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한 빗물이 조명탑 안을 적셔도"
"야속한 빗물이 조명탑 안을 적셔도"
  • 안드레
  • 승인 2018.11.21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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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안드레의 조명탑 일기 7. 비가 옵니다

11월 21일 고공농성 9일차

비가 옵니다.

농성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비가 쏟아졌습니다. 나름 구멍 난 곳 없이 잘 막았다고 자부해왔는데, 야속한 빗물이 조명탑 안을 적십니다. 밤새 많은 분들이 걱정 해주셨는데, 저는 여러 노하우를 총동원하여 어제 밤, 잘 버텼습니다.

비가 오니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비가 멈췄을 때는 강한 바람이 조명탑을 흔듭니다. 심하게 흔들릴 때는 저도 모르게 기둥을 붙잡습니다. 궂은 날씨에 아래에서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도 걱정이 됩니다.

비가오니 농성에 들어가기 직전 사우나에서 목욕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뜨끈한 온탕에 몸을 담그고, 사우나의 온기에 취해있을 때의 행복감이 그립습니다. 매일 차가운 물티슈로 몸을 닦으며, 다짐하고 다짐합니다. 이제 학생들이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습니다. 역사의 과오는 여기에서 끝내야 합니다. 종단과 총장이 욕심을 버려야 동국대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농성장을 지키던 친구가 상록원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을 때, 한태식 총장이 귀빈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지나갔다고 합니다. 피켓팅을 하고 있던 친구는 본인도 모르게 ‘총장님 연임하면 안 됩니다. 고공농성하고 있는 학생 좀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스스로의 잘못과 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신입니다. 고공에서의 외침과 피켓팅에서의 절규를 보고도, ‘연임하지 않겠으니 내려오라’는 말 한마디 못하는 총장에게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본관 안은 복도조차도 따뜻합니다. 전기장판을 틀고, 온풍기를 켜고, 침낭 속으로 몸을 넣어도, 코끝이 시린 이곳에 있는 학생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총장님과 이사장님이 따뜻하고 쾌적한 곳에 계신다고 해서 화가 나지 않습니다. 다만, 학생들의 요구를 회피하고 외면하며, 끝까지 자신들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이 화가 납니다. 학생들이 지난 4년 동안 외친 대학민주화의 요구는 억지가 아닙니다. 때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나의 학교의 미래를 위해, 독점되어 있는 부당한 권력을 해체하기 위해, 합당하고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눈과 비가 내릴수록 우리는 더욱더 똘똘 뭉칠 것입니다. 민의를 거스르는 권력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빨리 지상으로 내려가기를 고대하며 오늘도 잘 견디고 있습니다. 걱정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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