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원각사탑 "10층 아닌 13층"...日 연구 잘못 탓
국보 원각사탑 "10층 아닌 13층"...日 연구 잘못 탓
  • 조현성 기자
  • 승인 2022.01.1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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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신 서울대 교수 '미술자료' 제100호 게재 논문서 주장
사진 왼쪽 1886년 촬영된 원각사(圓覺寺) 10층 석탑. 상륜부는 무너져 없고 주변 사찰의 흔적이 없다. The Wongak-sa Pagoda, Seoul, 1886 photographer Unidentified The Pagoda surrounded by houses, from Percival Lowell's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1886). (사진출처 Facebook designerparty) 사진 오른쪽 1930년대 파고다공원 모습을 담은 엽서(The Pagoda park at seoul, corea) (사진출처 한국콘텍츠진흥원)
사진 왼쪽 1886년 촬영된 원각사(圓覺寺) 10층 석탑. 상륜부는 무너져 없고 주변 사찰의 흔적이 없다. The Wongak-sa Pagoda, Seoul, 1886 photographer Unidentified The Pagoda surrounded by houses, from Percival Lowell's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1886). (사진출처 Facebook designerparty) 사진 오른쪽 1930년대 파고다공원 모습을 담은 엽서(The Pagoda park at seoul, corea) (사진출처 한국콘텍츠진흥원)

 

국보 제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10층이 아닌 13층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동신 교수(서울대)는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펴낸 <미술자료> 제100호에 게재한 '원각사 13층탑에 대한 근대적 인식과 오해'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원각사지 석탑은 1465년(세조11) 창건된 원각사에 있던 탑으로 1467년 세워졌다. 높이가 12m이다.

문화재청은 이 탑을 "탑신부는 10층으로 이뤄져 있고, 전체 형태나 세부 구조 등이 고려시대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매우 비슷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현재 10층 옥개석까지 남아 있고 그 위 상륜부는 없어졌다"면서도 이 탑을 10층 불탑으로 소개하고 있다.

남 교수는 "현재 국가가 공인하는 원각사지 석탑 10층설에는 역사적으로 오류가 있다. 13층설로 돌아가야 한다. 언젠가 원각사탑 상층부 3개 층이 내려졌다"고 했다.

남 교수는 13층설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연산군 지시설,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일본으로 반출하려 했다는 설 등이 있었다고 했다.

남 교수는 "19세기 전반 유교 관료들은 원각사탑이 경관을 해치는 '비미'(아름다움이 아님)라고 인식했다. 반면에 서양 이방인들은 이 탑을 한성의 유일한 볼거리로 여겼다"고 했다. 그는 당시 서양인들이 남긴 여러 기록에 원각사지 석탑이 '13층'으로 기술됐다는 점을 13층설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서양인이 원각사탑을 13층으로 기록한 근거는 조선인이 전한 말이다.

남 교수는 원각사탑이 조선시대까지 13층으로 인식됐다가 10층으로 바뀐 배경을 일본 도쿄제국대 교수였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의 잘못된 연구 때문이라고 했다. 세키노 교수는 1902년 원각사지 석탑을 포함한 한국 건축을 조사했다. 그는 1904년 펴낸 보고서에서 원각사 석탑을 "탑파는 10층으로서 삼중 기단 위에 세워져 있기에 속칭 십삼층탑파라고 함"이라고 썼다. 

남 교수는 세키노가 원각사지 석탑을 형태가 유사한 경천사지 석탑과 같은 시대, 동일한 집단에 의해 제작된 탑으로 잘못 이해했다고 지적했다. 또 "세키노가 당시 원각사탑이 10층이 아니라는 문헌을 확인하고서도 13층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한편, 경천사지석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이 탑은 1348년에 세워져 제작 시기가 1467년인 원각사지 석탑보다 100년 이상 이르다.

1906년 조선에 온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는 조선을 기록한 <속동문선>에서 '대원각사비'의 '십유삼층'(十有三層) 문구를 찾아내 원각사지 석탑이 13층임을 밝혀냈다.

남 교수는 "세키노가 잠시 13층설을 수용했으나, 1913년부터 '다층설'을 제기했다"고 했다. 다층설은 13층설을 속칭으로 치부하기에는 명백한 문헌적 근거가 있어 절충안이자 미봉책으로 고안한 것이라는게 남 교수 설명이다.

일제는 문화재를 지정하면서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 등으로 활동한 세키노의 견해를 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일제강점기 지정 관련 서류에는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원각사지 다층석탑' 명칭만 있다.

세키노의 견해는 일제 식민지배 동안 정설로 통용됐다. 해방 후에는 미군 도움으로 지상에 있던 상층부 3개 층을 원위치에 올리면서 다시 13층설이 우세해졌지만 잠깐이었다.

우리 정부가 1959년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방치돼 있던 경천사지 석탑 복원 공사를 하면서 이 탑을 해체하기 직전 유일하게 현지 조사를 한 세키노의 1904년 보고서는 다시 주목받게 됐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고 국보 지정에도 세키노의 견해가 인용됐다. 원각사지 석탑은 '10층'이 됐다.

남 교수는 1960년대 초 문화재 지정 조사에 참여한 국립박물관 학예관 김원룡이 세키노 보고서 등을 의존했고, 그가 1904년 보고서를 토대로 두 탑의 명칭을 확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각사탑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먼저 본래의 명칭을 회복해 '13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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