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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의 별, 적멸로 걸어 들다
30일 설악 무산 대종사 ‘원로회의장’ 엄수
2018년 05월 31일 (목) 01:19:36 서현욱 기자 mytrea70@gmail.com
   
▲ 설악 무산 대종사 다비식ⓒ불교닷컴

설악의 별, 무산 대종사가 적멸로 걸어 들어갔다. 세속의 하루살이를 마친 무산 스님은 30일 오전 신흥사에서 봉행된 영결식과 건봉사에서 엄수된 다비식을 끝으로 세연을 회향했다. 영결·다비식은 여느 절집과 다를 게 없었지만, 불교정화운동의 대전환을 마련한 할복 6비구인 성준 스님에게 입실 건당한 후 바람 잘 날 없던 설악의 절집을 평정했던 무산 스님의 발자취가 여전한 신흥사 경내에는 “잘 갔어, 아주 잘 갔어”라는 파격의 말이 흘러나왔다.

“천년을 살아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라며 성자와 하루살이가 다르지 않고 천년과 하루가 다르지 않다는 경지를 시로 읊조렸던 무산 스님은 입적조차 파격이었다. 주변을 살펴 정리하고 가솔에게 안부를 묻고 때를 맞아 적멸로 걸어 들어갔다.

   
▲ 행장을 소개하는 정휴 스님.ⓒ불교닷컴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보니,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무산 스님 열반송)

무산 스님의 삶은 여느 선사의 무애행과는 다른 평범으로 비범을 가리고 비범으로 평범을 드러낸 것 같은 삶이었다. 용대리 물가에 집을 지어 만해의 넋과 얼을 달래고, 글쟁이들이 찾아들 게 해 파격적인 문학축전을 열고, 작품 활동 공간을 내주던 그 모습, 축전 한 가운데 서서 한국 최고의 명창 손을 잡아 덩실덩실 함께 춤을 추고, 한 때는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고 즉석에서 시를 읊던 그 파격은 이제 설악의 어느 그늘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됐다.

   
 

30일 영결식장은 차분했다. 백담 밑 용대리 주민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 주민장 형식의 장례를 부탁한 무산 스님의 뜻은 격식과 의전에 얽매인 영결식이 아니었을 것이어서 아쉬움이 남는 다. 황망한 법손들의 일이 얽혔을 테지만, 용대리와 만해마을에서 덩실덩실 왁자지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안타까움이 동해 바다처럼 깊을 사람이 많을 터였다.

용대리 전 이장 정래옥은 23년 전 일화를 소개했다. 정 씨는 “저는 마을과 주민들을 사랑과 덕으로 늘 생각하시고 도와주시는 큰 스님을 부모님과 같이 섬기고 싶다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이장하고 나는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이제부터 이장을 친동생으로 생각하고 살터이니 그리 알고 지내라’ 말씀하셨다”며 “입적하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다. 저 뿐만 아니라 용대리 마을 전체 주민들도 갑작스런 비보를 접하고 큰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고 슬퍼했다.

이어 “천분의 일이라도 은혜를 갚으며 살아가고자 하였으나 훌쩍 떠나가시니 무척 애통하다”며 “저희는 용대리 어느 곳을 가나 큰스님께서 남기신 발자취를 돌아보며 잊지 않고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

   
▲ 종정 진제 스님과 설정 총무원장ⓒ불교닷컴

행장 소개 말미에 “무산당 편히 쉬시게”라고 던질 만큼 무산 스님과 세연과 문연이 깊은 정휴 스님의 얼굴은 편안했다. 정휴 스님은 행장 소개 말미에 “스님은 늘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 계셨으며, 보통 잣대로는 잴 수 없는 대방무외의 풍모를 보여주셨다”며 “그 스님이 지금 우리 곁을 떠나고 계신다. 평상 도반이었던 저도 이제 일주향으로 스님을 전송하고자 한다”고 했다.

무산 스님은 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된 지 네 해 만에 입적해 장례가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졌다. 원로의장 세민 스님은 “지난 밤 설악산이 소리 없이 우는 것을 들었다. 삼라만상이 무릎을 꿇고 슬퍼하는 것은 이 산중의 주인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일생 걸림 없이 종횡무진, 가는 곳마다 원통자재 하셨던 그 일기일경(一機一境)을 보지 못해 가슴이 무너진다. 생사자재한 기용으로 격외시적(格外示蹟)을 한 번 보이라“는 말로 영결했다.

   
▲ 법어를 하는 진제 종정 스님.ⓒ불교닷컴

종정 진제 스님은 법어로 무산 스님의 삶을 “산중을 지혜와 덕망으로 원융화합 이루어 내고, 설악의 불교문화를 부처님의 정법으로써 세계의 문화로 발전전승하고 전법포교로 회향하셨다”고 칭송했다.

개인 비위를 교단 문제로 치환한 설정 총무원장의 추도사는 적멸로 들어가는 ‘아득한 성자’의 그림자에 손을 내밀 듯 했다. 설정 원장은 “종단 현실과 세상살이가 힘들수록 더욱 대종사님의 지혜가 절실할 것”이라며 “사바세계를 떠나셨지만 변함없이 용기를 주실 것을 믿고 정진하겠다”며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과 나에게 꽃을 던지는 사람을 함께 소중하게 여기라’고 하신 스님의 말씀을 따라 의연하고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했다.

   
▲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세민 스님ⓒ불교닷컴

반면 종회의장 원행 스님은 만해 선사와 무산 스님을 같은 자리에 두고 ‘행장’과 ‘유훈’을 강조하는 것으로 슬퍼했다. 원행 스님은 “성준 화상을 은사로 설악에 발을 디딘 지 40여 년 세월, 무산이 설악이고 설악이 무산이었다”고 했다. 만해마을 건립과 만해축전을 되새긴 원행 스님은 “만해가 그랬듯, 큰스님도 시대의 분열과 혼란을 부수는 선구자였다”며 “그 행장과 유훈을 모두 가슴 속에 새긴다면 오늘의 무거운 영결은 조계종단과 한국불교의 새로운 도약을 일으키는 기연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했다. 만해 한용운 선사는 시인이자 불교개혁가였고, 무산 스님 역시 시인이자 ‘바람 잘 날 없는 설악’을 무풍지대로 만든 희대의 지도력을 발휘했다.

선원수좌들을 대표하는 의정 스님은 “스님께서는 일찍이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고 일갈하셨다”며 “몇 겁을 울던 울음 모두 울어버리고, 몇 겁을 웃던 웃음 모두 웃어버리고 큰스님 진영 앞에서 허물 벗고 가겠다”고 조사했다.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성우 스님(금산사 주지)은 “법체를 보내야만 하는 후학들의 슬픔은 함박눈이 쌓이는 설악이 되고, 눈물은 동해바다가 되어도 그치지 않는다”며 “한 평생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분별하지 않고 선인이든 악인이든 대자대비의 무애행을 펼쳐 중생의 친구가 되고자 하셨던 천진무구한 대종사님의 법안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워진다”고 조사했다.

중앙신도회장 이기흥은 “스님께서 일구어 놓으신 보살행의 발자취를 후대에 올곧게 전하며, 종단의 외호단체로서 더욱 정진하는 불자로서 본연의 목적을 구현하겠다”고 했다.

   
▲ 이운행렬ⓒ불교닷컴

무산 스님은 호칭이 많다. 오현은 속명이자 필명이나, 세상은 스님을 ‘오현 스님’으로 알았고 불렀다. 설악당은 법호이고 무산은 법명이다. 1932년 경남 밀양서 태어나 1957년 밀양 성천사 인월 화상에게 사미계를 수지했다. 1968년 석암율사에게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하고 금오산 토굴에서 6년 용맹 정진했다. 1975년 성준 화상을 법사로 입실 건당해 법맥을 잇고 설악의 주인이 되었다.

   
▲ 무산 대종사 법구 이운.ⓒ불교닷컴

선종의 가르침을 문학작품에 승화시킨 스님은 “부처가 왜 존재하느냐, 중생이 있기 때문이다. 불심의 근원은 중생심이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필요 없다. 환자가 없으면 의사가 필요 없는 것과 같다”면서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병을 치료해야 한다. 부처는 중생과 고통을 같이 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족들과 고통을 같이 하듯이 해야 한다”는 파격의 법문을 했다. 또 스님은 “우리 선승들의 화두도 우리 시대의 아픔들이 화두가 되어야 한다”며 “천 년 전 중국 신선주의자들, 산중 늙은이들이 살며 뱉어놓은 사구를 들고 살아야 하느냐”고 경책했다.

   
 

영결식장을 떠난 법구는 건봉사 다비장으로 이운돼 천화했다. 스님의 49재는 초재(6월 1일, 신흥사), 2재(6월 8일, 백담사), 3재(6월 15일, 낙산사), 4재(6월 22일, 만해마을), 5재(6월 29일, 진전사), 6재(7월 6일, 건봉사), 7재(7월 13일 신흥사)로 봉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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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시간 : 2018-05-31 01:19:36]  
[최종수정시간 : 2018-05-31 01:41:21]  

   
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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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ANEKFR 2018-06-02 20:50:09

    오현스님!
    설악사 입장료 대부분이 오현 스님 주머니 돈 이였지.
    거기에 낙산사와 백담사 돈은 덤으로 챙켜지~~~~
    그 돈으로 재미있게 詩쓰며 살다가 죽어으니 큰시님이 맞긴 맞는가?
    아~~~~~조계종은 돈, 명예, 권력중 그 중에 제일은 돈 이다,
    미국승려 현각이 한국불교를 가르켜 돈 밖에 모르는 곳이다,
    한국 불교는 불교가 없다고 일갈하고 한국 불교를 버렸다,
    오현당!
    다음 세상에서는 출가하지 말고 그냥 범부로 살다가 가시요?신고 | 삭제

    • 민화잘치는 스님 2018-06-01 03:12:03

      오현스님 영결식 사진을보니 대마초 피운 스님도 보이네요 ㅋㅋㅋ신고 | 삭제

      • ㅎㅎㅎ 2018-05-31 12:12:15

        기자의 말 하나 하나가 오히려 조계종의 구태가 얼마나 두텁고 지저분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는구먼 ㅋ신고 | 삭제

        • 오현스님도 2018-05-31 01:47:37

          자승이랑 다를게 없다.신고 | 삭제


          설악 무산 대종사 문손들.ⓒ불교닷컴

          헌화하는 원로의원 스님들.ⓒ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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