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외도문불(外道問佛)
신무문관: 외도문불(外道問佛)
  • 박영재 교수
  • 승인 2018.06.08 10:08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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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34.

* 성찰배경: 지난 2014년 불교사회연구소 정기조사결과 ‘기도를 포함해 명상수행을 하는 정도’에서 재가의 불교인은 8.7%로, 개신교인 27.6%, 천주교인 18.3%보다 뒤졌다는 통계가 발표되면서 불교계가 위기감을 크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을 살펴보면 비록 매년 신규 출가자 수의 감소를 포함해 전통적인 의미의 종교 교세는 줄어들고 있지만 종교적인 의식이나 지식적인 교리와는 무관하게 종교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명상수행에 대한 관심은 뇌과학의 발전에 발맞추어 오히려 점점 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이 불교계도 무조건 전통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지속적인 자기성찰[명상]을 통해 바른 인생관의 확립과 이를 온몸으로 실천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있지 않는가를, 새롭게 외도(外道)의 기준으로 삼아 시대의 흐름을 주도해야할 적기라 사려 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외도’와 관계된 ‘외도문불(外道問佛)’(<무문관> 제32칙) 공안을 제창하고자 합니다.

본칙本則: 석가세존께 어느 날 이웃종교를 믿는 외도가 찾아와 여쭈었다. “유언有言도 묻지 않고 무언無言도 묻지 않습니다.” (즉, 말이나 침묵 모두 진리를 드러낼 수 없는데 지혜로운 세존께서는 어떻게 저를 일깨워주시겠습니까? 하고 대들었습니다.) 이에 세존은 거좌(據座), 즉 다만 묵묵히 앉아 계셨다. 그러자 외도가 “세존께서 대자 대비하시어 저의 어두운 마음을 열어 주시어 저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습니다.”라고 찬탄하며 곧바로 격식을 갖추어 예를 드리고 물러갔다. 그런데 곁에서 시봉하던 아난이 의아해 하며 세존께 여쭈었다. “저 외도가 무엇을 깨쳤기에 저렇게 찬탄하며 물러갔습니까?” 그러자 세존께서 가로되, “마치 세상에서 빼어난 말[양마良馬]이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평창評唱: 무문 선사 가로되, 아난은 불제자임에도 불구하고 외도의 견해만도 못하구나. 자! 외도와 불제자와의 수준차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일러 보아라.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 칼날 위를 걷고, 살얼음판 위를 달리며, 사다리를 밟지 않고, 낭떠러지에서 난간을 잡은 손마저 놓아버리네. [검인상행劍刃上行 빙릉상주氷稜上走 불섭계제不涉階梯 현애살수懸崖撒手.]

* 군더더기: 선종(禪宗)에 속한 무문혜개 선사께서는 비록 십대제자로 널리 알려진 아난존자라고 할지라도 아직 깨치기 전에는 세존의 법문을 아무리 머릿속에 많이 기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적內的으로 깊은 통찰체험이 없으면 이웃종교를 믿는 외도보다도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제창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종(敎宗)에 속한 불제자들의 경우에도 바른 간경(看經) 수행을 통해 얼마든지 깊은 통찰체험을 할 수 있는데, 서산대사께서는 이 점을 <선가귀감>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부디 바라건대 도를 닦는 모든 수행자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깊이 믿을 뿐, 비굴(卑屈)해지지도 말고 뽐내지도 말라. 비굴해지는 것은 경전(經典)을 배우는 자들의 병이고 뽐내는 것은 선(禪)을 닦는 자들의 병이니라.”

한편 수행자를 네 부류로 나눌 때 늘 인용하는, <잡아함경> 33권에 ‘양마良馬’에 관한 다음과 같은 멋진 비유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말이 있다. 첫째는 채찍의 그림자만 봐도 곧장 달리며 그 주인의 뜻에 따른다. 둘째는 채찍이 털끝에 스치면 곧장 달리며 그 주인의 뜻에 따른다. 셋째는 채찍이 몸을 때리면 곧장 달리며 그 주인의 뜻에 따른다. 넷째는 채찍을 뼈에 사무치도록 때려야 겨우 간다.” 사실 첫 번째 부류에 속한 외도는 이 공안의 핵심인, 석가세존께서 취한 ‘거좌(據座)’의 의도를 온몸으로 체득하고는 찬탄하며 물러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외도 대신 그 자리에 있었다면 세존의 ‘거좌(據座)’에 대해 어떻게 응대하시겠습니까?

서산대사의 ‘가사 걸친 도적’

그런데 이처럼 불교 외부의 넓은 안목을 가진 외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세존께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입멸入滅 후 불제자를 가장한 ‘가사 걸친 도적’[袈裟賊]들, 즉 불교 내부의 외도들을 특히 조심하라는 유훈遺訓도 남기셨습니다. 이 유훈을 늘 뼈 속 깊이 새기시던 서산대사께서는 당시 어지럽던 조선의 불교계를 각성시키기 위해 <선가귀감> 제61절에서 다음과 같이 이를 다시 통렬하게 토로하고 계십니다.

석가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도적(盜賊)들이 거짓으로 나(와 불제자들)의 옷을 걸치고 나[如來]의 이름을 팔며 온갖 악업(惡業)을 짓는단 말이냐?”

주해(註解)1: 말법비구를 이르는 여러 가지 이름들이 있으니, ‘박쥐중’, ‘벙어리 염소중’, ‘머리깎은 거사’, ‘지옥찌꺼기’, ‘가사 걸친 도적’[피가사적被袈裟賊] 등이 그것이니라. 아! 세존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니라!

주해(註解)2: 부처[如來]의 이름을 파는 자는 인과의 도리를 부정하고 죄나 복의 과보(果報)도 없다고 하며, 몸과 마음으로 악업을 물 끓듯이 지어대고, 사랑과 미움을 끊임없이 일으키니, 참으로 애처롭고 안타까운 일이니라. 승려(僧侶)도 아니고 세속인(世俗人)도 아니니 ‘박쥐중’이라 하고, 혀는 있으나 설법(說法)을 제대로 못하니 ‘벙어리염소중’이라 하고, 겉모습은 승려지만 마음속은 세속인이니 ‘머리깎은 거사’라 하고, 지은 죄가 무거워 돌이킬 수 없으니 ‘지옥찌꺼기’라 하고, 부처를 팔아서 생계(生計)를 꾸려가니 ‘가사 걸친 도적’이라 부르는 것이니라. 참고로 이들은 모두 가사 입은 도적이라는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처럼 두루 여러 가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니라.

군더더기: 이 대목은 비록 출가수행자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재가수행자의 경우 역시 ‘자신의 생업과 가족 부양의 의무는 소홀히 하면서 출가자들의 수행도량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피속피승避俗避僧하며] 허송세월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리에서 얼마든지 일과 수행이 둘이 아닌 ‘생수불이(生修不二)’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음을 깊이 성찰하면 좋겠습니다.

선농일치의 선-그리스도교 공동체

예수회 사제이자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이며 선(禪) 수행자인 서명원 신부가 이사장 직을 맡고 있는 ‘(사)도전돌밭공동체’는 2015년 경기도 여주시 산골에 창립한 기도(명상)⦁공부/연구⦁노동(농사, 울력)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그 연원은 1996년 필자가 주관하던 서강대 견주굴(見主窟) 모임에서 그가 간화선 수행을 시작한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법호(法號)가 천주교(天主敎)의 달도인(達道人)을 뜻하는 천달(天達)인 그는 현재 선도회 신촌지부, 여주지부 및 국제지부 법사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설립 전 한국⦁스위스⦁프랑스 출신의 국내외인 7-8명이 지부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사단법인 설립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습니다. 설립 이후 함께하는 공동체 회원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여 2018년 현재 40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와 이웃 종교의 지혜를 배우고, 수행하면서 실천하여 비움의 영성을 살아가는 국제적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설립목적에 따라 이 공동체의 주축을 이루는 천주교 평신도들은 새벽마다 기도를 하고, 주일마다 미사를 봉헌하는 한편, 선 수행을 합니다. 참고로 회원의 개인별 특성에 따라 무문관과 성경 화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화두 참구를 수행합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참구 수행하는 이들도 이따금 있습니다.

특히 천달 법사는 회원들과 함께 선 수행에 관심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해 성경의 난해한 대목들을 화두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개신교 신자를 비롯한 여타 기독교 신자들과는 교회일치운동을 실천하고 있으며, 불교 신자나 다른 종교, 그리고 종교가 없는 회원들의 경우 공동체 행사를 통해 가톨릭 신앙과 전례, 그리고 교리 등 서로 간의 신앙 세계를 접하면서 알아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6월에는 수련원을 겸한 사단법인 본원을 준공한 이후 처음 미사를 봉헌했는데, 이 자리에 선도회를 대표해 필자도 함께하며 이 공동체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축원 드렸습니다. 또한 같은 해 8월에는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도피안사의 주지 송암 스님이 신자 여남은 명과 함께 방문하여 함께 미사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이렇듯 서서히 한반도에서 이웃 종교와 만남의 다리가 세워질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이 공동체가 설립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4년 방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천주교 신앙에 투철한 사제이면서도 20여 년간 선 수행을 해 온 희유한 이력의 소유자인 서명원 신부(천달 법사)의 행보에 관하여 ‘미래의 희망이다!’라며 적극적인 지지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캐나다에서 태어나 프랑스 보르도로 건너가 의학을 공부하다 졸업을 앞두고 수도회에 입회한 뒤 신학생 신분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던 그는, 한국에 뼈를 묻기로 결심하고 만 30년 만인 2015년에 우수인재 전형을 통해 한국인으로 귀화하였습니다.

군더더기: 이 공동체의 저변에 면면히 흐르는 골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발표한 회칙 ‘라우다토 시(Laudato Si, 찬미받으소서)’에서 강조한, ‘흙을 만지면서 대안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그리스도교회의 정신으로, 사실 이 정신은 일과 수행이 둘이 아님을 강조한 ‘생수불이(生修不二, 생활과 수행은 하나)’의 선불교 정신, 특히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선어(禪語)를 제창하고 실천한 당나라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 선사의 ‘선농일치禪農一致’ 정신과 잘 맞닿아 있습니다. 참고로 이는 한국 안에서 전혀 다른 색을 가진 두 종교의 조화로운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멋진 공동체 사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행보의 천달 법사(서명원 신부)를 불제자들이 과연 외도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필자의 견해로는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일상 속에서 자기성찰[명상]을 통해 뼈속 깊이 새길 수 있는 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함께 더불어 이를 온몸으로 실천하며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외도의 기준으로 삼아, 우리 불제자들 모두 종교를 초월해 ‘과연 나는 외도인가 아닌가?’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면 좋겠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석가세존께서 종교를 초월해 이웃종교인의 안목을 넓혀주셨듯이 불제자들, 특히 간화선 수행자들 역시 간화선만이 최상승선이라고 무조건 맹신(盲信)할 것이 아니라 좋은 수행[영성靈性] 전통을 이어온 이웃종교의 영적 스승들을 통해서도 우리들의 좁은 안목을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는 점을 가슴 깊이 새기기를 간절히 염원(念願) 드려 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6년 반 동안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노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노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노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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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불성설 입니다. 2018-06-15 13:08:10
진제도 "참나" 나 찻는 항상 거짓 추구하는 사이비이니,
이런 외도 찻아라는 사이비들도 때에 따라서 나오네.
교수라는 직책으로 기득권 얻어 무지몽매하네.

우매한 외도 주장 하는자들도 함께 득세세상
얼마나 무지몽매 하고 불교적인 깨달음 없었어면,

불교 망조가 작금에 다달아 타종교까지 주장 칭찬 대열.

완전 혼돈 어둠에 통탄할 지경에 이름.

타종교 영성이 정안(正眼)? 2018-06-15 10:09:05
위 내용이라면 타종교의 영적 스승의 경지와 간화선 화두타파의 경지를 동일하게 본다는 건데, 두리뭉실하게 모든 종교나 수행법이 다 그렇고 그렇다는 것은 위험한 소견입니다.

"선종의 안목은 법안(法眼)과 정안(正眼)이 근본이 되나니, 정안, 법안을 바로 기점을 두고 수행에 몰두해서 구경의 정안이 열려야사 비로소 견성대오 안목을 갖추나니, 인도의 요가나 티벳의 밀교의 영안(靈眼)은 선종의 정안(正眼)과는 거리가 멀고 멉니다." (진제대선사)

-->하물며 타종교의 영성과 간화선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부디~간절히 염원 부탁드립니다 2018-06-11 18:22:13
대체 부처님이 어떤/내용으로 뼈속깊이 새기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뼈속깊이 세겨서 실행할 뜻 내용이 무엇인가요?

외도도 찻아라고 불자들을 위해 간절히 염원 하시는데
그러하시다면 불자들을 위해서라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부디~이렇게 말씀 하셨다는 경전을 어디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는지 제시/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2018-06-11 18:02:54
뼈속 깊이 새길 수 있는 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뼈속깊이 그새긴것으로 바른 가치관을 실행 확립하라!

그래서 2018-06-11 18:01:20
그렇게 새기는게 부처님 가르침이고 깨달음이고?
진정 그러한 가르침이 불법인가요?그래서 외도종교도 찻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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