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23. 시간의 강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23. 시간의 강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07.26 0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당에 멍석 깔고 하늘을 보면
별들이 숨바꼭질하고
아버지 피워 놓은 쑥 향에 취한 모기들
술 취한 듯 이리저리 쓰러지는 밤

나는 쑥 향기에 취해
멀리서 들려 오는
개구리 합창에 취해
꿈도 생시처럼
비몽사몽 모기장 안 천국

다시는 돌아 가지 못할
다리 없는 강 건너 마을 같기만 하다.
 

#작가의 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은 실시간으로 지구 곳곳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정보 더미에서 정작 보아야 할 정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뉴스라 봐야 늘 같은 것이다. 죽고 죽이는 사건의 연속, 삶의 아우성이다. 살아 있는 이 세상이 지옥도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사는 캐나다에서도 날마다 셀 수도 없는 산불이 타들어 가고 불을 끄던 어린 소방대원 한 명이 죽었다. 자신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불을 끄려고 했지만 불타는 나무가 쓰러지고 불가항력에 의해 더는 삶을 이어 가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도 10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태평양을 사이에 둔 고국에서도 폭우와 홍수로 지하 차도에서 일상을 개미 쳇바퀴 돌 듯 살아가던 서민들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다. 남은 사람들은 폐허에서도 싹을 틔우며 살아가는 들풀처럼 또 살아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가슴에 응어리진 한은 오뉴월 서리가 되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다.

흑백 텔레비전만 있던 시절, 드라마 전우를 보던 동네 아이들은 흙이 묻은 발로 조합장 네 집 안방에 모여 드라마를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흑백의 세계에서도 총천연색의 미래를 꿈꾸었다. 만화를 보면서 우주를 꿈꾸고 눈이 세 개 달린 우주인을 뒷동산에서 만날 것만 같았다. 철사에 집게로 집기만 해도 라디오가 나오는 라디오가 신기하던 시절엔 꿈도 꾸지 못하던 현실에 살고 있다. 보드라운 화장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거친 노트의 종이를 구기도 또 구겨서 부드럽게 만들어도 거칠기만 했던 그 시절엔 머리가 깨지면 된장을 붙이는 어찌 보면 미개하다 생각되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때 내가 지금의 세상에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면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장난감이 진열장에 가득한 가게에 들어 가면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를 것이다. 그것이 다 돈을 내야 하는 것들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가질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고, 돈이 없으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 것이 된 것마냥 즐거울지도 모른다.

한 반에 70명이 넘는, 코를 질질 흘려서 손수건까지 가슴에 달고 다니던 아이들이 흑백 필름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설탕을 약이라면서 따뜻한 물에 타서 주던 어머니는 꿀을 타서 먹이고 싶었지만, 설탕조차 귀하던 때였으니 하얀 설탕물이 링거 색깔과 같아서 마시면 링거를 맞은 것처럼 나아질 거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있는 활자를 보면서 상상하던 그 시기엔 수많은 정보가 없어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다. 하지만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한 요즘은 리얼한 영상을 가린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도 있고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글자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즉 꽃, 나비, 벌, 흙, 주변에서 보는 것들이 책에 글자로 새겨져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시절이었다. 빨리 자라서 나도 어른이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 하지만 그 꿈이 깨지는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갑자기 폭력배로 돌변한 이웃 아저씨 때문에 가족이 모두 고통받고 평생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니 말이다.

‘제무시 도라쿠’가 천천히 달리면 뒤에 매달려 올라타고 짐칸에 타고 가던 아이들의 서커스 같은 장면을 그냥 지켜만 보던 그 시절에도 달리는 경운기 뒤에 매달려 타고 가던 아이들이 아주 오래전 세상일 같이 느껴진다.

1000년 만에 있을까 말까 하는 홍수에 집도 소 농장도 수박 농장도 다 물에 잠겨서 피해가 1억이 넘을 거라는 농민을 보면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를 그 농민의 심정을 이해한다. 내가 어릴 때도 장마로 길이 떨어져 나가고 논에 물이 가득 차서 벼가 썩어 가고 모래가 밀려와서 논을 다 덮어 버린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새벽종이 울렸네, 우리 모두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라는 마을 운동 노래가 마을 스피커에서 퍼져 나오고, 동네 주민들의 부역 나오라는 이장의 명령에 나가서 부역으로 농도 정비나 농지 정비 등을 했던 그 시절에도 자기 배만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던 개봉동이 고향인 아내는 그때 동네 이장을 하면서 시멘트나 정부 지원 물품을 빼돌려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이미 강남에 땅을 사놓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미리 정보를 알고 자금 융통이 쉬운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강남의 졸부가 된 사람들이 많다. 마치 수백 년 동안 기득권자처럼 어려운 이웃을 모른척하고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속이고,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주무를 수 있는 사람들은 끝없는 욕심에 살아 있는 악귀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감정이 없고 욕심만 있다면 악귀와 다를 바 없다. 아니 더 나쁘다. 양의 탈을 쓴 이리처럼 어떻게 하면 욕심을 채울까 하고 늘 거짓을 말하고 배를 채우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시엔 몰랐던 슬레이트 지붕이 초가보다 더 나빴는데 왜 그것이 새마을 운동이 되었는지 그래서 더 화가 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쩔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그 일들이 기만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빨리 깨우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지금에 와서 나의 이상향은 소박하게 최소한으로 일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돈도 안 되는 많은 살림살이처럼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미련 같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 같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애써도 벗어 나지 못하는 악몽처럼 날마다 옥좨 오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날 자유를 우리는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을 끌어안고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자식에 자식까지 물려주려 하는 욕심이 세상을 망치고 자녀들을 망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땀 흘려 일하지 않은 돈은 어쩌면 검불처럼 불에 활활 타오를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유혹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복권에 희망을 걸듯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 간 영혼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가족들이 하루빨리 슬픔을 떨치고 일어나길 바라본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온도, 습도 등의 조건에 의해 삭거나 익어 맛있는 감주가 되기도 하고 맛있는 과일이 되기도 하지만, 죽으면 같은 조건에서도 썩어 악취를 풍기며 배변처럼 분해되어 토양에 흡수된다. 동물의 사체도 풀잎도 썩어야 다시 새 생명의 양분이 되어 새로운 삶이 된다. 씨앗이 싹을 틔워서 새 생명을 만들든지 아니면 썩어서 토양의 성분 중에 하나가 되던지,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왜 싹을 틔우지 못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 중이다. 새싹을 심으면 새싹이 나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가뭄 때문에 씨앗을 파먹는 동물 때문에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새 생명으로 자라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자연재해 앞에서 모래성처럼 나약하다.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제방은 작은 물줄기들이 쥐구멍처럼 작은 물길을 따라 커지고 넓어져서 둑을 무너트리고 마을도 농지도 다 삼켜버린다. 평소엔 든든하다고 생각했던 뒷산이 자고있는 사이에 무너져 마을을 덮쳐 모두의 생명을 앗아 가기도 한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과연 얼마나 강한 것일까? 우리가 날마다 아무 일 없이 출근하는 출근길에도 늘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그 순간을 피하지 못하고 시간과 장소가 사고가 난 곳을 비켜나가지 못하고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음으로 해서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지인을 잃게 만든다.

마치 꿈을 꾸고 난 것처럼 폭우에 수많은 사람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많은 가족.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지만. 빈자리는 늘 허전함과 그리움에 의해 상처를 후벼 파는 아픔을 느끼게 한다. 전쟁이 나지 않아도 전쟁처럼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데, 자연재해로 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간다. 누군가 할 일을 제대로 했다면 잃지 않아도 될 생명을 잃게 된다. 가족에선 가장에 의지하듯 나라에서는 국가의 지도자에 의지하는데 사고 빈도가 높아지고, 믿지 못할 일들이 자꾸만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다. 부디 기도에 의해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마당에 멍석 깔고 하늘을 보면
별들이 숨바꼭질하고
아버지 피워 놓은 쑥 향에 취한 모기들
술 취한 듯 이리저리 쓰러지는 밤

나는 쑥 향기에 취해
멀리서 들려 오는
개구리 합창에 취해
꿈도 생시처럼
비몽사몽 모기장 안 천국

다시는 돌아 가지 못할
다리 없는 강 건너 마을 같기만 하다.
 

#작가의 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은 실시간으로 지구 곳곳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정보 더미에서 정작 보아야 할 정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뉴스라 봐야 늘 같은 것이다. 죽고 죽이는 사건의 연속, 삶의 아우성이다. 살아 있는 이 세상이 지옥도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사는 캐나다에서도 날마다 셀 수도 없는 산불이 타들어 가고 불을 끄던 어린 소방대원 한 명이 죽었다. 자신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불을 끄려고 했지만 불타는 나무가 쓰러지고 불가항력에 의해 더는 삶을 이어 가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도 10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태평양을 사이에 둔 고국에서도 폭우와 홍수로 지하 차도에서 일상을 개미 쳇바퀴 돌 듯 살아가던 서민들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다. 남은 사람들은 폐허에서도 싹을 틔우며 살아가는 들풀처럼 또 살아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가슴에 응어리진 한은 오뉴월 서리가 되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다.

흑백 텔레비전만 있던 시절, 드라마 전우를 보던 동네 아이들은 흙이 묻은 발로 조합장 네 집 안방에 모여 드라마를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흑백의 세계에서도 총천연색의 미래를 꿈꾸었다. 만화를 보면서 우주를 꿈꾸고 눈이 세 개 달린 우주인을 뒷동산에서 만날 것만 같았다. 철사에 집게로 집기만 해도 라디오가 나오는 라디오가 신기하던 시절엔 꿈도 꾸지 못하던 현실에 살고 있다. 보드라운 화장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거친 노트의 종이를 구기도 또 구겨서 부드럽게 만들어도 거칠기만 했던 그 시절엔 머리가 깨지면 된장을 붙이는 어찌 보면 미개하다 생각되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때 내가 지금의 세상에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면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장난감이 진열장에 가득한 가게에 들어 가면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를 것이다. 그것이 다 돈을 내야 하는 것들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가질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고, 돈이 없으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 것이 된 것마냥 즐거울지도 모른다.

한 반에 70명이 넘는, 코를 질질 흘려서 손수건까지 가슴에 달고 다니던 아이들이 흑백 필름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설탕을 약이라면서 따뜻한 물에 타서 주던 어머니는 꿀을 타서 먹이고 싶었지만, 설탕조차 귀하던 때였으니 하얀 설탕물이 링거 색깔과 같아서 마시면 링거를 맞은 것처럼 나아질 거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있는 활자를 보면서 상상하던 그 시기엔 수많은 정보가 없어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다. 하지만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한 요즘은 리얼한 영상을 가린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도 있고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글자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즉 꽃, 나비, 벌, 흙, 주변에서 보는 것들이 책에 글자로 새겨져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시절이었다. 빨리 자라서 나도 어른이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 하지만 그 꿈이 깨지는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갑자기 폭력배로 돌변한 이웃 아저씨 때문에 가족이 모두 고통받고 평생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니 말이다.

‘제무시 도라쿠’가 천천히 달리면 뒤에 매달려 올라타고 짐칸에 타고 가던 아이들의 서커스 같은 장면을 그냥 지켜만 보던 그 시절에도 달리는 경운기 뒤에 매달려 타고 가던 아이들이 아주 오래전 세상일 같이 느껴진다.

1000년 만에 있을까 말까 하는 홍수에 집도 소 농장도 수박 농장도 다 물에 잠겨서 피해가 1억이 넘을 거라는 농민을 보면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를 그 농민의 심정을 이해한다. 내가 어릴 때도 장마로 길이 떨어져 나가고 논에 물이 가득 차서 벼가 썩어 가고 모래가 밀려와서 논을 다 덮어 버린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새벽종이 울렸네, 우리 모두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라는 마을 운동 노래가 마을 스피커에서 퍼져 나오고, 동네 주민들의 부역 나오라는 이장의 명령에 나가서 부역으로 농도 정비나 농지 정비 등을 했던 그 시절에도 자기 배만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던 개봉동이 고향인 아내는 그때 동네 이장을 하면서 시멘트나 정부 지원 물품을 빼돌려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이미 강남에 땅을 사놓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미리 정보를 알고 자금 융통이 쉬운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강남의 졸부가 된 사람들이 많다. 마치 수백 년 동안 기득권자처럼 어려운 이웃을 모른척하고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속이고,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주무를 수 있는 사람들은 끝없는 욕심에 살아 있는 악귀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감정이 없고 욕심만 있다면 악귀와 다를 바 없다. 아니 더 나쁘다. 양의 탈을 쓴 이리처럼 어떻게 하면 욕심을 채울까 하고 늘 거짓을 말하고 배를 채우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당에 멍석 깔고 하늘을 보면
별들이 숨바꼭질하고
아버지 피워 놓은 쑥 향에 취한 모기들
술 취한 듯 이리저리 쓰러지는 밤

나는 쑥 향기에 취해
멀리서 들려 오는
개구리 합창에 취해
꿈도 생시처럼
비몽사몽 모기장 안 천국

다시는 돌아 가지 못할
다리 없는 강 건너 마을 같기만 하다.
 

#작가의 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은 실시간으로 지구 곳곳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정보 더미에서 정작 보아야 할 정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뉴스라 봐야 늘 같은 것이다. 죽고 죽이는 사건의 연속, 삶의 아우성이다. 살아 있는 이 세상이 지옥도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사는 캐나다에서도 날마다 셀 수도 없는 산불이 타들어 가고 불을 끄던 어린 소방대원 한 명이 죽었다. 자신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불을 끄려고 했지만 불타는 나무가 쓰러지고 불가항력에 의해 더는 삶을 이어 가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도 10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태평양을 사이에 둔 고국에서도 폭우와 홍수로 지하 차도에서 일상을 개미 쳇바퀴 돌 듯 살아가던 서민들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다. 남은 사람들은 폐허에서도 싹을 틔우며 살아가는 들풀처럼 또 살아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가슴에 응어리진 한은 오뉴월 서리가 되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다.

흑백 텔레비전만 있던 시절, 드라마 전우를 보던 동네 아이들은 흙이 묻은 발로 조합장 네 집 안방에 모여 드라마를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흑백의 세계에서도 총천연색의 미래를 꿈꾸었다. 만화를 보면서 우주를 꿈꾸고 눈이 세 개 달린 우주인을 뒷동산에서 만날 것만 같았다. 철사에 집게로 집기만 해도 라디오가 나오는 라디오가 신기하던 시절엔 꿈도 꾸지 못하던 현실에 살고 있다. 보드라운 화장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거친 노트의 종이를 구기도 또 구겨서 부드럽게 만들어도 거칠기만 했던 그 시절엔 머리가 깨지면 된장을 붙이는 어찌 보면 미개하다 생각되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때 내가 지금의 세상에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면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장난감이 진열장에 가득한 가게에 들어 가면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를 것이다. 그것이 다 돈을 내야 하는 것들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가질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고, 돈이 없으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 것이 된 것마냥 즐거울지도 모른다.

한 반에 70명이 넘는, 코를 질질 흘려서 손수건까지 가슴에 달고 다니던 아이들이 흑백 필름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설탕을 약이라면서 따뜻한 물에 타서 주던 어머니는 꿀을 타서 먹이고 싶었지만, 설탕조차 귀하던 때였으니 하얀 설탕물이 링거 색깔과 같아서 마시면 링거를 맞은 것처럼 나아질 거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있는 활자를 보면서 상상하던 그 시기엔 수많은 정보가 없어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다. 하지만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한 요즘은 리얼한 영상을 가린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도 있고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글자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즉 꽃, 나비, 벌, 흙, 주변에서 보는 것들이 책에 글자로 새겨져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시절이었다. 빨리 자라서 나도 어른이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 하지만 그 꿈이 깨지는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갑자기 폭력배로 돌변한 이웃 아저씨 때문에 가족이 모두 고통받고 평생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니 말이다.

‘제무시 도라쿠’가 천천히 달리면 뒤에 매달려 올라타고 짐칸에 타고 가던 아이들의 서커스 같은 장면을 그냥 지켜만 보던 그 시절에도 달리는 경운기 뒤에 매달려 타고 가던 아이들이 아주 오래전 세상일 같이 느껴진다.

1000년 만에 있을까 말까 하는 홍수에 집도 소 농장도 수박 농장도 다 물에 잠겨서 피해가 1억이 넘을 거라는 농민을 보면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를 그 농민의 심정을 이해한다. 내가 어릴 때도 장마로 길이 떨어져 나가고 논에 물이 가득 차서 벼가 썩어 가고 모래가 밀려와서 논을 다 덮어 버린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새벽종이 울렸네, 우리 모두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라는 마을 운동 노래가 마을 스피커에서 퍼져 나오고, 동네 주민들의 부역 나오라는 이장의 명령에 나가서 부역으로 농도 정비나 농지 정비 등을 했던 그 시절에도 자기 배만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던 개봉동이 고향인 아내는 그때 동네 이장을 하면서 시멘트나 정부 지원 물품을 빼돌려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이미 강남에 땅을 사놓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미리 정보를 알고 자금 융통이 쉬운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강남의 졸부가 된 사람들이 많다. 마치 수백 년 동안 기득권자처럼 어려운 이웃을 모른척하고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속이고,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주무를 수 있는 사람들은 끝없는 욕심에 살아 있는 악귀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감정이 없고 욕심만 있다면 악귀와 다를 바 없다. 아니 더 나쁘다. 양의 탈을 쓴 이리처럼 어떻게 하면 욕심을 채울까 하고 늘 거짓을 말하고 배를 채우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시엔 몰랐던 슬레이트 지붕이 초가보다 더 나빴는데 왜 그것이 새마을 운동이 되었는지 그래서 더 화가 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쩔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그 일들이 기만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빨리 깨우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지금에 와서 나의 이상향은 소박하게 최소한으로 일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돈도 안 되는 많은 살림살이처럼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미련 같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 같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애써도 벗어 나지 못하는 악몽처럼 날마다 옥좨 오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날 자유를 우리는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을 끌어안고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자식에 자식까지 물려주려 하는 욕심이 세상을 망치고 자녀들을 망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땀 흘려 일하지 않은 돈은 어쩌면 검불처럼 불에 활활 타오를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유혹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복권에 희망을 걸듯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 간 영혼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가족들이 하루빨리 슬픔을 떨치고 일어나길 바라본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온도, 습도 등의 조건에 의해 삭거나 익어 맛있는 감주가 되기도 하고 맛있는 과일이 되기도 하지만, 죽으면 같은 조건에서도 썩어 악취를 풍기며 배변처럼 분해되어 토양에 흡수된다. 동물의 사체도 풀잎도 썩어야 다시 새 생명의 양분이 되어 새로운 삶이 된다. 씨앗이 싹을 틔워서 새 생명을 만들든지 아니면 썩어서 토양의 성분 중에 하나가 되던지,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왜 싹을 틔우지 못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 중이다. 새싹을 심으면 새싹이 나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가뭄 때문에 씨앗을 파먹는 동물 때문에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새 생명으로 자라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자연재해 앞에서 모래성처럼 나약하다.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제방은 작은 물줄기들이 쥐구멍처럼 작은 물길을 따라 커지고 넓어져서 둑을 무너트리고 마을도 농지도 다 삼켜버린다. 평소엔 든든하다고 생각했던 뒷산이 자고있는 사이에 무너져 마을을 덮쳐 모두의 생명을 앗아 가기도 한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과연 얼마나 강한 것일까? 우리가 날마다 아무 일 없이 출근하는 출근길에도 늘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그 순간을 피하지 못하고 시간과 장소가 사고가 난 곳을 비켜나가지 못하고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음으로 해서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지인을 잃게 만든다.

마치 꿈을 꾸고 난 것처럼 폭우에 수많은 사람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많은 가족.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지만. 빈자리는 늘 허전함과 그리움에 의해 상처를 후벼 파는 아픔을 느끼게 한다. 전쟁이 나지 않아도 전쟁처럼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데, 자연재해로 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간다. 누군가 할 일을 제대로 했다면 잃지 않아도 될 생명을 잃게 된다. 가족에선 가장에 의지하듯 나라에서는 국가의 지도자에 의지하는데 사고 빈도가 높아지고, 믿지 못할 일들이 자꾸만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다. 부디 기도에 의해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당시엔 몰랐던 슬레이트 지붕이 초가보다 더 나빴는데 왜 그것이 새마을 운동이 되었는지 그래서 더 화가 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쩔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그 일들이 기만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빨리 깨우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지금에 와서 나의 이상향은 소박하게 최소한으로 일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돈도 안 되는 많은 살림살이처럼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미련 같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 같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애써도 벗어 나지 못하는 악몽처럼 날마다 옥좨 오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날 자유를 우리는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을 끌어안고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자식에 자식까지 물려주려 하는 욕심이 세상을 망치고 자녀들을 망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땀 흘려 일하지 않은 돈은 어쩌면 검불처럼 불에 활활 타오를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유혹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복권에 희망을 걸듯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 간 영혼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가족들이 하루빨리 슬픔을 떨치고 일어나길 바라본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온도, 습도 등의 조건에 의해 삭거나 익어 맛있는 감주가 되기도 하고 맛있는 과일이 되기도 하지만, 죽으면 같은 조건에서도 썩어 악취를 풍기며 배변처럼 분해되어 토양에 흡수된다. 동물의 사체도 풀잎도 썩어야 다시 새 생명의 양분이 되어 새로운 삶이 된다. 씨앗이 싹을 틔워서 새 생명을 만들든지 아니면 썩어서 토양의 성분 중에 하나가 되던지,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왜 싹을 틔우지 못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 중이다. 새싹을 심으면 새싹이 나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가뭄 때문에 씨앗을 파먹는 동물 때문에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새 생명으로 자라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자연재해 앞에서 모래성처럼 나약하다.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제방은 작은 물줄기들이 쥐구멍처럼 작은 물길을 따라 커지고 넓어져서 둑을 무너트리고 마을도 농지도 다 삼켜버린다. 평소엔 든든하다고 생각했던 뒷산이 자고있는 사이에 무너져 마을을 덮쳐 모두의 생명을 앗아 가기도 한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과연 얼마나 강한 것일까? 우리가 날마다 아무 일 없이 출근하는 출근길에도 늘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그 순간을 피하지 못하고 시간과 장소가 사고가 난 곳을 비켜나가지 못하고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음으로 해서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지인을 잃게 만든다.

마치 꿈을 꾸고 난 것처럼 폭우에 수많은 사람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많은 가족.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지만. 빈자리는 늘 허전함과 그리움에 의해 상처를 후벼 파는 아픔을 느끼게 한다. 전쟁이 나지 않아도 전쟁처럼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데, 자연재해로 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간다. 누군가 할 일을 제대로 했다면 잃지 않아도 될 생명을 잃게 된다. 가족에선 가장에 의지하듯 나라에서는 국가의 지도자에 의지하는데 사고 빈도가 높아지고, 믿지 못할 일들이 자꾸만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다. 부디 기도에 의해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마당에 멍석 깔고 하늘을 보면
별들이 숨바꼭질하고
아버지 피워 놓은 쑥 향에 취한 모기들
술 취한 듯 이리저리 쓰러지는 밤

나는 쑥 향기에 취해
멀리서 들려 오는
개구리 합창에 취해
꿈도 생시처럼
비몽사몽 모기장 안 천국

다시는 돌아 가지 못할
다리 없는 강 건너 마을 같기만 하다.
 

#작가의 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은 실시간으로 지구 곳곳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정보 더미에서 정작 보아야 할 정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뉴스라 봐야 늘 같은 것이다. 죽고 죽이는 사건의 연속, 삶의 아우성이다. 살아 있는 이 세상이 지옥도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사는 캐나다에서도 날마다 셀 수도 없는 산불이 타들어 가고 불을 끄던 어린 소방대원 한 명이 죽었다. 자신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불을 끄려고 했지만 불타는 나무가 쓰러지고 불가항력에 의해 더는 삶을 이어 가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도 10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태평양을 사이에 둔 고국에서도 폭우와 홍수로 지하 차도에서 일상을 개미 쳇바퀴 돌 듯 살아가던 서민들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다. 남은 사람들은 폐허에서도 싹을 틔우며 살아가는 들풀처럼 또 살아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가슴에 응어리진 한은 오뉴월 서리가 되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다.

흑백 텔레비전만 있던 시절, 드라마 전우를 보던 동네 아이들은 흙이 묻은 발로 조합장 네 집 안방에 모여 드라마를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흑백의 세계에서도 총천연색의 미래를 꿈꾸었다. 만화를 보면서 우주를 꿈꾸고 눈이 세 개 달린 우주인을 뒷동산에서 만날 것만 같았다. 철사에 집게로 집기만 해도 라디오가 나오는 라디오가 신기하던 시절엔 꿈도 꾸지 못하던 현실에 살고 있다. 보드라운 화장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거친 노트의 종이를 구기도 또 구겨서 부드럽게 만들어도 거칠기만 했던 그 시절엔 머리가 깨지면 된장을 붙이는 어찌 보면 미개하다 생각되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때 내가 지금의 세상에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면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장난감이 진열장에 가득한 가게에 들어 가면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를 것이다. 그것이 다 돈을 내야 하는 것들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가질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고, 돈이 없으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 것이 된 것마냥 즐거울지도 모른다.

한 반에 70명이 넘는, 코를 질질 흘려서 손수건까지 가슴에 달고 다니던 아이들이 흑백 필름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설탕을 약이라면서 따뜻한 물에 타서 주던 어머니는 꿀을 타서 먹이고 싶었지만, 설탕조차 귀하던 때였으니 하얀 설탕물이 링거 색깔과 같아서 마시면 링거를 맞은 것처럼 나아질 거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있는 활자를 보면서 상상하던 그 시기엔 수많은 정보가 없어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다. 하지만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한 요즘은 리얼한 영상을 가린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도 있고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글자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즉 꽃, 나비, 벌, 흙, 주변에서 보는 것들이 책에 글자로 새겨져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시절이었다. 빨리 자라서 나도 어른이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 하지만 그 꿈이 깨지는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갑자기 폭력배로 돌변한 이웃 아저씨 때문에 가족이 모두 고통받고 평생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니 말이다.

‘제무시 도라쿠’가 천천히 달리면 뒤에 매달려 올라타고 짐칸에 타고 가던 아이들의 서커스 같은 장면을 그냥 지켜만 보던 그 시절에도 달리는 경운기 뒤에 매달려 타고 가던 아이들이 아주 오래전 세상일 같이 느껴진다.

1000년 만에 있을까 말까 하는 홍수에 집도 소 농장도 수박 농장도 다 물에 잠겨서 피해가 1억이 넘을 거라는 농민을 보면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를 그 농민의 심정을 이해한다. 내가 어릴 때도 장마로 길이 떨어져 나가고 논에 물이 가득 차서 벼가 썩어 가고 모래가 밀려와서 논을 다 덮어 버린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새벽종이 울렸네, 우리 모두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라는 마을 운동 노래가 마을 스피커에서 퍼져 나오고, 동네 주민들의 부역 나오라는 이장의 명령에 나가서 부역으로 농도 정비나 농지 정비 등을 했던 그 시절에도 자기 배만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던 개봉동이 고향인 아내는 그때 동네 이장을 하면서 시멘트나 정부 지원 물품을 빼돌려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이미 강남에 땅을 사놓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미리 정보를 알고 자금 융통이 쉬운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강남의 졸부가 된 사람들이 많다. 마치 수백 년 동안 기득권자처럼 어려운 이웃을 모른척하고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속이고,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주무를 수 있는 사람들은 끝없는 욕심에 살아 있는 악귀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감정이 없고 욕심만 있다면 악귀와 다를 바 없다. 아니 더 나쁘다. 양의 탈을 쓴 이리처럼 어떻게 하면 욕심을 채울까 하고 늘 거짓을 말하고 배를 채우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시엔 몰랐던 슬레이트 지붕이 초가보다 더 나빴는데 왜 그것이 새마을 운동이 되었는지 그래서 더 화가 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쩔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그 일들이 기만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빨리 깨우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지금에 와서 나의 이상향은 소박하게 최소한으로 일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돈도 안 되는 많은 살림살이처럼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미련 같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 같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애써도 벗어 나지 못하는 악몽처럼 날마다 옥좨 오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날 자유를 우리는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을 끌어안고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자식에 자식까지 물려주려 하는 욕심이 세상을 망치고 자녀들을 망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땀 흘려 일하지 않은 돈은 어쩌면 검불처럼 불에 활활 타오를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유혹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복권에 희망을 걸듯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 간 영혼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가족들이 하루빨리 슬픔을 떨치고 일어나길 바라본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온도, 습도 등의 조건에 의해 삭거나 익어 맛있는 감주가 되기도 하고 맛있는 과일이 되기도 하지만, 죽으면 같은 조건에서도 썩어 악취를 풍기며 배변처럼 분해되어 토양에 흡수된다. 동물의 사체도 풀잎도 썩어야 다시 새 생명의 양분이 되어 새로운 삶이 된다. 씨앗이 싹을 틔워서 새 생명을 만들든지 아니면 썩어서 토양의 성분 중에 하나가 되던지,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왜 싹을 틔우지 못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 중이다. 새싹을 심으면 새싹이 나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가뭄 때문에 씨앗을 파먹는 동물 때문에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새 생명으로 자라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자연재해 앞에서 모래성처럼 나약하다.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제방은 작은 물줄기들이 쥐구멍처럼 작은 물길을 따라 커지고 넓어져서 둑을 무너트리고 마을도 농지도 다 삼켜버린다. 평소엔 든든하다고 생각했던 뒷산이 자고있는 사이에 무너져 마을을 덮쳐 모두의 생명을 앗아 가기도 한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과연 얼마나 강한 것일까? 우리가 날마다 아무 일 없이 출근하는 출근길에도 늘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그 순간을 피하지 못하고 시간과 장소가 사고가 난 곳을 비켜나가지 못하고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음으로 해서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지인을 잃게 만든다.

마치 꿈을 꾸고 난 것처럼 폭우에 수많은 사람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많은 가족.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지만. 빈자리는 늘 허전함과 그리움에 의해 상처를 후벼 파는 아픔을 느끼게 한다. 전쟁이 나지 않아도 전쟁처럼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데, 자연재해로 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간다. 누군가 할 일을 제대로 했다면 잃지 않아도 될 생명을 잃게 된다. 가족에선 가장에 의지하듯 나라에서는 국가의 지도자에 의지하는데 사고 빈도가 높아지고, 믿지 못할 일들이 자꾸만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다. 부디 기도에 의해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