생양이어야 했다. 왕정시대에도 민주국가가 세워진 군이 통치하던 시대에도.

지금 또다시 검찰 시대처럼 곳곳에 검사들이 포진한 정부를 맞이했다. 거리엔 날마다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언론은 환관처럼 아부하기 바쁘다.

프랑스혁명의 잔 다르크처럼 민중의 중심이 필요한 시대이다. 민중항쟁으로 나라가 다시 서는 줄 알았지만, 다시 항쟁의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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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가족은 내가 태어나 성년이 되기까지 길러 준 부모와 함께 살던 가족, 그리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살면서 또다시 만들어 진 가족,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 만든 또 다른 가족,
가족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가족,
어머니 쪽 외가와 이모, 이모부 외사촌과 이종사촌,
아버지계의 고모와 고모부 숙부와 숙모 그리고 고종사촌과 사촌 형제자매,
누이와 결혼한 매형과 조카들,
동생과 결혼한 아내와 조카들,

가족도 가장의 이상을 강제하거나 목표를 강제하면 반발하는 시대다. 아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듯이 아내와 아들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고 생각이 있다. 그럼에도 내 이상과 욕심만을 요구하고 강제하면 가족은 깨지게 된다.

아내의 부모와 형제자매, 아내의 외삼촌과 외숙모. 아내의 부모 형제 그리고 사촌 형제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가족 관계,

하지만 현대사회는 이런 가족 관계조차 자주 만나지 못하고 관혼상제가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다.
형제자매도 평소엔 자주 보기 힘든 아주 바쁜 세상에 살고 있다. 때로는 보고 싶어도 경제적 차이, 학력의 차이로 내가 자랑스러워 보이지 않으면 보지 않으려 한다.
형제자매조차 내 자식보다 다른 조카들이 잘되면 부럽고 배가 아프고 내가 능력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

학교 동창회도 성공한 친구들은 동창회에 참석해 찬조금도 툭툭 던져 친구들의 화제의 중심이 되지만 학교 다닐 땐 공부도 잘하고 잘나갈 것 같던 친구가 사회생활도 꼬이고 결혼도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힘들면 친구들과도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웃도 마찬가지도 옛날 내가 크던 동네의 60가구는 대부분 집안 속사정을 다 알고 지냈다.
품앗이로 모내기하고 김을 매고 벼 베고 타작하는 과정에서 그 집에 숟가락이 모자라거나 교자상이 모자라면, 서로 돌려쓰고 그랬다.
이젠 시골엔 빈집이 흉가처럼 늘어나고 도시에선 아파트 난생처음으로 서로 소음 복수를 넘어 살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지붕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면서 보기엔 더 좋아 보였지만, 더 추웠고 정부 권장 종묘로 농산물을 생산하면 너무 많은 물량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그래도 재빠르게 강남 참외밭에 투자한 사람들은 졸부 소릴 들어도 부자가 됐고 자녀들도 권력의 영역 안에 섰다.
하지만 농협중앙회 돈으로 농사짓고 다 못 갚고도 또 빚을 내고, 그러다 아들 학자금 한다고 땅을 팔고 도시에 직장을 잡은 아들 따라 도시에 와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폐지를 줍고, 살기 위해 사는 것인지 죽기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헌법도 법도 법꾸라지들이 자기들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지들끼리 용서하고 지들끼리 손잡고 내 편이 아니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이용해 법을 이용해 찍는다. 그러다 죽어 간 수많은 시민은 원혼이 되어 도시 도로에 메아리가 된다.
선한 마음으로 살고 정의를 위해 살면 조국에 온 가족을 바치고도 이념에 따라 내동댕이쳐지는 시대.
거울만 봐도 영혼이 달아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길을 간다. 가족끼리 대화도 없고 각자의 모니터 앞에서 또 다른 세상을 본다.

이민자에게 조국은 버릴 수 없는 뿌리다. 그런데 조국에서 버림받으면 뿌리 잃은 나무처럼 시들시들 말라서 비틀어진다. 조국을 뺏기고 만주와 연해주, 일본, 시베리아 여러 나라와 카자흐스탄에 흩어진 독립군 자녀와 가족은 버림받은 홍범도처럼 자신들도 버림받은 느낌이다.

왜 조국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제국주의 앞에 협상하고 아부하던 자들이 득세한 세상에 조국을 위해 가족을 바친 영웅은 바보가 됐다.
추운 겨울 동토의 땅에서 일제와 맞설 때 독립군을 잡겠다고 일본 도를 휘두르던 동족 간도특설대가 마치 다시 살아난 것만 같다.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려 우리가 얻는 것이 없는데도 세금으로 광고하고 일본을 광고하고 동해를 일본해라 말해도 아니다 라고 말하지 못하는 대한민국호 선장.

날마다 새로운 뉴스는 언론 탄압과 말도 안 되는 식사기에 게이트로 불러도 될 대통령과의 부동산 문제, 학력 부정, 순직사병 조사개입, 홍범도 흉상 철거, 핵오염수 방류, 세계잼버리대회 부실 등이 터져 나오는데 대부분 언론은 야당만 물고 늘어진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책임자도 없다. 현장 실무자가 아닌 책임자가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일들임에도 말이다.





영웅 홍범도

머슴으로 태어나 사냥을 배우고 사냥꾼으로 살 수도 있었건만

돼지처럼 제 배 속만 채우려는 매국노들 때문에 쓰러진 조국을 다시 세우겠다고 손발이 얼고 마음조차 얼어 버린 청산리에서 봉오동에서 총소리와 함께 호령하던 장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데 공산당이었다고 빨치산이었다고 조국에 묻히지도 못하고 머어언 이국땅 시베리아 동토 카자흐스탄에서 조국으로 돌아와 누운 장군의 늠름한 기개가 빛나던 육사 교정에서 나무 뿌리가 뽑히듯 뽑혀 나간 님

나의 아버진 머슴으로 살고 필부로 떠났건만 님은 아들과 아내마저 조국에 내어 준 아버지 남편으로는 실패한 가장

글도 제대로 못쓰는 글자로 직업 의병 입국 목적 조국 독립을 썼던 그 기개가 느껴져 가슴에 울분만 치솟는다

사람답게 사는 데는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망설임 없이 뚜렷하게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듯 뚜벅뚜벅 갈 뿐
쓸데 없는 생각이 마음을 흔들리게 하듯 코뿔소처럼 앞만 보고 가면 된다
백 년이 지난 조국에서 다시 독립 운동 하듯이 살아야 하는 이 시대 민초처럼.
 







#작가의 변

가족은 내가 태어나 성년이 되기까지 길러 준 부모와 함께 살던 가족, 그리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살면서 또다시 만들어 진 가족,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 만든 또 다른 가족,
가족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가족,
어머니 쪽 외가와 이모, 이모부 외사촌과 이종사촌,
아버지계의 고모와 고모부 숙부와 숙모 그리고 고종사촌과 사촌 형제자매,
누이와 결혼한 매형과 조카들,
동생과 결혼한 아내와 조카들,

가족도 가장의 이상을 강제하거나 목표를 강제하면 반발하는 시대다. 아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듯이 아내와 아들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고 생각이 있다. 그럼에도 내 이상과 욕심만을 요구하고 강제하면 가족은 깨지게 된다.

아내의 부모와 형제자매, 아내의 외삼촌과 외숙모. 아내의 부모 형제 그리고 사촌 형제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가족 관계,

하지만 현대사회는 이런 가족 관계조차 자주 만나지 못하고 관혼상제가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다.
형제자매도 평소엔 자주 보기 힘든 아주 바쁜 세상에 살고 있다. 때로는 보고 싶어도 경제적 차이, 학력의 차이로 내가 자랑스러워 보이지 않으면 보지 않으려 한다.
형제자매조차 내 자식보다 다른 조카들이 잘되면 부럽고 배가 아프고 내가 능력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

학교 동창회도 성공한 친구들은 동창회에 참석해 찬조금도 툭툭 던져 친구들의 화제의 중심이 되지만 학교 다닐 땐 공부도 잘하고 잘나갈 것 같던 친구가 사회생활도 꼬이고 결혼도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힘들면 친구들과도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웃도 마찬가지도 옛날 내가 크던 동네의 60가구는 대부분 집안 속사정을 다 알고 지냈다.
품앗이로 모내기하고 김을 매고 벼 베고 타작하는 과정에서 그 집에 숟가락이 모자라거나 교자상이 모자라면, 서로 돌려쓰고 그랬다.
이젠 시골엔 빈집이 흉가처럼 늘어나고 도시에선 아파트 난생처음으로 서로 소음 복수를 넘어 살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지붕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면서 보기엔 더 좋아 보였지만, 더 추웠고 정부 권장 종묘로 농산물을 생산하면 너무 많은 물량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그래도 재빠르게 강남 참외밭에 투자한 사람들은 졸부 소릴 들어도 부자가 됐고 자녀들도 권력의 영역 안에 섰다.
하지만 농협중앙회 돈으로 농사짓고 다 못 갚고도 또 빚을 내고, 그러다 아들 학자금 한다고 땅을 팔고 도시에 직장을 잡은 아들 따라 도시에 와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폐지를 줍고, 살기 위해 사는 것인지 죽기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헌법도 법도 법꾸라지들이 자기들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지들끼리 용서하고 지들끼리 손잡고 내 편이 아니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이용해 법을 이용해 찍는다. 그러다 죽어 간 수많은 시민은 원혼이 되어 도시 도로에 메아리가 된다.
선한 마음으로 살고 정의를 위해 살면 조국에 온 가족을 바치고도 이념에 따라 내동댕이쳐지는 시대.
거울만 봐도 영혼이 달아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길을 간다. 가족끼리 대화도 없고 각자의 모니터 앞에서 또 다른 세상을 본다.

이민자에게 조국은 버릴 수 없는 뿌리다. 그런데 조국에서 버림받으면 뿌리 잃은 나무처럼 시들시들 말라서 비틀어진다. 조국을 뺏기고 만주와 연해주, 일본, 시베리아 여러 나라와 카자흐스탄에 흩어진 독립군 자녀와 가족은 버림받은 홍범도처럼 자신들도 버림받은 느낌이다.

왜 조국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제국주의 앞에 협상하고 아부하던 자들이 득세한 세상에 조국을 위해 가족을 바친 영웅은 바보가 됐다.
추운 겨울 동토의 땅에서 일제와 맞설 때 독립군을 잡겠다고 일본 도를 휘두르던 동족 간도특설대가 마치 다시 살아난 것만 같다.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려 우리가 얻는 것이 없는데도 세금으로 광고하고 일본을 광고하고 동해를 일본해라 말해도 아니다 라고 말하지 못하는 대한민국호 선장.

날마다 새로운 뉴스는 언론 탄압과 말도 안 되는 식사기에 게이트로 불러도 될 대통령과의 부동산 문제, 학력 부정, 순직사병 조사개입, 홍범도 흉상 철거, 핵오염수 방류, 세계잼버리대회 부실 등이 터져 나오는데 대부분 언론은 야당만 물고 늘어진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책임자도 없다. 현장 실무자가 아닌 책임자가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일들임에도 말이다.







가족만을 챙기려면 이장이 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가족만 챙길 것이기 때문이다.
동창회를 이용해 정치할 거라면 차라리 동창회에 참석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는 많은 동창과 시민에게 아픔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기 가족 자기 친지 동료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결국 자기 가족과 친구만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념에 매몰된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이념에 매몰되어 사리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 탓만 하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이상을 펼치기 위해 국가수반이 되었다면 그 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배가 잘 항해할 수 있도록 길을 잡고 고치고 사기를 북돋아 주는 자리지 이상이나 이념을 펼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왕조시대의 왕조차 늘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는 중신들과 대립해 왔다. 현대의 정치는 왕정도 왕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다. 국민은 일부 특정 세력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나라 밖에서 칭찬을 듣는 국가지도자는 국내에서 지지도가 떨어 수도 있다. 현대 정치는 가족을 돌보듯 국민을 돌봐야 한다. 치열한 국가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에 그것이 이익이 되는지 미래의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지 치열하게 따져 봐야 한다. 내 결정으로 누군가가 죽어 간다면 그것은 간접 살인과 같다. 패거리 정치를 하면 결국은 국민화합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뒷골목 깡패와 같은 정치가 되고 만다. 갱단들도 자신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지 다른 갱단에 이익을 위해 싸운다면 그것은 배신자일 뿐이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언론 탄압이 심해서 신문과 방송을 검열하고 국민에게 보내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 적이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는 세계 인터넷망에 국민의 접근을 막고 있다. 대한민국도 한때 북한의 학생 군사훈련에 대응해 학도호국단을 만들었고 예비군을 만들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만들만 한국도 만들고, 북한이 잠수함을 만들면 우리도 잠수함을 만들었다. 6.25전쟁에서 탱크 한 대조차 제대로 없어 속절없이 밀려 경상도 낙동강까지 밀렸던 시절에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있었다.

그때도 국민보다 서울시민보다 대통령은 먼저 도망가서 국민에게 안심하라고 방송했다. 마치 금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남한산성에 숨어든 임금이나, 임진왜란에서 의주로 피신한 왕처럼 말이다. 나라의 임금은 도망가고 관군은 패퇴를 거듭할 때 분연히 일어선 것은 핍박받던 천민과 승병들이었다. 임금은 항복해도 귀족으로 살던 시대에도 백성들은 노예가 되어 소, 말처럼 팔려 다녀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라가 아무것도 안 해줘도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다.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나라의 권력자들은 일제의 권력에 붙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해방되고는 다시 미군정과 새 정부에 붙어 권력을 누렸다. 백성은 늘 희생양이어야 했다. 왕정시대에도 민주국가가 세워진 군이 통치하던 시대에도.

지금 또다시 검찰 시대처럼 곳곳에 검사들이 포진한 정부를 맞이했다. 거리엔 날마다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언론은 환관처럼 아부하기 바쁘다.

프랑스혁명의 잔 다르크처럼 민중의 중심이 필요한 시대이다. 민중항쟁으로 나라가 다시 서는 줄 알았지만, 다시 항쟁의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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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만을 챙기려면 이장이 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가족만 챙길 것이기 때문이다.
동창회를 이용해 정치할 거라면 차라리 동창회에 참석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는 많은 동창과 시민에게 아픔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기 가족 자기 친지 동료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결국 자기 가족과 친구만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념에 매몰된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이념에 매몰되어 사리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 탓만 하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이상을 펼치기 위해 국가수반이 되었다면 그 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배가 잘 항해할 수 있도록 길을 잡고 고치고 사기를 북돋아 주는 자리지 이상이나 이념을 펼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왕조시대의 왕조차 늘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는 중신들과 대립해 왔다. 현대의 정치는 왕정도 왕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다. 국민은 일부 특정 세력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나라 밖에서 칭찬을 듣는 국가지도자는 국내에서 지지도가 떨어 수도 있다. 현대 정치는 가족을 돌보듯 국민을 돌봐야 한다. 치열한 국가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에 그것이 이익이 되는지 미래의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지 치열하게 따져 봐야 한다. 내 결정으로 누군가가 죽어 간다면 그것은 간접 살인과 같다. 패거리 정치를 하면 결국은 국민화합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뒷골목 깡패와 같은 정치가 되고 만다. 갱단들도 자신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지 다른 갱단에 이익을 위해 싸운다면 그것은 배신자일 뿐이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언론 탄압이 심해서 신문과 방송을 검열하고 국민에게 보내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 적이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는 세계 인터넷망에 국민의 접근을 막고 있다. 대한민국도 한때 북한의 학생 군사훈련에 대응해 학도호국단을 만들었고 예비군을 만들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만들만 한국도 만들고, 북한이 잠수함을 만들면 우리도 잠수함을 만들었다. 6.25전쟁에서 탱크 한 대조차 제대로 없어 속절없이 밀려 경상도 낙동강까지 밀렸던 시절에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있었다.

그때도 국민보다 서울시민보다 대통령은 먼저 도망가서 국민에게 안심하라고 방송했다. 마치 금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남한산성에 숨어든 임금이나, 임진왜란에서 의주로 피신한 왕처럼 말이다. 나라의 임금은 도망가고 관군은 패퇴를 거듭할 때 분연히 일어선 것은 핍박받던 천민과 승병들이었다. 임금은 항복해도 귀족으로 살던 시대에도 백성들은 노예가 되어 소, 말처럼 팔려 다녀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라가 아무것도 안 해줘도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다.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나라의 권력자들은 일제의 권력에 붙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해방되고는 다시 미군정과 새 정부에 붙어 권력을 누렸다. 백성은 늘 희생양이어야 했다. 왕정시대에도 민주국가가 세워진 군이 통치하던 시대에도.

지금 또다시 검찰 시대처럼 곳곳에 검사들이 포진한 정부를 맞이했다. 거리엔 날마다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언론은 환관처럼 아부하기 바쁘다.

프랑스혁명의 잔 다르크처럼 민중의 중심이 필요한 시대이다. 민중항쟁으로 나라가 다시 서는 줄 알았지만, 다시 항쟁의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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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홍범도

머슴으로 태어나 사냥을 배우고 사냥꾼으로 살 수도 있었건만

돼지처럼 제 배 속만 채우려는 매국노들 때문에 쓰러진 조국을 다시 세우겠다고 손발이 얼고 마음조차 얼어 버린 청산리에서 봉오동에서 총소리와 함께 호령하던 장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데 공산당이었다고 빨치산이었다고 조국에 묻히지도 못하고 머어언 이국땅 시베리아 동토 카자흐스탄에서 조국으로 돌아와 누운 장군의 늠름한 기개가 빛나던 육사 교정에서 나무 뿌리가 뽑히듯 뽑혀 나간 님

나의 아버진 머슴으로 살고 필부로 떠났건만 님은 아들과 아내마저 조국에 내어 준 아버지 남편으로는 실패한 가장

글도 제대로 못쓰는 글자로 직업 의병 입국 목적 조국 독립을 썼던 그 기개가 느껴져 가슴에 울분만 치솟는다

사람답게 사는 데는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망설임 없이 뚜렷하게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듯 뚜벅뚜벅 갈 뿐
쓸데 없는 생각이 마음을 흔들리게 하듯 코뿔소처럼 앞만 보고 가면 된다
백 년이 지난 조국에서 다시 독립 운동 하듯이 살아야 하는 이 시대 민초처럼.
 







#작가의 변

가족은 내가 태어나 성년이 되기까지 길러 준 부모와 함께 살던 가족, 그리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살면서 또다시 만들어 진 가족,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 만든 또 다른 가족,
가족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가족,
어머니 쪽 외가와 이모, 이모부 외사촌과 이종사촌,
아버지계의 고모와 고모부 숙부와 숙모 그리고 고종사촌과 사촌 형제자매,
누이와 결혼한 매형과 조카들,
동생과 결혼한 아내와 조카들,

가족도 가장의 이상을 강제하거나 목표를 강제하면 반발하는 시대다. 아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듯이 아내와 아들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고 생각이 있다. 그럼에도 내 이상과 욕심만을 요구하고 강제하면 가족은 깨지게 된다.

아내의 부모와 형제자매, 아내의 외삼촌과 외숙모. 아내의 부모 형제 그리고 사촌 형제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가족 관계,

하지만 현대사회는 이런 가족 관계조차 자주 만나지 못하고 관혼상제가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다.
형제자매도 평소엔 자주 보기 힘든 아주 바쁜 세상에 살고 있다. 때로는 보고 싶어도 경제적 차이, 학력의 차이로 내가 자랑스러워 보이지 않으면 보지 않으려 한다.
형제자매조차 내 자식보다 다른 조카들이 잘되면 부럽고 배가 아프고 내가 능력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

학교 동창회도 성공한 친구들은 동창회에 참석해 찬조금도 툭툭 던져 친구들의 화제의 중심이 되지만 학교 다닐 땐 공부도 잘하고 잘나갈 것 같던 친구가 사회생활도 꼬이고 결혼도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힘들면 친구들과도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웃도 마찬가지도 옛날 내가 크던 동네의 60가구는 대부분 집안 속사정을 다 알고 지냈다.
품앗이로 모내기하고 김을 매고 벼 베고 타작하는 과정에서 그 집에 숟가락이 모자라거나 교자상이 모자라면, 서로 돌려쓰고 그랬다.
이젠 시골엔 빈집이 흉가처럼 늘어나고 도시에선 아파트 난생처음으로 서로 소음 복수를 넘어 살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지붕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면서 보기엔 더 좋아 보였지만, 더 추웠고 정부 권장 종묘로 농산물을 생산하면 너무 많은 물량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그래도 재빠르게 강남 참외밭에 투자한 사람들은 졸부 소릴 들어도 부자가 됐고 자녀들도 권력의 영역 안에 섰다.
하지만 농협중앙회 돈으로 농사짓고 다 못 갚고도 또 빚을 내고, 그러다 아들 학자금 한다고 땅을 팔고 도시에 직장을 잡은 아들 따라 도시에 와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폐지를 줍고, 살기 위해 사는 것인지 죽기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헌법도 법도 법꾸라지들이 자기들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지들끼리 용서하고 지들끼리 손잡고 내 편이 아니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이용해 법을 이용해 찍는다. 그러다 죽어 간 수많은 시민은 원혼이 되어 도시 도로에 메아리가 된다.
선한 마음으로 살고 정의를 위해 살면 조국에 온 가족을 바치고도 이념에 따라 내동댕이쳐지는 시대.
거울만 봐도 영혼이 달아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길을 간다. 가족끼리 대화도 없고 각자의 모니터 앞에서 또 다른 세상을 본다.

이민자에게 조국은 버릴 수 없는 뿌리다. 그런데 조국에서 버림받으면 뿌리 잃은 나무처럼 시들시들 말라서 비틀어진다. 조국을 뺏기고 만주와 연해주, 일본, 시베리아 여러 나라와 카자흐스탄에 흩어진 독립군 자녀와 가족은 버림받은 홍범도처럼 자신들도 버림받은 느낌이다.

왜 조국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제국주의 앞에 협상하고 아부하던 자들이 득세한 세상에 조국을 위해 가족을 바친 영웅은 바보가 됐다.
추운 겨울 동토의 땅에서 일제와 맞설 때 독립군을 잡겠다고 일본 도를 휘두르던 동족 간도특설대가 마치 다시 살아난 것만 같다.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려 우리가 얻는 것이 없는데도 세금으로 광고하고 일본을 광고하고 동해를 일본해라 말해도 아니다 라고 말하지 못하는 대한민국호 선장.

날마다 새로운 뉴스는 언론 탄압과 말도 안 되는 식사기에 게이트로 불러도 될 대통령과의 부동산 문제, 학력 부정, 순직사병 조사개입, 홍범도 흉상 철거, 핵오염수 방류, 세계잼버리대회 부실 등이 터져 나오는데 대부분 언론은 야당만 물고 늘어진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책임자도 없다. 현장 실무자가 아닌 책임자가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일들임에도 말이다.







가족만을 챙기려면 이장이 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가족만 챙길 것이기 때문이다.
동창회를 이용해 정치할 거라면 차라리 동창회에 참석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는 많은 동창과 시민에게 아픔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기 가족 자기 친지 동료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결국 자기 가족과 친구만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념에 매몰된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이념에 매몰되어 사리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 탓만 하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이상을 펼치기 위해 국가수반이 되었다면 그 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배가 잘 항해할 수 있도록 길을 잡고 고치고 사기를 북돋아 주는 자리지 이상이나 이념을 펼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왕조시대의 왕조차 늘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는 중신들과 대립해 왔다. 현대의 정치는 왕정도 왕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다. 국민은 일부 특정 세력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나라 밖에서 칭찬을 듣는 국가지도자는 국내에서 지지도가 떨어 수도 있다. 현대 정치는 가족을 돌보듯 국민을 돌봐야 한다. 치열한 국가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에 그것이 이익이 되는지 미래의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지 치열하게 따져 봐야 한다. 내 결정으로 누군가가 죽어 간다면 그것은 간접 살인과 같다. 패거리 정치를 하면 결국은 국민화합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뒷골목 깡패와 같은 정치가 되고 만다. 갱단들도 자신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지 다른 갱단에 이익을 위해 싸운다면 그것은 배신자일 뿐이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언론 탄압이 심해서 신문과 방송을 검열하고 국민에게 보내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 적이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는 세계 인터넷망에 국민의 접근을 막고 있다. 대한민국도 한때 북한의 학생 군사훈련에 대응해 학도호국단을 만들었고 예비군을 만들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만들만 한국도 만들고, 북한이 잠수함을 만들면 우리도 잠수함을 만들었다. 6.25전쟁에서 탱크 한 대조차 제대로 없어 속절없이 밀려 경상도 낙동강까지 밀렸던 시절에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있었다.

그때도 국민보다 서울시민보다 대통령은 먼저 도망가서 국민에게 안심하라고 방송했다. 마치 금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남한산성에 숨어든 임금이나, 임진왜란에서 의주로 피신한 왕처럼 말이다. 나라의 임금은 도망가고 관군은 패퇴를 거듭할 때 분연히 일어선 것은 핍박받던 천민과 승병들이었다. 임금은 항복해도 귀족으로 살던 시대에도 백성들은 노예가 되어 소, 말처럼 팔려 다녀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라가 아무것도 안 해줘도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다.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나라의 권력자들은 일제의 권력에 붙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해방되고는 다시 미군정과 새 정부에 붙어 권력을 누렸다. 백성은 늘 희생양이어야 했다. 왕정시대에도 민주국가가 세워진 군이 통치하던 시대에도.

지금 또다시 검찰 시대처럼 곳곳에 검사들이 포진한 정부를 맞이했다. 거리엔 날마다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언론은 환관처럼 아부하기 바쁘다.

프랑스혁명의 잔 다르크처럼 민중의 중심이 필요한 시대이다. 민중항쟁으로 나라가 다시 서는 줄 알았지만, 다시 항쟁의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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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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