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危機)는 ‘위험한 고비나 시기’를 의미한다. 개인의 위기는 그 피해가 대체적으로 한정된 인원에 그치나 불교와 같이 역사성이 있는 조직이 위기에 직면하면 그 피해와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흔히 ‘위기관리능력’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 말에는 위기를 잘 관리함은 물론이거니와 더 안정되고 발전된 희망의 미래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불교가 이 땅에 도래 후 몇 번의 위기 시마다 헌걸찬 스님들에 의해 돌파되고, 또는 불교의 존재를 과시해서 면면(綿綿) 토록 했다. 물론 그 저변에는 스님 대중과 불자 백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려나 조선시대가 아니다. 현대는 조계종단이라는 조직이 한국 불교를 이끌고 대표하고 있으니 위기를 맞는 것도 그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것도 조계종단이다.
지난 일이십 년 사이 불교와 관련한 모든 통계 숫자가 급 추락했고, 불교가 위기임은 대부분 공감 할 것이다. 종단이 각종 토론회를 주도해서 대안을 경청하기도 하고 마음을 모으는 일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종단이 재정, 인력 문제 등 장기적으로 승부수를 걸고 과감히 혁신 차원에서 추진해야 하는 거시적이고 공감성이 확보되는 사업은 안 보인다.
조계종이 진정으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면 제대로 된 준비조직부터 구성할 것을 거듭해서 제안한다. 이미 종단에 위기 및 미래문제와 관련한 기구가 있으나 방향성과 전문성 그리고 시간의 제약이 있다고 보며, 솔직히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필자는 수년 전 소위 ‘21세기 아쇼카 선언’(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을 반대하면서 이 선언은 ‘바아르 선언(Barr Statement)’의 내용을 모방한 면이 적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바아르 선언’은 1990년 스위스 취리히 근교 바아르 마을에서 수년간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의 신학자들 40명이 준비했으며, 참여한 세계교회협의회 산하 소위원회가 ‘바아르 선언’을 한 것이다. 이들은 세계적인 활동을 위해 전문성과 논의 기간 특히 그들의 주장이나 이론의 전개 등 완벽성을 기했다. 새겨 볼 점이 있다.
총무원이 이제라도 내부 및 각계의 최고 전문가 또는 분야별로 그러한 두뇌집단에 위촉해서 조계종에 대한 진단과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종단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거침없이 진단하고 대안을 창출토록 해야 한다.
수행(교육)과 포교 전략, 특히 재정(수입)의 창출, 종단 운영의 틀 그리고 각 교구본사가 추진해야 하는 불사(사업) 등 전반에 걸쳐서 일대 혁명적 처방이 필요하다. 소소한 상품으로 몇 억의 수익 창출이 아니라 몇 천억에서 조 단위의 수익으로 향후 백 년간 발우를 채울 준비를 해야 한다.
종단은 스님들이 불교와 승가를 그리고 구세대비자로서 이 혼돈의 세상과 미래를 어떻게 장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그 사유의 세계와 행보의 방향을 정립하라는 주장이다. 길이 없음이 아니라 생각과 걱정이 없으니 안 보이는 것이다. 두려워하거나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시대가 바뀌면 불교도 바뀌고 정신은 살아있어야 겠지요~~
사람들이 착각하는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2000년전 불교를 고수하는겁니다.
그러니 불교는 도태되고 무너질수 밖에 없지요~~ 전통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살아남는 정신만이 사람을 이끌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