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비풍비번
신무문관: 비풍비번
  • 박영재
  • 승인 2019.10.1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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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40

성찰배경: 필자가 최근글에서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선사의 인가(印可)와 그 직후의 잠적 과정에서 첫 인가 제자인 혜명 선사를 배출한 일화가 담긴 <무문관(無門關)> 제23칙 ‘불사선악’ 공안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물리학자로서의 체험을 곁들이며 육조 선사께서 오후(悟後) 수행을 마치고 출세(出世) 직후 크게 일갈(一喝)하는 과정이 담긴 <무문관> 제29칙 ‘비풍비번(非風非幡)’ 공안에 대해 제창하고자 합니다.

박사학위와 인가(印可)

사실 과학은 21세기 첨단과학기술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보다 쉽게 통찰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또 다른 비유의 보고라고 사려됩니다. 구체적으로 ‘박사학위’를 보기로 들어 ‘인가’의 참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물리학의 경우 지도교수가 학위과정의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학생들의 연구성과에 따라 석사과정을 포함해 대개 5년에서 7년 사이에 박사학위를 수여하게 되는데, 박사학위의 의미는 이제 혼자서도 충분히 연구를 수행해갈 수 있다는 것이지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어서 더 이상 연구할 필요도 없이 놀고먹으며 그저 제자 양성에만 힘써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유학 1세대 분들은 외국에서 힘들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뒤에는 그것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여 사회로부터 존경받기에만 익숙해 있을 뿐만 아니라 제자 양성도 별로 하지 않아 한국 물리학을 십 수 년 정도 정체상태에 있게 하였으나 1980년대 초부터 새롭게 귀국한 소장학자들의 진지하고도 열성적인 연구열에 힘입어 한국물리학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으며 그 결과 1993년부터는 한국물리학회에서 발간하는 영문학술지인 ‘Journal of Korean Physical Society’가 SCI 등재 국제학술지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국내 학위과정도 제 틀을 갖추도록 애쓴 결과 오늘날은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신진 학자들도 국제 수준의 연구를 꾸준히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1980년부터 개최된 한국물리학회 정기총회에서는 한국물리학계의 한 획을 긋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전까지는 연배 높은 선배 교수들께서 대강 발표 준비를 한 채, 학회에서 수필 수준의 연구논문을 발표해도 괜찮았으나 1980년부터는 신진 소장학자들이 선배, 후배에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다음 학회부터는 노소를 막론하고 엉성하게 준비하여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분들이 사라진 것입니다.

사실 박사학위를 어느 대학교, 어느 지도교수 밑에서 받았느냐에 따라 대개 그 사람의 연구역량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피상적으로 추론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만 필자가 아는 어느 소장 물리학자께서는 별로 학자로서 인정받고 있지 못한 국내 대학교의 모 교수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그 후 해외 박사후과정 연수를 다녀오는 등 꾸준히 연구에 힘쓴 결과 매년 저명 국제학술지에 여러 편의 논문을 게재하며 그 연구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반면에 어떤 교수께서는 국제적인 수준의 대학에서 그것도 세계적으로 저명한 지도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으나 그 이후 별다른 연구활동을 하지 않아 동료 교수들로부터조차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다가 정년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한편 선가(禪家)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스승이 제자의 수행이 무르익어 혼자서도 충분히 수행해갈 수 있을 정도로 제자의 마음이 열렸다고 판단되면 대개 ‘박사학위증’에 해당하는 ‘인가장’을 써주는데 여기에는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한다는 뜻이 담긴 전법게가 들어있기도 합니다. 물론 오도송이니 열반송이니 전법게이니 하는 것 자체를 군더더기라고 생각하여 이런 게송들을 전혀 남기지 않는 선사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가를 받은 제자는 박사학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든 수행이 끝났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이제부터는 혼자서도 철저히 선(禪) 수행을 계속해 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제자도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역시 박사학위와 마찬가지로 인가를 어느 스승 밑에서 받았건 그것이 이제는 혼자서도 철저히 ‘향상일로(向上一路)’를 향해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 공부가 다 끝났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군더더기: 참고로 만일 더 이상 수행에는 힘쓰지 않고 누구의 인가를 받았다며 목에 힘주고 있는 사이 그 사람의 수행력은 어느샌가 고갈되고 말 것이고,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맹인중맹(一盲引衆盲)’이란 엄중한 경고의 선어(禪語)처럼 어리석은 스승이 그를 믿고 따르는 수 많은 제자들을 그르치고 말 것입니다.

한편 이런 상황이 비단 종교계나 학계에만 해당되겠습니까! 특히 정치계의 경우 요즈음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시기에 두루 모든 분야에서 온 국민이 힘을 모아도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잘 선도해야 할 정치지도자들이 지난 몇 달 동안 대한민국을 둘로 쪼개어 부차적인 일에 대다수 국민들의 에너지를 고갈시켜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한국을 이끌고 있는 각계각층의 지도자분들이 하루 속히 날마다 자기성찰로 하루를 열며, 부디 서로 견해는 다를지라도 고통 받는 국민들의 삶을 편안케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열린 마음으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서로 다른 견해들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한 후, 상대의 견해가 더 좋다고 판단되면 상생(相生)의 지혜를 발휘해 큰 틀에서 기꺼이 이를 채택하고, 세부적인 문제점들은 드러날 때마다 하나하나 보완해 가면서 실천해 옮기시기를 필자는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박사후과정과 오후(悟後) 수행

이어서 필자의 전공인 물리학 분야에서는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유사한 연구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교수 밑에서 대개 2년에서 4년 동안 박사후연구원 직을 수행하며 자신의 연구역량을 폭넓게 키워갑니다. 그런 다음 대학교(또는 연구소)에 자리를 잡고 독자적인 연구를 주도하며 박사학위 제자들을 다수 배출하게 됩니다. 한편 선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인가 후 두루 다른 스승들을 찾아 참문하거나 또는 홀로 은거(隱居)하며 체득한 바를 더욱 다지는 오후 수행의 시절을 보냅니다.

군더더기: 필자의 경우 먼저 학문적으로는 1987년 9월부터 1988년 8월까지 일년간 초중력이론의 창시자 가운데 한 분인 피터 반 니우벤호이젠 교수가 재직하고 있던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이론물리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 직을 수행하며 학문연구에 대한 안목을 크게 넓혔습니다.

한편 종달(宗達, 1905-1990) 선사 입적 직후 뒤를 이어 선도회의 지도법사로서 참선 모임을 이끌어가던 중, 한 스승 밑에서만 수행해 온 필자의 경계를 확인받아 볼 필요를 느껴 미국에 계신 숭산(崇山, 1927-2004) 선사께 편지를 드렸습니다. 1991년 8월 귀국하셔서 화계사에 머물고 계시다는 기별을 받고 화계사를 방문해 필자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드리고 숭산 선사께 입실점검을 청했습니다. 아침 8시에 시작해 거의 2시간 동안 독대(獨對)를 하며 20여 개의 화두에 대해 경계를 제시하며 점검을 받았는데, 선사께서는 필자의 견해에 관해 하나하나 아주 자상하게 답해 주셨습니다. 특히 <무문관> 제14칙의 ‘남전참묘(南泉斬猫)’에 관한 문답을 통해 필자는 선 수행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한 획을 긋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맨 마지막에 이제 바탕은 잘 길러졌으니 보다 세밀한 데까지 철저히 살피라는 조언도 주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날 이후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입실 지도를 하게 되었으며 필자의 수행의 깊이도 훨씬 깊어졌음을 몸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덧붙여 박사후연구원 직을 수행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종달 선사께서 설정한 점검과정을 모두 마치고 떠난 미국에서의 1년 또한, 필자에게는 스승과 도반도 없는 선가(禪家)를 떠나 온전히 홀로 은거하며 보낸 값진 순숙(純熟)의 구도(求道) 여정이었습니다.

혜능 선사 세상 밖으로 나오다

끝으로 이제 혜능 선사께서 16년간 은둔하며 오후 수행을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온 직후 크게 일갈(一喝)하는 과정이 담긴 <무문관> 제29칙 ‘비풍비번(非風非幡)’ 공안에 대해 제창(提唱)하고자 합니다.

본칙本則: 혜능 선사, 어느 때 찰간의 깃발이 바람에 날리는데 두 승려가 서로 논쟁하기를, 한 승려는 ‘깃발이 날린다.’라고 하고, 다른 한 승려는 ‘바람이 움직인다.’라고 하며 서로 자신의 견해가 옳다며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시고) 혜능 선사께서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소이다!”라고 하시자 두 승려가 송구스러워했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 가로되,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 어떤 것이 혜능 선사의 진짜 의도(意圖)인가? 만약에 이에 대하여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두 승려가 쇠를 팔아 금을 얻은 격이 됐으나, 혜능 선사께서 (그 꼴을 보다 못해) 참지 못하고, 한 마디 던진 것이 한바탕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 바람이 움직인다느니 깃발이 움직인다느니 마음이 움직인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같은 (형량의) 죄목들이네./ (혜능 선사님! 당신은) 다만 입을 여는 것만 알았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르치고 말았소. [風幡心動 一狀領過. 只知開口 不覺話墮.]

필자의 견해로는 두 승려가 바람이 분다느니 깃발이 움직인다느니 하며 이원적 분별 속에 시비(是非)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끝내 참지 못하고, 마침내 혜능 선사께서 출세(出世)의 첫 일성으로 눈높이에 맞추어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고 있느니라![인자심동仁者心動]’라고 일갈하며 정신 차리게 하셨다고 봅니다. 그런데 무문 선사께서는 평송(評頌)에서 ‘일장영과(一狀領過)’, 즉 혜능 선사 또한 두 승려의 진흙탕 싸움에 끼어드시며 똑같이 불법(佛法)에 어긋나셨다고 통렬하게 지적하셨네요. 자!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며 무어라 한 마디 바르게 이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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