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사 반야기에 나타난 1900년대 초 강원 풍경
장안사 반야기에 나타난 1900년대 초 강원 풍경
  • 법응 스님
  • 승인 2020.10.2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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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응 스님

“장하던 금전벽우(金殿碧宇) 찬 재 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의 장안사다.

대부분의 명산이 그러하나 금강산은 불교와 유독 인연이 깊다. 금강산의 4대 사찰인 신계사(神溪寺), 유점사(愉岾寺), 장안사(長安寺), 표훈사(表訓寺) 등을 중심으로 무수한 암자들이 자리를 했고 누대에 걸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 처로 삼았으며, 논서와 게송을 남겼다. 서산대사께서도 임진왜란 전후로 해서 장안사에 주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산의 대부분의 사찰과 유물들이 전쟁으로 소실되었고 일부 석물 성보만이 터를 수호하고 있으며 문헌들도 희소하다. 조계종이 신계사를 복원했으나, 장안사 등은 복원하려 해도 대북제재 조치로 행보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야기 표지
반야기 표지

소개하는 『반야기』자체는 특별한 내용이 아니나 후미의 기록이 약 1900년대 초 장안사 강원의 면모를 읽을 수 있는 정보가 있기에 그 가치가 있다.

교수 아사리로 기록된 의룡(懿龍) 스님은 근대 선지식이신 성암석구(性庵錫九 1889~1950) 스님의 은사이시다. 원로의원이셨던 고 성수(性壽) 스님의 은사께서 석구 스님이시니 성수 스님은 의룡 스님의 손상좌가 된다할 것이다. 의룡 스님은 금강산 장안사에 주석하였으며, 1922년 5월 각황사에서 열린 조선불교 30본산 주지총회에서 감사로 선임된 기록 등이 있으나 그 행적이 세세히 알려진 분이 아니다.(<불교신문> ‘⑥성암석구’2402호/ 2월20일자 참조)

‘교수아사리 의룡 대화상’ 하에 각 반 구성표
‘교수아사리 의룡 대화상’ 하에 각 반 구성표

본 『반야기』로 인해 당시 의룡 스님이 장안사의 교수 아사리로 강원의 학승들을 지도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기명된 스님들을 추적하다보면 근대 불교사 인맥의 파악이 가능 할 것이다.

『반야기』의 뒷부분 상단에 ‘교수아사리 의룡 대화상(敎授阿闍梨懿龍大和尙)’ 이라 기록돼 있고 그 아래에 △화엄회 – 유점사 성원 스님 포함 7명 △원각회 – 신계사 태하스님 포함 5명 △반야회 – 건봉사 두민 스님 포함 4명 △사집회 – 천은사 보안 스님 포함 5명의 학승이 기록돼 있어서 당시 강원에서 21명의 스님들이 공부를 한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다.

강원의 스님들은 장안사 본사 대중과 북한의 유명사찰인 석왕사 말사인 몽월사, 신계사. 유점사, 쌍계사. 표훈사, 구암사, 향운사, 건봉사, 천은사, 화장사, 승가사 등 여러 사찰의 스님들로 구성돼 있어서 장안사가 강원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향후 장안사가 복원되고 강원 당우에 이분들의 실명으로 용상방을 작성한다면 사실성도 기 할 수 있으며, 관리 주체로써 조계종의 정당성도 더욱 공고해 질 것이다.

장안사 등 북한지역 사찰의 복원과 참배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관계 그리고 유엔의 제재 등 복잡한 문제로 인해 불교계가 원한다 해서 쉽게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조계종단은 관련한 열강의 조야를 움직이는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그 성공 여부를 넘어서 다양한 방편의 착안과 실행의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지역 사찰들과 관련한 국내외의 사료와 불교문헌들을 수집해서 집대성해야 한다. 오히려 당우의 복원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사업일 수 있다. 조계종단의 북한불교 정책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법응 스님/불교사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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