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3. 허공에 말뚝을 박아라. 
제 1부 3. 허공에 말뚝을 박아라. 
  • 혜범 스님
  • 승인 2021.02.05 13: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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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미륵 3

  “스님…… 이거.”
  “…….”

  처사가 지갑에서 오만 원 권 두 장을 꺼내 불쑥 내밀었다. 객쩍게 서있던 해인과 소년, 정우와 눈이 마주쳤다. 
 “여비 보태시라고요.”
 “……예. 전 달라진 않지만 주는 건 거절하지 않아요.”

 지명의 말에 처사가 희미하게 웃었다. 지명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합장을 했고 처사가 합장을 하고 허리를 수그렸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합장한 소년이 처사를 보고 허리를 깊게 수그렸다. 처사가 차에 올라탔고 미명(未明) 속으로 차를 끌고 갔다. 새벽인데도 가고 오고, 오고 가는 길목에 선 채 지명은 소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꼭 가야 하니?”
 “예. 스님께서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듯 가장 먼저 아버지를 찾아가라 했어요.”
 “스님이라면…… 아, 지광스님.”

 가장 먼저 아버지를 찾아가는 게 최선의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듯 정우가 옴쭉거리고 선 채 지명을 올려다보았다.
 “노인네, 그거 참. 애 하나 버려놓았구먼.”
 “……예?”
 “아냐.”

 모란시장 초입, 주차장이었다. 여섯 시. 미명(未明)이 토해놓은 심해의 물고기들인 듯 세상의 상하 좌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심해어 같은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상자를 내리고 꼬물거리고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주차장에는 수많은 천막들이 쳐져 있었다. 천막과 천막 사이로는 길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생(生)의 좌판을 꿈처럼 펼쳐놓고 있었다.  
 4일과 9일, 모란장은 오일장이었다. 
 “밥부터 먹자.”
 “저기…… 저쪽으로.”

 쉴 새 없이 새벽을 유영하는 물고기들. 잠시도 멈추지 않고 꿈틀거리며 박피하듯 어둠을 걷어내는 저자거리의 사람들을 보고 지명은 활기를 찾을 수 있었다. 벌써 먹자골목은 알전구들이 불꽃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추워서 그런지 천막 곳곳에 작은 깡통에 나무를 집어넣고 불을 피우고 있었다. 이미 좌판이 벌어진 곳도 있고 차를 대놓고 주섬주섬 물건들을 꺼내놓는 상인들도 여기저기 보였다. 
 “할머니랑 여기서 칼국수 장사했어요.”
 “…….”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어요?”
 “……뭐가 있는데?”
 “없는 거 빼고 다 있어요.”
 “……맛있는 거 있어?”
 “그럼요. 맛있게 먹으면 다 맛있어요,”
 “……크으 몰랐네, 그래 오늘부터 네놈이 나의 부처님 해라.”

 지명의 말에 소년이 생긋 웃었다. 순간 지명은 ‘그래. 니가 나의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이다. 네놈이 천연(天然)의 진리이며 우주의 본체, 법신불(法身佛)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사사불공, 처처불상이라. 자성(自性), 불성(佛性)의 마음이 법신(法身)이니 우주만유(宇宙萬有)의 본원(本源)이요. 제불제성(諸佛諸聖)의 심인(心印)이며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본성(本性)이 아니겠느냐?’ 하고 혼잣말을 하다 끙 신음을 삼켰다. 

 외로이 섬처럼 고립되었다 느껴지던 소년의 맑고 밝은 천진불의 웃음 한 방으로 얼어붙었던 지명을 무장해제 시키고 가슴을 녹이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누가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이라 했던가. 깨닫지 못하면 부처가 중생이고, 깨달으면 중생이 부처인 것을. 부처는 고유명사가 아니고 보통명사였다. 어디 마음을 떠난 부처가 있던가. 어리석으면 중생이지만, 중생이 지혜로우면 부처인 것을.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중생인줄 알면 곧 부처를 볼 것이요, 스스로 중생인줄 모르면 만겁(萬劫)동안 부처를 찾더라도 부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온몸이 으슬으슬했다. 
 “엣취.”

 소년이 재채기를 했다. 잠깐 살다 가는 것을 죽어서 누구나 다 백골이 될 것을. 아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이리 슬픔을 주었을까. 지명은 잠시 아이의 아비를 탓했다. 
 “우리 불 좀 쬐다 갈까?”

 마침 깡통에 나무를 넣고 불을 피운 곳을 지나다 지명이 말했다. 그러나 이내 지명은 옳다고 해도 옳다고 할 만한 것도 없고 그르다 해도 그르다 할 만한 것이 없거늘, 하며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스님 어디 계세요?”

 소년과 지명이 불 앞으로 다가가자 그때 마침 천막 앞에서 깡통에 나무를 더 집어넣다 소년과 지명의 행색을 흘끔거리던 사내가 물었다.  
 “저 여기 있습니다.”
 “아니 어디 계시느냐고요.”
 “나 지금 여기 있잖습니까?”
 “…….”

 지명이 대답하자 묻던 사내가 실실 웃음을 흘렸다. 소년도 사내를 따라 웃는 눈치였다.  
 “아드님이신가보죠? 눈이 빼다 박은 거 같은데.”
 “…….”

 손을 펴 깡통 주위에 내밀던 순간 지명과 소년의 눈이 마주쳤다. 은산철벽 같은 고절(孤節)속을 떠돌던 지명은 픽 웃었다. 가슴 아프고 벅찼고 애틋했던 나날들. 다들 그렇게 사는데 지명은 그렇게 살지 못했다.
 “정우야.”
 “……네?”
 “가자. 그냥 놀러간다고 생각해.”
 “…….”

 두 사람이 다시 길 위에 섰다. 얼마나 가슴 아프고 설레었을까. 여전히 소년은 지명의 말,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듯 했다. 심각한 눈빛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지명의 눈치를 살폈다.
 “나도 살면서 한 번도 정답을 가지고 살아본 적은 없어. 그래 할머니 돌아가시고 그렇게 쭉 혼자 살은 거니?”
 “……위탁가정이나 보육원 같은 덴 목에 개줄 걸린 거 같아 싫었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할 일?”
 “그 할 일이…… 뭘까?”

 숱 많은 눈썹을 한 채  반듯한 자세, 일체 겁내지 않는 눈빛. 단정하게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차수를 하고 서 있는 소년을 조용히 건네 봤다. 티없이 맑고 밝다. 그러나 입술은 부르터 있었고 희고 가늘고 긴 손가락, 아무리 보아도 여릿여릿한 열네 살 똘방똘방한 소년일 뿐이었다. 

 지명은 속으로 기특해 하며 ‘그래, 너의 운명은 거기서부터 헝클어진 거냐?’하는 눈빛으로 보았다. 깡통에 나무를 넣고 불을 지피던 사내는 그의 부인인 듯 한 여자가 ‘뭐해요?’라는 말에 두부와 묵을 좌판에 펼쳐놓는데 합류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요.”
 “…….”
 “그날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순간 지명은 뒤통수를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내 자신도 모르게 길게 한숨 섞인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그렇다 해도 네놈이 할 수 있는 게 뭔데?’하려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진 자와 이긴 자의 문제인가, 하며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소년의 태도는 단호했다. 엄마의 죽음, 아버지의 구속. 이모할머니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을 텐데도 삐그러지지 않고 굳은 심지가 어디 한 군데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악몽들이 소년의 밤을 어지럽혔을까. 너절너절한 그렇고 그런 과거에 매달려 똥오줌 못 가리는 이들 수 없이 많이 보았다. 

 한줄기 바람이 마음을 쓸고 지나갔다. 순간 지명은 반야용선의 줄에 매달린 악착동자를 본 것 같아 서럽게 느껴져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소년은 핏줄 속엣 것들이 회오리치는 지 두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살아온 날들과 살아야 할 날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삶이었다. 승가의 벌레처럼 기생충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내일을 위한 깨달음의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도 않았으며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열반 해탈의 길로만 가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벌레 같았고 꿈은 악몽 같을 뿐이었다. 

 그때 어둠이 걷히지 않은 희끄무리한 하늘 위에서 ‘옛다, 길 떠나는 것들아 이거나 받아라’ 하는 양 하나씩 둘씩 눈발을 뿌려주고 있었다. 
  “……너의 아버지 ……면회까지만.”
  “스님, 제발, 도와주세요.”

 소년이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멍하니 섰다. 지명도 걸음을 멈추었다.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지명에게는 왜 ‘살려주세요’라는 말로 들렸을까. 합장을 한 채 움직일 줄 모르고 서있는 소년을 노려보던 지명은 ‘봤으면, 증언은 했어?’하고 분통을 터트리려다 이맛살을 찌푸렸다. 속으로 ‘열네 살 빼기 7년’하다 그만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던 지명은 한숨을 폭 내지르며 어서 길이나 가자는 듯 손을 내밀어 소년의 등을 떠밀었다.
 “……아무도 제 말을 믿어주질 않네요.”

 소년의 눈에서 간절한 눈빛이 쏟아져 나왔다. 도저히 화를 낼 수 없었다. 소년의 말에 냉큼 대꾸할 말이 없어 지명은 헛기침을 삼켰다. 안타까운 척, 슬픈 척, 불쌍한 척, 정의로운 척 하지만 돌아서면 내로남불 위선자들이었고 하는 행동은 역겨운 인간들 수없이 봐왔다. 
 “스님아. 여기 좀 와 봐라.”
 “……싫은데요, 전 사형이란 인간 금생에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거든요.”
 “……왜?”
 “전 중놈들이라면 아주 넌더리가 나요. 더 이상 엮이기 싫어요.”
 “네놈이 넌더리나는 중놈들만 보아서 그런 게지? 어쨌든 와라. 내가 췌장암이란다. 이제 석 달도 못 산다네.”
 “…….”

 이미 세상은 혁명이 불가능해졌다. 진흙탕 똥바다.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함께 가기는 글렀다. 지구는 병들고 오염되었으며 인구가 폭증해 지구는 이미 만원이었다. 선택 받은 1%와 버림받은 99%. 썩어도 너무 썩었고 악취가 나 숨을 쉴 수 없었다. 평등이란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아 갖지 못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자는 것이 아닌데. 언제나 그랬듯 자비와 평등은 자비로우신 부처님 법당 안에만 스님네들의 법문 속에만 들어 있을 뿐이었다. 
 

계속...

혜범 스님

1976년 입산,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바다, 뭍, 바람」당선. 1992년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으며, 1993년 대전일보에 장편소설 『불꽃바람』을 연재했고, 1996년 대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흙출판사),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청림출판사), 『천기를 누설한 여자』(흙출판사) 『반야심경』(밀알출판사), 『업보』(밀알출판사), 『남사당패』(태일출판사), 『시절인연』(밀알출판사), 『플랫폼에 서다』(북인) 등을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는 『행복할 권리』(도서출판 북인),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밀알출판사), 『달을 삼킨 개구리』(북갤럽),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북갤럽)를 펴냈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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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 2021-02-05 19:27:04
잘 음미하고 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