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수조원 날렸는데 '무죄'... 금융자본 모순과 모피아 고발
혈세 수조원 날렸는데 '무죄'... 금융자본 모순과 모피아 고발
  • 이도흠
  • 승인 2019.11.21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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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블랙머니>가 알게 하는 것, 꿈꾸게 하는 것
론스타펀드 먹튀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 블랙머니.
론스타펀드 먹튀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 블랙머니.

 


예술이란 꿈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시계추다. 인간의 삶은 물론, 허상이든 실재든 그가 만드는 세계가 그렇기 때문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여 꿈을 꾸지만, 꿈이 또 공허하여 현실에서 노닌다. 낮에 소망하였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을 밤에 꿈속에서 실현하지만 깨자마자 깊은 공허감에 빠진다.
 
학교건, 일터건, 거리건 갖은 고통과 시련을 견뎌내며 더 나은 삶과 행복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과 후퇴를 반복한다.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며 더 나은 세상을 바라며, 그 중 상당수는 2016년의 촛불항쟁 때처럼 그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을 하여 승리하기도 하지만 때론 패배하고 퇴행도 한다.
 
양자 사이의 진동의 측면에서 볼 때, 삶과 예술의 차이는 극단과 중도(中道)다. 삶은 꿈을 버리고 현실에 탐닉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현실을 떠나 꿈만 꿀 수도 있지만, 예술은 그럴수록 3류로 전락한다. 반대로 양자 사이를 부단히 오고갈수록 예술성과 작품의 깊이는 커진다. 그래서 예술은 거울이자 등불이고, 프리즘이다. 예술은 우주와 세계의 양상을 재현하고 인간의 삶과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예술은 어둡고 타락한 세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진정한 가치를 향하여 열린 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예술은 또, 현실을 반사한 빛을 받아 현실과 꿈, 반영상(작품에서 현실을 거울처럼 재현하는 것)과 굴절상(작품에서 현실을 예술적으로 승화하거나 전망과 종합하거나 초월하는 것)의 사이를 진동하면서 무지개로 변환하는 프리즘이다.
 
론스타, 70조 원의 은행을 1조 원 대의 헐값에 사다

영화 <블랙머니>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과 자주적이고 공정한 금융의 꿈 사이를 진동한다. 우리 모두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그 원리대로 살면서 얼마나 이 체제에 대해, 이 체제와 자신의 삶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생각했는가. 이 체제는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과 대량해고를 양산하고 공공영역인 의료, 교육 등을 사영화하며 자본주의의 야만을 견제하던 모든 규제들을 해제하였다. 그뿐인가. 이 체제의 본질은 '약탈적 금융자본주의'다. 이는 한마디로 금융이 산업생산을 압도한 맥락에서 합법적으로 99%의 돈을 강탈하여 1%에게 헌납하는 것을 구조화한 체제다.
 
필자가 이명박 정권말기부터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집회나 진보 진영의 모임에서 자주 발언했던 것이 있다.
 
"이명박 정권 3년 동안 환율조작만으로 서민의 돈을 빼앗아 재벌에게 준 돈이 얼마인가? 송기균 교수의 <고환율의 음모>(21세기북스)에 의하면, MB 정부 3년간 고환율 정책으로 무려 174조 원의 돈이 서민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그 결과 국민의 97%인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실질소득은 무려 15.3% 이상 감소했다.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이명박 정권이 무역이나 경제상황, 물가 등에 대해 별로 고려하지 않은 채 947원이었던 환율을 1년여 만에 1276원으로 35%나 끌어올렸다. 이 바람에 하루 100달러어치의 석유를 사용하는 화물자동차 운전기사는 9만 4천여 원으로 그칠 것을 12만 7천 원을 지불한 것이고, 반대로 100달러짜리 스마트폰을 판 삼성은 9만 4천여 원 대신 12만 7천여 원을 벌어들인 것이다. 거리에서 몇 만 원만 빼앗겨도 멱살잡이를 하고 싸우면서 우리의 돈을 1인당 338만 원이나 강탈당했는데 왜 침묵하는가?"

이런 금융사기를 국제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 바로 론스타 게이트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의 <투기자본의 천국-국가부도와 론스타게이트>(인물과사상사) 등에 따르면, 모피아들이 IMF 직후에 외자유치를 명분으로 당시 당기순이익이 2조 원, 전체 자산가치 70조 원에 이르는 건실한 외환은행을 부실은행으로 조작하여 국제 투기자본 론스타에 1조 6천 6백억 원의 헐값에 팔아넘겼다. 론스타는 사모펀드로 은행의 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바젤협의에 따라 우리나라 은행법도 BIS, 곧 '위험가중자산에 대한 자기자본 비율'이 8% 이하일 경우에 한해서만 부실 금융기관으로 규정하고 매각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3년 7월 당시 외환은행의 BIS비율이 8.24∼9.14%대에 이르렀는데 누구인가 6.16% 수준으로 회계조작을 하였다. 그런 부실은행의 경우 사모펀드도 주주가 될 자격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서 이를 되팔아 차익금과 배당금으로 무려 4조 6600억 원을 챙기고 '먹튀' 했다.
 
이 사기극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 재정과 금융에 관련된 관료, 이강원 외환은행장은 물론, 법무법인 김앤장과 회계법인 삼정 KPMG가 관여하였다. 더구나 론스타는 매각 절차 지연으로 손해를 보았다며 우리 정부에 대해 5조 원의 소송을 제기하여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자칫하면 도합 9조 6천억 원에 이르는 국민혈세가 국제투기 자본과 이에 영합한 모피아들의 매국적 사기행위에 의하여 날아가게 생긴 것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글을 읽는 국민의 돈을 1인당 18만 6천여 원을 강탈해가는 것이다. 이렇게 천문학적 액수의 국민혈세를 날렸음에도, 기소와 수사는 있었지만 모두 무죄로 풀려났다.
 
'블랙머니', 모피아와 국제 금융자본에 정면으로 맞서다

 이에 <블랙머니>가 사법부를 대신하여 정의의 사도로 나섰다. 백기완 선생은 암울한 이명박근혜 시대 때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나선다"라며 노래공연으로 독재정권을 향해 화살을 쏜 바 있다. <남부군>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천안함 프로젝트> 등 사회성 짙은 영화로 정평이 있는 '거장' 정지영 감독이 그 뜻을 이어받아 메가폰을 잡았고 학계와 시민사회계도 힘을 보탠 모양이다. 그런 때문인가 이 영화는 금융자본의 모순과 이에 관여한 모피아의 죄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영화에서 성추행범의 누명을 썼던 양민혁 검사(조진웅)는 '막프로'라는 별명답게 수사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체질대로 이 실체에 접근해 간다. 경제도, 론스타게이트도 몰랐던 그는 다가갈수록 이에 얽힌 이들이 전직 총리와 미국의 고관대작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란 것을 알게 되지만, 잠시 고민을 할지언정 좌절하지도 굴복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맞선다. 반면에, 국제통상전문변호사 김나리(이하늬)는 의뢰자인 론스타의 편이었지만 범죄의 실상을 접하면서 점차 양민혁의 편으로 기운다.
 
영화는 금융위원회의 판결을 향하여 달려간다. 불법매각으로 결정하면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그 와중에 김나리는 일반매각으로 결정되어 배당금을 받으면 자신도 그 혜택을 받아 오랜 꿈을 실현하게 된다는 정보를 접한다. 자, 금융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한 김나리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양민혁 검사는 이 판결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이처럼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 체제 금융자본의 모순을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그렇게 하여 촛불항쟁 이후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서민과 노동자의 삶이 전혀 달라진 것 없이 불의와 불공정과 불평등이 만연하는 원인을 넌지시 밝힌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약탈적 금융자본주의를 정점으로 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본-국가-보수언론-종교권력층-사법부-김앤장과 같은 전문가 집단과 어용지식인'으로 이루어진 기득권 동맹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보수반동의 강렬한 반대가 근본원인이지만, 문재인 정권이 적폐청산과 개혁을 거의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금융자본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금융관료, 전문가 집단으로 이루어진 기득권 동맹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어떻게 국익을 훼손하고 국부를 유출하고 국민을 기만하는지에 대하여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가 셋째 사유에 대해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면서 그리 큰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무죄로 풀려나고 현 정권에서도 중요한 자리에 있음을 생각하고는 절망한다. 이 절망은 분노로 이어지고, 모피아의 청산과 금융개혁의 꿈을 꾼다. 이로 이 영화는 거울에 머물지 않고 횃불이 된다.
 

영화 블랙머니 스틸컷
영화 블랙머니 스틸컷

 


정의를 향한 영화의 진동을 우리의 진동으로 전환해야
 
그럼에도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진정성과 대중성, 픽션과 팩트, 반영상과 굴절상 사이에서 진동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금융자본주와 기득권 동맹의 모순을 고발하고 모피아가 없는 세상을 꿈꾸게 하면서도 진정성만 추구하지 않는다. 우선 주연인 조진웅과 이하늬가 뜨거움 대(對) 차가움, 열정 대 지성, 우직함 대 영리함, 정의 대 사익으로 이항대립구조를 형성한다. 양자는 대립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때로는 극적 긴장을 높이고 때로는 풀어주면서 예술성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추리 서사의 형식을 차용하여 긴장을 주면서도 박진감 있게 서사를 전개한다. 진지함 속에서도 유머를 드러내 빵 터지게 한다. 강신일, 윤병희 등 조연을 맡은 이들의 맛깔스러운 연기가 이를 빛낸다.
 
권력과 타협하는 검찰을 통해 요즘 최대의 화두인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말하면서도 정의로운 검사의 모델도 보여준다. 이로 이 영화는 금융자본주의의 실체를 드러낸다는 진정성을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중적 재미를 아우른다. 물론, 한두 명의 상투적인 배역과 에피소드, 미쟝센 등 옥에 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백미는 픽션과 팩트, 반영상과 굴절상 사이에서 진동한 것이다. 이 영화는 론스타 게이트의 팩트에 충실하면서 금융자본주의의 모순을 객관적으로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실제 팩트와 달리 양민혁 검사의 수사와 마지막 결행을 통하여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를 담아 굴절상을 구현하였다. 하지만, 여느 진보적 영화처럼 정의의 승리로 결말을 맺지 않아 상투성에서 벗어난다.
 
이 영화를 보는 대중들은 분노와 쾌감을 동시에 공유한다. 양민혁 검사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그가 정의를 구현할 때, 특히 마지막의 결행 장면에서 쾌감을 느끼고 환호한다. 몇몇 관객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내 관객들은 촛불정권에서도 모피아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동맹이 조금도 균열되지 않은 채 그들의 이해관계와 의도대로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로 돌아온다. 이 상황에서 자주적인 금융 공공성의 달성은 '불가능한 꿈'이라는 인식에 이르고는 좌절하고 분노한다. 양민혁이 실제 한국 검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막막해 한다.
 
지금이라도 금융, 재정, 외교 분야에 포진해 있는 '검은머리 미국인'을 솎아내고 수조 원의 국부를 유출시킨 매국노들을 제대로 응징하지 않는다면, 제2의 론스타는 언제든 재발할 것이다. 정지영 감독과 제작진이 론스타 게이트에 대한 정의의 구현과 금융 공공성의 꿈을 다시 소환하였다. 이제 늙은 거장의 소환에 시민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우리 또한 충분히, 끊임없이 진동하여야 삶이 그만큼 충실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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